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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8. 항주(項州408)) | + | 178. 항주(項州) |
− | 項州洞口問星田항주동 입구에서 별밭을 방문하니,
| + | <big>項州洞口問星'''田''' (<small>항주동구문성'''전'''</small>) 항주동 입구에서 별밭을 방문하니, <br />牟麥春光上下'''連''' (<small>모맥춘광상하'''련'''</small>) 보리가 봄볕 속에 위아래로 연이었네.<br />申老閑眠桑樹下 (<small>신로한면상수하</small>) 신씨노인 뽕나무 아래 한가로이 졸다가도,<br />時呼穉子讀靑'''篇''' (<small>시호치자독청'''편'''</small>) 어린아이 공부하라고 때맞추어 소리치네.<br /> |
− | 牟麥春光上下連보리가 봄볕 속에 위아래로 연이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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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申老閑眠桑樹下신씨노인 뽕나무 아래 한가로이 졸다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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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時呼穉子讀靑篇어린아이 공부하라고 때맞추어 소리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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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주(項州)에는 성전(星田)이 있다. 어떤 이는 별이 떨어진 곳이라고도 한다. 평산 신씨(平山申氏)들이 많이 살고 있다. | | ○ 항주(項州)에는 성전(星田)이 있다. 어떤 이는 별이 떨어진 곳이라고도 한다. 평산 신씨(平山申氏)들이 많이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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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9. 낙인동(樂仁洞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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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國賜峯前王訪村국사봉 앞쪽에 왕방촌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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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世居全氏向陽門전씨들이 양지쪽에 대대로 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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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丹花仙籍黃金印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관직 올라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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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觀海眞工自有源관해공의 참된 공부 스스로 근원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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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낙인동(樂仁洞)은 항주에서 갈라진 동네이다. 성주 전씨 전신(全信)410)은 고려조의 병부상서로서 공왕(恭王)을 수행하여 이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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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들어와 살았다. 우리 태종이 공을 방문하였는데 왕방리(王訪里)에서 물어보았기 때문에 그 마을 이름을 왕방리라고 하였다. 권농사(勸農使)를 제수하였고 큰 산 하나를 하사하였기 때문에 그 산을 이름하여 국사봉(國賜峯)이라고 한다. 그 후손은 무과에 급제하여 연일·초계·경주의 영장(營將)과 백령 첨사를 역임하였으며 영사원종일등공신(寧社原從一等功臣)에 등록되었다. 성품이 매우 강직해서 청백리로 이름을 날렸는데 일찍이 강화부 중군(中軍) 때에 공용 면포 한 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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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상(馬裳)으로 하도록 하였는데 체임될 때를 미쳐 그 마상을 중군청에 도로 갖다 주었다. 그 아들 전기업(全起業)은 정축년(1637) 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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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 순절하였으니 일이 충렬사 주(註)에 보인다. 그 후손 관해공(觀海公) 전재봉(全在鳳)411)은 일찍이 문과에 합격하여 대간의 청직을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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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쳐서 제주 목사로 나갔다. 물러나서는 그 친척과 자손들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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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8) 양도면 인산2리 항주동으로 황골이라고 한다. 황골 동남쪽에 별밭[星田]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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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09) 양도면 인산1리 왕방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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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0) 전신(생몰년 미상) 고려말의 문신. 본관은 성주(星州). 호는 사와(謝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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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1) 전재봉(1834년 출생) 본관은 성주(星州)이며, 1861년 식년시 병과(丙科)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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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로 합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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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0. 흥천동(興川洞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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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岐巖山下是興川기암산 아래에 흥천 마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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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短竹疎松繞宅邊작은 대와 성근 소나무가 집 주위에 둘러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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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大冶爐頭金躍否커다란 쇠가마에 쇳물을 끓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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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犂商鼎賈若紛然쟁기장수 솥장수가 분주히 다녀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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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 동네에는 주철(鑄鐵)의 분점(盆店)이 있는데 호미 장사와 솥장사가 많이 모여 왕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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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산 이름은 기암(岐岩)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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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2) 양도면 삼흥2리 흥천 마을이다. 고려시대에 흥천사가 있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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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1. 산문동(山門洞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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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山門洞倚碧山松산문동은 푸른 소나무 숲에 의지하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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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漸覺泉聲瀉兩峯양 봉우리 솟아나는 샘물소리 차츰 들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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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灌入稻畦能免旱논에 물을 댈 수 있어 가뭄 걱정 면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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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年年相賀太平容해마다 태평한 모습 서로서로 치하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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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땅의 형세가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 샘물이 마르는 일이 없고, 가뭄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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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3) 양도면 삼흥2리 산문 마을로 흥천 동남쪽에 있다. 이 산문동 부분이 원본에는 106면 ʻ정두동ʼ 뒤에 실려 있으나, <고창서 발문본>의 순서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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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곳으로 옮겼다. 산문동은 흥천동과 인접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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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 존강동(存江洞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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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存江洞口久停鞭존강동 입구에서 오래토록 머물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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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因坐南宮舊榻筵남궁씨 옛 터전에 잠시나마 앉아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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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溪柳庭花分植處시내버들과 정원화초 나누어 심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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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淸風明月尙依然맑은 바람 밝은 달은 아직도 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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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구춘당(九春堂)의 후손으로 주사를 지낸 남궁혁(南宮金赫)은 이곳에 살았다. 그 아들 남궁경(南宮氵敬)은 나와 매우 친했는데, 지금은 고인이 되었다. 그 자손이 여기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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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4) 양도면 삼흥1리 존강 마을로, 존개이·종개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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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3. 건평동(乾坪洞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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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名是乾坪卽水坪이름은 건평이지만 물 많은 수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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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滿堰春波灌稻粳뚝에 가득 봄물 차니 논에 물을 대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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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且畊且讀諸君子밭 갈면서 책 읽은 이 모두가 군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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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聊得斯中一味淸그러한 가운데서 맑은 기운을 얻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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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평해 황씨(平海黃氏), 함열 남궁씨(咸悅南宮氏), 강진 안씨(康津安氏), 파평 윤씨(坡平尹氏)가 모두 이곳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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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5) 양도면 건평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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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 장지포(長池浦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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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長池春水漲東西장지포 봄물은 동서로 넘쳐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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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井浦乾坪築兩堤정포와 건평에는 두 둑을 쌓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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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欹笠何翁投釣餌삿갓을 쓴 어떤 노인 낚시 바늘 던져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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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白鳩飛去影高低나는 백구는 그림자가 높았다가 낮아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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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방은 유수 서필원(徐必遠)417)이 쌓은 것인데 물이 항상 얕지 않아서 농사짓는 사람들이 의지하여 생업을 이루어나갔다. 동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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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있는 두 제방은 항상 낚시꾼들이 있어서 취미를 얻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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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6) 양도면 건평리 노고산 북쪽에 있는 갯고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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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7) 서필원(1614∼1671) 본관은 부여(扶餘). 자는 재이(載邇), 호는 육곡(六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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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5. 진강산 귀운(鎭江山歸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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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鎭江山色碧如屛진강산 산색은 푸른 병풍을 친 듯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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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片片歸雲錦繡形흐르는 조각구름 비단에 수놓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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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首智遺墟何處是수지현 옛터는 어디쯤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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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造翁筆下影丹靑조물주의 붓끝 아래 단청이 그려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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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산릉을 두르고 있는 산은 벌려져 있고 굽어 있어서 그 아래에 의지하여 마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으니 옛날에 진강현(鎭江縣)이 그 아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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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고구려의 수지현(首智縣)418)의 터는 진강 남쪽에 있었다. 그 서쪽 5리에 해녕향(海寧鄕)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능곡(陵谷)은 옮겨져서 찾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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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돌아가는 구름[歸雲] 역시 강화부부 10경(景)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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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8) 원문에는 수지손(首智孫)으로 되어 있으나, <삼국사기> 등의 기록에 따라 ʻ孫ʼ을 ʻ縣ʼ으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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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6. 목장(牧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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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三百年前設牧場삼백년 이전에 목장이 설치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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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古稱此地馬多良좋은 말이 많은 곳으로 오래 전부터 불려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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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盖聞伐代驄云者듣건대 벌대총이라 불린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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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內廐嘶風獨異常궁궐 마구간에서 울부짖는 모습도 예사롭지 않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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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옛날에 목장이 있었는데 인조 기축년(1649)에 유수 조계원(趙啓遠)419)이 장계를 올려서 목장을 파하고 농사를 짓게 하자고 하였
| + | ==참고== |
− | 으며, 기해년(1719)에는 유수 심택현(沈宅賢)420)이 태복을 지낼 때에
| + | * 항주(項州) : 양도면 인산2리 항주동으로 황골이라고 한다. 황골 동남쪽에 별밭[星田] 마을이 있다. |
− | “목장에는 훌륭한 말의 종자들이 있으니 다시 목장을 설치해야 합니다.”라고 하였는데 길상산(吉祥山)이 이곳이다. 세속에 전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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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효종이 심양에서 돌아올 때 청나라 황제가 말 한 마리를 돌려주면서 ʻ이것은 너희 나라 진강에서 나온 것이니 그대가 나라로 돌아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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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때 이 말과 함께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ʼ라고 하였다. 효종은 그 말을 사랑하여 돌아와서는 장차 강을 건너고자 하니 말이 먼저 날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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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너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비로소 그것이 신령스러운 종자임을 알수 있었다.”라고 하였다. 일설에는 “효종이 심양에서 돌아올 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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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장에서 팔준마를 얻었다.”라고 하기도 한다. 일설에는 “효종이 말 한 마리를 길러서 내구에 두었는데 벌대총(伐大驄)이라고 이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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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였다. 이것은 진강의 종자들이 다른 말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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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름을 지은 데에는 특별한 뜻이 있기 때문에 가장 사랑하고 길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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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19) 조계원(1592∼1670) 본관은 양주(楊州). 자는 자장(子長), 호는 약천(藥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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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20) 심택현(1674∼1736)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여규(汝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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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 항주(項州)
○ 항주(項州)에는 성전(星田)이 있다. 어떤 이는 별이 떨어진 곳이라고도 한다. 평산 신씨(平山申氏)들이 많이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