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부내 최판서(崔判書*)"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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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조판서 최용소(崔龍蘇)는 본래 강화 사람이었다. 세종과 문종을 섬겼는데 죽어서는 제정(齊貞)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일찍이 해동부자(海東夫子)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 ○ 형조판서 최용소(崔龍蘇)는 본래 강화 사람이었다. 세종과 문종을 섬겼는데 죽어서는 제정(齊貞)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일찍이 해동부자(海東夫子)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
2019년 5월 3일 (금) 07:47 판
崔判書曾此土生 (최판서증차토생) 최판서는 일찍이 이곳에서 태어나,
海東夫子特垂名 (해동부자특수명) ʻ해동부자ʼ 칭호를 특별히 받았다네.
天朝亦是稱楊震 (천조역시칭양진) ʻ동방의 양진ʼ이라 중국서도 불렸으니,
兩國江山共著明 (양국강산공저명) 두 나라 강산에서 다함께 저명했네.
○ 형조판서 최용소(崔龍蘇)는 본래 강화 사람이었다. 세종과 문종을 섬겼는데 죽어서는 제정(齊貞)이라는 시호를 받았고 일찍이 해동부자(海東夫子)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 중국에서도 동방의 양진(楊震)이라고 칭하였다.
기행지도
인물
- 최용소(?∼1422)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은 강화. 조선 태종 때 공조판서를 지냈으며, 성품이 청백하였다. 시호는 제정(齊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