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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명동에 다방 겸 공연 공간인‘카페 떼아뜨르’와 극단 에저또의 전용극장인 에저또 창고극장이 개관한다. 73년에는 극단 실험극장의 전용 소극장, 77년 공간 소극장, 79년 민예소극장이 개관하였고, 소극장 뿐만 아니라 회관, 다방과 카페, 술집, 예식장, 호텔, YWCA 청개구리 살롱 등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하면서 본격적인 연극 대중화를 이끌었다. | 1969년 명동에 다방 겸 공연 공간인‘카페 떼아뜨르’와 극단 에저또의 전용극장인 에저또 창고극장이 개관한다. 73년에는 극단 실험극장의 전용 소극장, 77년 공간 소극장, 79년 민예소극장이 개관하였고, 소극장 뿐만 아니라 회관, 다방과 카페, 술집, 예식장, 호텔, YWCA 청개구리 살롱 등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하면서 본격적인 연극 대중화를 이끌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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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5년 출범한 가교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들이 모여 만든 전문 극단이다. 창단공연으로 이근삼의 <데스스테스의 재판>을 이승일 연출로 신문회관에서 올리게 되고, 이후 빈센트 밀레이의 <끝없는 아리아>를 동국대학교 소극장에서 올린 후 이 작품으로 전국 순회공연에 나서게 된다. 순회공연의 가장 큰 이유는 극장 대관의 어려움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국립극장 외에 새롭게 생겨난 극단이 공연을 올릴만한 공간이 없었다. 극단 가교는 전국 교도소와 군부대를 돌며 순회공연을 시작하고, 2년 동안 약 300회 이상 공연된다. 1966년 3월에는 <퇴비탑의 기적>이라는 작품으로 최초의 전국규모 순회공연에 나서게 되며, 주로 교도소나 교회, 군부대나 시골의 읍을 공연 장소로 택했다. 이후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연합회 시청각교육국 성극위원회의 후원으로 성극을 만들어 전국의 교도소와 교회, 부녀보호소, 기독교 계통의 중고등학교 및 대학 등지에 순회공연을 다니기에 이른다. 1969년에는 천주교 나사업 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미련한 팔자대감>을 제작해 무려 96일 동안 전국 순회공연을 떠난다. 주로 초등학교, 중학교 운동장, 계곡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택새 대형 진료차를 타고 다니며 공연한 결과 25만이라는 경이적인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1970년대에도 순회공연은 이어지고, 극단 사상 최초로 만리포 해변에서 피서객을 상대로 공연하여, 1973년 천막극장의 출현을 예고하였다.<ref>극단 가교, 문화포털 https://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View.do?vvm_seq=7390</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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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참고문헌== | ||
<references/> | <referenc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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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든 사람들== | ||
+ | *기획: [[정주영]] |
2022년 4월 29일 (금) 10:30 기준 최신판
목차
Theme
1960-70년대 소극장 및 다양한 공연 공간의 등장과 극단의 전국 순회공연 경로를 통해 살펴보는 연극 대중화 과정
Synopsis
1960-70년대 소극장 및 다양한 공연 공간과 극단의 순회공연 이동 경로를 표현한 디지털 지도 및 공연 자료를 메타버스 환경에서 구현하여, 1960-70년대 공연 공간과 연극의 대중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온라인 전시 공간을 만든다.
Storyline
Episode 1:1960년대 동인제 극단의 연극 대중화 운동
1960년대에 등장한 실험극장, 민중극장, 극단 산하, 극단 가교, 극단 광장, 극단 여인극장 등의 동인제 극단은 순회공연을 시도하며, 고급 엘리트 예술이 아닌 일상의 예술로서 연극의 대중화를 시도하였다.
Episode 2:1970년대 소극장의 등장과 새로운 연극 공간
1969년 명동에 다방 겸 공연 공간인‘카페 떼아뜨르’와 극단 에저또의 전용극장인 에저또 창고극장이 개관한다. 73년에는 극단 실험극장의 전용 소극장, 77년 공간 소극장, 79년 민예소극장이 개관하였고, 소극장 뿐만 아니라 회관, 다방과 카페, 술집, 예식장, 호텔, YWCA 청개구리 살롱 등 다양한 공간에서 공연하면서 본격적인 연극 대중화를 이끌었다.
Episode 3:극단 가교, 연극 대중화의 주체
1965년 출범한 가교는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들이 모여 만든 전문 극단이다. 창단공연으로 이근삼의 <데스스테스의 재판>을 이승일 연출로 신문회관에서 올리게 되고, 이후 빈센트 밀레이의 <끝없는 아리아>를 동국대학교 소극장에서 올린 후 이 작품으로 전국 순회공연에 나서게 된다. 순회공연의 가장 큰 이유는 극장 대관의 어려움 때문이다. 1960년대에는 국립극장 외에 새롭게 생겨난 극단이 공연을 올릴만한 공간이 없었다. 극단 가교는 전국 교도소와 군부대를 돌며 순회공연을 시작하고, 2년 동안 약 300회 이상 공연된다. 1966년 3월에는 <퇴비탑의 기적>이라는 작품으로 최초의 전국규모 순회공연에 나서게 되며, 주로 교도소나 교회, 군부대나 시골의 읍을 공연 장소로 택했다. 이후 기독교 단체인 한국기독교연합회 시청각교육국 성극위원회의 후원으로 성극을 만들어 전국의 교도소와 교회, 부녀보호소, 기독교 계통의 중고등학교 및 대학 등지에 순회공연을 다니기에 이른다. 1969년에는 천주교 나사업 협의회의 후원을 받아 <미련한 팔자대감>을 제작해 무려 96일 동안 전국 순회공연을 떠난다. 주로 초등학교, 중학교 운동장, 계곡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장소를택새 대형 진료차를 타고 다니며 공연한 결과 25만이라는 경이적인 관객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1970년대에도 순회공연은 이어지고, 극단 사상 최초로 만리포 해변에서 피서객을 상대로 공연하여, 1973년 천막극장의 출현을 예고하였다.[1]
사진 | 설명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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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교회 공연 <끝없는 아리아> | 극단 가교, 『가교 10년』 | |
버스 순회 공연 | 극단 가교, 『가교 10년』 | |
1960년대 추정 소록도 공연 | 극단 가교, 『가교 10년』 | |
1960년대 추정 소록도 관객 | 극단 가교, 『가교 10년』 | |
1960-70년대 추정 교도소 환영 플래 카드 | 극단 가교, 『가교 10년』 | |
1960-70년대 교도소장과 극단원들의 식사 | 극단 가교, 『가교 10년』 | |
1973년 극단 최초의 천막극장, 만리포 해수욕장에 설치 | 극단 가교, 『가교 10년』 |
참고문헌
만든 사람들
- 기획: 정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