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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기와 [[윤형주]]의 첫 만남은 명동 YWCA 노래모임인 '청개구리'에서 | + | *애초에 김민기는 사람과 삶에 대한 성찰이 깊었던 인물이었다.고2때 작사한 가사 내용이 |
+ | "비가 내리누나 나 혼자 가고프나 함께 어울려 같이 간들 어떠하리 가세 산 너머로 비 개인 그곳에 저 군중들의 함성소리 들리잖나"였다고. | ||
+ | *김민기의 곡 중 널리 불리는 '친구'는 그가 고교 3학년 때 작곡했다. 보이스카우트 대원들과 동해안에 야영 갔다가 한 사람이 익사하는 바람에 즉시 서울로 돌아오던 야간열차에서 참혹한 심정을 가사에 담았다. | ||
+ | *김민기는[https://namu.wiki/w/%EA%B9%80%EC%98%81%EC%84%B8 김영세]와 함께 '도비두'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는데, 본인이 작곡한 곡은 부르지 않고 미국의 모던포크 중에서도 '''프로테스트(protest·저항) 포크'''의 핵심이라 할 음악인들의 곡<ref>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피터 폴 앤 메리의 'Weep for Jamie' 'Three Wavens' 'Old Coat' 'It's Raining', 존 바에즈의 'Portland Town'.</ref>을 불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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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민기와 [[윤형주]]의 첫 만남은 명동 YWCA 노래모임인 '청개구리'에서 이루어졌다고한다. 당시 [[윤형주|그]]의 감상에 따르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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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느낌도 독특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을 법한 얼굴인데, 마치 음악을 다 꿰뚫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곡 자체도 우리가 부르는 노래와 많이 달랐다.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가사였다. 완전히 매료됐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24/2011072401056.html 윤형주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7 익사한 후배에 바친 '친구']</ref> | |text=느낌도 독특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을 법한 얼굴인데, 마치 음악을 다 꿰뚫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곡 자체도 우리가 부르는 노래와 많이 달랐다.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가사였다. 완전히 매료됐다.<ref>[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7/24/2011072401056.html 윤형주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7 익사한 후배에 바친 '친구']</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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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에피소드'''란에서 언급된 윤형주의 감상에도 나와있듯, 그는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보다는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인생과 사람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노래였기에, 고스란히 그런 성향이 묻어 나왔다. | 위 '''에피소드'''란에서 언급된 윤형주의 감상에도 나와있듯, 그는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보다는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인생과 사람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노래였기에, 고스란히 그런 성향이 묻어 나왔다. | ||
1975년 - 당국에 의해 그의 노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됐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는 “금지곡들은 분명한 금지사유가 명시됐지만 이 노래에는 아무런 금지사유가 명시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다”라고 말했다. | 1975년 - 당국에 의해 그의 노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됐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는 “금지곡들은 분명한 금지사유가 명시됐지만 이 노래에는 아무런 금지사유가 명시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다”라고 말했다. |
2019년 6월 18일 (화) 02:48 판
인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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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명 | 김민기 |
성별 | 남 |
출생일 | 1951년 3월 31일 |
출생지 | 전라북도 이리시(현 익산시) 함열읍 |
사망일 | |
사망지 |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재동초등학교,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회화과 |
직업 | 가수, 작사가, 작곡가, 뮤지컬 기획자, 뮤지컬 연출가, 뮤지컬 제작자 |
활동기간 | 1969년 데뷔 (도비두) |
소속 | |
종교 | |
가족사항 | 배우자, 슬하 2남 |
목차
정의
대한민국의 가수, 작사가, 작곡가, 뮤지컬 기획자, 뮤지컬 연출가, 뮤지컬 제작자.
내용
인물정보
- 재동초등학교 졸업. 양희은과 동문. 양희은의 데뷔곡 '아침이슬'부터 30여개 이상의 곡을 함께 했다.
- 경기중학교 입학. 미술반 활동을 열심히 했다. 이후 대학도 서울대 회화과로 진학하게 되고 이 곳에서 만난 친구와 처음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술반 활동을 계속했고, 기타를 독학했다. 윤형주와 동문이다.
- 1969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입학하고,당시 대학 동기였던 김영세(디자이너)와 함께'도비두'(도깨비두마리) 라는 포크 팝 보컬 듀오를 결성했다.
- 1971년 김민기 1집을 시작으로 솔로 가수 겸 작곡가의 삶을 시작했다.
- 김민기는 노래를 통해 정권에 대한 반발의식을 드러내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는데, 그러한 그의 태도를 보고 그의 모든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이 원천 금지되었다.
- 결국 그는 가수에서 손을 떼고 작곡가, 그리고 극작가로 방향을 튼다. 노래극, 연극 등의 각본을 쓰곤 했는데 그 내용은 여전히 정권에 대한 비판의식을 드러내곤 했다.
음반
- M.net 김민기 음반 검색 결과 중 '정규'앨범 기준
생애 및 활동
- 애초에 김민기는 사람과 삶에 대한 성찰이 깊었던 인물이었다.고2때 작사한 가사 내용이
"비가 내리누나 나 혼자 가고프나 함께 어울려 같이 간들 어떠하리 가세 산 너머로 비 개인 그곳에 저 군중들의 함성소리 들리잖나"였다고.
- 김민기의 곡 중 널리 불리는 '친구'는 그가 고교 3학년 때 작곡했다. 보이스카우트 대원들과 동해안에 야영 갔다가 한 사람이 익사하는 바람에 즉시 서울로 돌아오던 야간열차에서 참혹한 심정을 가사에 담았다.
- 김민기는김영세와 함께 '도비두'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는데, 본인이 작곡한 곡은 부르지 않고 미국의 모던포크 중에서도 프로테스트(protest·저항) 포크의 핵심이라 할 음악인들의 곡[1]을 불렀다.
느낌도 독특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을 법한 얼굴인데, 마치 음악을 다 꿰뚫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곡 자체도 우리가 부르는 노래와 많이 달랐다.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가사였다. 완전히 매료됐다.[2] |
김민기의 금지곡
위 에피소드란에서 언급된 윤형주의 감상에도 나와있듯, 그는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보다는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인생과 사람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노래였기에, 고스란히 그런 성향이 묻어 나왔다. 1975년 - 당국에 의해 그의 노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됐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는 “금지곡들은 분명한 금지사유가 명시됐지만 이 노래에는 아무런 금지사유가 명시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다”라고 말했다.
1978년 -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작사, 작곡했다.
학전 소극장
1973년 - 김지하가 희곡을 쓴 연극 《금관의 예수》의 전국 순회 공연에 참여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노래 `금관의 예수`를 작곡했다. 1974년 - 소리굿 《아구》의 극본을 썼다. 1983년 - 연극 《멈춰 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의 극본, 연출을 맡았다. 1991년 - ‘겨레의 노래’를 총감독했다. 극단 학전 개관. 1994년 - 국내 최장수 기록 가진 뮤지컬 <지하철1호선> 공연 시작. 현재 소극장 학전과 극단 학전의 대표로 있으며, 1994년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 연출과 기획을 했다. 이것으로 2007년 독일 바이마르 괴테 메달을 받았다.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4000회를 마지막으로 공연을 중단한 상태이다. 그러나 추후 시대배경을 2000년대에 맞추는 등의 보완작업 후 새롭게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한국 대표 뮤지컬이라 할 수 있는 ‘지하철 1호선’을 직접 번안, 각색해서 20년가까이 수천번에 달하는 공연을 성사해왔다. 현재 내로라하는 배우들 중에서도 극단 학전출신이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으로 황정민, 설경구, 조승우 등. 시대적인 탄압으로 인해 틀게된 방향이었으나, 그 물꼬가 가지고 온 문화적 영향력은 어마어마 했다. 노래에서 그치지 않고, 뮤지컬, 연기계에서 권위있는 극단을 만드는 일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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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기여
주석
- ↑ 밥 딜런의 'Blowin' in the Wind' 'Don't Think Twice It's All Right', 피터 폴 앤 메리의 'Weep for Jamie' 'Three Wavens' 'Old Coat' 'It's Raining', 존 바에즈의 'Portland Town'.
- ↑ 윤형주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7 익사한 후배에 바친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