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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161. 구주동(鳩州洞379)) 鷗洲洞在鳳山前봉산의 앞에 있는 구주동 다다라서, 來攪南宮石枕眠돌베개 베고 자던 남궁씨를 깨웠네. 憑問李基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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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big>鷗洲洞在鳳山'''前''' (<small>구주동재봉산'''전'''</small>) 봉산의 앞에 있는 구주동 다다라서, <br />來攪南宮石枕'''眠''' (<small>래교남궁석침'''면'''</small>) 돌베개 베고 자던 남궁씨를 깨웠네.<br />憑問李基何處是 (<small>빙문리기하처시</small>) 이 선생 댁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는데,<br />文章德業尙今'''傳''' (<small>문장덕업상금'''전'''</small>) 문장과 덕망이 아직도 전해 온다네.<b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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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성판관인 전주 이씨 이중명(李重溟)380)은 호가 구주(鳩州)인데 이곳에 살았으며 문장과 학업으로 서울까지 소문이 났다. ≪동악집(東岳集)≫의 부(賦)·송(頌)·잠(箴)·명(銘)에 보이는 병판관(病判官)이 이 사람이다. | ○ 한성판관인 전주 이씨 이중명(李重溟)380)은 호가 구주(鳩州)인데 이곳에 살았으며 문장과 학업으로 서울까지 소문이 났다. ≪동악집(東岳集)≫의 부(賦)·송(頌)·잠(箴)·명(銘)에 보이는 병판관(病判官)이 이 사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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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춘당(九春堂)의 후손 남궁협(南宮浹)이 지금 이 동네에 살고 있다. | ○ 구춘당(九春堂)의 후손 남궁협(南宮浹)이 지금 이 동네에 살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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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물== | ||
+ | * 이중명(?-1637)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구주(鷗洲).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둘째 아들 이증(李䎖)과 함께 집에서 자결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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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 | ||
+ | * 구주동(鳩州洞): 내가면 오상1리 구주동이다. 양구(陽鳩)라고도 한다. |
2019년 5월 29일 (수) 00:39 판
鷗洲洞在鳳山前 (구주동재봉산전) 봉산의 앞에 있는 구주동 다다라서,
來攪南宮石枕眠 (래교남궁석침면) 돌베개 베고 자던 남궁씨를 깨웠네.
憑問李基何處是 (빙문리기하처시) 이 선생 댁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는데,
文章德業尙今傳 (문장덕업상금전) 문장과 덕망이 아직도 전해 온다네.
○ 한성판관인 전주 이씨 이중명(李重溟)380)은 호가 구주(鳩州)인데 이곳에 살았으며 문장과 학업으로 서울까지 소문이 났다. ≪동악집(東岳集)≫의 부(賦)·송(頌)·잠(箴)·명(銘)에 보이는 병판관(病判官)이 이 사람이다.
○ 구춘당(九春堂)의 후손 남궁협(南宮浹)이 지금 이 동네에 살고 있다.
인물
- 이중명(?-1637)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구주(鷗洲).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둘째 아들 이증(李䎖)과 함께 집에서 자결했다.
참고
- 구주동(鳩州洞): 내가면 오상1리 구주동이다. 양구(陽鳩)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