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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147. 교항동(橋項洞344)) 橋項洞人識古風교항동 사람들은 옛 풍습을 잘 알아서, 金生昔日著心紅예전의 김 선생은 깊은 충정 드러냈네. 東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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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 교항동(橋項洞344))
 
橋項洞人識古風교항동 사람들은 옛 풍습을 잘 알아서,
 
金生昔日著心紅예전의 김 선생은 깊은 충정 드러냈네.
 
東西從享東西廡향교의 동쪽 채 서쪽 채서 제향을 올렸고,
 
丙歲奉安茅屋中병인년 난리 때엔 초가집에 봉안했네.
 
344) 양사면 교산2리 교항(다리목)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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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橋項洞人識古'''風''' (<small>교항동인식고'''풍'''</small>)    교항동 사람들은 옛 풍습을 잘 알아서, <br />金生昔日著心'''紅''' (<small>김생석일저심'''홍'''</small>)    예전의 김 선생은 깊은 충정 드러냈네.<br />東西從享東西廡 (<small>동서종향동서무</small>)    향교의 동쪽 채 서쪽 채서 제향을 올렸고,<br />丙歲奉安茅屋'''中''' (<small>병세봉안모옥'''중'''</small>)    병인년 난리 때엔 초가집에 봉안했네.<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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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인년(1866) 9월에 병인양요 때문에 성이 함락되던 날 교관(敎官) 황호덕(黃浩悳)은 대성전의 위패[聖廟]를 봉안하여 산 뒤로 옮겼고, 자(字)가 치일(致一)인 김씨가 동서무(東西廡)의 위패를 그 집으로 종향(從享)하였다.
 
○ 병인년(1866) 9월에 병인양요 때문에 성이 함락되던 날 교관(敎官) 황호덕(黃浩悳)은 대성전의 위패[聖廟]를 봉안하여 산 뒤로 옮겼고, 자(字)가 치일(致一)인 김씨가 동서무(東西廡)의 위패를 그 집으로 종향(從享)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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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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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항동(橋項洞) 양사면 교산2리 교항(다리목) 마을이다.

2019년 5월 25일 (토) 00:57 기준 최신판

橋項洞人識古 (교항동인식고)     교항동 사람들은 옛 풍습을 잘 알아서, 
金生昔日著心 (김생석일저심) 예전의 김 선생은 깊은 충정 드러냈네.
東西從享東西廡 (동서종향동서무) 향교의 동쪽 채 서쪽 채서 제향을 올렸고,
丙歲奉安茅屋 (병세봉안모옥) 병인년 난리 때엔 초가집에 봉안했네.

○ 병인년(1866) 9월에 병인양요 때문에 성이 함락되던 날 교관(敎官) 황호덕(黃浩悳)은 대성전의 위패[聖廟]를 봉안하여 산 뒤로 옮겼고, 자(字)가 치일(致一)인 김씨가 동서무(東西廡)의 위패를 그 집으로 종향(從享)하였다.


참고

  • 교항동(橋項洞) 양사면 교산2리 교항(다리목) 마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