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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7일 (토) 21:36 판
국가 소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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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호 | 중화인민공화국 (中华人民共和国) |
수도 | 베이징 |
인구 | 약 1,373,541,278명 |
정치 체제 | 공화제, 사회주의, 민주집중제, 일당제, 단원제, 주석제, 중앙집권제, 정교분리(무신론), 성문법주의(중국법계) |
면적 | 9,640,821㎢ |
언어 | 중국어 |
지도
자연환경과 기후
대체로 연교차가 크고 건조한 지역들이 많다. 연 강수량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계절풍 기후(Cwa, Dwa)가 많고 온난 습윤 기후(Cfa)는 남방 해안지역에 국지적으로 존재하며, 몽골과 인접한 중북부와 서부는 아예 건조기후(BS, BW)에 속한다. 중국/환경 문서에서도 볼 수 있듯 중국에 물이 부족해지는 원인은 수질오염 탓도 크지만 전반적으로 강수량이 불균형한 상태에서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이 더 크다.
한반도와 달리 서고동저, 남고북저의 지형을 보여 북중국에는 중원(中原)이라는 넓은 개활지가 펼쳐지고, 이 곳에서 세계 4대 문명 중 하나인 황하 문명이 태어났다. 베이징, 시안 등 오래된 중국의 전통 도시들도 북쪽에 다들 있으며, 척박한 건조 기후대임에도 농업 생산이 풍부한데 황하의 홍수로 인한 옥토 때문이다. 여기에 산 하나 없는 평평한 지형은 덤이다.
반면 양쯔강 남쪽의 경우 큰 산맥들이 여럿 있다. 푸젠 성, 광둥 성, 저장 성, 광시좡족자치구, 윈난 성 등은 산이 많으며 우이 산맥 등 중국 내 굵직한 산맥들과 함께 히말라야 산맥의 동부 일부가 윈난에 걸쳐 있다. 광둥의 경우도 산이 많으며[1] 이 때문에 농업은 저조하고 어업을 주로 해 왔다. 그리고 지형의 한계로 인해 이 쪽 출신의 화교들이 많다.
역사
고대
중국의 전설에 의하면 상고의 3황(三皇)·5제(五帝)의 평화 시대를 거쳐 하(夏)·상(商)·주(周)의 3대(三代)가 계속되었다고 한다. 은허에서 발견된 귀갑수골(龜甲獸骨)에 새겨진 한자의 최고형(最古形)인 복사(卜辭)에 의하여 상대의 사회를 알 수 있다. 상나라는 웨이수이[渭水]에서 일어난 주(周)나라에 의하여 멸망되었는데 주나라는 왕권의 확립과 사회의 안정에 따라 제자백가(諸子百家)와 같은 문화가 발달하였다. 주나라는 BC 770년 수도를 낙읍(洛邑:지금의 洛陽縣)으로 옮겼다. 주나라의 동천 후 춘추(春秋:BC 770∼BC 403)시대를 거쳐 전국(戰國:BC 403∼BC 221)을 거쳤고 BC 221년,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하였다.
진나라는 중앙집권적인 군현제도(郡縣制度)를 단행하고 행정·군사·감찰의 3권분립 체제를 세웠다. 또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축조하고 국위를 사방에 떨쳐 진(Chin)의 이름이 서쪽에 전해져 ‘china’라는 명칭의 기원이 되었다. 그러나 BC 207년 진은 멸망하고, 서민 출신인 유방(劉邦)이 장안(長安)을 수도로 한왕조(漢王朝)를 창업하였다(BC 202). 한대에는 서방과의 교통이 활발하여 그 문화가 수입됨으로써 중국 문화의 내용이 충실해졌다. 지방 호족(豪族) 세력이 발전하게 되어 한때 왕망(王莽)이 신(新)을 건국하였지만 15년 만에 무너지고 광무제 유수(光武帝 劉秀)에 의하여 후한(後漢:25∼220) 시대가 된다. 그러나 전한부터의 타성이 그대로 남아 184년 황건(黃巾)의 난을 계기로 몰락의 기로에 들었다.
중세
황건의 난으로 군웅할거된 중국의 국토는 조조(曹操)의 아들 조비(曹丕)가 낙양에 세운 위(魏)와 유비(劉備)가 청두[成都]에 세운 촉한(蜀漢), 그리고 양쯔강 중·하류에 손권(孫權)이 세운 오(吳) 등의 3나라로 삼국정립 시대가 되었다. 280년 위의 신하이던 사마씨(司馬氏)가 3국을 통일하여 서진(西晉)이 되었고, 4세기 초 흉노(匈奴)의 침입으로 난징[南京]으로 옮겨 동진(東晉)이라 하여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 후 송(宋)·제(齊)·양(梁)·진(陳)의 4조(四朝)와 오(吳)·진(晉)을 더한 6조(六朝)가 교대되었는데 이 시대의 문화는 귀족과 호족들의 풍족한 생활에서 전개된 화려하고 우미한 것이었다.
한편 화베이지방은 5호16국(五胡十六國)이 서로 싸우다가 선비족(鮮卑族)이 439년 북위(北魏)로 통일하여 송(宋)나라와 대항하여 남북조 형세를 이루었다.
이러한 형세는 589년 북조의 수(隋)나라에 의해 통일되었다.
수나라 문제(文帝)는 군권을 강화하고 과거(科擧)제도를 시작하였으며, 양제(煬帝)는 대운하를 만들었지만 고구려와 싸워 대패함으로써 내란이 일어나 618년 멸망하였다. 이연(李淵)이 장안을 점령하고 당(唐)나라의 제위에 올라, 이후 당나라는 넓은 대제국으로 영토를 확대하였다. 귀족의 취미와 외형의 미를 강조하는 당대의 문화는 국제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문화는 인접 국가에 파급되어 동아문화권(東亞文化圈)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후기로 오면서 귀족 계급이 몰락하고 황소(黃巢)의 난이 일어나 907년 주전충(朱全忠)의 후량(後梁)에 멸망되었다. 이후 5대 10여 개국이 흥망하였다.
979년 송(宋)은 중국을 다시 통일하였으나, 문치주의(文治主義) 정책을 펼치면서 군사력이 약화되어 북방 유목민족의 세력이 크게 확장되었다. 거란족[契丹族]의 요(遼), 탕구트족[Tangut, 黨項族]의 서하(西夏), 여진족(女眞族)의 금(金) 등이 송(宋)을 압박하였다. 이들 나라들은 훗날 몽고족[蒙古族]이 세운 원(元)이나 만주족(滿洲族)이 세운 청(淸) 나라처럼 독자적인 문화를 지니고 중국문화에 큰 영향을 끼쳐 ‘정복왕조(征服王朝)’라고 불린다.
1127년에 송(宋)은 금(金) 나라의 압박으로 강남(江南)으로 옮겨갔지만, 1279년 칭기즈 칸이 이끈 몽고군에 멸망했다. 몽고족[蒙古族]이 세운 원(元)은 1368년 주원장(朱元璋)이 세운 명(明)에 도성인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가 함락되며 실질적으로 멸망했다. 명(明)은 1644년 민란 지도자인 이자성에 의해 멸망했고, 그 해에 산하이관[山海關]을 넘어온 만주족(滿洲族)의 후금(後金)이 베이징을 점령하면서 다시 정복왕조(征服王朝)인 청(淸)이 중국을 지배하였다.
근대
중국사에서 서양 세력이 침투하기 시작하여 전통왕조 체제에서 새로운 체제로 전환하는 시기로서 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부터 1919년 5·4운동까지를 근대사로 구분하고 있다.(『中國近代史』, 中華書局出版, 1983) 이는 청(淸)나라 말기부터 중화민국(中華民國) 초기까지에 해당한다.
청나라는 무역 개방을 요구하는 영국의 침략을 받았다(아편전쟁, 1840). 이로써 동양의 전통적인 대제국은 서양 근대국가의 침략을 받게 되었고, 중국의 근대사는 피침사로 시작되었다. 이 전쟁에서 패한 청은 반식민지화의 길로 접어들었고, 서양 자본주의의 침투로 전통적 전제사회는 혼란에 빠졌다. 이에 불만을 갖고 홍수전[洪秀全]은 태평천국(太平天國)을 건설한다는 이상으로 농민전쟁을 일으켜 세력을 형성하였다(태평천국의 난, 1850 ~ 1864). 그러나 결국 정부군에 의해 토벌되었다. 청나라는 1856년 애로호 사건으로 제2차 아편전쟁을 맞았고, 이로 인해 서양 열강의 반식민지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청 황족이 거주하던 집단 거주지였던 원명원(圓明園)은 영·불 연합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베이징[北京]이 점령되었다. 이후 청나라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와 북경조약으로 화해하였다. 러시아는 영국, 프랑스와의 북경조약을 주선한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연해주를 할양받았다.
열강의 중국 침략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양무운동(洋務運動, 1862)이 일어나 서양문물을 배우고 도입하자는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그러나 서양의 물질문명을 수용하되 중국 전통의 정신과 철학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동도서기(東道西器) 정신을 유지하였다. 열강들의 중국내 세력 강화와 청일전쟁의 패배 등에 자극받아 캉유웨이[康有爲], 량치차오[梁啓超] 등 일부 선각자들은 국내 제도의 혁신을 통해 중국을 근대화시켜 난국을 타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변법자강(變法自强)운동을 일으켰다. 그 결과 광서제(光緖帝)는 이들을 중용하고, 과거제 개혁, 근대 학교의 설립, 관보 발행, 입헌정치 계획 등 개혁정치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어린 광서제와 서태후(西太后)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개혁정치를 반대하는 서태후와 조정 보수파 관료들이 정변을 일으켜 개혁파를 축출하고 실권을 잡았다(무술정변, 1898). 그리고는 개혁정치를 중단하고 과거체제로 회귀하였다. 이는 중국이 보수화의 길을 택하여 근대화가 지연되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열강의 침투로 중국은 일본을 비롯하여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 열강이 전국을 분할 관리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특히 중국이 청-불전쟁(1884~5)에서 프랑스에게 패하고 청-일전쟁(1894)에서 일본에게 패함으로서, 베트남(월남), 조선 등에서의 종주권을 상실하였고, 타이완마저 일본에게 내주어야 했다. 그 결과 청조는 그 동안 동양의 강자로 군림하던 패권을 일본에게 내주게 되었고, 동양의 국제질서가 일본 중심으로 전환되었다.
열강들의 약취에 대항하여 1900년 의화단(義和團)이 봉기하여 외국 공관에 방화하는 등 저항하였으나 연합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청 정부의 위약과 열강세력의 침탈 속에서 漢族 중심으로 멸만흥한(滅滿興漢) 운동이 일어났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쑨원[孫文]이 주동이 되어 1911년 신해혁명(辛亥革命)이 일어났다. 이로써 1912년 전통왕조인 청조가 망하고 중화민국(中華民國)이 탄생하였다.
1914년 유럽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이 중국 경영에 소홀한 틈을 타 일본이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고 대전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곧 독일이 경영하던 지역인 산동반도 일대에 일본군이 상륙하고 항구도시인 청도(淸島)를 점령하였다. 일본은 중국 정부에 이권을 요구하는 내용의 21개조 요구를 하였고, 이에 대한 중국의 반일 감정이 일어났다. 제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세계는 평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때 한국에서 3·1운동이 일어나 독립을 쟁취하려 하였고, 중국에서는 이러한 추세를 타고 1919년 일본의 21개조 요구에 반대하는 5·4운동이 일어났다. 그러나 일본 군국주의의 적극적 공세로 중국은 일본의 침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현대
산업혁명을 치른 서구의 문화가 명나라 말기, 청(淸)나라 초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영국은 아편전쟁을 일으켜 청왕조에 큰 타격을 주었다. 서구 세력들의 물밀듯한 침점(侵占)으로, 홍콩[香港]을 영국에게, 만주 북방을 러시아에게 할양하고, 안남(安南) 등 조공국에 대한 종주권(宗主權)을 잃었으며, 국내 요소에 외국 조계(租界)가 많이 설치되어 청왕조의 주권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한 동요 속에서도 근대화를 도모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동치중흥(同治中興)을 통해 근대공업이 일기 시작하였으나 청일전쟁이 일어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청일전쟁 직후에는 캉유웨이[康有爲]의 점진개혁론이 활발하였으나 무술정변(戊戌政變)에 의하여 실패하고 의화단(義和團)의 북청사변(北淸事變)은 청왕조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었다. 러일전쟁 후 쑨원[孫文]이 신해혁명(辛亥革命)에 의하여 임시 대통령에 취임하여(1912) 2,000년 이래의 전제군주제가 무너지고 공화제의 중화민국(中華民國)이 탄생되었다. 그러나 그후 약 20년간 군벌의 압제에 시달려야 했다.
쑨원의 사후에 후계자가 된 장제스[蔣介石]는 북벌(北伐)의 성공으로 양쯔강 유역에 진출하였다. 난징사건[南京事件]이 일어나 소련과 단교한 장제스는 군벌 장쭤린[張作霖]을 몰아내어 국민정부를 정통정부로 만들었다(1928). 장제스는 소련과 단교하였을 때 중국 공산당도 탄압하였다. 이때 공산당은 지하로 숨어 소련의 원조를 받았다. 일본의 침공이 격화되자 장제스는 다시 공산당과 화해하여 일본에 대항하였다. 그 동안에 공산당의 세력이 증대해갔다. 공동의 적인 일본이 패하자 국민정부와 공산당은 다시 적대관계로 돌아가 국공 내전이 계속되다가 국민정부가 패하여 타이완으로 물러가고 공산당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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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 노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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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한국의 프로게이머, 일본의 닌자, 아시아의 용, 일본의 궁도, 중국의 하얼빈 빙등제, 중국의 야시장, 중국의 정원, 영국의 음식, 영국의 셜록홈즈, 러시아의 우주여행, 러시아의 로봇산업, 게르만족 혈통, 삼바축구, 독일연방군, 네팔의 수도사들, 호주의 쓰레기들, 브라질의 빈민가, 해킹, 프랑스 속 암살, 서부의 총잡이들, 스위스의 의료산업, 미국의 전쟁영웅, 전쟁 고아, UN세계평화기구, 스웨덴의 제조기술, 옴닉사태, 오리사 전승, 우제트, 인도의 전통춤, 젬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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