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의 기업 철학과 생태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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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기 (1889~1949): 후사지로 야마우치===
 
===창립기 (1889~1949): 후사지로 야마우치===
  
닌텐도는 188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교토에서 설립한 화투 제조 기업으로 출발했다.<ref>[https://www.inc.com/sarah-sicard/nintendo-used-to-operate-a-taxi-company-and-allegedly-a-love-hotel/91109471 INC ''Nintendo Used to Operate a Taxi Company and, Allegedly, a Chain of ‘Love Hotels’'']</ref> ‘닌텐도(任天堂)’라는 사명은 흔히 “행운을 하늘에 맡긴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초창기 사업이었던 도박・오락용 카드 제조업의 성격을 반영한다는 해석도 있다.<ref>[https://theweek.com/articles/459566/hiroshi-yamauchi-19272013 theweek.com ''Hiroshi Yamauchi, 1927–2013'']</ref> 창립기 닌텐도는 장인 정신과 품질을 중시하여 손으로 직접 그린 고급 화투패와 트럼프 카드를 생산했고, 이 전통 카드 사업으로 약 60년간 안정적인 기반을 유지했다. 후사지로 시대의 기업 철학은 놀이 도구의 품질과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1900년대 초 서양식 트럼프 카드 도입 등 새로운 오락 문화도 적극 수용함으로써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러한 전통과 혁신의 균형을 통해 닌텐도는 일본 카드 업계에서 입지를 굳히며 훗날 더 큰 오락산업으로 나아갈 준비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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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는 188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교토에서 설립한 화투 제조 기업으로 출발했다.<ref>[https://www.inc.com/sarah-sicard/nintendo-used-to-operate-a-taxi-company-and-allegedly-a-love-hotel/91109471 inc.com ''Nintendo Used to Operate a Taxi Company and, Allegedly, a Chain of ‘Love Hotels’'']</ref> ‘닌텐도(任天堂)’라는 사명은 흔히 “행운을 하늘에 맡긴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초창기 사업이었던 도박・오락용 카드 제조업의 성격을 반영한다는 해석도 있다.<ref>[https://theweek.com/articles/459566/hiroshi-yamauchi-19272013 theweek.com ''Hiroshi Yamauchi, 1927–2013'']</ref> 창립기 닌텐도는 장인 정신과 품질을 중시하여 손으로 직접 그린 고급 화투패와 트럼프 카드를 생산했고, 이 전통 카드 사업으로 약 60년간 안정적인 기반을 유지했다. 후사지로 시대의 기업 철학은 놀이 도구의 품질과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1900년대 초 서양식 트럼프 카드 도입 등 새로운 오락 문화도 적극 수용함으로써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러한 전통과 혁신의 균형을 통해 닌텐도는 일본 카드 업계에서 입지를 굳히며 훗날 더 큰 오락산업으로 나아갈 준비를 갖추었다.
  
 
===전환기 (1949~1972): 야마우치 히로시 초기 – 사업 다각화 시기===
 
===전환기 (1949~1972): 야마우치 히로시 초기 – 사업 다각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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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 게임 산업 진입기 (1972~1992): 야마우치 히로시 – 엔터테인먼트 중심 철학의 확립===
 
===비디오 게임 산업 진입기 (1972~1992): 야마우치 히로시 – 엔터테인먼트 중심 철학의 확립===
  
1970년대에 들어 닌텐도는 비디오 게임 분야로 눈을 돌리며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의 지도 아래 닌텐도는 1977년 가정용 컬러 TV 게임 출시를 시작으로, 1980년 휴대용 게임&워치 시리즈와 1983년 가정용 패밀리 컴퓨터(Famicom)(해외명 NES) 등을 선보이며 전자 오락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시기 야마우치 사장이 강조한 철학은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그 자체였다. 그는 “돈은 오로지 재미를 창조하는 데에만 써야 한다”는 신념을 사내에 심어주며, 매출 성장보다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 회사 자원을 투자하도록 독려했다. 또한 남들이 하는 것을 쫓지 말고 “남과 다른 독창적 발상”을 추구하라는 원칙을 내세웠는데, 이는 닌텐도가 경쟁사와 차별화된 길을 걷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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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들어 닌텐도는 비디오 게임 분야로 눈을 돌리며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의 지도 아래 닌텐도는 1977년 가정용 컬러 TV 게임 출시를 시작으로, 1980년 휴대용 게임&워치 시리즈와 1983년 가정용 패밀리 컴퓨터(Famicom)(해외명 NES) 등을 선보이며 전자 오락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시기 야마우치 사장이 강조한 철학은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그 자체였다. 그는 “돈은 오로지 재미를 창조하는 데에만 써야 한다”는 신념을 사내에 심어주며, 매출 성장보다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 회사 자원을 투자하도록 독려했다. <ref>[https://time.com/4668908/nintendo-switch-miyamoto-interview/ time.com ''10 Things Nintendo’s Shigeru Miyamoto Told Us About Switch and More'']</ref>또한 남들이 하는 것을 쫓지 말고 “남과 다른 독창적 발상”을 추구하라는 원칙을 내세웠는데, 이는 닌텐도가 경쟁사와 차별화된 길을 걷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 철학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략 전반에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닌텐도 개발자 요코이 군페이는 “낡은 기술의 수평적 사고(枯れた技術の水平思考)”라는 모토 아래, 비용이 낮고 잘 검증된 기술을 색다르게 활용해 새로운 놀이 경험을 창출하고자 했다. 이러한 접근으로 탄생한 게임&워치와 게임보이(1989)는 최신 기술이 아닌 검증된 기술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재미와 높은 신뢰성을 앞세워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닌텐도의 “기술보다는 게임성”이라는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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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철학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략 전반에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닌텐도 개발자 요코이 군페이는 “낡은 기술의 수평적 사고(枯れた技術の水平思考)”라는 모토 아래, 비용이 낮고 잘 검증된 기술을 색다르게 활용해 새로운 놀이 경험을 창출하고자 했다.<ref>[https://en.wikipedia.org/wiki/Gunpei_Yokoi#:~:text=Yokoi%20said%20,In%20the en.wikipedia.org ''Gunpei Yokoi Design philosophy'']</ref> 이러한 접근으로 탄생한 게임&워치와 게임보이(1989)는 최신 기술이 아닌 검증된 기술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재미와 높은 신뢰성을 앞세워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닌텐도의 “기술보다는 게임성”이라는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80년대 닌텐도는 동키콩(1981),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85), 젤다의 전설(1986) 등 세계적 인기 IP를 연이어 탄생시키며 글로벌 비디오 게임 시장을 선도했다. 특히 1983년 출시된 패밀리 컴퓨터는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도 NES란 이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가정용 게임기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1990년대 초에는 미국 가정 셋 중 하나에 닌텐도 콘솔이 있을 정도의 보급률을 기록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이 시기 품질 관리에도 엄격한 철학을 적용하여, 서드파티 게임에도 닌텐도 품질 보증 마크를 부여하고 출시 수량을 제한하는 등 콘텐츠 품질과 브랜드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요컨대 1970~80년대에 확립된 닌텐도의 기업 철학은 “가장 닌텐도다운 재미”, 즉 독창성과 높은 품질의 오락 경험을 창출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닌텐도가 단순한 장난감 회사에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이 되었다.
 
1980년대 닌텐도는 동키콩(1981),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85), 젤다의 전설(1986) 등 세계적 인기 IP를 연이어 탄생시키며 글로벌 비디오 게임 시장을 선도했다. 특히 1983년 출시된 패밀리 컴퓨터는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도 NES란 이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가정용 게임기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1990년대 초에는 미국 가정 셋 중 하나에 닌텐도 콘솔이 있을 정도의 보급률을 기록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이 시기 품질 관리에도 엄격한 철학을 적용하여, 서드파티 게임에도 닌텐도 품질 보증 마크를 부여하고 출시 수량을 제한하는 등 콘텐츠 품질과 브랜드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요컨대 1970~80년대에 확립된 닌텐도의 기업 철학은 “가장 닌텐도다운 재미”, 즉 독창성과 높은 품질의 오락 경험을 창출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닌텐도가 단순한 장난감 회사에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이 되었다.

2025년 6월 16일 (월) 06:23 판

기획의도

역사

창립기 (1889~1949): 후사지로 야마우치

닌텐도는 1889년 야마우치 후사지로가 교토에서 설립한 화투 제조 기업으로 출발했다.[1] ‘닌텐도(任天堂)’라는 사명은 흔히 “행운을 하늘에 맡긴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초창기 사업이었던 도박・오락용 카드 제조업의 성격을 반영한다는 해석도 있다.[2] 창립기 닌텐도는 장인 정신과 품질을 중시하여 손으로 직접 그린 고급 화투패와 트럼프 카드를 생산했고, 이 전통 카드 사업으로 약 60년간 안정적인 기반을 유지했다. 후사지로 시대의 기업 철학은 놀이 도구의 품질과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1900년대 초 서양식 트럼프 카드 도입 등 새로운 오락 문화도 적극 수용함으로써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고자 했다. 이러한 전통과 혁신의 균형을 통해 닌텐도는 일본 카드 업계에서 입지를 굳히며 훗날 더 큰 오락산업으로 나아갈 준비를 갖추었다.

전환기 (1949~1972): 야마우치 히로시 초기 – 사업 다각화 시기

1949년 손자인 야마우치 히로시가 3대 사장에 취임하면서 닌텐도는 대대적인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다. 히로시 사장은 취임 당시 카드 제조업만으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여, 즉석밥, 택시 회사, 심지어 러브호텔 운영까지 여러 신규 사업에 도전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고, 기업 정체성에도 혼란을 겪게 되었다. 히로시 사장은 시행착오 끝에 “닌텐도의 뿌리는 어디까지나 엔터테인먼트에 있다”는 깨달음을 얻고 본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특히 자체 전국 유통망을 활용할 수 있는 완구 산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닌텐도의 강점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오락 상품을 개발하려는 전략이었다. 그 결과 1960년대 후반부터 ‘울트라 핸드’ 같은 기발한 완구가 히트를 치며, 닌텐도는 본격적으로 종합 오락기업으로서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이 시기 야마우치 히로시의 경영 철학은 끊임없는 도전과 변화로 요약되며,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험해 본 끝에 결국 닌텐도만의 길을 찾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를 통해 닌텐도는 전통 카드회사에서 현대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변모하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비디오 게임 산업 진입기 (1972~1992): 야마우치 히로시 – 엔터테인먼트 중심 철학의 확립

1970년대에 들어 닌텐도는 비디오 게임 분야로 눈을 돌리며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의 지도 아래 닌텐도는 1977년 가정용 컬러 TV 게임 출시를 시작으로, 1980년 휴대용 게임&워치 시리즈와 1983년 가정용 패밀리 컴퓨터(Famicom)(해외명 NES) 등을 선보이며 전자 오락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시기 야마우치 사장이 강조한 철학은 “재미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 그 자체였다. 그는 “돈은 오로지 재미를 창조하는 데에만 써야 한다”는 신념을 사내에 심어주며, 매출 성장보다 재미있는 작품을 만드는 일에 회사 자원을 투자하도록 독려했다. [3]또한 남들이 하는 것을 쫓지 말고 “남과 다른 독창적 발상”을 추구하라는 원칙을 내세웠는데, 이는 닌텐도가 경쟁사와 차별화된 길을 걷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이 철학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전략 전반에 반영되었다. 예를 들어 닌텐도 개발자 요코이 군페이는 “낡은 기술의 수평적 사고(枯れた技術の水平思考)”라는 모토 아래, 비용이 낮고 잘 검증된 기술을 색다르게 활용해 새로운 놀이 경험을 창출하고자 했다.[4] 이러한 접근으로 탄생한 게임&워치와 게임보이(1989)는 최신 기술이 아닌 검증된 기술을 바탕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신한 재미와 높은 신뢰성을 앞세워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닌텐도의 “기술보다는 게임성”이라는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80년대 닌텐도는 동키콩(1981),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1985), 젤다의 전설(1986) 등 세계적 인기 IP를 연이어 탄생시키며 글로벌 비디오 게임 시장을 선도했다. 특히 1983년 출시된 패밀리 컴퓨터는 미국 등 해외 시장에서도 NES란 이름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가정용 게임기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1990년대 초에는 미국 가정 셋 중 하나에 닌텐도 콘솔이 있을 정도의 보급률을 기록했다. 야마우치 히로시는 이 시기 품질 관리에도 엄격한 철학을 적용하여, 서드파티 게임에도 닌텐도 품질 보증 마크를 부여하고 출시 수량을 제한하는 등 콘텐츠 품질과 브랜드 신뢰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요컨대 1970~80년대에 확립된 닌텐도의 기업 철학은 “가장 닌텐도다운 재미”, 즉 독창성과 높은 품질의 오락 경험을 창출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닌텐도가 단순한 장난감 회사에서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도약하는 기반이 되었다.

글로벌 확장과 시스템 구축기 (19922002): 후계자 준비와 N64게임큐브 시대

1990년대에 들어 닌텐도는 글로벌 확장과 차세대 체제 구축에 힘쓰며, 야마우치 히로시 시대의 마지막 장을 장식했다. 1992년 닌텐도는 미국 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 팀의 지분 인수라는 이색적인 결정을 내렸는데, 이는 닌텐도 브랜드의 미국 내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한 전략적 제스처였다. 야마우치 사장은 야구에는 개인적 관심이 전혀 없었음에도 단지 미국 소비자들에게 친근한 기업으로 다가가고자 구단을 인수했고, 훗날 이를 “미국 시장을 의식한 사업적 판단일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일화는 세계 시장을 고려한 경영과 동시에 감정이 아닌 현실에 입각한 결단이라는 그의 철학을 보여준다.

이 시기 닌텐도는 슈퍼 패미컴(SNES)으로 이어진 16비트 시대의 성공을 바탕으로, 닌텐도 64(N64)(1996)와 게임큐브(2001)로 대표되는 차세대 하드웨어를 내놓았다. 야마우치 사장은 여전히 “남과 다른 재미”를 추구하는 철학을 고수하여, 경쟁사들이 CD 등 신기술에 집중할 때 닌텐도64에는 로딩이 빠르고 복제가 어려운 카트리지를 채택하는 등 독자 노선을 걸었다. 이러한 결정은 서드파티(3rd-party)의 이탈을 가져오는 리스크도 있었지만, 야마우치는 자신만의 철학에 따른 완강한 선택으로 일관했다. 그는 “엔터테인먼트는 다른 오락과 다를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며,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개발자들을 끝까지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제로 닌텐도64 시기 슈퍼 마리오 64, 젤다의 전설 시간의 오카리나 등 3D 게임 디자인의 혁신을 보여준 작품들이 나왔고, 이는 닌텐도의 독창적 철학이 빛을 발한 사례로 꼽힌다.

한편 야마우치 히로시는 후계 구상에도 철학적인 전환을 보였다. 2002년 그는 자식이 아닌 사외 출신의 개발자 이와타 사토루를 차기 사장으로 지명했는데, 이는 “재미의 본질”을 잘 아는 인물이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는 그의 판단이었다. 야마우치는 오랫동안 유지해온 가족 경영 전통을 깨고 전문 경영인 체제로의 전환을 결정함으로써, 닌텐도의 철학이 다음 세대에도 지속되도록 토대를 마련했다. 그의 임기 말기에는 포켓몬 열풍으로 대표되는 IP 확장 전략도 본격화되었다. 예를 들어 1998년 설립된 포켓몬 회사를 통해 포켓몬 IP를 게임뿐 아니라 카드, 애니메이션 등 다매체로 전개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였는데, 이는 하나의 콘텐츠로 글로벌 생태계를 형성하려는 시도의 시작이었다.

요컨대 1990년대부터 2002년까지 닌텐도는 세계 시장에서의 입지 강화와 내부 시스템 정비를 동시에 추구했다. 야마우치 히로시의 핵심 철학이었던 독창적 재미 추구는 유지되었지만, 그 구현 방식에서는 글로벌 감각과 조직적 준비가 더해졌다. 그리고 2002년 야마우치의 퇴진으로 닌텐도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야마우치는 물러나며 “회사의 돈을 개인이 아닌 회사를 키우는 데 쓰라”는 당부를 남겼고, 이는 닌텐도의 경영 이념으로 계속 계승되었다.

이와타 사토루 시대 (2002~2015): ‘확장’과 ‘접근성’의 철학

2002년 닌텐도 사장으로 취임한 이와타 사토루는 “게임 인구의 확장”을 기업의 핵심 철학으로 내세웠다. 그는 기존의 코어 게이머뿐 아니라, 게임을 하지 않던 비게이머 층까지 아우르는 전략을 세워 전 세대를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 철학은 단순한 유저 수의 증가를 넘어서, “누구나 게임을 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접근성”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와타는 ‘블루 오션 전략’을 채택하여, 경쟁사들이 고성능 콘솔로 치열하게 경쟁할 때, 닌텐도는 독특한 인터페이스와 새로운 놀이방식을 제안하는 콘솔을 출시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닌텐도 DS와 Wii였다. DS는 터치스크린과 듀얼스크린이라는 혁신적인 하드웨어로 기존 게임과는 다른 사용자 경험을 제공했으며, 브레인 에이지와 닌텐독스 같은 새로운 장르의 게임들이 중장년층 및 여성 유저층을 사로잡았다.

Wii는 모션 컨트롤 방식을 채택해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콘셉트를 실현했다. Wii Sports, Wii Fit 같은 소프트웨어는 고령자와 비게이머를 끌어들였고, 실제로 병원, 요양시설 등에서도 사용되며 사회적 활용 사례를 만들었다. 이는 단순한 하드웨어 판매를 넘어서 “게임이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비전을 실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이와타는 개발자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Iwata Asks’라는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개발 과정의 철학과 고민을 투명하게 공개하며, 유저와의 신뢰를 쌓았다. 또한 2011년부터는 닌텐도 다이렉트를 도입해 사장이 직접 게임 발표를 진행하며 유저들과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이어갔다.

이와타는 디지털 전환을 위한 기반도 마련했다. 2015년 DeNA와의 제휴를 통해 ‘닌텐도 어카운트’ 통합 계정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바일 게임 시장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는 닌텐도의 IP를 스마트폰 환경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다양한 플랫폼을 아우르는 생태계 확장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는 건강 관련 QoL(Quality of Life) 사업도 구상했지만, 갑작스러운 별세로 인해 본격적인 실행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와타 사토루의 시대는 닌텐도가 “모두를 위한 게임”이라는 철학을 확고히 하고, 전통적인 콘솔 사업을 넘어서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확장해 나간 시기로 평가된다.

키미시마 타츠미 과도기 (2015~2018): 조직 안정과 전략적 전환기

이와타 사토루의 별세 이후, 닌텐도는 조직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장기적 전략을 마무리할 수 있는 인물로 키미시마 타츠미를 사장으로 임명했다. 그는 내부 출신이 아닌 재무 및 관리 전문가로서, 사내 실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조정 능력을 바탕으로 ‘조직의 안정’이라는 역할에 적합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그는 미야모토 시게루, 다케다 겐요 등 주요 개발 책임자들에게 ‘크리에이티브 펠로우’ 등의 역할을 부여하고, 집단 리더십 체제를 유지했다. 이는 개발자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를 존중하면서도, 안정적인 경영 체계를 확립하기 위한 조치였다. 또한 전임자의 비전을 계승하는 데 있어 지나친 변화를 지양하고, 이미 설정된 방향을 실현하는 데 주력했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닌텐도 스위치’의 출시였다. 개발 코드명 NX로 불렸던 이 기기는 거치형과 휴대형을 통합한 하이브리드 콘솔로, 언제 어디서든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닌텐도다운 발상이었다. 스위치는 Wii U의 실패 이후 회복을 위한 닌텐도의 승부수였으며, 키미시마는 출시 초기 마케팅 타겟을 하드코어 게이머로 설정함으로써 확산의 물꼬를 텄다.

동시에, 이 시기 닌텐도는 모바일 게임 시장으로 본격 진입했다. Miitomo를 시작으로 슈퍼 마리오 런, 파이어 엠블렘 히어로즈, 동물의 숲 포켓캠프 등 주요 IP를 기반으로 한 모바일 게임이 출시되었고, 이를 통해 닌텐도는 자사 IP를 다양한 플랫폼에서 접하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닌텐도 콘솔로 유입시키는 ‘플랫폼 유도 전략’을 실현하고자 했다.

IP 확장의 측면에서도 닌텐도는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협력하여 테마파크 사업을 구체화했다. 2021년 오사카에 개장된 ‘슈퍼 닌텐도 월드’는 단순한 놀이공원을 넘어 닌텐도 IP 세계를 물리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향후 미국, 유럽 등으로 확장될 예정이었다. 이 밖에도 일루미네이션과의 협업으로 슈퍼 마리오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이 본격화되며, 닌텐도는 게임을 넘어선 종합 콘텐츠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정리하자면, 키미시마 타츠미는 ‘변화의 관리’를 통해 이와타 시대의 철학을 계승하고, 닌텐도 스위치와 모바일 시장, IP 사업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후속 세대의 도약 기반을 안정적으로 마련한 과도기의 리더였다.

후루카와 슌타로 시대 (2018~현재): 지속가능한 생태계와 글로벌 통합 철학

후루카와 슌타로는 닌텐도 역사상 가장 젊은 사장으로, 글로벌 경험과 시대 감각을 갖춘 리더로 평가된다. 유럽 법인 근무 경험을 가진 그는 기업의 글로벌 전략을 체계화하는 데 강점을 보였으며, “닌텐도는 게임과 캐릭터로 정의되는 기업”이라는 인식을 기반으로, 브랜드 일관성과 콘텐츠 품질 유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 하에서 닌텐도는 스위치 플랫폼을 중심으로 지속가능한 생태계 전략을 강화했다. 스위치는 기존 콘솔보다 긴 수명 주기를 유지하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온라인 서비스를 하나의 생태계로 통합하는 모델로 자리 잡았다. 닌텐도 스위치 온라인 서비스는 고전 게임 제공, 멤버십 기반 콘텐츠 확장, 그리고 디지털 판매 플랫폼 강화를 통해 수익 다각화를 이뤘다.

후루카와는 개발 현장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탈권위적 리더십을 채택하고 있으며, 의사결정에 있어 개발자들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반영한다. 이는 이와타 시대에 구축된 ‘현장 중심 문화’를 계승한 것이며, 조직의 유연성과 창의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IP의 다방면 확장을 추진하면서도, 이를 단순 수익 수단이 아니라 유저 경험의 확장으로 간주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슈퍼 마리오 무비의 대성공, 테마파크의 글로벌 확장, 캐릭터 상품 및 모바일 앱의 강화는 단순한 브랜드 마케팅이 아니라 ‘하나의 닌텐도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이다.

그는 플랫폼 경계를 넘는 경험을 설계하고 있으며, 닌텐도 어카운트를 통해 콘솔, 모바일, 테마파크, 온라인 스토어를 연동시키는 통합 생태계를 구축 중이다. 이를 통해 닌텐도는 어느 기기에서든, 어떤 공간에서든 동일한 철학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글로벌 놀이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요컨대 후루카와 시대의 닌텐도는 ‘재미와 독창성’이라는 전통적 철학을 유지하면서도, 이를 디지털-글로벌 시대에 맞게 구조화하고 확장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 리더십의 유연성, 생태계 전략의 장기화, 글로벌 시장의 일관된 운영이 조화를 이루며 닌텐도는 여전히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길을 걷고 있다.

  1. inc.com Nintendo Used to Operate a Taxi Company and, Allegedly, a Chain of ‘Love Hotels’
  2. theweek.com Hiroshi Yamauchi, 1927–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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