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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82. 공도회(公都會204)) 都會古規陞補同공도회의 옛 규범은 승보시205)와 같은데, 三場詩賦擇精工삼장의 시부로 인재를 뽑았네. 年年貢擧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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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공도회(公都會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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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會古規陞補同공도회의 옛 규범은 승보시205)와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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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g>都會古規陞補'''同''' (<small>도회고규승보'''동'''</small>)     공도회의 옛 규범은 승보시와 같은데, <br />三場詩賦擇精'''工''' (<small>삼장시부택정'''공'''</small>)    삼장의 시부로 인재를 뽑았네.<br />年年貢擧從原數 (<small>년년공거종원수</small>)    정해진 인원을 해마다 올렸기에,<br />伊昔江州蔚士'''風''' (<small>이석강주울사'''풍'''</small>)    예로부터 강화는 선비풍(학구열)이 높았었네.<br />
三場詩賦擇精工삼장의 시부로 인재를 뽑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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年年貢擧從原數정해진 인원을 해마다 올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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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昔江州蔚士風예로부터 강화는 선비풍(학구열)이 높았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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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도회(公都會)는 매년 정기적으로 제술(製述)과 시부(詩賦)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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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도회(公都會)는 매년 정기적으로 제술(製述)과 시부(詩賦)를 설해서 각각 1명씩 선발하고 사서(四書)와 소학(小學)을 강하여 각각 1명씩을 선발하는데 모두 4명을 선발하였다. 유수 권적(權樀)이 소학만으로는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제술을 1명 추가할 것을 아뢰었다. 황상[高宗] 때에 유수 이재원(李載元)이 아뢰어서 4명을 더 선발해서 도합 8명이 되었다. 시부삼장(詩賦三場)으로 계획하고 합격자를 뽑았으니 서울에서 선발하여 보임하는 관례를 따른 것이다.
설해서 각각 1명씩 선발하고 사서(四書)와 소학(小學)을 강하여 각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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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씩을 선발하는데 모두 4명을 선발하였다. 유수 권적(權樀)이 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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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관(試官)으로는 유수(留守)가 주시험관이 되고 장녕전 별검(別檢)이 부시험관이 되고, 기내의 문관과 수령, 찰방들이 부시험관으로 참여했다.
만으로는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제술을 1명 추가할 것을 아뢰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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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 이연수(1809년 출생) 본관은 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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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시를 보아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에는 주악을 울리고 음식을 마련해서 합격자들이 함께하여 즐거워하였다. 인재를 선발하는 절차와 선비를 대우하는 방식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강학(講學)하는 선비의 풍속이 매우 볼 만하였다.
199) 이건창(1852∼1898) 조선 말기의 문신·대문장가. 본관은 전주(全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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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名)은 송열(松悅). 자는 봉조(鳳朝, 鳳藻), 호는 영재(寧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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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지도==
200) 윤시영(1818년 출생) 본관은 파평(坡平). 강화(江華)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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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glemap width="800" height="570" lat="37.755627" lon="126.488011" type= "normal"  zoom="14.7" icon="http://maps.google.com/mapfiles/marker.png">
201) 이만규(1833년 출생) 본관은 전주(全州). 통진(通津)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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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000
202) 유원식(1847년 출생) 본관은 배천(白川). 교동(喬桐)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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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권채규(1792년 출생) 본관은 안동(安東). 풍덕(豊德)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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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4) 공도회(公都會)는 조선시대 각 도(道)와 유수부(留守府)에서 매년 관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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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의 향교 생도들 대상으로 실시하던 시험이다. 제술(製述)과 고강(考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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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37.753860, 126.478324, [[64. 명륜당(明倫堂)]] 현 향교길 강화군 강화읍 강화향교
의 두 과목을 시험하여, 합격자는 이듬해 서울에서 열리는 생원(生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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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37.754014, 126.478194, [[65. 강당(講堂) 안연재(安燕齋)]] 현 강화읍 관청리 936-3
(進士)의 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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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37.755553, 126.482822, [[66. 북문(北門)]] 강화산성북문 강화읍 국화리 산3
205) 승보시(陞補試) : 소과의 초시(初試)에 해당하는 시험. 성균관 대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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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37.763184, 126.484513, [[67. 여제단(厲祭壇)]]?? 현 강화읍 대산리 1195
(四學) 의 유생에 대상으로 시험을 쳐서 성적이 우수하면 식년(式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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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37.759656, 126.476231, [[68. 당주동(唐州洞)]] 현 강화군 송해면 당골길
소과 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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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내면(府內面)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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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37.755592, 126.486896, [[69. 북장대(北將臺)]] 현 강화읍 대산리 북산공원
다. 황상[高宗] 때에 유수 이재원(李載元)이 아뢰어서 4명을 더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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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37.760032, 126.486663, [[70. 북장춘목(北場春牧)]] 현 강화읍 대월로277번길,북산(송악)의북쪽 우마장,강화10경
해서 도합 8명이 되었다. 시부삼장(詩賦三場)으로 계획하고 합격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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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37.755495, 126.487113, [[71. 기우청단(祈雨晴壇)]] 고려산 화산 마니악 송악산 혈구산 갑곶진중 여기는 송악
뽑았으니 서울에서 선발하여 보임하는 관례를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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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37.754340, 126.484252, [[72. 행궁 궁아제단(宮娥祭壇)]] 현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부의 관아북쪽 송악산)
○ 시관(試官)으로는 유수(留守)가 주시험관이 되고 장녕전 별검
+
(V) 37.755006, 126.484252, [[73. 척천정(尺天亭)]] 현 강화읍 관청리(행궁의 북쪽)
(別檢)이 부시험관이 되고, 기내의 문관과 수령, 찰방들이 부시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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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 [[74. 장녕전(長寧殿)]] 현
으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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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 , [[75. 세심재(洗心齋)]] 현
○ 초시를 보아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에는 주악을 울리고 음식을
+
(Y) , [[76. 연초헌(燕超軒)]] 현
마련해서 합격자들이 함께하여 즐거워하였다. 인재를 선발하는 절차
+
(Z) 37.754223, 126.489997, [[77. 규장외각(奎章外閣)]] 현 강화읍 관청리 산32(??)(행궁의 동쪽)
와 선비를 대우하는 방식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강학(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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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752387, 126.485997, [[78. 상아(上衙)]] 현 강화읍 관청리 강화유수부동헌
學)하는 선비의 풍속이 매우 볼 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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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9. 객사(客舍)]]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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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0. 민풍시(民風詩)]]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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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1. 도과(道科)]]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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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2. 공도회(公都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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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3. 이아(貳衙)]]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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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4. 중영(中營)]] 현
 +
() 37.747652, 126.476736, [[85. 진무영(鎭撫營) 열무당(閱武堂)]] 현 연무당 옛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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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748305, 126.484933, [[86. 선원비각(仙源碑閣)]] 현 강화읍 동문안길21번길 13 선원김상용순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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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747529, 126.483159, [[87. 시장(市場)]] 현 강화읍 신문리 1003-6(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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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747903, 126.485195, [[88. 용흥궁(龍興宮)]] 강화읍 관청리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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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746572, 126.488306, [[89. 육궁(六宮)]] 현 강화읍 관청리 148-5 (동문안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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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 부내 심부윤(沈府尹*)]]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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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 부내 최판서(崔判書*)]]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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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 부내 김효자(金孝子*)]]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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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3. 성황단(城隍壇)]]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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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751875, 126.485356, [[94. 고려궁지(高麗宮址)]] 현 강화읍 북문길 42 강화 고려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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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749639, 126.491383, [[95. 동문(東門)]] 현 강화읍 관청리 49 동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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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754337, 126.473381, [[96. 강화부성(江華府城*)]] 현 강화산성 강화읍 국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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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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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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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도회(公都會)는 조선시대 각 도(道)와 유수부(留守府)에서 매년 관할 지역의 향교 생도들 대상으로 실시하던 시험이다. 제술(製述)과 고강(考講)의 두 과목을 시험하여, 합격자는 이듬해 서울에서 열리는 생원(生員) 진사(進士)의 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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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보시(陞補試) : 소과의 초시(初試)에 해당하는 시험. 성균관 대사성이 사학(四學) 의 유생에 대상으로 시험을 쳐서 성적이 우수하면 식년(式年)의 소과 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2019년 5월 5일 (일) 15:46 기준 최신판

都會古規陞補 (도회고규승보)     공도회의 옛 규범은 승보시와 같은데, 
三場詩賦擇精 (삼장시부택정) 삼장의 시부로 인재를 뽑았네.
年年貢擧從原數 (년년공거종원수) 정해진 인원을 해마다 올렸기에,
伊昔江州蔚士 (이석강주울사) 예로부터 강화는 선비풍(학구열)이 높았었네.

○ 공도회(公都會)는 매년 정기적으로 제술(製述)과 시부(詩賦)를 설해서 각각 1명씩 선발하고 사서(四書)와 소학(小學)을 강하여 각각 1명씩을 선발하는데 모두 4명을 선발하였다. 유수 권적(權樀)이 소학만으로는 뽑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제술을 1명 추가할 것을 아뢰었다. 황상[高宗] 때에 유수 이재원(李載元)이 아뢰어서 4명을 더 선발해서 도합 8명이 되었다. 시부삼장(詩賦三場)으로 계획하고 합격자를 뽑았으니 서울에서 선발하여 보임하는 관례를 따른 것이다.

○ 시관(試官)으로는 유수(留守)가 주시험관이 되고 장녕전 별검(別檢)이 부시험관이 되고, 기내의 문관과 수령, 찰방들이 부시험관으로 참여했다.

○ 초시를 보아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에는 주악을 울리고 음식을 마련해서 합격자들이 함께하여 즐거워하였다. 인재를 선발하는 절차와 선비를 대우하는 방식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강학(講學)하는 선비의 풍속이 매우 볼 만하였다.

기행지도

인물

참고

  • 공도회(公都會)는 조선시대 각 도(道)와 유수부(留守府)에서 매년 관할 지역의 향교 생도들 대상으로 실시하던 시험이다. 제술(製述)과 고강(考講)의 두 과목을 시험하여, 합격자는 이듬해 서울에서 열리는 생원(生員) 진사(進士)의 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
  • 승보시(陞補試) : 소과의 초시(初試)에 해당하는 시험. 성균관 대사성이 사학(四學) 의 유생에 대상으로 시험을 쳐서 성적이 우수하면 식년(式年)의 소과 복시(覆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