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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광산읍지]]: 18세기까지의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행정구역 변천 등을 살필 수 있는 광주목의 읍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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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출신 [[김방|김방(金倣, 미상)]]은 김제군사(知金堤軍事)로 있을 때 2만명의 인부를 20여일간 동원하여 김제 벽골제를 보수 공사하여 김제평야를 곡창지대로 만든 인물이다. 잠시 파직되었으나, 이러한 유능함이 태종에게 알려져 다시 관직을 받게 되어 광주목사(光州牧使)로도 있었다. | * 광주 출신 [[김방|김방(金倣, 미상)]]은 김제군사(知金堤軍事)로 있을 때 2만명의 인부를 20여일간 동원하여 김제 벽골제를 보수 공사하여 김제평야를 곡창지대로 만든 인물이다. 잠시 파직되었으나, 이러한 유능함이 태종에게 알려져 다시 관직을 받게 되어 광주목사(光州牧使)로도 있었다. | ||
* [[광산읍지|『광산읍지(光山邑誌)』]]에 의하면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일대에 있었던 [[경양방죽|경양방죽(경양지)]]이라는 저수지는 [[김방]]이 만들었다. [[김방]]의 [[경양방죽]] 축조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동물보은담이 있다. 해마다 가뭄이 들어 흉년이 계속되자 김방은 무등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끌어모아 광주를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고자 [[경양방죽]]을 파게 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가뭄으로 일꾼들의 식량도 부족하게 되어 김방의 걱정이 깊었던 어느날, 김방은 경양방죽 공사 중 무너진 [[무등산|무등산 장원봉]]에 개미집을 옮겨 주었다. 그러자 개미 떼들이 그에 보답하려고 쌀을 물어다 주고, 김방은 공사에 필요한 식량을 얻어 제방 축조를 완성했다는 이야기이다. | * [[광산읍지|『광산읍지(光山邑誌)』]]에 의하면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일대에 있었던 [[경양방죽|경양방죽(경양지)]]이라는 저수지는 [[김방]]이 만들었다. [[김방]]의 [[경양방죽]] 축조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동물보은담이 있다. 해마다 가뭄이 들어 흉년이 계속되자 김방은 무등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끌어모아 광주를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고자 [[경양방죽]]을 파게 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가뭄으로 일꾼들의 식량도 부족하게 되어 김방의 걱정이 깊었던 어느날, 김방은 경양방죽 공사 중 무너진 [[무등산|무등산 장원봉]]에 개미집을 옮겨 주었다. 그러자 개미 떼들이 그에 보답하려고 쌀을 물어다 주고, 김방은 공사에 필요한 식량을 얻어 제방 축조를 완성했다는 이야기이다. | ||
− | * 김방은 전라도관찰사 시절에 [[증심사|증심사(證心寺)]]를 자신의 녹봉으로 중창했다. 이때 [[증심사오백전|증심사오백전(證心寺五百殿)]]을 짓고 오백나한(五百羅漢)과 '''16제자상'''<ref>10대 제자상이라고 표현한 곳도 있는데 무엇이 맞는지 확인 필요</ref>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길<nowiki>[국태민안(國泰民安)]</nowiki>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증심사오백전]]이 1443년 건립 당시의 건물인지, 각종 국란 때 소실되어 이후 중건된 건물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이 | + | * 김방은 전라도관찰사 시절에 [[증심사|증심사(證心寺)]]를 자신의 녹봉으로 중창했다. 이때 [[증심사오백전|증심사오백전(證心寺五百殿)]]을 짓고 오백나한(五百羅漢)과 '''16제자상'''<ref>10대 제자상이라고 표현한 곳도 있는데 무엇이 맞는지 확인 필요</ref>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길<nowiki>[국태민안(國泰民安)]</nowiki>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증심사오백전]]이 1443년 건립 당시의 건물인지, 각종 국란 때 소실되어 이후 중건된 건물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지만, 여기에 얽힌 [[김방]]의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김방]]이 [[경양방죽]]을 지었지만, 3년 동안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생기자 [[김방]]은 비가 오기를 하늘에 기도를 했다. 기도가 통한걸까, [[김방]]은 [[증심사]]에 오백나한을 모시라는 현몽을 얻게 되어 [[증심사오백전]]을 짓고 오백나한과 16대 제자상을 봉안하였다. 이 덕분에 정유재란, 6.25전쟁 당시 [[증심사]]의 다른 전각은 불에 탔으나 [[증심사오백전]]만 불에 타지 않아 영험한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증심사오백전]]은 중건여부와 관계없이 조선시대에 오백전이 지어진 전라남도의 유일한 절로, 그 가치가 높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 광주 도심과 [[증심사|무등산 증심사]]를 이어주는 다리인 [[광주_배고픈다리|배고픈 다리]]는 이름에 대한 여러가지 유래가 있는데, 그 중 한 이야기가 [[김방]]과 관련된 것이다. [[김방]]은 [[증심사오백전]]을 지을 당시, 부정을 탈까 두려워서 육식을 금하고 손수 현장에서 일꾼들과 함께 일했다. 그렇게 반년정도 지나자 [[김방]]은 피골이 상접해졌고 감동한 마을 사람들이 매일같이 닭을 잡아 올렸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날 왕의 꿈에 많은 닭이 찾아와 [[김방]]이 역적모의를 하니 처형해달라고 간청하였고 왕은 잡아들여 처형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자 그날 밤에는 다시 왕의 꿈에 개미들이 나타나 [[김방]]의 억울함을 이야기하였고, 왕은 어명을 거둬들였다. 다행히 [[김방]]을 잡으려는 금부도사 일행의 말이 [[광주_배고픈다리|배고픈 다리]]에 다다르자 꼼짝하지 않고 처형을 거두는 명을 받은 군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기다리는 며칠간 군졸들이 배고픔에 허덕였기 때문에 [[광주_배고픈다리|배고픈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 광주 도심과 [[증심사|무등산 증심사]]를 이어주는 다리인 [[광주_배고픈다리|배고픈 다리]]는 이름에 대한 여러가지 유래가 있는데, 그 중 한 이야기가 [[김방]]과 관련된 것이다. [[김방]]은 [[증심사오백전]]을 지을 당시, 부정을 탈까 두려워서 육식을 금하고 손수 현장에서 일꾼들과 함께 일했다. 그렇게 반년정도 지나자 [[김방]]은 피골이 상접해졌고 감동한 마을 사람들이 매일같이 닭을 잡아 올렸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날 왕의 꿈에 많은 닭이 찾아와 [[김방]]이 역적모의를 하니 처형해달라고 간청하였고 왕은 잡아들여 처형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자 그날 밤에는 다시 왕의 꿈에 개미들이 나타나 [[김방]]의 억울함을 이야기하였고, 왕은 어명을 거둬들였다. 다행히 [[김방]]을 잡으려는 금부도사 일행의 말이 [[광주_배고픈다리|배고픈 다리]]에 다다르자 꼼짝하지 않고 처형을 거두는 명을 받은 군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기다리는 며칠간 군졸들이 배고픔에 허덕였기 때문에 [[광주_배고픈다리|배고픈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
2023년 11월 10일 (금) 11:19 기준 최신판
다양한 설화를 남긴 김방
- 김방 콘텐츠에서는 설화는 최대한 빼고 사실적인 내용만 기재하고, 스토리에는 설화를 최대한으로 작성했습니다. (그러나 선정한 노드는 모두 사실데이터만 뽑아서 적습니다)
항목
미존재
- 김제 벽골제: 문맥항목이 될 수 있을지?
- 광산읍지: 18세기까지의 전라도 광주 지역의 역사와 문화, 행정구역 변천 등을 살필 수 있는 광주목의 읍지
- 증심사오백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이므로 핵심항목으로도 가능
Story
- 광주 출신 김방(金倣, 미상)은 김제군사(知金堤軍事)로 있을 때 2만명의 인부를 20여일간 동원하여 김제 벽골제를 보수 공사하여 김제평야를 곡창지대로 만든 인물이다. 잠시 파직되었으나, 이러한 유능함이 태종에게 알려져 다시 관직을 받게 되어 광주목사(光州牧使)로도 있었다.
- 『광산읍지(光山邑誌)』에 의하면 광주광역시 동구 계림동 일대에 있었던 경양방죽(경양지)이라는 저수지는 김방이 만들었다. 김방의 경양방죽 축조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동물보은담이 있다. 해마다 가뭄이 들어 흉년이 계속되자 김방은 무등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끌어모아 광주를 비옥한 토양으로 만들고자 경양방죽을 파게 되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가뭄으로 일꾼들의 식량도 부족하게 되어 김방의 걱정이 깊었던 어느날, 김방은 경양방죽 공사 중 무너진 무등산 장원봉에 개미집을 옮겨 주었다. 그러자 개미 떼들이 그에 보답하려고 쌀을 물어다 주고, 김방은 공사에 필요한 식량을 얻어 제방 축조를 완성했다는 이야기이다.
- 김방은 전라도관찰사 시절에 증심사(證心寺)를 자신의 녹봉으로 중창했다. 이때 증심사오백전(證心寺五百殿)을 짓고 오백나한(五百羅漢)과 16제자상[1]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길[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증심사오백전이 1443년 건립 당시의 건물인지, 각종 국란 때 소실되어 이후 중건된 건물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기록이 없지만, 여기에 얽힌 김방의 재미있는 설화가 있다. 김방이 경양방죽을 지었지만, 3년 동안 극심한 가뭄이 지속되어 굶주리는 사람들이 생기자 김방은 비가 오기를 하늘에 기도를 했다. 기도가 통한걸까, 김방은 증심사에 오백나한을 모시라는 현몽을 얻게 되어 증심사오백전을 짓고 오백나한과 16대 제자상을 봉안하였다. 이 덕분에 정유재란, 6.25전쟁 당시 증심사의 다른 전각은 불에 탔으나 증심사오백전만 불에 타지 않아 영험한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증심사오백전은 중건여부와 관계없이 조선시대에 오백전이 지어진 전라남도의 유일한 절로, 그 가치가 높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 광주 도심과 무등산 증심사를 이어주는 다리인 배고픈 다리는 이름에 대한 여러가지 유래가 있는데, 그 중 한 이야기가 김방과 관련된 것이다. 김방은 증심사오백전을 지을 당시, 부정을 탈까 두려워서 육식을 금하고 손수 현장에서 일꾼들과 함께 일했다. 그렇게 반년정도 지나자 김방은 피골이 상접해졌고 감동한 마을 사람들이 매일같이 닭을 잡아 올렸다. 이 이야기에 따르면, 어느 날 왕의 꿈에 많은 닭이 찾아와 김방이 역적모의를 하니 처형해달라고 간청하였고 왕은 잡아들여 처형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러자 그날 밤에는 다시 왕의 꿈에 개미들이 나타나 김방의 억울함을 이야기하였고, 왕은 어명을 거둬들였다. 다행히 김방을 잡으려는 금부도사 일행의 말이 배고픈 다리에 다다르자 꼼짝하지 않고 처형을 거두는 명을 받은 군졸들이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기다리는 며칠간 군졸들이 배고픔에 허덕였기 때문에 배고픈 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Semantic D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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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023-003 | Story | Episode | 다양한 설화를 남긴 김방 | http://dh.aks.ac.kr/~gwangju/wiki/index.php/S2023-0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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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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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설화 | http://aks.ai/GC60004464 | |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김방 할아버지와 개미 떼」 | http://aks.ai/GC60004476 | |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경양방죽」 | http://aks.ai/GC60000645 | |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무등산과 함께한 증심사 | http://aks.ai/GC60005053 | |
해설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 증심사오백전 | http://aks.ai/GC60001063 | |
참고 | 남도일보 | 김성식 조선이공대 교수의 남도일보 '월요아침'(2018.05.20, 김성식 교수 글, 김경태 기자) | https://www.namdo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74942 | |
참고 | 시민의 소리 | 멀리 가는 다리 2. 광주의 이야기 담은 배고픈다리와 부동교(2011.09.07, 윤영숙 기자) | https://www.siminsori.com/news/articleView.html?idxno=65933 | |
동영상 | 광주MBC | #남도는깊다 ; 김방(金倣) #경양방죽 | 경양방죽과 관련된 김방의 동물보은담 | https://www.youtube.com/watch?v=WkJNafcR0As |
- type: 해설, 참고, 원문 / 사진, 동영상, 도면, 그림, 지도, 3D_지도, 3D_모델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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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SS:M10407134 | 단행본 | 『(향토사료조사) 광주광역시 구전설화』, 전국문화원연합회 광주광역시지회, 2005. | RISS | http://www.riss.kr/link?id=M10407134 |
KCI:ART002422017 | 논문 | 이옥희, 「경양방죽 설화의 전승 담론과 서사 전략」,『호남학』64,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2018. | KCI |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422017 |
- id: 인용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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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nline resource: KCI, RISS, DBpia, 네이버 학술정보 .....
Notes
- ↑ 10대 제자상이라고 표현한 곳도 있는데 무엇이 맞는지 확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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