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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개관== 600픽셀 도나우강의 진주로 알려진 부다페스트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다리로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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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우강의 진주로 알려진 부다페스트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다리로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아이디어로 시작하여 스코틀랜드인 클라크 아담에 의해 건설되었다. 당시, 이 다리는 경제와 사회 발전의 상징이었다.
 
도나우강의 진주로 알려진 부다페스트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다리로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아이디어로 시작하여 스코틀랜드인 클라크 아담에 의해 건설되었다. 당시, 이 다리는 경제와 사회 발전의 상징이었다.
  
이후 1945년에 독일군에 의해 다리가 폭파되었으나 다리를 만든 지 100년이 되던 1949년에 다시 개통되었다. 세체니라는 이름은 이 다리에 공헌한 세체니 백작을 일컫기도 하지만 밤을 밝히는 전구의 모습이 마치 사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 그리고 다리 난간에는 혀가 없다고 전해지는 사자 상이 있다. 지금은 부다페스트의 야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다리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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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1945년에 독일군에 의해 다리가 폭파되었으나 다리를 만든 지 100년이 되던 1949년에 다시 개통되었다. 세체니라는 이름은 이 다리에 공헌한 세체니 백작을 일컫기도 하지만 밤을 밝히는 전구의 모습이 마치 사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 그리고 다리 난간에는 혀가 없다고 전해지는 사자 상이 있다. 지금은 부다페스트의 야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다리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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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세체니다리 [Szecheny lanchid]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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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2일 (수) 23:43 기준 최신판

개관

세체니다리.jpg

도나우강의 진주로 알려진 부다페스트에 가장 먼저 만들어진 다리로 세체니 이슈트반 백작의 아이디어로 시작하여 스코틀랜드인 클라크 아담에 의해 건설되었다. 당시, 이 다리는 경제와 사회 발전의 상징이었다.

이후 1945년에 독일군에 의해 다리가 폭파되었으나 다리를 만든 지 100년이 되던 1949년에 다시 개통되었다. 세체니라는 이름은 이 다리에 공헌한 세체니 백작을 일컫기도 하지만 밤을 밝히는 전구의 모습이 마치 사슬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 그리고 다리 난간에는 혀가 없다고 전해지는 사자 상이 있다. 지금은 부다페스트의 야경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름다운 다리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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