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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 Data
내용
- 지정종목: 시도기념물
- 지정번호: 경기기념물 제21호
- 지정일: 1974년 09월 26일
- 소재지: 경기도 광주시 광주읍 직리 산 27
- 시대: 조선
- 종류/분류: 묘
- 크기: 봉분 둘레 4.1m
1974년 9월 26일 경기도기념물 제21호로 지정되었다. 세종 때 재상인 맹사성(1360~1438)의 묘로 맹씨의 문중산인 맹산(孟山) 중턱에 위치한다. 대리석 소재의 사각형 호석(護石)으로 둘러싸인 봉분(封墳)은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의 전형적인 양식이다.
봉분 앞에는 화관석(花冠石) 묘비가 서 있고 그 앞에 상석과 두 개의 향로석이 있다. 원래는 묘비와 향로석, 문인석만 남아 있었으나 후손들이 1959년 상석과 왼쪽의 향로석, 봉분 오른쪽에 있는 묘비를 새로 갖추었고 1968년에는 망주석(望柱石), 동자상을 추가하였다. 그 밖에 제단과 석등이 있다.
맹사성은 고려시대인 1360년(공민왕 9) 전교부령을 지낸 맹희도(孟希道)의 아들로 태어났다. 1386년(우왕 12)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춘추관 검열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이(吏)·호(戶)·예(禮)·공조판서(工曺判書), 대사헌(大司憲) 등을 거쳐 세종 때는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다. 자는 자명(自明), 호는 고불(古佛)·동포(東浦),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황희(黃喜)와 더불어 조선 초기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는데, 특히 시문(時文)에 능하고 음률(音律)에도 밝아 향악(鄕樂)을 정리하고 스스로 악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