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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습록 상편)
(=以下門人徐愛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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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先生於《大學》「格物」諸說,悉以舊本為正,蓋先儒所謂「誤本」者也。愛始聞而駭,既而疑,已而殫精竭思,參互錯綜以質於先生。然後知先生之說若水之寒,若火之熱,斷斷乎「百世以俟聖人而不惑」者也。先生明睿天授,然和樂坦易,不事邊幅。人見其少時豪邁不羈,又嘗泛濫於詞章,出入二氏之學,驟聞是說,皆目以為立異好奇,漫不省究。不知先生居夷三載,處困養靜,精一之功,固已超入聖域,粹然大中至正之歸矣,愛朝夕炙門下,但見先生之道,即之若易而仰之愈高,見之若粗而探之愈精,就之若近而造之愈益無窮,十餘年來,竟未能窺其藩籬。世之君子,或與先生僅交一面,或猶未聞其謦欬,或先懷忽易憤激之心,而遽欲於立談之間,傳聞之說,臆斷懸度,如之何其可得也!從遊之士,聞先生之教,往往得一而遺二,見其牝牡驪黃而棄其所謂千里者。故愛備錄平日之所聞,私以示夫同志,相與考而正之,庶無負先生之教云。門人徐愛書。
 
:先生於《大學》「格物」諸說,悉以舊本為正,蓋先儒所謂「誤本」者也。愛始聞而駭,既而疑,已而殫精竭思,參互錯綜以質於先生。然後知先生之說若水之寒,若火之熱,斷斷乎「百世以俟聖人而不惑」者也。先生明睿天授,然和樂坦易,不事邊幅。人見其少時豪邁不羈,又嘗泛濫於詞章,出入二氏之學,驟聞是說,皆目以為立異好奇,漫不省究。不知先生居夷三載,處困養靜,精一之功,固已超入聖域,粹然大中至正之歸矣,愛朝夕炙門下,但見先生之道,即之若易而仰之愈高,見之若粗而探之愈精,就之若近而造之愈益無窮,十餘年來,竟未能窺其藩籬。世之君子,或與先生僅交一面,或猶未聞其謦欬,或先懷忽易憤激之心,而遽欲於立談之間,傳聞之說,臆斷懸度,如之何其可得也!從遊之士,聞先生之教,往往得一而遺二,見其牝牡驪黃而棄其所謂千里者。故愛備錄平日之所聞,私以示夫同志,相與考而正之,庶無負先生之教云。門人徐愛書。
 
:양명 선생께서는 《대학》「격물」에 대한 여러 설 가운데 전적으로 구본을 정본으로 여기셨으니, 대개 선유(주자)가 말했던 誤本이었다. 내가 이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가 잠시 후 의심하고는, 이윽고 사려를 다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선생에게 질정하였는데, 그런 연후에야 선생의 설이 마치 물이 찬 것처럼 혹은 불이 뜨거운 것처럼 틀림없이 '백 세 이후의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심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선생의 총명은 타고 나셨으나 (...)
 
:양명 선생께서는 《대학》「격물」에 대한 여러 설 가운데 전적으로 구본을 정본으로 여기셨으니, 대개 선유(주자)가 말했던 誤本이었다. 내가 이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가 잠시 후 의심하고는, 이윽고 사려를 다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선생에게 질정하였는데, 그런 연후에야 선생의 설이 마치 물이 찬 것처럼 혹은 불이 뜨거운 것처럼 틀림없이 '백 세 이후의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심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선생의 총명은 타고 나셨으나 (...)
===以下門人徐愛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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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下門人徐愛錄===
 
:1. 愛問:「『在親民』,朱子謂當作新民。後章『作新民』之文似亦有據。先生以為宜從舊本『作親民』,亦有所據否」?先生曰:「『作新民』之『新』,是自新之民,與『在新民』之『新』不同。此豈足為據?『作』字卻與『親』字相對。然非『親』字義。下面治國平天下處,皆於『新』字無發明。如云『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如保赤子』。『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之類』。皆是『親』字意。『親民』猶孟子『親親仁民』之謂。親之即仁之也。百姓不親,舜使契為司徒,敬敷五教,所以親之也。堯典『克明峻德』便是『明明德』。『以親九族』,至『平章協和』,便是『親民』,便是『明明德於天下』。又如孔子言『修己以安百姓』。『修己』便是『明明德』。『安百姓』便是『親民』。說親民便是兼教養意。說新民便覺偏了」。
 
:1. 愛問:「『在親民』,朱子謂當作新民。後章『作新民』之文似亦有據。先生以為宜從舊本『作親民』,亦有所據否」?先生曰:「『作新民』之『新』,是自新之民,與『在新民』之『新』不同。此豈足為據?『作』字卻與『親』字相對。然非『親』字義。下面治國平天下處,皆於『新』字無發明。如云『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如保赤子』。『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之類』。皆是『親』字意。『親民』猶孟子『親親仁民』之謂。親之即仁之也。百姓不親,舜使契為司徒,敬敷五教,所以親之也。堯典『克明峻德』便是『明明德』。『以親九族』,至『平章協和』,便是『親民』,便是『明明德於天下』。又如孔子言『修己以安百姓』。『修己』便是『明明德』。『安百姓』便是『親民』。說親民便是兼教養意。說新民便覺偏了」。
  

2019년 4월 23일 (화) 12:41 판

전습록(傳習錄)

이 페이지는 고려대 철학과 대학원 동양철학전공 원전 강독 세미나(의적단)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전습록은 명대 유학자인 왕양명의 어록과 서간을 모은 책이다. 원전 인용은 다음의 사이트를 이용할 것: [1], [2]

전습록 상편

傳習錄序

門人有私錄陽明先生之言者。先生聞之,謂之曰:「聖賢教人,如醫用藥,皆因病立方,酌其虛、實、溫、涼、陰、陽、內、外而時時加減之。要在去病,初無定說。若拘執一方,鮮不殺人矣。今某與諸君不過各就偏蔽,箴切砥礪,但能改化,即吾言已為贅疣。若遂守為成訓,他日誤己誤人,某之罪過可復追贖乎?」 愛既備錄先生之教,同門之友有以是相規者。愛因謂之曰:「如子之言,即又『拘執一方』,復失先生之意矣。孔子謂子貢嘗曰:『予欲無言。』他日則曰:『吾與回言終日。』又何言之不一邪?蓋子貢專求聖人於言語之間,故孔子以無言警之,使之實體諸心以求自得;顏子於孔子之言,默識心通,無不在己,故與之言終日,若決江河而之海也。故孔子於子貢之無言不為少,於顏子之終日言不為多,各當其可而已。今備錄先生之語,固非先生之所欲。使吾儕常在先生之門,亦何事於此。惟或有時而去側,同門之友又皆離群索居,當是之時,儀刑既遠而規切無聞。如愛之駑劣,非得先生之言時時對越警發之,其不摧墮靡廢者幾希矣。吾儕於先生之言,苟徒入耳出口,不體諸身,則愛之錄此,實先生之罪人矣;使能得之言意之表,而誠諸踐履之實,則斯錄也,固先生終日言之之心也,可少乎哉?」錄成,因復識此於首篇以告同志。門人徐愛序。

徐愛引言

先生於《大學》「格物」諸說,悉以舊本為正,蓋先儒所謂「誤本」者也。愛始聞而駭,既而疑,已而殫精竭思,參互錯綜以質於先生。然後知先生之說若水之寒,若火之熱,斷斷乎「百世以俟聖人而不惑」者也。先生明睿天授,然和樂坦易,不事邊幅。人見其少時豪邁不羈,又嘗泛濫於詞章,出入二氏之學,驟聞是說,皆目以為立異好奇,漫不省究。不知先生居夷三載,處困養靜,精一之功,固已超入聖域,粹然大中至正之歸矣,愛朝夕炙門下,但見先生之道,即之若易而仰之愈高,見之若粗而探之愈精,就之若近而造之愈益無窮,十餘年來,竟未能窺其藩籬。世之君子,或與先生僅交一面,或猶未聞其謦欬,或先懷忽易憤激之心,而遽欲於立談之間,傳聞之說,臆斷懸度,如之何其可得也!從遊之士,聞先生之教,往往得一而遺二,見其牝牡驪黃而棄其所謂千里者。故愛備錄平日之所聞,私以示夫同志,相與考而正之,庶無負先生之教云。門人徐愛書。
양명 선생께서는 《대학》「격물」에 대한 여러 설 가운데 전적으로 구본을 정본으로 여기셨으니, 대개 선유(주자)가 말했던 誤本이었다. 내가 이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다가 잠시 후 의심하고는, 이윽고 사려를 다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선생에게 질정하였는데, 그런 연후에야 선생의 설이 마치 물이 찬 것처럼 혹은 불이 뜨거운 것처럼 틀림없이 '백 세 이후의 성인을 기다리더라도 의심할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선생의 총명은 타고 나셨으나 (...)

以下門人徐愛錄

1. 愛問:「『在親民』,朱子謂當作新民。後章『作新民』之文似亦有據。先生以為宜從舊本『作親民』,亦有所據否」?先生曰:「『作新民』之『新』,是自新之民,與『在新民』之『新』不同。此豈足為據?『作』字卻與『親』字相對。然非『親』字義。下面治國平天下處,皆於『新』字無發明。如云『君子賢其賢而親其親。小人樂其樂而利其利』。『如保赤子』。『民之所好好之。民之所惡惡之。此之謂民之父母之類』。皆是『親』字意。『親民』猶孟子『親親仁民』之謂。親之即仁之也。百姓不親,舜使契為司徒,敬敷五教,所以親之也。堯典『克明峻德』便是『明明德』。『以親九族』,至『平章協和』,便是『親民』,便是『明明德於天下』。又如孔子言『修己以安百姓』。『修己』便是『明明德』。『安百姓』便是『親民』。說親民便是兼教養意。說新民便覺偏了」。

전습록 중편

전습록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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