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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프랑스의 지형은 크게 산지와 평지로 나눌 수 있다. 산지는 이탈리아·스위스 국경지대에 높이 솟아 있는 알프스와, 에스파냐와의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의 2대 습곡산맥(알프스 조산운동으로 형성되었음) 이외에도 고생대 석탄기(3억 5,000만년 전)의 헤르시니아 조산운동에 의하여 형성된 아르모리캥산지, 중앙부의 마시프상트랄(중앙 산지), 북동부의 보주·아르덴산맥 등 준평원화한 노년기 산지가 있다. | |
+ | 프랑스의 기후는 유럽 기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기후는 보통 해양성·대륙성·지중해성으로 나누어지는데, 프랑스에는 이 세 가지 기후가 모두 나타난다. 이는 산지의 위치·높이와 더불어 기후에 지역차가 나타나는 요인이 된다. | ||
+ | 겨울에는 쥐라·알프스·마시프상트랄 등의 산지가 고기압 지역이 되는데, 때에 따라서는 아조르즈 고기압, 아시아 대륙 고기압과 연속하여 기압의 산맥을 형성한다. 이때 기압 산맥의 양쪽, 즉 영국·지중해는 저기압이 되고 사이클론성(性)의 바람이 자주 분다. | ||
+ | 겨울과 여름 사이에 지중해안에도 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봄은 아주 짧으며 5월에 들어서면 이미 건조한 여름을 맞이하게 된다. 여름에는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의 남서부로 밀려가는 안티아조르즈사이클론의 영향으로 서해안에 약간의 비가 올 뿐 일조량이 | ||
+ | 가장 커진다. 그러나 비스케이만의 냉수대(冷水帶) 때문에 기온은 그리 많이 올라가지 않는다. 한편 피레네의 서부에서는 가을에 강수량이 가장 많지만 여름에 호우가 쏟아지기도 한다. | ||
+ | 또한 아키텐분지·파리분지의 한복판은 건조하며 주변지역으로 나갈수록 강수량이 많아진다. 연평균 강수량은 600∼2,000mm인데 강수량이 많은 곳은 피레네 서부, 마시프상트랄·보주·알프스 산맥 등의 높은 지대이다. | ||
+ | 기온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특히 리비에라 해안의 겨울 기온이 높으며 북쪽으로 갈수록 기온은 떨어진다. 이밖의 산지에서도 기온은 낮아진다. 연평균기온을 비교하자면 몽블랑산 정상이 -6.5℃로, 이는 샤모니몽블랑보다 23.6℃나 낮은 기온이다. 또한 클레르몽페랑(388m)이 10℃인 데 비해 퓌드돔산(1,468m)은 3℃이다. | ||
− | + | ==역사<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795684&cid=46627&categoryId=46627<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프랑스의 역사]</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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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 ===고대=== | ||
− | + | 프랑스에는 서남프랑스에 마들렌문화가 발달하였는데 동굴 벽화의 동물화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지역 주민들이 수렵과 어로 등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
+ | 그 후 한랭기를 거쳐 신석기 시대가 되자 농경문화가 전파되어 다뉴브 강 유역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는데 이러한 유적은 단순히 오리엔트 농경문화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독특한 특색을 지닌 신석기 문화에서 생겨난 것이다. 토기의 형태·문양이 다양하고 다른 지역과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진 흔적이 보인다. 특히 스위스와 그 주변의 호상주거(湖上住居), 스칸디나비아로부터 영국 및 스페인을 위시한 대서양 연안 지방과 함께 프랑스 각지에서는 고인돌(dolmen)·선돌(menhir)·화석(cromlech)·스톤헨지(stonehenge) 등 세련된 거석 기념물이 만들어졌다. | ||
+ | 청동기 시대에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부족들이 다뉴브 강 주변이나 알프스 방면에서 프랑스에 침입하였으며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특히 켈트인의 내왕이 활발하였다. 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에 켈트인은 발달된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프랑스 전지역 대부분을 차지함으로써 전성기를 맞았다. | ||
===중세=== | ===중세=== | ||
− | + | 카롤링거 왕조가 이후에 두 가문 사이에서 때때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되곤 했던 권력 투쟁을 거쳐, 위그 카페가 왕으로 즉위(재위 987~996)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공작이며 파리의 백작이었고, 발루아 가문, 부르봉 가문의 분파까지 포함하는 카페 왕조를 | |
− | + | 창설하였고, 그 왕조는 800년이 넘는 세월동안 ― 1792년 루이 16세의 처형 때까지 ― 프랑스를 통치하였다. 생클레르쉬레프트 조약(911)에 의하여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바이킹족의 두목 롤로에게 하사된 공작령인 센 강 하류의 노르망디 공국은, | |
− | + | 1066년에 롤로의 후손 노르망디 공작 기욤이 영국을 정복하고 왕이 되면서(재위 1066~87) 프랑스 왕실에게는 다루기 곤란한 지역이 되었다. 비록 프랑스 내에서는 노르망디 공작이 프랑스 왕의 신하이지만, 프랑스 외부에서는 동등한 왕이기 때문이었다. | |
+ | 1223년의 프랑스.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루이 7세(재위 1137~80)와 이혼(1152)한 프랑스의 전 왕비인 엘레오노르는, 노르망디 공작 헨리 플랜태저넷과 재혼(1152)하였다. 엘레오노르는 아키텐 공작이 다스리던 프랑스 서남부 지역을 물려받은 인물이었다. | ||
+ | 1154년에 노르망디 공작이 영국왕으로 즉위하였는데, 그가 헨리 2세이었다. 헨리는 자신의 어머니인 마틸다를 통해 노르망디 공국을 물려받았고, 아버지로부터는 앙주 지방을 물려받은 인물이었다. 엘레오노르와 그녀의 네 아들 중 세 명이 이끈 | ||
+ | 1173-1174년의 반란군이 패한 이후에, 헨리는 엘레오노르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봉신을 브르타뉴 공작으로 임명했으며, 그 결과 프랑스 서부를 다스리게 된 그는 프랑스 왕실보다 더 큰 힘과 더 넓은 영토를 지니게 되었다. | ||
+ | 그러나 헨리의 후손들 사이에서 그의 프랑스 영토를 분할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고, 존 왕(재위 1199~1216)과 필리프 2세(재위 1180~1223) 사이에 긴 분쟁이 그 논쟁과 얽히면서, 결국 프랑스 왕 필리프 2세는 헨리 2세가 프랑스 내에서 차지했던 영토의 대부분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였다. 부빈 전투(1214)에서 프랑스가 대승을 거둔 이후에, 영국 왕실은 프랑스 남서부의 귀예네 공국에 대해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 ||
===근대=== | ===근대=== | ||
− | + | 16세기 후반 무렵, 프랑스의 개신교신자들인 위그노와 기존의 로마 가톨릭세력들간에 대립이 격화되어, 위그노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무려 36년간에 크고 작은 전쟁이 격렬해져갔다. 그러던중 위그노 세력의 지도자인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가 즉위하여 종교간의 대립을 중재하고자 개신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낭트 칙령을 발표함으로써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의 종교전쟁인 위그노 전쟁은 종결된다. 이후 앙리 4세는 국내산업을 진흥시키고자 해외진출등 추진에 힘을써 프랑스의 왕권강화, 즉 절대왕정의 기초를 마련한다.태양왕 루이 14세.루이 1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강력한 절대군주제와 왕권의 강력통치를 위해 관료제와 상비군 체제를 정비하여 재정확보를 위해 장바티스트 콜베르를 중용하여 중상주의경제 정책을 실시해나아간다. 그럼에따라 프랑스는 국내산업을 크게 일으키고, 해외무역을 장려하여 국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고,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등에 참전하는등 대외 팽창정책으로 유럽의 강국으로 변하여 갔다. 그렇지만, 베르사유 궁전을 짓느라고 지나치게 많은비용을 소비하고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해 위그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낭트칙령을 폐기함으로써, 상공업에 주로 종사하던 위그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과 네덜란드로 대거이주하게 된다. 이후 국력이 크게 소요되고, 루이 14세의 말년에는 국력이 서서히 약해져 가면서, 이후 프랑스는 전쟁,대외정책에 너무 무리하게 많은돈을 쓰는바람에 만성적 재정난에 시달리게 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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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 ===현대=== | ||
− | + | 1958년 6월 국민의회에서 절대 다수의 신임을 얻은 드골은 12년만에 총리직에 복귀했다. 이후 드골은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인정한 새로운 헌법을 발의하고 국민 투표에서 통과되자 1959년 1월 제5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드골은 대통령이 된 뒤 알제리 문제를 일단 해결하고 프랑스를 세계에서 네 번째의 핵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또한 중국과 국교를 회복하는 등 미국-소련이 세계를 분한해 지배하는 이른바 '냉전' 상황에서 드골은 '프랑스의 영광'을 회복하고, 국제 사회에서 프랑스의 발언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 |
+ | 파리 교외의 낭테르에 있는 파리 대학 분교의 문학부를 1968년 5월 3일 대학 당국이 폐쇄했다. 1967년 11월부터 이 학교에는 시설 개선을 둘러싸고 급진파 학생과 대학 당국 사이에 대립이 있었다. 1968년 3월 22일 '빨강 머리 다니'라는 애칭으로 일컬어지던 콩방디를 지도자로 하는 학생 그룹이 대학 당국의 금지령을 어기고 학내 집회를 열었고, 이에 대해 대학 당국은 경찰을 불러들여 유혈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5월 2일에 분교를 점거했고 이것이 분교 폐쇄로 이어졌다. | ||
+ | 콩방디의 처분을 둘러싼 조사가 본교(소르본)에서 열렸지만, 본교 당국은 다시 경찰을 불러들였다. 항의하는 무리에 마침내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해 경찰과 충돌을 벌였다. 그리하여 학생 약 600명이 체포되고 본교도 폐쇄됐다. '3.22'운동의 결과, 1907년에 결성된 '프랑스 학생 전국동맹(UNEF)'도 지원을 강화했고, 학생 시위도 더욱 격렬해졌다. 5월 11일 오전 2시, 카르티에라탱 거리에는 학생 시위대와 경찰간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학내 처우 개선 요구에서 비롯된 3.22 운동과 5.3운동은 학내 문제에 머물지 않았고 대학 교직원 조합, 노동 총동맹 들을 끌어들여 드골 정권을 뒤흔드는 전국 규모의 파업으로 발전했고, 이 시위로 드골 정권이 무너졌다. | ||
− | + | ==오버워치 속 프랑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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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21일 (수) 01:12 기준 최신판
국가 소개 | |
---|---|
국호 | 프랑스 공화국 République française |
수도 | 파리 |
인구 | 66,991,000명 |
정치 체제 | 이원집정부제, 단일국가 |
면적 | 551,695km² |
언어 | 프랑스어 |
목차
지도
자연환경과 기후
프랑스의 지형은 크게 산지와 평지로 나눌 수 있다. 산지는 이탈리아·스위스 국경지대에 높이 솟아 있는 알프스와, 에스파냐와의 국경을 이루는 피레네의 2대 습곡산맥(알프스 조산운동으로 형성되었음) 이외에도 고생대 석탄기(3억 5,000만년 전)의 헤르시니아 조산운동에 의하여 형성된 아르모리캥산지, 중앙부의 마시프상트랄(중앙 산지), 북동부의 보주·아르덴산맥 등 준평원화한 노년기 산지가 있다. 프랑스의 기후는 유럽 기후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유럽의 기후는 보통 해양성·대륙성·지중해성으로 나누어지는데, 프랑스에는 이 세 가지 기후가 모두 나타난다. 이는 산지의 위치·높이와 더불어 기후에 지역차가 나타나는 요인이 된다. 겨울에는 쥐라·알프스·마시프상트랄 등의 산지가 고기압 지역이 되는데, 때에 따라서는 아조르즈 고기압, 아시아 대륙 고기압과 연속하여 기압의 산맥을 형성한다. 이때 기압 산맥의 양쪽, 즉 영국·지중해는 저기압이 되고 사이클론성(性)의 바람이 자주 분다. 겨울과 여름 사이에 지중해안에도 비가 내리기는 하지만 봄은 아주 짧으며 5월에 들어서면 이미 건조한 여름을 맞이하게 된다. 여름에는 이베리아반도에서 프랑스의 남서부로 밀려가는 안티아조르즈사이클론의 영향으로 서해안에 약간의 비가 올 뿐 일조량이 가장 커진다. 그러나 비스케이만의 냉수대(冷水帶) 때문에 기온은 그리 많이 올라가지 않는다. 한편 피레네의 서부에서는 가을에 강수량이 가장 많지만 여름에 호우가 쏟아지기도 한다. 또한 아키텐분지·파리분지의 한복판은 건조하며 주변지역으로 나갈수록 강수량이 많아진다. 연평균 강수량은 600∼2,000mm인데 강수량이 많은 곳은 피레네 서부, 마시프상트랄·보주·알프스 산맥 등의 높은 지대이다. 기온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수록 점점 낮아진다. 특히 리비에라 해안의 겨울 기온이 높으며 북쪽으로 갈수록 기온은 떨어진다. 이밖의 산지에서도 기온은 낮아진다. 연평균기온을 비교하자면 몽블랑산 정상이 -6.5℃로, 이는 샤모니몽블랑보다 23.6℃나 낮은 기온이다. 또한 클레르몽페랑(388m)이 10℃인 데 비해 퓌드돔산(1,468m)은 3℃이다.
역사[1]
고대
프랑스에는 서남프랑스에 마들렌문화가 발달하였는데 동굴 벽화의 동물화가 매우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 지역 주민들이 수렵과 어로 등 경제 활동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한랭기를 거쳐 신석기 시대가 되자 농경문화가 전파되어 다뉴브 강 유역을 중심으로 널리 퍼졌는데 이러한 유적은 단순히 오리엔트 농경문화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독특한 특색을 지닌 신석기 문화에서 생겨난 것이다. 토기의 형태·문양이 다양하고 다른 지역과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진 흔적이 보인다. 특히 스위스와 그 주변의 호상주거(湖上住居), 스칸디나비아로부터 영국 및 스페인을 위시한 대서양 연안 지방과 함께 프랑스 각지에서는 고인돌(dolmen)·선돌(menhir)·화석(cromlech)·스톤헨지(stonehenge) 등 세련된 거석 기념물이 만들어졌다. 청동기 시대에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부족들이 다뉴브 강 주변이나 알프스 방면에서 프랑스에 침입하였으며 기원전 9세기 무렵부터 특히 켈트인의 내왕이 활발하였다. 기원전 5세기~기원전 3세기에 켈트인은 발달된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프랑스 전지역 대부분을 차지함으로써 전성기를 맞았다.
중세
카롤링거 왕조가 이후에 두 가문 사이에서 때때로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되곤 했던 권력 투쟁을 거쳐, 위그 카페가 왕으로 즉위(재위 987~996)하였다. 그는 프랑스의 공작이며 파리의 백작이었고, 발루아 가문, 부르봉 가문의 분파까지 포함하는 카페 왕조를 창설하였고, 그 왕조는 800년이 넘는 세월동안 ― 1792년 루이 16세의 처형 때까지 ― 프랑스를 통치하였다. 생클레르쉬레프트 조약(911)에 의하여 스칸디나비아에서 온 바이킹족의 두목 롤로에게 하사된 공작령인 센 강 하류의 노르망디 공국은, 1066년에 롤로의 후손 노르망디 공작 기욤이 영국을 정복하고 왕이 되면서(재위 1066~87) 프랑스 왕실에게는 다루기 곤란한 지역이 되었다. 비록 프랑스 내에서는 노르망디 공작이 프랑스 왕의 신하이지만, 프랑스 외부에서는 동등한 왕이기 때문이었다. 1223년의 프랑스.상황은 갈수록 악화되었다. 루이 7세(재위 1137~80)와 이혼(1152)한 프랑스의 전 왕비인 엘레오노르는, 노르망디 공작 헨리 플랜태저넷과 재혼(1152)하였다. 엘레오노르는 아키텐 공작이 다스리던 프랑스 서남부 지역을 물려받은 인물이었다. 1154년에 노르망디 공작이 영국왕으로 즉위하였는데, 그가 헨리 2세이었다. 헨리는 자신의 어머니인 마틸다를 통해 노르망디 공국을 물려받았고, 아버지로부터는 앙주 지방을 물려받은 인물이었다. 엘레오노르와 그녀의 네 아들 중 세 명이 이끈 1173-1174년의 반란군이 패한 이후에, 헨리는 엘레오노르를 감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봉신을 브르타뉴 공작으로 임명했으며, 그 결과 프랑스 서부를 다스리게 된 그는 프랑스 왕실보다 더 큰 힘과 더 넓은 영토를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헨리의 후손들 사이에서 그의 프랑스 영토를 분할하는 문제로 논쟁이 벌어지고, 존 왕(재위 1199~1216)과 필리프 2세(재위 1180~1223) 사이에 긴 분쟁이 그 논쟁과 얽히면서, 결국 프랑스 왕 필리프 2세는 헨리 2세가 프랑스 내에서 차지했던 영토의 대부분에 대한 영향력을 회복하였다. 부빈 전투(1214)에서 프랑스가 대승을 거둔 이후에, 영국 왕실은 프랑스 남서부의 귀예네 공국에 대해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근대
16세기 후반 무렵, 프랑스의 개신교신자들인 위그노와 기존의 로마 가톨릭세력들간에 대립이 격화되어, 위그노 전쟁이 발발하게 된다. 무려 36년간에 크고 작은 전쟁이 격렬해져갔다. 그러던중 위그노 세력의 지도자인 부르봉 왕조의 앙리 4세가 즉위하여 종교간의 대립을 중재하고자 개신교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낭트 칙령을 발표함으로써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간의 종교전쟁인 위그노 전쟁은 종결된다. 이후 앙리 4세는 국내산업을 진흥시키고자 해외진출등 추진에 힘을써 프랑스의 왕권강화, 즉 절대왕정의 기초를 마련한다.태양왕 루이 14세.루이 14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강력한 절대군주제와 왕권의 강력통치를 위해 관료제와 상비군 체제를 정비하여 재정확보를 위해 장바티스트 콜베르를 중용하여 중상주의경제 정책을 실시해나아간다. 그럼에따라 프랑스는 국내산업을 크게 일으키고, 해외무역을 장려하여 국부를 축적하게 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군대를 양성하고,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등에 참전하는등 대외 팽창정책으로 유럽의 강국으로 변하여 갔다. 그렇지만, 베르사유 궁전을 짓느라고 지나치게 많은비용을 소비하고 국민들을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해 위그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인정한 낭트칙령을 폐기함으로써, 상공업에 주로 종사하던 위그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영국과 네덜란드로 대거이주하게 된다. 이후 국력이 크게 소요되고, 루이 14세의 말년에는 국력이 서서히 약해져 가면서, 이후 프랑스는 전쟁,대외정책에 너무 무리하게 많은돈을 쓰는바람에 만성적 재정난에 시달리게 된다.
현대
1958년 6월 국민의회에서 절대 다수의 신임을 얻은 드골은 12년만에 총리직에 복귀했다. 이후 드골은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을 인정한 새로운 헌법을 발의하고 국민 투표에서 통과되자 1959년 1월 제5공화국의 대통령에 취임했다. 드골은 대통령이 된 뒤 알제리 문제를 일단 해결하고 프랑스를 세계에서 네 번째의 핵 보유국으로 만들었다. 또한 중국과 국교를 회복하는 등 미국-소련이 세계를 분한해 지배하는 이른바 '냉전' 상황에서 드골은 '프랑스의 영광'을 회복하고, 국제 사회에서 프랑스의 발언권을 강화하고자 노력했다. 파리 교외의 낭테르에 있는 파리 대학 분교의 문학부를 1968년 5월 3일 대학 당국이 폐쇄했다. 1967년 11월부터 이 학교에는 시설 개선을 둘러싸고 급진파 학생과 대학 당국 사이에 대립이 있었다. 1968년 3월 22일 '빨강 머리 다니'라는 애칭으로 일컬어지던 콩방디를 지도자로 하는 학생 그룹이 대학 당국의 금지령을 어기고 학내 집회를 열었고, 이에 대해 대학 당국은 경찰을 불러들여 유혈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이 5월 2일에 분교를 점거했고 이것이 분교 폐쇄로 이어졌다. 콩방디의 처분을 둘러싼 조사가 본교(소르본)에서 열렸지만, 본교 당국은 다시 경찰을 불러들였다. 항의하는 무리에 마침내 일반 학생들까지 가세해 경찰과 충돌을 벌였다. 그리하여 학생 약 600명이 체포되고 본교도 폐쇄됐다. '3.22'운동의 결과, 1907년에 결성된 '프랑스 학생 전국동맹(UNEF)'도 지원을 강화했고, 학생 시위도 더욱 격렬해졌다. 5월 11일 오전 2시, 카르티에라탱 거리에는 학생 시위대와 경찰간의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학내 처우 개선 요구에서 비롯된 3.22 운동과 5.3운동은 학내 문제에 머물지 않았고 대학 교직원 조합, 노동 총동맹 들을 끌어들여 드골 정권을 뒤흔드는 전국 규모의 파업으로 발전했고, 이 시위로 드골 정권이 무너졌다.
오버워치 속 프랑스
역사
캐릭터
프랑스 국적을 가진 캐릭터로는 수비 영웅인 위도우메이커가 있다.
맵
아직 게임에 구현되지 않았음.
문화
각주
기여
- 하재현: 처음 작성
국가별로 바라본 오버워치
Class
클래스 | 노드 |
---|---|
국가 | 미국, 멕시코, 브라질, 네팔, 인도, 일본, 중국, 한국, 나이지리아, 이집트, 호주, 독일, 러시아, 스웨덴, 스위스, 영국, 프랑스 |
맵 | 네팔, 하나무라, 도라도, 눔바니, 일리오스, 아누비스 신전, 볼스카야 인더스트리, 리장타워, 왕의 길, 할리우드, 감시기지 지브롤터, 66번 국도, 아이헨발데 |
캐릭터 | 겐지, 맥크리, 파라, 리퍼 , 솔저:76, 솜브라, 트레이서, 바스티온, 한조, 정크랫, 메이, 토르비욘, 위도우메이커, D.Va, 오리사, 라인하르트, 로드호그, 윈스턴, 자리야, 아나, 루시우, 메르시, 시메트라, 젠야타 |
문화 | 한국의 프로게이머, 일본의 닌자, 아시아의 용, 일본의 궁도, 중국의 하얼빈 빙등제, 중국의 야시장, 중국의 정원, 영국의 음식, 영국의 셜록홈즈, 러시아의 우주여행, 러시아의 로봇산업, 게르만족 혈통, 삼바축구, 독일연방군, 네팔의 수도사들, 호주의 쓰레기들, 브라질의 빈민가, 해킹, 프랑스 속 암살, 서부의 총잡이들, 스위스의 의료산업, 미국의 전쟁영웅, 전쟁 고아, UN세계평화기구, 스웨덴의 제조기술, 옴닉사태, 오리사 전승, 우제트, 인도의 전통춤, 젬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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