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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강화군 양사면 민간인 통제선 북방지역에 위치한 강화평화전망대는 북한의 문화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고 비교할 수 있는 곳이다. 전방 약2.3㎞ 해안 |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강화군 양사면 민간인 통제선 북방지역에 위치한 강화평화전망대는 북한의 문화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고 비교할 수 있는 곳이다. 전방 약2.3㎞ 해안 | ||
− | 을 건너 | + | 을 건너 [https://ko.wikipedia.org/wiki/%EB%A1%80%EC%84%B1%EA%B0%95 예성강]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황해도 [https://ko.wikipedia.org/wiki/%EC%97%B0%EC%95%88%EA%B5%B0 연안군] 및 [https://ko.wikipedia.org/wiki/%EB%B0%B0%EC%B2%9C%EA%B5%B0 백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67789 연백평야]가 있고 우측은 [https://ko.wikipedia.org/wiki/%EA%B0%9C%ED%92%8D%EA%B5%B0 개풍군]으로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송수 신 탑, [https://ko.wikipedia.org/wiki/%EC%86%A1%EC%95%85%EC%82%B0_(%EA%B0%9C%EC%84%B1)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어 타 지역에선 보기 힘든 북한의 문화생태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강화평화전망대는 지하 1층과 지상 4층 규모로 지하층과 4층은 군부대 전용시설이다. 1층에는 강화특산품과 북한의 특산물 등을 판매하는 토산품 판매장과 식당, 관리사무실, 게스트 룸이 있다.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고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설치된 디지털 나무도 있는데 여행객들의 소망을 담은 종이를 매달아 놓는 통일염원소 역할을 한다. 2층에서는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한 자료와 [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_%EC%A0%84%EC%9F%81 6.25 전쟁] 당시의 배경, 그 이후의 피해 상황 등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3층의 전망대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북한의 산하를 볼 수 있다. 또한 야외망배단이 설치되어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33118&cid=40942&categoryId=31778 이산가족]들이 고향을 바라보며 조상들에게 제를 올릴 수 있도록 상시 개방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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На смотровой площадке на третьем этаже вы можете увидеть горы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Кроме того, при обсерватории имеется открытая зона, предназначенная для того, чтобы члены разлученных семей могли совершить обряд помянания предков, оставшихся в Северной Корее. | На смотровой площадке на третьем этаже вы можете увидеть горы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Кроме того, при обсерватории имеется открытая зона, предназначенная для того, чтобы члены разлученных семей могли совершить обряд помянания предков, оставшихся в Северной Коре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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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 약2.3㎞ 해안을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황해도 연안군 및 백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고 우측은 개풍군으로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송수신 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어 타 지역에선 보기 힘든 북한의 문화생태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전방 약2.3㎞ 해안을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황해도 연안군 및 백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고 우측은 개풍군으로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송수신 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어 타 지역에선 보기 힘든 북한의 문화생태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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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출처'''== |
2019년 9월 3일 (화) 09:55 기준 최신판
강화평화전망대 | |
---|---|
지정 명칭 | 강화평화전망대 |
한자 명칭 | 江華和平瞭望臺 |
영문 명칭 | Ganghwa Peace Observatory |
건립 | |
주소 | 인천광역시 강화군 양사면 전망대로 797 |
위도 | 37.826693 |
경도 | 126.433188 |
목차
개관
한국어
육안으로 살펴볼 수 있는 북녘, 그리고 북녘 땅의 사람들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었던 강화군 양사면 민간인 통제선 북방지역에 위치한 강화평화전망대는 북한의 문화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끼고 비교할 수 있는 곳이다. 전방 약2.3㎞ 해안
을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황해도 연안군 및 백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고 우측은 개풍군으로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송수 신 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어 타 지역에선 보기 힘든 북한의 문화생태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강화평화전망대는 지하 1층과 지상 4층 규모로 지하층과 4층은 군부대 전용시설이다. 1층에는 강화특산품과 북한의 특산물 등을 판매하는 토산품 판매장과 식당, 관리사무실, 게스트 룸이 있다. 이산가족의 한을 달래고 통일을 염원하는 의미에서 설치된 디지털 나무도 있는데 여행객들의 소망을 담은 종이를 매달아 놓는 통일염원소 역할을 한다. 2층에서는 남북한의 군사력을 비교한 자료와 6.25 전쟁 당시의 배경, 그 이후의 피해 상황 등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3층의 전망대에서는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와 있는 북한의 산하를 볼 수 있다. 또한 야외망배단이 설치되어 북한에 고향을 두고 온 이산가족들이 고향을 바라보며 조상들에게 제를 올릴 수 있도록 상시 개방하고 있다.
[1]
영어
Ganghwa Peace Observatory, which is a building with 1 story below ground and 4 stories above ground, was constructed on the forest land in the northern area of the Civilian Passage Restriction Line at Cheolsan-ri Yangsa-myeon. It can be recalled that the entry to this area was once strictly prohibited for the general public since the end of 2006. Since its public opening on September 5, 2008, it has been providing accessibility to visitors for them to get an in-depth look on the unique cultural ecosystem of North Korea that may not be experienced in other areas.
The basement and the 4th floor space are exclusively used for military purposes. The 1st floor space is used for restaurants, administration offices, guest rooms and specialty shops selling specialty goods originated from Ganghwa and North Korea. The 2nd floor space is equipped with a high-performance telescope that enables a visitor to view images such as ‘Defense Experience at Ganghwa’ that depicts the traces and misery of war, ‘Endless War and We, the Korean Race’ that reminds the visitors about the provocation of North Korea, Comparison of Military power between South and North, and Unification Policy, ‘Way to Unification’ that enables the visitors to relive the experience of the trip to North Korea. Aside from the high-performance telescope, there is also an image providing device that shows a variety of images including the background of Korean War at that time, the process of occurrence of wars at home and abroad, and the damage sustained due to the war. At the 3rd floor, there is an observatory facility where the visitors can view the exquisite sceneries offered by the mountains and rivers. Being equipped with a highly advanced screen, this observatory facility is very much capable such that the feather of North Korea can be easily seen through the image even in bad weather condition.
Looking from this observatory, the Yesung River runs approx. 2.3 km ahead of it across the seashore while the Aegi-bong observatory in Gimpo, Odu-san Unification Observatory in Paju and Ilsan New Territory are located at its right side bordered with Gaesung Industrial Complex, Imjin River/Han River Junction area, and Nadul Island (Expected to be placed). On its left side, you can find Yeonbaik-gun, the place where you can observe the feature of life of the North Korean residents, the disguised village for propagation, Gaesung Industrial Complex Tower, Mt. Songak, a variety of barracks, etc.[2]
러시아어
Обсерватория мира Ганхва
'Обсерватория мира', расположенная в северной части Ганхва-гуна, где общественный доступ строго контролируется, - это место, где люди могут максимально близко почувствовать и сравнить культуры Северной и Южной Кореи. Обсерватория находится на расстоянии около 2,3 км от берега и пересекает побережье реки Йесунг. С левой стороны - равнина Йонгбонг, которая широко распространена на острове Хванхэ и Пэкчеон, с правой стороны - Кёнхё-гун, где можно увидеть образ жизни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пропагандистский камуфляжный поселок, Новую башню Гэсон Сонгсу и гору Сонгак. Это место, где вы можете почувствовать культурную экологию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которую трудно увидеть в других областях. Обсерватория мира Ганхва имеет один подземный и четыре надземных этажа. Подземный и 4-й этажи посвящены воинским частям. На первом этаже расположены сувенирные магазины, кафетерий, офис управления и гостевая комната, где представлены сувениры и фирменные блюда из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Есть также цифровое дерево, установленное с целью поддержания разлученных семей, а также выражающее желание народа в объединении двух Корей. На данное дерево вешаются бумажные листы, содержащие пожелания путешественников по отношению к объединению корейского полуотсрова. На втором этаже вы можете увидеть данные, сравнивающие военную мощь двух Корей, предысторию Корейской войны и нанесенный ущерб.
На смотровой площадке на третьем этаже вы можете увидеть горы Северной Кореи. Кроме того, при обсерватории имеется открытая зона, предназначенная для того, чтобы члены разлученных семей могли совершить обряд помянания предков, оставшихся в Северной Корее.
지도
해설
강화평화전망대는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곳으로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적 통일의 기반구축을 위한 문화관광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민통선북방지역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건립되어 2008년 9월 5일 개관하였다.
전방 약2.3㎞ 해안을 건너 예성강이 흐르고, 좌측으로는 황해도 연안군 및 백천군으로 넓게 펼쳐진 연백평야가 있고 우측은 개풍군으로 북한주민의 생활모습과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송수신 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어 타 지역에선 보기 힘든 북한의 문화생태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한반도 분단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서 자신들의 영향력 증대를 먼저 고려한 것은 냉전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당시 여론은 좌우 합작을 통한 중도적인 통일정부의 수립이었다. 이북을 김일성이 장악하고 남측에서는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하자 중도 정치 세력들은 1946년 7월 좌우합작 7원칙을 발표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은 한민당을 중심으로 한 "남조선과도입법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이로 인해 좌우 합작은 결렬되었다.[12] 한편, 일본 관리들을 모조리 쫓아낸 소비에트 연방은 6개월 군정을 무사히 마친 후, 1946년 2월 16일에 북쪽에는 이미 북조선인민위원회가 설립되었으며 2년간 계속되었다.
1947년이 되자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본격화되었고 유엔에서 남한만의 단독 선거가 의결되자 분단을 반대하던 민족주의 정치가들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한국독립당의 김구와 민족자주연맹을 조직한 김규식 등은 남북의 모든 정치세력이 평양에 모여 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를 열 것을 제안하였다. 김일성은 이 대회를 이북 정권의 정당성 확보의 장으로 이용하려 하였다. 이후 김구는 5·10 단독 선거에 불참하면서 통일 국가의 수립을 역설하였으나 뜻을 실현하지 못한 채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을 선포하여 일제에서해방을 알렸으나 9월 9일에는 북한에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되어 한반도는 공식적인 분단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3]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를 기해 조선인민군의 대대적인 남한 침략이 시작되었다. 전면전을 예상하지 못하였던 국군은 3일만에 서울을 내주고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인민군은 정면 공격을 통해 승리하였지만 유엔군으로 인해 완전한 침략에 실패하였다. 한편,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국군은 미군을 비롯한 유엔군(연합국)의 개입으로 전세를 역전하였다. 7월 13일, 이승만은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북한군의 행동은 38선을 제거시켜 주었고, 38선에 의한 분단이 지속되는 한 한반도에서 평화와 질서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18] "침략자를 격퇴하는 데 있어 한국군은 결코 38선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주장하였다.[19] 인천상륙작전이후 9월 27일에 서울을 수복하였다. 이후 미군과 국군과 북진을 결행하였고 10월 1일에 대한민국 대한민국이 제일 먼저 북진을 하였고, 10월 7일에 드디어 미군이 북진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이 이미 10월 9일에 주요적인 정부, 단체, 기관, 부대, 수뇌부 등을 평양에서 철수시킨 뒤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강계를 임시 수도로 정하고 주요적인 정부, 기관, 등을 그 쪽으로 철수시켰다. 10월 12일에 김일성 역시 평양에서 철수하여 덕천으로 잠시 머물렀다가, 10월 19일에 대한민국이 평양을 점령한 날에 덕천에서 철수하였고, 희천을 거쳐 강계까지 간 다음에 중국의 펑더화이를 만났다. 한편, 대한민국과 미군은 압록강까지 올라갔으나, 그러나 10월 25일에 중국인민해방군이 개입하자 국군과 미군은 다시 후퇴하였으며 12월 4일에 평양에서 철수하였고, 1달 뒤인 1월 4일엔 서울을 다시 내주었지만 3월 15일에 서울을 되찾았다. 또한, 1951년 이후 휴전 때 까지 지금의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1953년 7월 27일 교전 양측은 휴전에 합의하여 분단이 고착되었다. [4]
군사분계선
한국전쟁의 휴전과 함께 휴전 당시의 전선을 기준으로 군사분계선이 놓이게 되었다. 그 위치는 대략의 차이는 있으나 전쟁 이전의 38선을 중심으로 동서에 걸쳐 놓이게 되었으며 동으로는 강원도 고성군에서 부터 서로는 임진강에 이른다. 군사분계선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이 되었다. [5]
남북통일
남북통일(南北統一)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국가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통일은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표현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북남통일(北南統一) 내지는 조국통일(祖國統一)이라고 표현한다. 영어로는 한국의 재통일(영어: Korean reunification)으로 표현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핵 무장에 따른 군사적 충돌 발생 시,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전쟁 위협과 손실 나아가, 미국와 중국간의 패권 경쟁(신냉전)에 따른, 세계적 핵전쟁 위협을 불식하게 된다. 통일된 한국의 경우, 러시아를 포함한 한·중·일·호 등 인근 아시아 지역 국가와 대규모 아시아 지역의 경제 공동체(A E U - Asian Economic Union) 로써, 상호 교류 협력을 통해 유럽 연합(EU), 아랍 연맹(Arab League) 및 유라시아 경제 연합(EEU - Eurasian Economic Union) 등 세계적인 다른 경제 공동체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한반도는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세계의 경제, 정치 안보적으로 주는 영향이 크다. 통일된 한반도는 작게는 국가 경제의 대외 무역 의존도가 국민 총생산GNP 의 90% 정도 이상을 차지하는 지나치게 높은 수출 주도형 취약한 경제 구조를 가진 한국경제에 새로운 희망을 주며, 크게는 기존의 미국 주도의 경제 질서속에서, 미국 경제 악화되면서 발생한 저성장 침체 터널에 갖힌 세계 경제에 새로운 가동 엔진이 되어, 동아시아 지역에 핵전쟁 위협이 사라진 거대한 경제 공동체의 탄생을 통한 활력소가 된다. 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아우르는 유라시아 경제 연합의 무역 교역량 증가 액은, 한국 대외 경제 정책 연구원(KIEP) 조사 결과 등을 기준하면, 통일이후 10년내 300% 이상의 추가 무역 교역량의 확장이 예상된다. 남북통일(南北統一)은 한반도에 존재하는 두 국가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남북통일은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표현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북남통일(北南統一) 내지는 조국통일(祖國統一)이라고 표현한다. 영어로는 한국의 재통일(영어: Korean reunification)으로 표현한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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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 편집 및 정리 | 김예브게니아 | 정치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