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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복식콘텐츠_복식정보 |
− | + | |사진= 변수단령1.jpg | |
+ | |사진출처= 변수(邊脩, 1447~1524) 묘 출토 단령. | ||
+ | |대표명칭= 단령 | ||
+ | |한자표기= 團領 | ||
+ | |이칭별칭= 원령, 반령 | ||
+ | |구분= 관복 | ||
+ | |착용신분= 백관 | ||
+ | |착용성별= 남자 | ||
+ | }} | ||
+ | ==정의== | ||
+ | 단령(團領)은 백관의 공복과 [[백관의 상복]]에 착용하는 의복이다. 단령은 둥근 깃을 말하는데, 둥근 깃의 포(袍)를 뜻하기도 한다. 둥근 깃을 뜻하는 용어로는 단령 외에도 원령(圓領), 반령(盤領) 등이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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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용== | ||
+ | ====단령의 유래==== | ||
+ | *단령포(團領袍)의 유래에 대해 중국의 손기(孫機)는 『中國古輿服論叢』 「南北朝時期我國服制的變化」에서 단령포는 북조시기에 서역의 호복과 선비족의 복식이 융합되어 탄생한 산물이라고 하였다.<ref>孫機, 『中國古輿服論叢』 「南北朝時期我國服制的變化」, 文物出版社, 2001, 201쪽.</ref> | ||
+ | *신라 진덕여왕 2년(648)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중국의 의관(衣冠)을 받아온 것을 시작으로, 고려 말 명의 영향을 받아 사모와 단령이 관복으로 제도화되었고, 제도는 그대로 조선으로 이어졌다. | ||
+ | *1387년 6월, 정몽주(鄭夢周) 등이 백관의 관복제도를 정하였는데, 1품부터 9품까지 모두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착용하도록 하였고, 품대(品帶)에 차등을 두었다.<ref>『고려사절요』 卷32 辛禑3 우왕 13년 6월.</ref> 이때 정한 백관의 관복제도는 『고려사』「輿服志」에 수록되었다.<ref>『고려사』 권72 志 권26 輿服1 '冠服'.</ref> | ||
+ |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려 정몽주(鄭夢周)가 중국에서 돌아온 뒤에 비로소 사모와 단령의 제도가 전하여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ref>『효종실록』 18권, 효종 8년 1월 10일 계축 2번째기사 1657년 청 순치(順治) 14년.</ref> | ||
+ | |||
+ | ====조선전기 제도==== | ||
+ | *『경국대전』 공복(公服) 제도 | ||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 ||
+ | |+<표 1> 『경국대전』 공복(公服) 제도 | ||
+ | !품계(品階) | ||
+ | !관(冠) | ||
+ | !복(服) | ||
+ | !대(帶) | ||
+ | !홀(笏) | ||
+ | !화혜(靴鞋) | ||
+ | |- | ||
+ | |align="center"| 1품 ||style="text-align:center"| 복두 ||style="text-align:center"| 홍포 || style="text-align:center"|서대(犀帶) ||style="text-align:center"| 아홀(牙笏) ||style="text-align:center"| 흑피화(黑皮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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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ign="center"| 2품 ||style="text-align:center"| 복두 ||style="text-align:center"| 홍포 || style="text-align:center"|여지금대(荔枝金帶) ||style="text-align:center"| 아홀(牙笏) ||style="text-align:center"| 흑피화(黑皮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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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ign="center"| 정3품 ||style="text-align:center"| 복두 ||style="text-align:center"| 홍포 || style="text-align:center"|여지금대(荔枝金帶) ||style="text-align:center"| 아홀(牙笏) ||style="text-align:center"| 흑피화(黑皮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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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ign="center"| 종3품 ||style="text-align:center"| 복두 ||style="text-align:center"| 청포 ||style="text-align:center"|흑각대(黑角帶) ||style="text-align:center"| 아홀(牙笏) ||style="text-align:center"| 흑피화(黑皮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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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lign="center"| 7·8·9품 ||style="text-align:center"| 복두 ||style="text-align:center"| 녹포 ||style="text-align:center"| 흑각대(黑角帶) ||style="text-align:center"| 목홀(木笏) ||style="text-align:center"| 흑피화(黑皮靴)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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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국대전』 상복(常服) 제도 | ||
+ | 조참(朝參), 상참(常參)·조계(朝啓) 때에는 흑의(黑衣)를 입고, 3품 당상관 이상은 흉배가 있는 사·라·능·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규정되어있다. | ||
+ |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 ||
+ | |+<표 2> 『경국대전』 상복(常服) 제도 | ||
+ | !품계(品階) | ||
+ | !관(冠) | ||
+ | !복(服) | ||
+ | !흉배(胷背) | ||
+ | !대(帶) | ||
+ | !화혜(靴鞋) | ||
+ | |- | ||
+ | |align="center"| 1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 사·라·능·단 || 문관: 공작(孔雀), 무관: 호표(虎豹) ||style="text-align:center"| 서대(犀帶) || 협금화(挾金靴) | ||
+ | |- | ||
+ | |align="center"| 2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 사·라·능·단 || 문관: 운학(雲鴈), 무관: 호표(虎豹) || 正: 삽금대(鈒金帶), 從: 소금대(素金帶) || 협금화(挾金靴) | ||
+ | |- | ||
+ | |align="center"| 3품 당상관 이상 ||style="text-align:center"| 사모 || 사·라·능·단 || 문관: 백한(白鷳), 무관: 웅비(熊羆) ||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 협금화(挾金靴) | ||
+ | |- | ||
+ | |align="center"| 3품 당하관 이하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style="text-align:center"| - | ||
+ | |- | ||
+ | |align="center"| 4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소은대(素銀帶) ||style="text-align:center"| - | ||
+ | |- | ||
+ | |align="center"| 5·6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흑각대(黑角帶) ||style="text-align:center"| - | ||
+ | |- | ||
+ | |align="center"| 7·8·9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흑각대(黑角帶) ||style="text-align:center"|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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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전기 공복과 상복의 단령 형태==== | ||
+ | *『[[악학궤범]]』 권9 '관복도설' 악사의 '녹초삼(綠綃衫)'에 대해 "홍초삼의 제도와 같다. 홍초삼은 곧 강공복이다."라고 하였는데, 강공복은 1~3품이 착용하는 공복이다. | ||
+ | *『[[악학궤범]]』 권9 '관복도설' 악공과 악사의 '흑단령(黑團領)'은 상복의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는 자료이다. | ||
+ | |||
+ | ==지식관계망== | ||
+ | ====클래스==== | ||
+ | *Actor: 정몽주 | ||
+ | *Actor: 성종 | ||
+ | *Clothing-복장 : 백관의 공복 | ||
+ | *Clothing-복식 : 복두 | ||
+ | *Clothing-복식 : [[단령]] | ||
+ | *Clothing-복식 : 야자대 | ||
+ | *Clothing-복식 : 홀 | ||
+ | *Clothing-복식 : 흑피화 | ||
+ | *Clothing-복장 : [[백관의 상복]] | ||
+ | *Clothing-복식 : [[사모]] | ||
+ | *Clothing-복식 : [[단령]] | ||
+ | *Clothing-복식 : [[품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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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ecord-문헌 : 『고려사』 | ||
+ | *Record-문헌 : 『고려사절요』 | ||
+ | *Record-문헌 : 『조선왕조실록』 | ||
+ | *Record-문헌 : 『경국대전』 | ||
+ | *Record-문헌 : 『[[악학궤범]]』 | ||
+ | |||
+ | ====관계정보==== <!-- ===관련 내용===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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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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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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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학궤범』 | ||
+ | *孫機, 『中國古輿服論叢』, 文物出版社, 2001. | ||
+ | *국립국악원, 『樂學軌範』, 호사문고 소장본, 20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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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riter: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A%B9%80%EC%A7%80%EC%9B%90 김지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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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복식정보 | ||
+ | |명칭 = 단령 | ||
+ | |시대 = 조선시대(이익정, 1699-1782) | ||
+ | |분류 = 상의 | ||
+ | |크기 = 길이 127㎝, 화장 113㎝, 품 51㎝, 진동 33.5㎝ | ||
+ | |소장처 =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 ||
+ | |그림 출처=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2004) 『名選』中, p. 69. | ||
+ | |image =단령(이익정 1699-1782)-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jpg | ||
+ | }} | ||
+ | |||
+ | |||
+ | {{회화정보 | ||
+ | |명칭 = 이성원(李性源) 초상 | ||
+ | |시대 = 조선시대(이성원, 1725-1790) | ||
+ | |분류 = 초상화 | ||
+ | |크기 = 147.5x84.0 ㎝ | ||
+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
+ | |그림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2008) 『조선시대 초상화』 2, p. 130. | ||
+ | |image =이성원(1725-1790) 초상화-국립중앙박물관 소장.jpg | ||
+ | }} | ||
+ | |||
+ | *[[상복|상복(常服)]]의 흑단령은 당상관은 현녹색(玄綠色) 사(紗) 또는 단(緞)으로 만들며, 당하관은 저(紵) 또는 견(絹)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또한 초상화를 살펴봤을 때, 당상관은 운문(雲紋)이 있는 직물을 사용하였으며, 당하관은 운문을 사용하지 않았다.<ref>『續大典』 卷3 「禮典」 ′儀章′ : ″堂上三品以上……大小朝儀玄綠色紗緞. 堂下三品以下……大小朝儀玄綠色紵絹.″</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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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회화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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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기 = 132.7x81.2 ㎝ | ||
+ | |소장처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
+ | |그림 출처 = 국립중앙박물관(2008) 『조선시대 초상화』 2, p. 90. | ||
+ | |image =초상(17세기 후반)-국립중앙박물관 소장.jpg | ||
+ | }} | ||
+ | |||
+ | *조선후기 [[시복|시복(時服)]]은 당상관은 담홍색(淡紅色) 단령을 입었으며, 당하관은 청록색(靑綠色) 단령을 입었다. 시복의 단령은 무늬가 없는 직물을 사용하였다.<ref>『續大典』卷3「禮典」′儀章′ : ″堂上三品以上……淡紅袍.″; [http://sillok.history.go.kr/id/kua_13312016_001 『英祖實錄』 영조 33년 12월 16일.]</ref> | ||
==관련 정보 : <문효세자 보양청계병>(1784)== | ==관련 정보 : <문효세자 보양청계병>(178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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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효세자 보양청계병|<문효세자 보양청계병>]]에서 [[보양관]], [[문무관]], [[내시]] 및 기타관원, [[서리]]가 단령을 착용하였다. | *[[문효세자 보양청계병|<문효세자 보양청계병>]]에서 [[보양관]], [[문무관]], [[내시]] 및 기타관원, [[서리]]가 단령을 착용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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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드 및 관계 테이블=== | ===노드 및 관계 테이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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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류:복식콘텐츠]][[분류:복식2020단국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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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4일 (월) 21:49 기준 최신판
단령 (團領) |
|
대표명칭 | 단령 |
---|---|
한자표기 | 團領 |
이칭별칭 | 원령, 반령 |
구분 | 관복 |
착용신분 | 백관 |
착용성별 | 남자 |
목차
정의
단령(團領)은 백관의 공복과 백관의 상복에 착용하는 의복이다. 단령은 둥근 깃을 말하는데, 둥근 깃의 포(袍)를 뜻하기도 한다. 둥근 깃을 뜻하는 용어로는 단령 외에도 원령(圓領), 반령(盤領) 등이 있다.
내용
단령의 유래
- 단령포(團領袍)의 유래에 대해 중국의 손기(孫機)는 『中國古輿服論叢』 「南北朝時期我國服制的變化」에서 단령포는 북조시기에 서역의 호복과 선비족의 복식이 융합되어 탄생한 산물이라고 하였다.[1]
- 신라 진덕여왕 2년(648) 김춘추가 당나라에서 중국의 의관(衣冠)을 받아온 것을 시작으로, 고려 말 명의 영향을 받아 사모와 단령이 관복으로 제도화되었고, 제도는 그대로 조선으로 이어졌다.
- 1387년 6월, 정몽주(鄭夢周) 등이 백관의 관복제도를 정하였는데, 1품부터 9품까지 모두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착용하도록 하였고, 품대(品帶)에 차등을 두었다.[2] 이때 정한 백관의 관복제도는 『고려사』「輿服志」에 수록되었다.[3]
-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려 정몽주(鄭夢周)가 중국에서 돌아온 뒤에 비로소 사모와 단령의 제도가 전하여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4]
조선전기 제도
- 『경국대전』 공복(公服) 제도
품계(品階) | 관(冠) | 복(服) | 대(帶) | 홀(笏) | 화혜(靴鞋) |
---|---|---|---|---|---|
1품 | 복두 | 홍포 | 서대(犀帶) | 아홀(牙笏) | 흑피화(黑皮靴) |
2품 | 복두 | 홍포 | 여지금대(荔枝金帶) | 아홀(牙笏) | 흑피화(黑皮靴) |
정3품 | 복두 | 홍포 | 여지금대(荔枝金帶) | 아홀(牙笏) | 흑피화(黑皮靴) |
종3품 | 복두 | 청포 | 흑각대(黑角帶) | 아홀(牙笏) | 흑피화(黑皮靴) |
4품 | 복두 | 청포 | 흑각대(黑角帶) | 아홀(牙笏) | 흑피화(黑皮靴) |
5·6품 | 복두 | 청포 | 흑각대(黑角帶) | 목홀(木笏) | 흑피화(黑皮靴) |
7·8·9품 | 복두 | 녹포 | 흑각대(黑角帶) | 목홀(木笏) | 흑피화(黑皮靴) |
- 『경국대전』 상복(常服) 제도
조참(朝參), 상참(常參)·조계(朝啓) 때에는 흑의(黑衣)를 입고, 3품 당상관 이상은 흉배가 있는 사·라·능·단을 사용하는 것으로 규정되어있다.
품계(品階) | 관(冠) | 복(服) | 흉배(胷背) | 대(帶) | 화혜(靴鞋) |
---|---|---|---|---|---|
1품 | 사모 | 사·라·능·단 | 문관: 공작(孔雀), 무관: 호표(虎豹) | 서대(犀帶) | 협금화(挾金靴) |
2품 | 사모 | 사·라·능·단 | 문관: 운학(雲鴈), 무관: 호표(虎豹) | 正: 삽금대(鈒金帶), 從: 소금대(素金帶) | 협금화(挾金靴) |
3품 당상관 이상 | 사모 | 사·라·능·단 | 문관: 백한(白鷳), 무관: 웅비(熊羆) |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 협금화(挾金靴) |
3품 당하관 이하 | 사모 | - | - |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 - |
4품 | 사모 | - | - | 소은대(素銀帶) | - |
5·6품 | 사모 | - | - | 흑각대(黑角帶) | - |
7·8·9품 | 사모 | - | - | 흑각대(黑角帶) | - |
조선전기 공복과 상복의 단령 형태
- 『악학궤범』 권9 '관복도설' 악사의 '녹초삼(綠綃衫)'에 대해 "홍초삼의 제도와 같다. 홍초삼은 곧 강공복이다."라고 하였는데, 강공복은 1~3품이 착용하는 공복이다.
- 『악학궤범』 권9 '관복도설' 악공과 악사의 '흑단령(黑團領)'은 상복의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지식관계망
클래스
- Actor: 정몽주
- Actor: 성종
- Clothing-복장 : 백관의 공복
- Clothing-복식 : 복두
- Clothing-복식 : 단령
- Clothing-복식 : 야자대
- Clothing-복식 : 홀
- Clothing-복식 : 흑피화
- Clothing-복장 : 백관의 상복
- Clothing-복식 : 사모
- Clothing-복식 : 단령
- Clothing-복식 : 품대
- Clothing-복식 : 화
- Record-문헌 : 『고려사』
- Record-문헌 : 『고려사절요』
- Record-문헌 : 『조선왕조실록』
- Record-문헌 : 『경국대전』
- Record-문헌 : 『악학궤범』
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
정몽주 | 사모와 단령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성종 | 『경국대전』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성종 | 『악학궤범』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백관의 공복 | 복두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공복 | 단령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공복 | 야자대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공복 | 홀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공복 | 흑피화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상복 | 사모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상복 | 단령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상복 | 품대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백관의 상복 | 화 |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 A dcterms:hasPart B |
『고려사』 | 단령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고려사절요』 | 단령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조선왕조실록』 | 단령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경국대전』 | 백관의 공복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경국대전』 | 백관의 상복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
『악학궤범』 | 녹초삼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악학궤범』 | 흑단령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시각자료
갤러리
『樂學軌範』 권9 「冠服圖說」 ‘녹초삼(綠綃衫)’.[5]
『樂學軌範』 권9 「冠服圖說」 ‘흑단령(黑團領)’.[6]
주석
- ↑ 孫機, 『中國古輿服論叢』 「南北朝時期我國服制的變化」, 文物出版社, 2001, 201쪽.
- ↑ 『고려사절요』 卷32 辛禑3 우왕 13년 6월.
- ↑ 『고려사』 권72 志 권26 輿服1 '冠服'.
- ↑ 『효종실록』 18권, 효종 8년 1월 10일 계축 2번째기사 1657년 청 순치(順治) 14년.
- ↑ 국립국악원, 『樂學軌範』, 호사문고 소장본, 2011, 412쪽.
- ↑ 국립국악원, 『樂學軌範』, 호사문고 소장본, 2011, 419쪽.
참고문헌
- 『고려사』
- 『고려사절요』
- 『조선왕조실록』
- 『경국대전』
- 『악학궤범』
- 孫機, 『中國古輿服論叢』, 文物出版社, 2001.
- 국립국악원, 『樂學軌範』, 호사문고 소장본, 2011.
Writer: 김지원
복식정보 단령 시대 조선시대(이익정, 1699-1782) 분류 상의 크기 길이 127㎝, 화장 113㎝, 품 51㎝, 진동 33.5㎝ 소장처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소장 그림 출처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2004) 『名選』中, p. 69.
회화정보 이성원(李性源) 초상 시대 조선시대(이성원, 1725-1790) 분류 초상화 크기 147.5x84.0 ㎝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 출처 국립중앙박물관(2008) 『조선시대 초상화』 2, p. 130.
- 상복(常服)의 흑단령은 당상관은 현녹색(玄綠色) 사(紗) 또는 단(緞)으로 만들며, 당하관은 저(紵) 또는 견(絹)으로 만든다고 하였다. 또한 초상화를 살펴봤을 때, 당상관은 운문(雲紋)이 있는 직물을 사용하였으며, 당하관은 운문을 사용하지 않았다.[1]
회화정보 초상 시대 조선시대(17세기 후반) 분류 초상화 크기 132.7x81.2 ㎝ 소장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그림 출처 국립중앙박물관(2008) 『조선시대 초상화』 2, p. 90.
관련 정보 : <문효세자 보양청계병>(1784)
<문효세자 보양청계병>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보양관
상복 흑단령 착용
<문효세자 보양청계병>문무관
시복 담홍단령 착용
<문효세자 보양청계병>문무관
시복 청록단령 착용
<문효세자 보양청계병>내시 및 기타관원
녹단령 착용
<문효세자 보양청계병>서리
담홍단령 착용
<문효세자 보양청계병>
- <문효세자 보양청계병>에서 보양관, 문무관, 내시 및 기타관원, 서리가 단령을 착용하였다.
노드 및 관계 테이블
노드 관계 노드 내시
문무관
보양관
서리~을 착용한다 단령 단령 ~의 구성이다 상복
시복단령 ~와 함께 착용한다 단령 ~에 그려져 있다 <문효세자 보양청계병> 단령 ~에 기록되어 있다 경국대전
국조속오례의보서례
속대전
정조실록
Writer: 김현승
Main: 조선 후기 보양청 상견례 참여자 복식 고증 시각화
- ↑ 『續大典』 卷3 「禮典」 ′儀章′ : ″堂上三品以上……大小朝儀玄綠色紗緞. 堂下三品以下……大小朝儀玄綠色紵絹.″
- ↑ 『續大典』卷3「禮典」′儀章′ : ″堂上三品以上……淡紅袍.″; 『英祖實錄』 영조 33년 12월 1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