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관의 상복"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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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백관의 상복
 
|대표명칭= 백관의 상복
 
|한자표기= 百官의 常服
 
|한자표기= 百官의 常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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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時服(성종 대까지 명칭 통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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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時服(15세기 말까지 명칭 통용.)
 
|분류= 官服
 
|분류= 官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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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신분= 문무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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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신분= 백관
 
|착용성별= 남자
 
|착용성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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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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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常服)은 조선시대 백관이 착용하였던 관복(官服)으로, 사모·단령·[[품대]]·[[화]]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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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복(常服)은 조선시대 백관이 집무할 때 착용하였던 관복(官服)으로, [[사모]]·[[단령]]·[[품대]]·[[화]]로 구성된다.
  
 
==내용==
 
==내용==
 
====사모·단령의 유입과 정착====
 
====사모·단령의 유입과 정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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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19년(1370), 왕의 면복(冕服)과 조복(朝服), 백관의 제복(祭服)은 명으로부터 사여받았으나 편복(便服)은 받지 못하였다.<ref>『고려사』 권72 志 권26 輿服1 '冠服'.</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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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19년(1370), 왕의 면복(冕服)과 조복(朝服), 백관의 제복(祭服)은 명으로부터 받았으나 편복(便服)은 받지 못하였다.<ref>『고려사』 권72 志 권26 輿服1 '冠服'.</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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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6년 2월, 정몽주(鄭夢周)를 파견하여 임금의 편복 및 백관의 조복·편복을 표문으로 요청하였으나 받지 못하였다.<ref>『고려사』 권136 列傳 권49 우왕 12년 2월.</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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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6년 2월, 정몽주(鄭夢周)를 명에 파견하여 임금의 편복 및 백관의 조복·편복을 표문으로 요청하였으나 받지 못하였다.<ref>『고려사』 권136 列傳 권49 우왕 12년 2월.</ref>
 
*1386년 8월, 이전(李竱)으로 하여금 재차 의관(衣冠)을 요청하도록 하였으나 받지 못하였다.<ref>『고려사』 권136 列傳 권49 우왕 12년 8월.</ref>
 
*1386년 8월, 이전(李竱)으로 하여금 재차 의관(衣冠)을 요청하도록 하였으나 받지 못하였다.<ref>『고려사』 권136 列傳 권49 우왕 12년 8월.</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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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년 5월, 설장수(偰長壽)를 파견하여 다시 편복을 요청하였고, 명 황제는 설장수에게 사모와 단령을 내려주었다. 『고려사』에는 “설장수가 사모와 단령을 착용하고 돌아오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로소 중국의 의관제도를 알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ref>『고려사』 권136 列傳 권49 우왕 13년 5월.</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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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년 5월, 설장수(偰長壽)를 명에 파견하여 다시 편복을 요청하였고, 명 황제는 설장수에게 사모와 단령을 내려주었다. 『고려사』에는 “설장수가 사모와 단령을 착용하고 돌아오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로소 중국의 의관제도를 알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ref>『고려사』 권136 列傳 권49 우왕 13년 5월.</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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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년 6월, 정몽주(鄭夢周) 등이 백관의 관복제도를 정하였는데, 1품부터 9품까지 모두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입도록 하였고, 그 품대(品帶)에 차등을 두었다.<ref>『고려사절요』 卷32 辛禑3 우왕 13년 6월.</ref> 이때 정한 백관의 관복제도는 『고려사』「輿服志」에 수록되었다.<ref>『고려사』 권72 志 권26  輿服1 '冠服'.</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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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7년 6월, 정몽주(鄭夢周) 등이 백관의 관복제도를 정하였는데, 1품부터 9품까지 모두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착용하도록 하였고, 품대(品帶)에 차등을 두었다.<ref>『고려사절요』 卷32 辛禑3 우왕 13년 6월.</ref> 이때 정한 백관의 관복제도는 『고려사』 「輿服志」에 수록되었다.<ref>『고려사』 권72 志 권26  輿服1 '冠服'.</ref>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려 정몽주(鄭夢周)가 중국에서 돌아온 뒤에 비로소 사모와 단령의 제도가 전하여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ref>『효종실록』 18권, 효종 8년 1월 10일 계축 2번째기사 1657년 청 순치(順治) 14년.</ref>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려 정몽주(鄭夢周)가 중국에서 돌아온 뒤에 비로소 사모와 단령의 제도가 전하여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ref>『효종실록』 18권, 효종 8년 1월 10일 계축 2번째기사 1657년 청 순치(順治) 14년.</ref>
 
*1387년 전해진 사모와 단령은 조선전기·중기·후기를 거치며 형태와 명칭에 있어 많은 변화를 겪으며 관복(官服)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다가, 대한제국시대에 이르러 서구식 관복을 채택하면서 점차 사라진다.
 
*1387년 전해진 사모와 단령은 조선전기·중기·후기를 거치며 형태와 명칭에 있어 많은 변화를 겪으며 관복(官服)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다가, 대한제국시대에 이르러 서구식 관복을 채택하면서 점차 사라진다.
  
 
====조선초기 상복의 특징====
 
====조선초기 상복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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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세종 28년(1446): 백관은 상복으로 잡색 단령을 입었다. 『조선왕조실록』과 『국조오례의』에 상복과 시복(時服)이라는 명칭이 혼용되나 동일한 의복을 말하며, 의례용과 집무용의 구별은 없다. 상복으로 잡색 단령을 착용한 것은 『대명회전』 홍무 26년(1393) 법령 내용 중 ‘품관 상복은 잡색의 저사·능·라를 쓴다.(品官常服用雜色紵絲·綾·羅.)’<ref>『대명회전』 冠服2 ‘文武官冠服’. </ref>라는 조항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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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세종 28년(1446): 백관은 상복으로 잡색 단령을 입었다. 『조선왕조실록』과 『국조오례의』에 상복과 시복(時服)이라는 명칭이 혼용되나 동일한 의복을 말하며, 의례용과 집무용의 구별은 없다. 상복으로 잡색 단령을 착용한 것은 『제사직장』 홍무 24년(1391) 제정된 법령 내용 중 ‘품관 상복은 잡색의 저사·능·라를 쓴다.(品官常服用雜色紵絲·綾·羅.)'라는 조항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이제&ridx=0&tot=148 이제(李濟, 1365~1398)]와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이천우&ridx=0&tot=617 이천우(李天祐, 1354~1417)]의 초상화를 통해 잡색단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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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8년(1446)~단종 2년(1454): 세종 28년(1446), 조참, 상참 때 ‘흑염조의(黑染朝衣)’를 입도록 하였다. 하연 등이 흉배제도를 건의했으나 황희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f>『세종실록』 111권, 세종 28년 1월 23일 辛卯 2번째기사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ref> 세종 28년부터 상복은 의례용인 흑단령과 집무용인 잡색 단령으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의례용과 집무용 모두 흉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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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8년(1446)~단종 2년(1454): 세종 28년(1446), 조참, 상참 때 ‘흑염조의(黑染朝衣)’를 입도록 하였다. 하연 등이 흉배제도를 건의했으나 황희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ref>『세종실록』 111권, 세종 28년 1월 23일 辛卯 2번째기사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ref> 세종 28년부터 상복은 의례용인 흑단령과 집무용인 잡색 단령으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의례용과 집무용 모두 흉배는 없다.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A%B9%80%EC%A7%80%EC%9B%90 하연의 초상화]에는 흉배 없는 잡색 단령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단종 2년(1454): 문무당상관의 흉배제도를 제정하였다.<ref>『단종실록』 12권, 단종 2년 12월 10일 병술 2번째기사 1454년 명 경태(景泰) 5년.</ref>
 
*단종 2년(1454): 문무당상관의 흉배제도를 제정하였다.<ref>『단종실록』 12권, 단종 2년 12월 10일 병술 2번째기사 1454년 명 경태(景泰) 5년.</ref>
 
*단종 2년(1454)~성종 말: 당상관은 집무용으로 흉배 있는 잡색 단령을 상복으로 입고, 의례용으로 흉배 있는 흑단령을 상복으로 입었다.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신숙주&ridx=0&tot=17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초상화를 통해 흉배 있는 집무용 잡색 단령을 볼 수 있으며,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오자치&ridx=0&tot=1 오자치(吳自治)],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손소초상&ridx=1&tot=170 손소(孫昭, 1433~1484)],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장말손&ridx=0&tot=6 장말손(張末孫, 1431~1486)]의 초상화를 통해 흉배 있는 의례용 흑단령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흉배는 주로 의례용 흑단령에 갖추는 것으로 정착된다.  
 
*단종 2년(1454)~성종 말: 당상관은 집무용으로 흉배 있는 잡색 단령을 상복으로 입고, 의례용으로 흉배 있는 흑단령을 상복으로 입었다.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신숙주&ridx=0&tot=17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초상화를 통해 흉배 있는 집무용 잡색 단령을 볼 수 있으며,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오자치&ridx=0&tot=1 오자치(吳自治)],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손소초상&ridx=1&tot=170 손소(孫昭, 1433~1484)],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장말손&ridx=0&tot=6 장말손(張末孫, 1431~1486)]의 초상화를 통해 흉배 있는 의례용 흑단령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흉배는 주로 의례용 흑단령에 갖추는 것으로 정착된다.  
 
*성종 대 편찬된 『경국대전』 「禮典」 '儀章'에 백관의 상복에 관한 규정이 실려있다.  
 
*성종 대 편찬된 『경국대전』 「禮典」 '儀章'에 백관의 상복에 관한 규정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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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학궤범]]』 권9 「관복도설」의 ‘흑단령(黑團領)’ 도설을 통해 당시 흑단령의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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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 대 편찬된 『[[악학궤범]]』 권9 「관복도설」의 ‘흑단령(黑團領)’ 도설을 통해 당시 상복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경국대전』 상복 제도 ====
 
====『경국대전』 상복 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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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 class="wikitable" style="background:white
 
|+<표 1> 『경국대전』 상복(常服) 제도
 
|+<표 1> 『경국대전』 상복(常服)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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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계(品階)
+
!품계
−
!관(冠)
+
!관모
−
!복(服)
+
!관자입영
−
!흉배(胷背)
+
!입식
−
!대(帶)
+
!이엄
−
!화혜(靴鞋)
+
!소재
 +
!흉배
 +
!대
 +
!화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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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1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 사·라·능·단 || 문관: 공작(孔雀), 무관: 호표(虎豹) ||style="text-align:center"| 서대(犀帶) || 협금화(挾金靴)  
+
|align="center"| 1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금옥 ||style="text-align:center"| 은 ||style="text-align:center"| 단초피|| 사·라·능·단 || 문관: 공작(孔雀), 무관: 호표(虎豹) ||style="text-align:center"| 서대(犀帶) || 협금화(挾金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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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2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 사·라·능·단 || 문관: 운학(雲鴈), 무관: 호표(虎豹) || 正: 삽금대(鈒金帶), 從: 소금대(素金帶) || 협금화(挾金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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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2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금옥 ||style="text-align:center"| 은 ||style="text-align:center"| 단초피 || 사·라·능·단 || 문관: 운학(雲鴈), 무관: 호표(虎豹) || 正: 삽금대(鈒金帶), 從: 소금대(素金帶) || 협금화(挾金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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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3품 당상관 이상 ||style="text-align:center"| 사모 || 사·라·능·단 || 문관: 백한(白鷳), 무관: 웅비(熊羆) ||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 협금화(挾金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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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3품 당상관 이상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금옥 ||style="text-align:center"| 은 ||style="text-align:center"| 단초피 || 사·라·능·단 || 문관: 백한(白鷳), 무관: 웅비(熊羆) ||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 협금화(挾金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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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3품 당하관 이하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style="text-align: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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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3품 당하관 이하 ||style="text-align:center"| 사모 || style="text-align:center"| - || 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초서피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style="text-align: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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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4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소은대(素銀帶) ||style="text-align: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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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4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 style="text-align:center"| - || 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초서피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소은대(素銀帶) ||style="text-align: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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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5·6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흑각대(黑角帶) ||style="text-align: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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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5·6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 style="text-align:center"| - || 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초서피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흑각대(黑角帶) ||style="text-align: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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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7·8·9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흑각대(黑角帶) ||style="text-align: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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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gn="center"| 7·8·9품 ||style="text-align:center"| 사모 || style="text-align:center"| - || style="text-align:center"| -||style="text-align:center"| 초서피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 ||style="text-align:center"| 흑각대(黑角帶) ||style="text-align:cent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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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령의 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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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령을 입을 때에는 받침옷으로 직령이나 답호·철릭을 착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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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26년(1444), 명으로부터 익선관·옥대와 함께 ‘곤룡포·답호·철릭’으로 이루어진 상복 3습(襲)을 사여받은 기록이 있고,<ref>『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3월 26일 1444년 명 정통(正統) 9년.</ref> 연산군 11년(1505), 조신(朝臣)들의 철릭은 마땅히 가장 짧게 만들고, 답호, 단령은 좀 길게 하여 답호의 주름이 단령 밖으로 드러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ref>『연산군일기』 58권, 연산 11년 6월 25일 1505년 명 홍치(弘治) 18년.</ref>
 +
*변수(邊脩, 1447~1524) 묘에서는 단령·답호·철릭 일습이 묘주에게 입혀진 채로 출토되기도 하였다.
  
 
==지식관계망==
 
==지식관계망==
 
====클래스====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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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인물 : 하연
 
*Actor-인물 : 우왕
 
*Actor-인물 : 우왕
 
*Actor-인물 : 정몽주
 
*Actor-인물 : 정몽주
66번째 줄: 74번째 줄:
 
*Actor-인물 : 단종
 
*Actor-인물 : 단종
 
*Actor-인물 : 성종     
 
*Actor-인물 : 성종     
−
*Actor-인물 : 하연
 
−
*Actor-인물 : 황희
 
−
*Actor-인물 : 신숙주
 
−
*Actor-인물 : 오자치
 
−
*Actor-인물 : 손소
 
−
*Actor-인물 : 장말손 
 
 
*Clothing-복장 : [[백관의 상복]]
 
*Clothing-복장 : [[백관의 상복]]
−
*Clothing-복식 : 사모
+
*Clothing-복식 : [[사모]]
−
*Clothing-복식 : 단령
+
*Clothing-복식 : [[단령]]
 
*Clothing-복식 : [[품대]]
 
*Clothing-복식 : [[품대]]
 
*Clothing-복식 : [[화]]
 
*Clothing-복식 : [[화]]
 +
*Clothing-복식 : 흑염조의, 흑의
 +
*Clothing-복식 : 직령
 +
*Clothing-복식 : 답호
 +
*Clothing-복식 : 철릭
 +
*Clothing-장식 : 흉배
 +
*Clothing-장식 : 띠돈
 +
*Record-문헌 : 『원간노걸대』
 
*Record-문헌 : 『고려사』
 
*Record-문헌 : 『고려사』
 
*Record-문헌 : 『고려사절요』
 
*Record-문헌 : 『고려사절요』
82번째 줄: 91번째 줄:
 
*Record-문헌 : 『국조오례의』
 
*Record-문헌 : 『국조오례의』
 
*Record-문헌 : 『경국대전』
 
*Record-문헌 : 『경국대전』
−
*Record-문헌 : 『대명회전』
 
 
*Record-문헌 : 『[[악학궤범]]』
 
*Record-문헌 : 『[[악학궤범]]』
 +
*Record-문헌 : 『박통사언해』
 +
*Record-문헌 : 『제사직장』
 +
*Record-그림 : 정몽주 초상
 +
*Record-그림 : 하연 초상
 +
*Record-그림 : 이제 초상
 +
*Record-그림 : 이천우 초상
 
*Record-그림 : 신숙주 초상
 
*Record-그림 : 신숙주 초상
 
*Record-그림 : 오자치 초상
 
*Record-그림 : 오자치 초상
 
*Record-그림 : 손소 초상
 
*Record-그림 : 손소 초상
 
*Record-그림 : 장말손 초상
 
*Record-그림 : 장말손 초상
 +
*Object-유물 : 밀창군 이직 묘 출토 사모
 +
*Object-유물 : 변수 묘 출토 단령
 +
*Object-유물 : 김흠조 묘 출토 단령
 +
*Object-유물 : 정온 묘 출토 단령
 +
*Object-유물 : 이현보 품대
 +
*Object-유물 :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요선철릭
 +
*Object-유물 :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답호
 +
*Object-유물 : 변수 묘 출토 요선철릭
 +
*Object-유물 : 김흠조 묘 출토 직령
 +
*Object-유물 : 정온 묘 출토 직령
 +
*Place-소장처 : 무주 백산서원
  
 
====관계정보====
 
====관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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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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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주 || 하연 || A의 제자는 B이다 || A ekc:hasDisciple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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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왕 || 정몽주 || A의 신하는 B이다 || A ekc:hasSubject B
 
| 우왕 || 정몽주 || A의 신하는 B이다 || A ekc:hasSubject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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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몽주 || 하연 || A의 제자는 B이다 || A ekc:hasDisciple B
+
| 정몽주 || [[사모]]와 [[단령]]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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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 || 황희 || A의 신하는 B이다 || A ekc:hasSubject B
+
| 정몽주 초상 || [[사모]]와 [[단령]]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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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 || 하연 || A의 신하는 B이다 || A ekc:hasSubject B
 
| 세종 || 하연 || A의 신하는 B이다 || A ekc:hasSubject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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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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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종 || 단종 || A의 손자는 B이다 || A ekcx:hasGrandSon B  
+
| 하연 초상 || [[백관의 상복]]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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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조 || 신숙주 || A의 신하는 B이다 || A ekc:hasSubject B
+
| [[백관의 상복]] || [[사모]]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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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 || 오자치 || A의 신하는 B이다 || A ekc:hasSubject B
+
| [[백관의 상복]] || [[단령]]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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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 || 손소 || A의 신하는 B이다 || A ekc:hasSubject B
+
| [[백관의 상복]] || [[품대]]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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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 || 장말손 || A의 신하는 B이다 || A ekc:hasSubject B
+
| [[백관의 상복]] || [[화]] || A는 B를 포함한다 || A dcterms:hasPart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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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조 || 성종 || A의 손자는 B이다 || A ekcx:hasGrandSon B  
+
| [[단령]] || 직령 ||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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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관 || 상복 || A는 B를 착용하였다 || A ekc:wears B
+
| [[단령]] || 답호 ||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 A ekc:goesWith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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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백관의 관복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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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 [[백관의 상복]]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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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소 초상 || 흑단령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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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우 초상 || [[백관의 상복]]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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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말손 초상 || 흑단령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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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숙주 초상 || [[백관의 상복]]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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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자치 초상 || [[백관의 상복]]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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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소 초상 || [[백관의 상복]]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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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말손 초상 || [[백관의 상복]] || A는 B를 묘사하였다 || A ekc:depict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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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창군 이직 묘 출토 사모 || [[사모]]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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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수 묘 출토 단령 || [[단령]]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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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흠조 묘 출토 단령 || [[단령]]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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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온 묘 출토 단령 || [[단령]]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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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보 품대 || [[품대]]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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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수 묘 출토 요선철릭 || 철릭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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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흠조 묘 출토 직령 || 직령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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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온 묘 출토 직령 || 직령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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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연 초상 || 무주 백산서원 || A는 B에 있다 || A edm:currentLocation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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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숙주.jpg| 흉배잡색단령을 착용한 신숙주(申叔舟, 1417~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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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제초상.jpg|잡색단령을 착용한 이제(李濟, 1365~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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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자치.jpg| 흉배흑단령을 착용한 오자치(吳自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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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이천우초상.jpg|잡색단령을 착용한 이천우(李天祐, 1354~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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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신숙주초상.jpg| 흉배잡색단령을 착용한 신숙주(申叔舟, 1417~14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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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자치초상.jpg| 흉배흑단령을 착용한 오자치(吳自治).
 
파일:손소초상.jpg| 흉배흑단령을 착용한 손소(孫昭, 1433~1484).
 
파일:손소초상.jpg| 흉배흑단령을 착용한 손소(孫昭, 1433~1484).
 
파일:장말손.jpg| 흉배흑단령을 착용한 장말손(張末孫, 1431~1486).
 
파일:장말손.jpg| 흉배흑단령을 착용한 장말손(張末孫, 1431~1486).
 
파일:흑단령.jpeg| 『樂學軌範』 권9 「冠服圖說」 ‘흑단령(黑團領)’.<ref>국립국악원, 『樂學軌範』, 호사문고 소장본, 2011, 419쪽.</ref>
 
파일:흑단령.jpeg| 『樂學軌範』 권9 「冠服圖說」 ‘흑단령(黑團領)’.<ref>국립국악원, 『樂學軌範』, 호사문고 소장본, 2011, 419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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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변수단령.jpg| 변수(邊脩, 1447∼1524) 묘 출토 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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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참고문헌==
 +
* 『원간노걸대』
 
* 『고려사』
 
* 『고려사』
 
* 『고려사절요』
 
* 『고려사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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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국대전』
 
* 『경국대전』
 
* 『[[악학궤범]]』
 
* 『[[악학궤범]]』
−
* 『대명회전』
+
* 『제사직장』
−
* 이은주,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11552996 「조선시대 백관의 時服과 常服 제도 변천」], 『服飾』 55권 6호, 한국복식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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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은주,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938055 『길짐승흉배와 함께하는 17세기의 무관 옷 이야기』], 민속원, 2005.
+
*문화재청,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 ②_복식·자수편, 1997.  
−
* 국립국악원, 『樂學軌範』, 호사문고 소장본, 2011.
+
*국립민속박물관, 『오백년의 침묵, 그리고 환생』, 2000.
−
[[분류:복식콘텐츠]] [[분류:복식2020단국대]][[분류:김지원]] [[분류:복장]]
+
*이은주,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938055 『길짐승흉배와 함께하는 17세기의 무관 옷 이야기』], 민속원, 2005.
 +
*국립국악원, 『樂學軌範』, 호사문고 소장본, 2011.
 +
*최은수,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31034298 『조선시대 백관의 단령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4.
 +
*이은주, [https://academic.naver.com/article.naver?doc_id=11552996 「조선시대 백관의 時服과 常服 제도 변천」], 『服飾』 55권 6호, 한국복식학회,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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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복식콘텐츠]] [[분류:복식2020단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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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Clothing]][[분류:Clothing-복장]][[분류:복콘2020-Clothing-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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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김지원]]

2025년 8월 27일 (수) 18:50 기준 최신판

백관의 상복
(百官의 常服)
대표명칭 백관의 상복
한자표기 百官의 常服
이칭별칭 時服(15세기 말까지 명칭 통용.)
분류 官服
착용신분 백관
착용성별 남자


정의

상복(常服)은 조선시대 백관이 집무할 때 착용하였던 관복(官服)으로, 사모·단령·품대·화로 구성된다.

내용

사모·단령의 유입과 정착

  • 공민왕 19년(1370), 왕의 면복(冕服)과 조복(朝服), 백관의 제복(祭服)은 명으로부터 받았으나 편복(便服)은 받지 못하였다.[1]
  • 1386년 2월, 정몽주(鄭夢周)를 명에 파견하여 임금의 편복 및 백관의 조복·편복을 표문으로 요청하였으나 받지 못하였다.[2]
  • 1386년 8월, 이전(李竱)으로 하여금 재차 의관(衣冠)을 요청하도록 하였으나 받지 못하였다.[3]
  • 1387년 5월, 설장수(偰長壽)를 명에 파견하여 다시 편복을 요청하였고, 명 황제는 설장수에게 사모와 단령을 내려주었다. 『고려사』에는 “설장수가 사모와 단령을 착용하고 돌아오니, 우리나라 사람들이 비로소 중국의 의관제도를 알게 되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4]
  • 1387년 6월, 정몽주(鄭夢周) 등이 백관의 관복제도를 정하였는데, 1품부터 9품까지 모두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착용하도록 하였고, 품대(品帶)에 차등을 두었다.[5] 이때 정한 백관의 관복제도는 『고려사』 「輿服志」에 수록되었다.[6]
  •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려 정몽주(鄭夢周)가 중국에서 돌아온 뒤에 비로소 사모와 단령의 제도가 전하여졌다.'라고 기록하고 있다.[7]
  • 1387년 전해진 사모와 단령은 조선전기·중기·후기를 거치며 형태와 명칭에 있어 많은 변화를 겪으며 관복(官服)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하다가, 대한제국시대에 이르러 서구식 관복을 채택하면서 점차 사라진다.

조선초기 상복의 특징

  • 태조~세종 28년(1446): 백관은 상복으로 잡색 단령을 입었다. 『조선왕조실록』과 『국조오례의』에 상복과 시복(時服)이라는 명칭이 혼용되나 동일한 의복을 말하며, 의례용과 집무용의 구별은 없다. 상복으로 잡색 단령을 착용한 것은 『제사직장』 홍무 24년(1391) 제정된 법령 내용 중 ‘품관 상복은 잡색의 저사·능·라를 쓴다.(品官常服用雜色紵絲·綾·羅.)'라는 조항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李濟, 1365~1398)와 이천우(李天祐, 1354~1417)의 초상화를 통해 잡색단령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세종 28년(1446)~단종 2년(1454): 세종 28년(1446), 조참, 상참 때 ‘흑염조의(黑染朝衣)’를 입도록 하였다. 하연 등이 흉배제도를 건의했으나 황희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8] 세종 28년부터 상복은 의례용인 흑단령과 집무용인 잡색 단령으로 분화되기 시작한다. 의례용과 집무용 모두 흉배는 없다. 하연의 초상화에는 흉배 없는 잡색 단령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 단종 2년(1454): 문무당상관의 흉배제도를 제정하였다.[9]
  • 단종 2년(1454)~성종 말: 당상관은 집무용으로 흉배 있는 잡색 단령을 상복으로 입고, 의례용으로 흉배 있는 흑단령을 상복으로 입었다.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초상화를 통해 흉배 있는 집무용 잡색 단령을 볼 수 있으며, 오자치(吳自治), 손소(孫昭, 1433~1484), 장말손(張末孫, 1431~1486)의 초상화를 통해 흉배 있는 의례용 흑단령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흉배는 주로 의례용 흑단령에 갖추는 것으로 정착된다.
  • 성종 대 편찬된 『경국대전』 「禮典」 '儀章'에 백관의 상복에 관한 규정이 실려있다.
  • 성종 대 편찬된 『악학궤범』 권9 「관복도설」의 ‘흑단령(黑團領)’ 도설을 통해 당시 상복 형태를 짐작해볼 수 있다.

『경국대전』 상복 제도

  • 『경국대전』 권3 「禮典」 '儀章' 첫머리에는 '조참(朝參), 상참(常參)·조계(朝啓) 때에는 모두 흑의(黑衣)를 입는다.(朝參, 常參·朝啓並着黑衣.)' 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의례용 흑단령을 말하는 것으로, 세종 28년(1446) 논의된 내용이 반영된 것이다.
<표 1> 『경국대전』 상복(常服) 제도
품계 관모 관자입영 입식 이엄 소재 흉배 대 화혜
1품 사모 금옥 은 단초피 사·라·능·단 문관: 공작(孔雀), 무관: 호표(虎豹) 서대(犀帶) 협금화(挾金靴)
2품 사모 금옥 은 단초피 사·라·능·단 문관: 운학(雲鴈), 무관: 호표(虎豹) 正: 삽금대(鈒金帶), 從: 소금대(素金帶) 협금화(挾金靴)
3품 당상관 이상 사모 금옥 은 단초피 사·라·능·단 문관: 백한(白鷳), 무관: 웅비(熊羆)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협금화(挾金靴)
3품 당하관 이하 사모 - - 초서피 - - 正: 삽은대(鈒銀帶), 從:소은대(素銀帶) -
4품 사모 - - 초서피 - - 소은대(素銀帶) -
5·6품 사모 - - 초서피 - - 흑각대(黑角帶) -
7·8·9품 사모 - - 초서피 - - 흑각대(黑角帶) -

단령의 착장

  • 단령을 입을 때에는 받침옷으로 직령이나 답호·철릭을 착용하였다.
  • 세종 26년(1444), 명으로부터 익선관·옥대와 함께 ‘곤룡포·답호·철릭’으로 이루어진 상복 3습(襲)을 사여받은 기록이 있고,[10] 연산군 11년(1505), 조신(朝臣)들의 철릭은 마땅히 가장 짧게 만들고, 답호, 단령은 좀 길게 하여 답호의 주름이 단령 밖으로 드러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기록이 있다.[11]
  • 변수(邊脩, 1447~1524) 묘에서는 단령·답호·철릭 일습이 묘주에게 입혀진 채로 출토되기도 하였다.

지식관계망

클래스

  • Actor-인물 : 하연
  • Actor-인물 : 우왕
  • Actor-인물 : 정몽주
  • Actor-인물 : 세종
  • Actor-인물 : 단종
  • Actor-인물 : 성종
  • Clothing-복장 : 백관의 상복
  • Clothing-복식 : 사모
  • Clothing-복식 : 단령
  • Clothing-복식 : 품대
  • Clothing-복식 : 화
  • Clothing-복식 : 흑염조의, 흑의
  • Clothing-복식 : 직령
  • Clothing-복식 : 답호
  • Clothing-복식 : 철릭
  • Clothing-장식 : 흉배
  • Clothing-장식 : 띠돈
  • Record-문헌 : 『원간노걸대』
  • Record-문헌 : 『고려사』
  • Record-문헌 : 『고려사절요』
  • Record-문헌 : 『조선왕조실록』
  • Record-문헌 : 『국조오례의』
  • Record-문헌 : 『경국대전』
  • Record-문헌 : 『악학궤범』
  • Record-문헌 : 『박통사언해』
  • Record-문헌 : 『제사직장』
  • Record-그림 : 정몽주 초상
  • Record-그림 : 하연 초상
  • Record-그림 : 이제 초상
  • Record-그림 : 이천우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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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bject-유물 : 변수 묘 출토 단령
  • Object-유물 : 김흠조 묘 출토 단령
  • Object-유물 : 정온 묘 출토 단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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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bject-유물 :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요선철릭
  • Object-유물 :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답호
  • Object-유물 : 변수 묘 출토 요선철릭
  • Object-유물 : 김흠조 묘 출토 직령
  • Object-유물 : 정온 묘 출토 직령
  • Place-소장처 : 무주 백산서원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정몽주 하연 A의 제자는 B이다 A ekc:hasDisciple B
우왕 정몽주 A의 신하는 B이다 A ekc:hasSubject B
정몽주 사모와 단령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정몽주 초상 사모와 단령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세종 하연 A의 신하는 B이다 A ekc:hasSubject B
하연 초상 백관의 상복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백관의 상복 사모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상복 단령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상복 품대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상복 화 A는 B를 포함한다 A dcterms:hasPart B
단령 직령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단령 답호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단령 철릭 A는 B와 함께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원간노걸대』 직령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원간노걸대』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원간노걸대』 철릭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고려사』 백관의 관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고려사절요』 백관의 관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조선왕조실록』 백관의 상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국조오례의』 백관의 상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경국대전』 백관의 상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제사직장』 상복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세종 흑염조의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흑염조의 『경국대전』 흑의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단종 흉배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조선왕조실록』 흑염조의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조선왕조실록』 흉배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경국대전』 흉배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제사직장』 흉배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성종 『국조오례의』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성종 『경국대전』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성종 『악학궤범』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박통사언해』 띠돈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악학궤범』 흑단령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악학궤범』 단철릭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이제 초상 백관의 상복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이천우 초상 백관의 상복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신숙주 초상 백관의 상복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오자치 초상 백관의 상복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손소 초상 백관의 상복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장말손 초상 백관의 상복 A는 B를 묘사하였다 A ekc:depicts B
밀창군 이직 묘 출토 사모 사모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변수 묘 출토 단령 단령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김흠조 묘 출토 단령 단령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정온 묘 출토 단령 단령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이현보 품대 품대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요선철릭 철릭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답호 답호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변수 묘 출토 요선철릭 철릭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김흠조 묘 출토 직령 직령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정온 묘 출토 직령 직령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하연 초상 무주 백산서원 A는 B에 있다 A edm:currentLocation B

네트워크 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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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자료

갤러리

주석

  1. ↑ 『고려사』 권72 志 권26 輿服1 '冠服'.
  2. ↑ 『고려사』 권136 列傳 권49 우왕 12년 2월.
  3. ↑ 『고려사』 권136 列傳 권49 우왕 12년 8월.
  4. ↑ 『고려사』 권136 列傳 권49 우왕 13년 5월.
  5. ↑ 『고려사절요』 卷32 辛禑3 우왕 13년 6월.
  6. ↑ 『고려사』 권72 志 권26 輿服1 '冠服'.
  7. ↑ 『효종실록』 18권, 효종 8년 1월 10일 계축 2번째기사 1657년 청 순치(順治) 14년.
  8. ↑ 『세종실록』 111권, 세종 28년 1월 23일 辛卯 2번째기사 1446년 명 정통(正統) 11년.
  9. ↑ 『단종실록』 12권, 단종 2년 12월 10일 병술 2번째기사 1454년 명 경태(景泰) 5년.
  10. ↑ 『세종실록』 103권, 세종 26년 3월 26일 1444년 명 정통(正統) 9년.
  11. ↑ 『연산군일기』 58권, 연산 11년 6월 25일 1505년 명 홍치(弘治) 18년.
  12. ↑ 국립국악원, 『樂學軌範』, 호사문고 소장본, 2011, 419쪽.

참고문헌

  • 『원간노걸대』
  • 『고려사』
  • 『고려사절요』
  • 『조선왕조실록』
  • 『국조오례의』
  • 『경국대전』
  • 『악학궤범』
  • 『제사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