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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구려 [[평원왕|평원왕平原王(?~590)]]의 딸이다. ≪[[삼국사기|삼국사기 三國史記]]≫ [[온달전|『온달전 溫達傳』]]에 [[온달]]의 아내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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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고구려]] [[평원왕|평원왕平原王(?~590)]]의 딸이다. ≪[[삼국사기|삼국사기 三國史記]]≫ [[온달전|『온달전 溫達傳』]]에 [[온달]]의 아내로 기록되어 있다.
 
*'''내용'''
 
*'''내용'''
《삼국사기》 온달전에 의하면, 공주는 어릴 때에 잘 울어서, 왕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놀리곤 하였다. 그 뒤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 명문귀족 집안의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였지만 공주가 이를 거부하였다. 왕이 노하여 궁궐에서 쫓아내니, 공주는 온달을 찾아가 혼인하였다. 그녀는 눈먼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바보스러운 남편 온달에게 무예와 학식을 가르쳤다. 공주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아 온달은 뛰어난 무예를 지니게 되었다. 얼마 뒤 온달은 매년 3월 낙랑(樂浪)벌에서 열리던 사냥대회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여 왕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온달은 고구려의 장수로 발탁되었다. 그 뒤 북주(北周)의 군대가 침공하여왔을 때, 온달이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 적을 격파하고 대공을 세웠다. 평원왕을 이은 영양왕 때에, 온달이 한강유역을 회복하기 위하여 신라를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아 수도로 돌아오던 중 죽었는데, 그 시체를 넣은 관을 운반하려 하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달려와 관을 어루만지며 돌아가자고 말하니, 비로소 관이 움직여 이를 매장 하였다고 한다.<ref>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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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기|삼국사기 三國史記]]≫ [[온달전]]에 의하면, 공주는 어릴 때에 잘 울어서, 왕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놀리곤 하였다. 그 뒤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 명문귀족 집안의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였지만 공주가 이를 거부하였다. 왕이 노하여 궁궐에서 쫓아내니, 공주는 온달을 찾아가 혼인하였다. 그녀는 눈먼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바보스러운 남편 [[온달]]에게 무예와 학식을 가르쳤다. 공주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아 [[온달]]은 뛰어난 무예를 지니게 되었다. 얼마 뒤 [[온달]]은 매년 3월 낙랑(樂浪)벌에서 열리던 사냥대회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여 왕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온달]]은 고구려의 장수로 발탁되었다. 그 뒤 북주(北周)의 군대가 침공하여왔을 때, [[온달]]이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 적을 격파하고 대공을 세웠다. [[평원왕]]을 이은 [[영양왕]] 때에, 온달이 한강유역을 회복하기 위하여 [[신라]]를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아 수도로 돌아오던 중 죽었는데, 그 시체를 넣은 관을 운반하려 하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달려와 관을 어루만지며 돌아가자고 말하니, 비로소 관이 움직여 이를 매장 하였다고 한다.<ref>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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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항목'''==

2017년 3월 5일 (일) 10:22 기준 최신판





개요

  • 정의

삼국시대 고구려 평원왕平原王(?~590)의 딸이다. ≪삼국사기 三國史記『온달전 溫達傳』온달의 아내로 기록되어 있다.

  • 내용

삼국사기 三國史記온달전에 의하면, 공주는 어릴 때에 잘 울어서, 왕이 바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놀리곤 하였다. 그 뒤 시집갈 나이가 되었을 때, 명문귀족 집안의 고씨에게 시집보내려 하였지만 공주가 이를 거부하였다. 왕이 노하여 궁궐에서 쫓아내니, 공주는 온달을 찾아가 혼인하였다. 그녀는 눈먼 시어머니를 잘 봉양하고, 바보스러운 남편 온달에게 무예와 학식을 가르쳤다. 공주의 도움과 가르침을 받아 온달은 뛰어난 무예를 지니게 되었다. 얼마 뒤 온달은 매년 3월 낙랑(樂浪)벌에서 열리던 사냥대회에서 남다른 활약을 보여 왕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온달은 고구려의 장수로 발탁되었다. 그 뒤 북주(北周)의 군대가 침공하여왔을 때, 온달이 고구려군의 선봉이 되어 적을 격파하고 대공을 세웠다. 평원왕을 이은 영양왕 때에, 온달이 한강유역을 회복하기 위하여 신라를 공격하다가 화살에 맞아 수도로 돌아오던 중 죽었는데, 그 시체를 넣은 관을 운반하려 하였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달려와 관을 어루만지며 돌아가자고 말하니, 비로소 관이 움직여 이를 매장 하였다고 한다.[1]

관련 항목

이 문서 A 관련 문서 B 관계
평강공주 고구려 A는 B의 사람이다.
평강공주 온달 A는 B의 아내이다.
평강공주 평원왕 A는 B의 딸이다.
평강공주 영양왕 A는 B의 동생이다.
평강공주 온달전 A는 B에 등장한다.
평강공주 온달 설화 A는 B에 등장한다.
평강공주 온달 문학 A는 B의 소재이다.
평강공주 온달 콘텐츠 A는 B의 소재이다.
평강공주 광이 진이 A는 B의 모티브이다.
평강공주 평강회 A는 B의 모티브이다.
평강공주 평강공주 콤플렉스 A는 B의 모티브이다.

관련 링크

클래스

  • 인물

기여

출처

  1. 이응백, 김원경, 김선풍 『국어국문학자료사전』 한국사전연구사,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