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굿"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출처) |
|||
57번째 줄: | 57번째 줄: | ||
=='''출처'''== | =='''출처'''== | ||
−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 | +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84%9C%ED%95%B4%EC%95%88%EB%8C%80%EB%8F%99%EA%B5%BF&ridx=0&tot=22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대동굿'] |
2019년 5월 15일 (수) 01:54 판
정의
음력 정월 또는 2월에 황해도·평안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서해안 일대에서 지역수호신인 당신(堂神)에게 마을의 안녕과 생업의 번창을 비는 마을굿이다.
내용
지역수호신인 당신(堂神)을 모셔 마을의 안과태평(安過太平)과 생업의 번창을 비는 굿으로, 음력 정월이나 2월에 매년 또는 그 이상의 해를 걸러 정기적으로 행하여진다.
제의 대상
황해도 해안에서는 당신으로 ‘서낭’과 ‘임경업 장군’을 주로 모신다. 특히, 임경업 장군은 풍어를 주는 신으로 연평도 근처에서 신앙된다. 황해도 해안에서는 당신으로 ‘서낭’과 ‘임경업 장군’을 주로 모신다. 특히, 임경업 장군은 풍어를 주는 신으로 연평도 근처에서 신앙된다.
제의 형태
제일이 결정되면 마을에서는 먼저 제수를 장만할 도가를 뽑는다. 도가는 지난 한해 동안 출산과 사망 등의 부정한 일을 겪지 않은 주민 중에서 덕망 있는 사람으로 선정한다. 또한, 굿 전체의 진행을 담당할 소염을 3명에서 9명까지 홀수로 뽑는다. 도가와 소염들은 준비기간 동안 몸을 정하게 가지고 출입을 삼가는 등 부정을 타지 않도록 조심한다. 황해도 해안지역에 전승되어온 대동굿의 절차 및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닷가에 굿청을 차리고 ‘당산맞이’로부터 굿을 시작한다. 무당과 각자 자기네 배의 기를 든 선원들, 그리고 주민들이 마을의 당(堂)으로 가서 당신을 맞아오는 굿이다. 이때 무당은 당 앞에 늘어선 뱃기 하나 하나에 제금을 치며 축원을 하여 당신을 강림시킨다. “장군님들 하강에 염원입니다. 만대동입니다. 일대동입니다. 장군님네 여기 일중선의 도사공님, 선주 이하 여러 백옥선관입니다. 임경업 장군님이며 서낭님이며 이물서낭·고물서낭·소당애기씨 다 만대동 대령하고 장원 준다 하시거든 자, 설레입시다.” 하고 무당이 축원을 하는 가운데 뱃기를 든 선원의 손이 떨려 기가 흔들리면 신이 하강한 것으로 믿고 굿청으로 모셔간다. 무당이 “본당 장군님 모셔 싣구 연평바다로 돈 실러 갑시다. 어허어 에야…….” 하고 배치기를 부르는 동안 선원들은 기를 들고 뛰어서 굿청 앞에 나란히 꽂아 놓는다. 한편, 무당일행은 당에서 곧장 도가집으로 간다. 도가집에서는 간단한 제물을 차려 놓고 큰 양푼에 뜨물과 맑은 물을 떠놓은 뒤 상소염이 뚝대를 잡는다. 뚝대란 대수대명으로 바치는 돼지를 놀리는 신대[神竿]의 일종으로, 참나무가지에 도가의 윗저고리를 입히고 미영(무명)과 베·방울·소지 등을 묶어 만든 것이다. 상소염이 요란한 무악에 맞추어 뚝대를 들고 이리 첨벙 저리 첨벙 다니다가 맑은 물로 풍덩 들어가면 주민들은 그해에 풍어가 들 것으로 믿는다. 이어 무당은 뚝대를 든 상소염을 앞세우고 마을을 돌면서 집집마다 간단히 축원을 해주는데 이를 ‘세경돌기’라고 한다. 마을을 다 돈 무당일행이 굿청으로 들어설 때 ‘문잡아들음굿’을 한다. 소염들이 굿청 앞에 소나무가지를 엮어 만든 문을 세우고 굿청을 지키고 있다가 무당들이 들어오면 심부름꾼인 상산막둥이를 시켜 신분을 확인하는 것이다. “얘 요즘처럼 세월도 분분한데 누가 문밖에서 저리 시끄럽게 구느냐? 산적인지 화적인지 마적인지 알 수 없으니 한번 나가보아라.”라고 한다. 그러면 상산막둥이가 무당과 소염 사이를 분주히 오가며 재담을 하다가 그들이 마을에 풍어와 복을 주려고 서낭님과 장군님을 모시고 온 무당들이라고 한다. 신분이 밝혀져 비로소 무당들이 굿청에 들어오면 소염들은 물러나고 굿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굿의 내용은 초부정·초가뭉·제석·대감·성수·사냥굿·타살구능·서낭·조상 등의 순서로서, 황해도 무속에서 신앙하는 거의 모든 신들을 모시는 철물이굿과 대동소이하다. 굿 구경은 주로 여자들이 하고 남자들은 정박하여 있는 배나 바닷가에서 북·장구·징·꽹과리 등 풍물을 울리면서 신나게 논다. 밤새도록 마을 전체가 술과 음악과 노래와 춤이 끊이지 않는 축제의 장이 된다. 굿청의 굿이 끝나 물이 들어오는 시간이면 ‘뱃기내림’을 한다. 굿청에 좌정하여 있는 당신을 다시 뱃기에 내려 배로 모셔 가는 거리이다. 무당의 축원에 따라 뱃기에 신이 하강하면 선원들은 기를 들고 다투어 자기 배로 달려가 좌정시킨다. 마지막거리로 ‘마당굿’에서 뜬 귀신[浮鬼]들을 풀어 먹이고 굿을 모두 마친다.
제의 목적
대동굿은 ‘당산맞이’와 ‘세경돌기’·‘문잡아들음’거리 등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지역수호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면서 또한 주민들의 생업이 번영하기를 비는 굿이다. 동시에 같은 신을 의지하고 사는 마을주민들을 깊은 동질감으로 묶어 공동체의식을 강화시키는 기능을 가진다. 이러한 대동굿의 기반은 마을에 있기 때문에 남북이 분단된 현재는 전승이 끊어진 상태이다. 그러나 월남하여 인천·강화도 등 해안에 살고 있는 황해도 주민들과 황해도 출신 무당들이 이 굿을 계승하여 1985년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 풍어제의 하나로 서해안 배연신굿 및 대동굿이 지정되었다. 기예능보유자로 김금화(金錦花)·최음전(崔音全)·안승삼(安承三 : 배치기노래·장식)이 인정되었다.
이 굿의 목적이 배의 앞길에 행운과 풍어를 기원하는 데 있으므로 이러한 제의에는 가까운 이웃과 친지들도 몰려오게 된다. 이때 신연잔치를 보러 찾아드는 친지들은 대부분 그 배의 이름과 ‘축대어(祝大漁) 누구누구’라는 등의 글을 쓴 삼색기(三色旗) 또는 오색기(五色旗)를 만들어오기도 한다. 이 날 진수하는 배 위에는 울긋불긋 아름다운 깃발로 만선을 이루기도 한다.
제의가 끝나면 제물을 조금씩 떼어 술잔에 모아 잡식을 만들어 서낭의 몫으로 그 제단 밑에다 바친다. 그 다음에 다시 앞에서와 같이 제물을 조금씩 떼어 술잔에 모아 이를 ‘걸명’이라 해서 배의 앞쪽과 뒤쪽, 그리고 중간 지점에 손가락으로 떠 던진다. 배연신굿의 시기는 일정치 않다. 선주에 따라서 그믐날과 열나흗날 또는 초하룻날과 보름날 등으로 보통 한 달 두 차례의 고사를 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사진
참고문헌
관서지방무가 (임석재·장주근, 문화재관리국, 1966)
「화수부두에 펼쳐진 큰 잔치-황해 대동굿 재현의 현장-」(황루시,『마당』25,1983.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