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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19 기준 최신판

Meta Data

타입 : 인물
한글항목명 : 명성왕후
한자항목명 : 明聖王后
편자 : 자운서원팀 김소희

내용

  • 요약 : 조선 현종의 비(妃). 숙종과 명선·명혜·명안 3공주를 낳았다. 지능이 비상하고 성격이 과격하였으며 숙종 즉위 초에는 조정의 정무에까지 관여하여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출생~사망 1642 ~ 1683
본관 청풍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성은 김씨(金氏)이다. 아버지 영돈녕부사 청풍부원군(淸風府院君) 청풍 김씨 김우명(金佑明)과 어머니 송씨(宋氏) 사이에서 1642년 5월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1651년 11월 10세에 현종과 혼인하여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며 1659년 5월에는 왕비로 책봉되었다. 왕비가 된 2년 후 1661년 8월에는 현종과의 사이에 원자인 숙종을 낳았다. 이후 명선(明善)·명혜(明惠)·명안(明安)의 3공주를 낳았다. 현종은 즉위 초, 효종이 승하한 후 인조의 비 장렬왕후가 상복을 얼마간 입어야 하는가의 문제에 직면하였다. 효종의 비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같은 문제가 대두되었으며 이로 인해 서인이 실각하고 남인이 정권을 잡았다. 명성왕후와 그의 아버지 김우명은 서인의 편에 서 있었으며 남인들을 축출하기 위해 많은 계략을 꾸몄다. 이에 효종의 동생인 인평대군의 세아들 삼복을 '홍수(紅袖 : 궁녀)의 변'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무고하였다가, 궁지에 몰리게 되자 정청(政廳)에서 통곡하여 삼복을 귀양 보내기도 하였다. 당파적 입장이 강했던 명성왕후는 궁내의 남인세력의 여자들을 추방하는 것에도 관여하였으며 당시 남인가의 여인이었던 숙종의 여인 장옥정(훗날 장희빈)을 궐밖으로 내치기도 하였다. 1683년 12월 창경궁에서 42세로 사망하였으며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의 동구릉 묘역 숭릉(崇陵)에 현종과 함께 묻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