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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eta Da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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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 타입: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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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항목명 : 삼국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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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항목명 : 三國遺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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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자: [[자운서원팀 KU|자운서원팀]] [http://digerati.aks.ac.kr:82/index.php?title=201410325%EC%9E%A5%EC%84%A0%EC%98%81 장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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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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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지정번호 : 부산유형문화재 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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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1년(충렬왕 7)경에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一然)이 편찬한 사서(史書).
지정일 : 1999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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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부산 금정구 청룡동(범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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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고려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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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류/분류 : 활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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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려의 승려인 [[일연KU|일연]][[고려KU|고려]] [[충렬왕KU|충렬왕]] 7년(1281년)에 [[인각사KU|인각사]](麟角寺)에서 편찬한 삼국 시대의 설화집이다.[2] 2003년에 조선 초기의 간행본과 중종 임신본이 각각 대한민국의 국보 제306호와 제306-2호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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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웹 자원 ==
 
[http://ko.wikipedia.org/wiki/%EC%82%BC%EA%B5%AD%EC%9C%A0%EC%82%AC 위키피디아 삼국유사]
 
<BR/>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09101&cid=40942&categoryId=33382 두산백과 삼국유사]
 
  
[[Digerati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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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소장 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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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권. 목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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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연이 이 책의 저술을 위하여 사료를 수집한 것은 청년시절부터였고, 그 원고의 집필은 대개 70대 후반으로부터 84세로 죽기까지 주로 만년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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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일연에 의한 초간본의 간행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제자 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삼국유사≫를 간행하였는데, 이때 그가 첨가한 기록이 두 곳에 있다. ‘무극기(無極記)’라고 표한 것이 그것이다. 무극의 간행이 초간인지 중간인지 분명하지 않다. 조선 초기에도 ≪삼국유사≫의 간행이 행하여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이 시기 고판본의 인본(印本)인 석남본(石南本)과 송은본(松隱本)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보물 제419호로 지정된 송은본은 현재 곽영대(郭永大)가 소장하고 있다. 이 본은 3·4·5권만 있는데, 권3의 첫 6장까지와 권5의 끝부분 4장이 없는 잔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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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복이 중간한 책판은 19세기 중반까지 경주부에 보존되었지만, 전하지 않는다. 중종임신본을 인행(印行)한 몇 종의 간행본이 현재 국내외에 전한다. 5권이 갖추어진 완본인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은 이계복이 판각한 뒤 32년 이내에 인출된 것으로, 훗날 순암안정복(安鼎福)이 소장하면서 가필을 한 때문에 이와 같이 불린다. 이 본은 이마니시(今西龍)가 1916년부터 소장하였는데(일인들은 흔히 今西本이라 칭한다), 일본의 덴리대학(天理大學) 도서관의 귀중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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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본은 완본이지만 약간의 가필이 있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본은 초기의 임신고인본으로 평가되고 가필과 가획이 없어 원형에 가까운 귀중본이다. 이 밖에도 중종임신본은 몇 가지 더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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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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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는 전체 5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권과는 별도로 왕력(王歷)·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 등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력은 삼국·가락국·후고구려·후백제 등의 간략한 연표이다. 기이편은 고조선으로부터 후삼국까지의 단편적인 역사를 57항목으로 서술하였는데, 1·2권에 계속된다. 기이편의 서두에는 이 편을 설정하는 연유를 밝힌 서(敍)가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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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5권 9편 144항목으로 구성된 ≪삼국유사≫의 체재는 <[[삼국사기]]>나 <해동고승전>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중국의 세 가지 고승전(高僧傳)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것과도 다른 체재이다. <삼국유사>가 고려 후기의 전적에 인용된 예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 이후에 이루어진 여러 문헌에서는 이 책의 인용이 확인된다. 조선 초기 이후 이 책이 두루 유포되어 참고되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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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동국여지승람]]>으로부터 <[[동사강목]]>에 이르기까지 허황하여 믿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평가로 일관되었다.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조선 초기 이후의 많은 역사책에 인용되었고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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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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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의 사학사적인 위치에 대해서, ≪삼국사기≫에 비하여 복고적이라거나 진보적이라는 상반된 견해도 있다. 찬술동기나 서술체재가 서로 다른 두 사서의 직접적인 비교는 바람직하지 않고, 또 <삼국유사>의 역사서술 방법론에 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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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삼국유사>는 한국고대의 역사·지리·문학·종교·언어·민속·사상·미술·고고학 등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에는 역사·불교·설화 등에 관한 서적과 문집류, 고기(古記)·사지(寺誌)·비갈(碑喝)·안첩(按牒) 등의 고문적(古文籍)에 이르는 많은 문헌이 인용되었다. 특히, 지금은 전하지 않는 문헌들이 많이 인용되었기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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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는 신화와 설화의 보고이다. 또한, 차자표기(借字表記)로 된 자료인 향가, 서기체(誓記體)의 기록, 이두(吏讀)로 된 비문류, 전적에 전하는 지명 및 인명의 표기 등은 한국고대어 연구의 귀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이 전해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 최대로 꼽히는 것의 하나는 향가이다. 14수의 향가는 우리 나라 고대문학연구의 값진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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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는 또한 한국고대미술의 주류인 불교미술연구를 위한 가장 오래된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 탑상편의 기사는 탑·불상·사원건축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싣고 있다. 이 책은 역사고고학의 대상이 되는 유물·유적, 특히 불교의 유물·유적을 조사·연구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문헌으로 꼽힌다. <ref>[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73067&cid=46648&categoryId=46648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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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과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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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과 연관이 있는 [[온달]]에 관련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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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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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규]]: 처음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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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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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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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강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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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 디지털 콘텐츠 개발]]

2016년 6월 9일 (목) 16:39 판

개관

  • 정의

1281년(충렬왕 7)경에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一然)이 편찬한 사서(史書).


편찬/소장 경위

5권. 목판본. 일연이 이 책의 저술을 위하여 사료를 수집한 것은 청년시절부터였고, 그 원고의 집필은 대개 70대 후반으로부터 84세로 죽기까지 주로 만년에 이루어졌다.

저자 일연에 의한 초간본의 간행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제자 무극(無極)이 1310년대에 ≪삼국유사≫를 간행하였는데, 이때 그가 첨가한 기록이 두 곳에 있다. ‘무극기(無極記)’라고 표한 것이 그것이다. 무극의 간행이 초간인지 중간인지 분명하지 않다. 조선 초기에도 ≪삼국유사≫의 간행이 행하여진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이 시기 고판본의 인본(印本)인 석남본(石南本)과 송은본(松隱本)이 현존하기 때문이다. 보물 제419호로 지정된 송은본은 현재 곽영대(郭永大)가 소장하고 있다. 이 본은 3·4·5권만 있는데, 권3의 첫 6장까지와 권5의 끝부분 4장이 없는 잔본이다.

이계복이 중간한 책판은 19세기 중반까지 경주부에 보존되었지만, 전하지 않는다. 중종임신본을 인행(印行)한 몇 종의 간행본이 현재 국내외에 전한다. 5권이 갖추어진 완본인 순암수택본(順庵手澤本)은 이계복이 판각한 뒤 32년 이내에 인출된 것으로, 훗날 순암안정복(安鼎福)이 소장하면서 가필을 한 때문에 이와 같이 불린다. 이 본은 이마니시(今西龍)가 1916년부터 소장하였는데(일인들은 흔히 今西本이라 칭한다), 일본의 덴리대학(天理大學) 도서관의 귀중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서울대학교본은 완본이지만 약간의 가필이 있다.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본은 초기의 임신고인본으로 평가되고 가필과 가획이 없어 원형에 가까운 귀중본이다. 이 밖에도 중종임신본은 몇 가지 더 전한다.


내용

≪삼국유사≫는 전체 5권 2책으로 되어 있고, 권과는 별도로 왕력(王歷)·기이(紀異)·흥법(興法)·탑상(塔像)·의해(義解)·신주(神呪)·감통(感通)·피은(避隱)·효선(孝善) 등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왕력은 삼국·가락국·후고구려·후백제 등의 간략한 연표이다. 기이편은 고조선으로부터 후삼국까지의 단편적인 역사를 57항목으로 서술하였는데, 1·2권에 계속된다. 기이편의 서두에는 이 편을 설정하는 연유를 밝힌 서(敍)가 붙어 있다.

이처럼 5권 9편 144항목으로 구성된 ≪삼국유사≫의 체재는 <삼국사기>나 <해동고승전>과는 다른 특징이 있다. 중국의 세 가지 고승전(高僧傳)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것과도 다른 체재이다. <삼국유사>가 고려 후기의 전적에 인용된 예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 초기 이후에 이루어진 여러 문헌에서는 이 책의 인용이 확인된다. 조선 초기 이후 이 책이 두루 유포되어 참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 책에 대한 평가는 <동국여지승람>으로부터 <동사강목>에 이르기까지 허황하여 믿기 어렵다는 부정적인 평가로 일관되었다.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조선 초기 이후의 많은 역사책에 인용되었고 영향을 주었다.


의의와 가치

<삼국유사>의 사학사적인 위치에 대해서, ≪삼국사기≫에 비하여 복고적이라거나 진보적이라는 상반된 견해도 있다. 찬술동기나 서술체재가 서로 다른 두 사서의 직접적인 비교는 바람직하지 않고, 또 <삼국유사>의 역사서술 방법론에 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오늘날 <삼국유사>는 한국고대의 역사·지리·문학·종교·언어·민속·사상·미술·고고학 등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로 평가되고 있다. 이 책에는 역사·불교·설화 등에 관한 서적과 문집류, 고기(古記)·사지(寺誌)·비갈(碑喝)·안첩(按牒) 등의 고문적(古文籍)에 이르는 많은 문헌이 인용되었다. 특히, 지금은 전하지 않는 문헌들이 많이 인용되었기에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삼국유사>는 신화와 설화의 보고이다. 또한, 차자표기(借字表記)로 된 자료인 향가, 서기체(誓記體)의 기록, 이두(吏讀)로 된 비문류, 전적에 전하는 지명 및 인명의 표기 등은 한국고대어 연구의 귀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이 전해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 중 최대로 꼽히는 것의 하나는 향가이다. 14수의 향가는 우리 나라 고대문학연구의 값진 자료이다.

<삼국유사>는 또한 한국고대미술의 주류인 불교미술연구를 위한 가장 오래된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 탑상편의 기사는 탑·불상·사원건축 등에 관한 중요한 자료를 싣고 있다. 이 책은 역사고고학의 대상이 되는 유물·유적, 특히 불교의 유물·유적을 조사·연구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문헌으로 꼽힌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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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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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달전 A는 B에 기록되어 있다 삼국유사

아차산과의 연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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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

출처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