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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20일 (수) 20:20 기준 최신판
공산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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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번호 | 사적 제12호 |
지정일 | 1963년 01월 21일 |
지정 명칭 |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
한자 명칭 | 公州公山城 |
영문 명칭 | Gongsanseong Fortress, Gongju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건립·제작 | 삼국시대 |
주소 | 충남 공주시 산성동 2번지 |
위도 | 36.4623522 |
경도 | 127.1215419 |
웹사이트 | http://tour.gongju.go.kr/html/kr/ |
목차
개관
공주 시내 산성동에 있는 공산성은 백제 문주왕 1년(475)에 한산성에서 웅진으로 천도하였다가 성왕 16년(538)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성이다. 사적 제12호인 공산성은 총 연장 2,660m의 고대 성곽으로 해발 110m의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의 요지이다.
동서로 약 800m, 남북으로 약 400m 정도의 장방형을 이루고 있다. 원래는 백제시대의 토성이었던 것을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다. 성 안에는 웅진 도읍기로 추정되는 왕궁지를 비롯해 백제시대 연못 2개소, 고려시대 때 창건한 영은사, 조선시대 인조대왕이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쌍수정과 사적비,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 등이 남아 있다.
동문과 서문은 최근에 복원하였으며 주변에는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울창한 숲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오늘날 공산성은 역사와 문화가 함께 정이 깃든 수
려한 자연이 있기 때문에 더욱 가치있게 보여지고 있다. 가족 단위, 부부, 연인들이 금강을 바라보며 한가롭게 산책할 성벽길이 있고 우거진 숲과 숲사이의 산책로가 있다. 계룡산과 차령산맥이 한눈에 들어오고 비단결 같은 금강이 발 아래에서 찰랑거린다.[1]
Gongsanseong Fortress, Gongju
Gongsanseong Fortress, located in Gongju, is a mountain castle that is about 2.6km long and has a reputation as a scenic site overlooking the Geumgang River nearby. Established during the Ungjin Baekje Period (475~538), the fortress was called Ungjinseong. It name changed into Gongjusanseong during the Goryeo Period and Ssangsusanseong during the Joseon Period. Designated as Historic Site No.12, the fortress contains the recently restored east and west gates, an ancient site that is believed to have served as a royal palace during the Baekje Period, two ponds named Manharu and Yeonji, a small temple named Yeongeunsa and other constructions of historic importance. Registered as a UNESCO World Heritage in 2015, Gongsanseong Fortress is now attracting visitors with its historic traces and memorable scenery.
Гунжү хотын Гунсанъсон цайз
Гунжү хотод байрлах Гунсанъсон цайз нь Бэгжэгийн Мүнъ Жү хаан ор суусны 1 он(475)-д Хансансон цайзнаас нийслэлээ Үнжинъ руу шилжүүлснээс хойш дахин Сон хаан ор суусны 16 он(538)-д Бүё руу нийслэлээ шилжүүлэх хүртэл нийт 5 үе 64 жилийн турш тухайн үед Бэгжэгийн нийслэл байсан Гунжү хотыг хамгаалахын тулд барьж босгосон уулын цайз юм. Солонгосын түүхийн 12 дах дурсгалт газар болох Гунсанъ цайз нь нийт 2660 метрийн урттай эртний цайз бөгөөд далайн түвшнөөс дээш 110 метрийн өндөрт орших уулын нуруу хэсэгт байрладаг. Энэхүү цайз нь зүүн баруун хэсгээрээ 800 метр, урд хойд хэсгээрээ ойролцоогоор 400 метр орчим урттай тэгш өнцөгт хэлбэртэй цайз юм. Анх Бэгжэ улсын үед шавар цайз байсныг Жусон улсын үед чулуугаар дахин барьж босгосон байна. Цайз дотор Үнжиний гол төв цэг байсан гэж таамаглаж болохуйц хааны ордны бууриас авхуулаад Бэгжэгийн үеийн 2 цөөрөм, Гурёгийн үед анх баригдсан Ён-өн хийд, Жусоны үед Инъ Жу их хаан И Гуарын бослогоос зугтан түр байрлаж байсан Сансүжон болон Сажогби мөн урд хаалга болох Чинънамнү, хойд хаалга болох Гунбүннү зэрэг нь өнөөг хүртэл хадгалагдаж үлдсэн байдаг. Зүүн хаалга болон баруун хаалга нь сүүлд дахин сэргээн засагдсан ба эргэн тойронд нь намуухан урсах Көмган мөрөн болон өтгөн шигүү ой модод хоорондоо зохицон орших нь үнэхээр үзэсгэлэнтэй харагддаг. Өнөөдөр Гунсанъ хэрэм нь түүх соёлын өв дурсгалт газраас гадна сэтгэл татам үзэсгэлэн төгөлдөр байгаль дунд оршдог гэдгээрээ улам илүү үнэ цэнэтэй юм.
공산성의 유래
공산성은 백제시대 축성된 산성으로 백제 때에는 웅진성으로 불렸다가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으로 불리게 되었다. 475년(문주왕 1) 한산성(漢山城)에서 웅진(熊津)으로 천도하였다가, 538년(성왕 16)에 부여로 천도할 때까지 5대 64년간의 도읍지인 공주를 수호하기 위하여 축조한 것으로, 당시의 중심 산성이었다. [2]
공산성 쌍수정
충청남도 공주시 공산성 내 있으며 진남루(鎭南樓:충남문화재자료 48) 서쪽에 위치한 정자이다. 1624년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하여 이곳 공주까지 내려와 공산성에 피신하고 있었다. 산성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했던 쌍수(雙樹:두 그루 나무)에 기대어 이괄의 난이 평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차에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기뻐했던 나머지 자신이 기대었던 느티나무 두 그루에 통훈대부(通訓大夫)라는 벼슬을 명하고 이곳을 쌍수산성이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이때의 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1734년(영조 10)에 쌍수가 있던 자리에 정자를 지었다. 처음 정자를 지었을 때 당시의 이름은 삼가정(三架亭)이었다. 그후 여러 차례 중건하였으며, 1903년(광무 7)에 다시 정자를 세웠는데 그때 이후 쌍수정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70년 전체적으로 해체 복원한 것이다. 정자 앞에 느티나무 1그루와 말채나무 1그루가 서 있지만 어느 나무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인조가 이곳에 머물렀을 당시의 사적을 기록한 비(쌍수정 사적비:충남유형문화재 35)도 남아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49호로 지정되었다.[3]
공산성 진남루
공산성의 출입통로로 이용되고 있는 진남루는 성의 남문에 해당되며, 조선시대에는 삼남의 관문이었다. 원래 토성(土城)이었던 것을 석축성(石築城)으로 고쳐 세운 것은 조선 전기의 일이다. 진남루도 그 때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뒤에도 여러 차례 고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71년에 전부 해체하여 원래대로 복원한 것이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4]
공산성 추정 왕궁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공산성 내에 있는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왕궁 터로, 공산성 왕궁지는 충청남도 공주시의 산성동과 금성동에 있는 공산성(사적 12호) 안에 있다. 공산성은 북쪽에 금강과 접해 있어 군사적 방어지점으로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추고 있다.
공산성내 서쪽의 해발 85m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종래 쌍수정 광장으로 불려 왔던 추정 왕궁 터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의하면 임류각(臨流閣)은 궁의 동쪽에 건립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80년에 조사된 임류각 터에서 서쪽으로 왕궁이 입지할 수 있는 위치는 이곳밖에 없다는 논거로 조사되었다.공산성 왕궁지 발굴 조사는 충청남도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공산성 연차 발굴 중에서 추정 왕궁 터의 유적 조사를 지칭한다. 조사는 1985년의 시굴 조사를 시작으로 하여, 동년 1차 전면 조사, 1986년 2차 전면 조사가 이루어졌다.[5]
공산성 만하루와 연지
연지는 공산성 북쪽의 금강과 영은사(靈隱寺)사이에 있는 연못이다. 공산성에는 우물이 3개 있었다고 전해지나 이곳과 쌍수정(雙樹亭)남쪽의 것 2개만 확인되고 있다. 발굴전까지는 흙으로 덮여 있었으나 1982년부터 1983년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확인, 정비한 것이다. 금강 가까이에서 물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지형상의 조건을 이용하여 만들었다.
연못의 가장자리가 무너지지 않도록 돌로 층단을 쌓았으며 수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북쪽과 남쪽에 계단 시설을 하였다. 연못의 축석상태를 보면, 모두 단을 두어 쌓았으며, 전체적인 모습은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형태이다. 아울러, 축석에 사용된 석재는 비록 정치석되지는 않았지만, 면을 어느 정도 반듯하게 다듬어져 있다. 이들의 축조는 매우 정연하게 이루어져 있으며, 석질은 절석이 잘도는 반암계통을 사용하고 있다.[6]
공산성 연못
충청남도 공주시 산성동 공산성에 있는 백제시대의 연못으로 공산성 왕궁지 연못은 백제시대에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왕 때, 어떠한 목적으로 만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연못이 있는 곳이 왕궁 터로 추정되는 곳이고, 백제 때 만들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삼국사기』의 기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국사기』에는 동성왕 때에 “연못을 파고 진기한 새를 길렀다”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못이 현재의 왕궁 터 연못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왕궁 곁에 있다는 점에서 조경용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 한다. 연못은 윗면의 직경이 7.8m, 바닥 면의 직경이 4.9m이고, 깊이는 3m로, 윗면이 크고 바닥면이 역 사다리꼴의 형태를 하고 있다. 연못은 지표에서 1.2m 깊이에 매몰되어 있다가 발굴되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는데, 지하로 땅을 판 다음 바닥에 30~50㎝ 크기의 판석형 할석을 깔고, 그 위에 호안석(護岸石)을 쌓아올려 완성하였다. 호안석 바깥쪽에는 누수를 방지하기 위해 약 1m 두께로 점토를 채워넣은 것도 확인되었다.[7]
공산성 공북루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에 있는 성문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누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37호. 공산성을 감도는 금강가 나루터에 있다. 공주시가의 동북단에 인접하여 거대한 문루(門樓)의 형태로 꾸며져 있다. ‘拱北樓(공북루)’라고 쓴 현판은 성 안쪽에 해당되는 추녀 밑에 걸려 있다.
누 바깥쪽에 석성(石城)이 쌓여 있으며, 누의 중앙 한 칸에 해당되는 부분만이 뚫려 통로를 이루고 있다. 1603년(선조 36) 관찰사 유근(柳瑾)이 쌍수산성을 수축하면서 이 자리에 있었던 망북루(望北樓)를 중건하여 공북루로 고쳐 부르고 그 옆에 월파당(月波堂)을 지었다고 하나, 월파당은 1654년 붕괴되어 현재는 그 터만 남아 있다. 그 뒤 1663년 관찰사 오정위(吳挺緯)가 중수하고 송시열(宋時烈)이 중수기를 썼다. 1964년 국고보조로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8]
지도
고지도
구글지도
시각자료
가상현실
영상
- EBSCulture (EBS 교양), "백제 최후의 날, 공주 공산성", YouTube, 게시일: 2015년 7월 7일.
- 문화유산채널 K-HERITAGE, "어긋난 수신호, 비밀의 문을 열다-공주 공산성", YouTube, 게시일: 2014년 12월 2일.
관련 사이트
- 대한민국 구석구석 (http://korean.visitkorea.or.kr)
- 두산백과 (http://www.doopedia.co.kr/)
-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http://www.grandculture.net/)
참고문헌
- 안승수·이남석, 『공산성 백제추정왕궁지 발굴보고서』 (공주 : 공주대학교 박물관, 1987)
답사 후기
- 답사 중/후에 느낀 것. 보완되어야 할 부분이 있으면 적어주세요!
출처
- ↑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 출처: 대한민국 구석구석
- ↑ 출처: [1]
- ↑ 출처: 문화재청 문화재정보
-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http://www.grandculture.net/)
- ↑ 대한민국 구석구석(http://korean.visitkorea.or.kr)
- ↑ 안승수·이남석, 『공산성 백제추정왕궁지 발굴보고서』 (공주 : 공주대학교 박물관, 1987)
-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
- ↑ 디지털공주문화대전
기여
일자 | 역할 | 이름 | 전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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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4. | 정리 | 김예슬, 김은빈 | 음악학 |
2016. 4. | 편집 | 장원석 | 인문정보학 |
2018. 4. | 편집 | 조선애 | 인문정보학 |
2018. 6. | 편집 | 최정훈 | 인문정보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