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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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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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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건장==
|대표명칭 = 소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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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 = 명승 제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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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명칭 = 담양 소쇄원(潭陽 瀟灑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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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oswaewon Garden, Dam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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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소쇄원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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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도 = 35.184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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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도 = 127.01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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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Soswaewon0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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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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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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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은 자연과 인공을 조화시킨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정원으로 우리나라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28737 선비]의 고고한 품성과 절의가 풍기는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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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보|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성한 것으로 스승인 [[조광조|조광조(趙光祖)]]가 유배를 당하여 죽게 되자 출세의 뜻을 버리고 이곳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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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이라는 이름은 [[양산보]]의 호(號)인 소쇄옹(瀟灑翁)에서 비롯되었으며, 맑고 깨끗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ref>출처: '담양 소쇄원' 문화재 안내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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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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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ss="wiki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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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 || 관계 ||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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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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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소쇄원 || 부속 건조물 || [[소쇄원_제월당|제월당(霽月堂)]], [[소쇄원_광풍각|광풍각(光風閣)]], [[소쇄원_오곡문|오곡문(五曲門)]], [[소쇄원_애양단|애양단(愛陽壇)]], [[소쇄원_대봉대|대봉대(待鳳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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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담양 소쇄원 || 관련 인물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212186&cid=40942&categoryId=39201 양산보(梁山甫)], [[양자징|양자징(梁子澄)]], [[김인후|김인후(金麟厚)]], [[송순|송순(宋純)]]
+
|-
+
|담양 소쇄원 || 관련 공간 || [[식영정|식영정(息影亭)]], [[필암서원|필암서원(筆巖書院)]]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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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물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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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oswaewon05.jpg|700px|소쇄원 경내 건조물 배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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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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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184307, 127.012159, [[담양 소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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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rtual Pavil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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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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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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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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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명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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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담양군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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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톨로지/문화유산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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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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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탕건은 말총을 이용하여 제작하기 때문에 주생산지는 말총이 풍부한 제주도와 평안도 일대였다.<ref> 朝鮮總督府. 『官報』 제 22권. 1915년 11월 13일. 아세아문화사 영인본.  p.149〜168.</ref>  
 
&nbsp;&nbsp;탕건은 말총을 이용하여 제작하기 때문에 주생산지는 말총이 풍부한 제주도와 평안도 일대였다.<ref> 朝鮮總督府. 『官報』 제 22권. 1915년 11월 13일. 아세아문화사 영인본.  p.149〜168.</ref>  
  

2020년 9월 23일 (수) 16:59 판

관모의 정의

  관모는(冠帽)두부를 보호하고 장식하기 위하여 쓰는 것이다.

또는 신분이나 의례에 따라 격식을 갖추기 위하여 쓰는 두의(頭衣)의 총칭이다.


관모의 성향

  조선시대의 양반 사대부 계층에서는 의관(衣冠)에 대한 유교적 관습에 따라

평상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품으로 여겼으며, 특히 남성의 것이 다양하게 나타났다.


관모의 형태적 분류

  형태상으로 보아 크게 관(冠), 모(帽), 갓(笠), 건(巾)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으로 모든 관모가 구별되는 것은 아니고, 서로 넘나드는 것이 많다.

그 예로 탕건(宕巾)은 조선시대에 벼슬아치가 갓 속에 받쳐 쓰던 관(冠)으로 망건(網巾)의 덮개이자, 갓 아래 받쳐 쓰던 건(巾)이다.


탕건장

  탕건은 말총을 이용하여 제작하기 때문에 주생산지는 말총이 풍부한 제주도와 평안도 일대였다.[1]

이러한 탕건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술을 가진 사람을 탕건장이라고 한다.

탕건을 제작하는 모습은 화가 김준근의 풍속화에 자주 등장한다.[2]


  1. 朝鮮總督府. 『官報』 제 22권. 1915년 11월 13일. 아세아문화사 영인본. p.149〜168.
  2. 김준근의 탕근쟝이 :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소장 한국문화재』 - 호 기산(箕山). 생몰년 미상. 풍속화가로 생업, 놀이, 형벌, 의례 등 서민들의 생활모습과 민속을 담은 300여점의 풍속화를 남겼는데 한국을 다녀간 학자나 선교사들을 통해 서양에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