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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가리킨다. 즉, 사직단은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사직제(社稷祭) 사직제]를 지내는 곳이었다. 그 해의 풍년을 비는 기곡제(祈穀祭)뿐만 아니라 가뭄에는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우제(祈雨祭)를, 홍수가 나면 비를 그치게 해달라고 기청제(祈晴祭)를, 눈이 오지 않으면 눈을 내려 겨울 가뭄을 해소해 달라고 기설제(祈雪祭) 등을 지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사직제였다. 사직제를 비롯한 모든 전근대적인 제사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가리킨다. 즉, 사직단은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사직제(社稷祭) 사직제]를 지내는 곳이었다. 그 해의 풍년을 비는 기곡제(祈穀祭)뿐만 아니라 가뭄에는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우제(祈雨祭)를, 홍수가 나면 비를 그치게 해달라고 기청제(祈晴祭)를, 눈이 오지 않으면 눈을 내려 겨울 가뭄을 해소해 달라고 기설제(祈雪祭) 등을 지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사직제였다. 사직제를 비롯한 모든 전근대적인 제사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1924년, 일제는 일본 황태자([https://ko.wikipedia.org/wiki/쇼와_천황 쇼와 천황] 또는 히로히토)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이곳에 공원을 조성했다. 사직단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소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벚나무를 심고 산마루에 전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신공원(新公園)이라 이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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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일제는 일본 황태자([https://ko.wikipedia.org/wiki/쇼와_천황 쇼와 천황] 또는 히로히토)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이곳에 공원을 조성했다. 사직단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소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벚나무를 심고 산마루에 전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신공원(新公園)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양파정(楊波亭)과 석기정(石犀亭)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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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정(楊波亭)과 석서정(石犀亭)의 이야기'''===
  
양파정은 광주 사직공원에 위치하며 일제시대 광주지역의 유력한 부호였던 정낙교(鄭洛敎)가 조선시대에 손꼽힌 명승 석기정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호인 양파를 따서 지은 것이다. 흔히 정자는 정자 주인의 호를 따든가 고사(古事)에서 이름을 빌려쓰는 경우가 많지만 석기정이 양파정과 달리 좀 특이하다. 석서란 `돌로 깎아 만든 물소’란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중국 전국시대의 치수대가인 이빙(李氷)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돌을 깎아 물소 형상의 수위표를 만들어 매년 이를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치수에 성공했던 일이 있었다. 이 후로 돌로 만든 물소, 곧 석서란 치수를 뜻하는 말이 됐다. 따라서 해당 이름에는 광주천과 가슴을 맞대고 살았던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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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파정은 광주 사직공원에 위치하며 일제시대 광주지역의 유력한 부호였던 정낙교(鄭洛敎)가 조선시대에 손꼽힌 명승 석서정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호인 양파를 따서 지은 것이다. 흔히 정자는 정자 주인의 호를 따든가 고사(古事)에서 이름을 빌려쓰는 경우가 많지만 석서정이 양파정과 달리 좀 특이하다. 석서란 `돌로 깎아 만든 물소’란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중국 전국시대의 치수대가인 이빙(李氷)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돌을 깎아 물소 형상의 수위표를 만들어 매년 이를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치수에 성공했던 일이 있었다. 이 후로 돌로 만든 물소, 곧 석서란 치수를 뜻하는 말이 됐다. 따라서 해당 이름에는 광주천과 가슴을 맞대고 살았던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었다.
  
 
예로부터 광주천은 홍수가 잦았고 이로 인한 고충도 컸던 모양이다.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했는데, 그 중 하나가 광주천 위에 섬을 만들어 물길을 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물길을 나눈 다음에 섬 위에 정자를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석서정이었다. 고려 말엽인 1370년대 광주목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334 김상(金賞)]은 자신의 임지인 광주에 석서정을 세웠는데 그 건물을 세운 내력을 멋진 글로 표현하고 싶어서 당대 최고의 문인 중 한 사람인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4640 이색(李穡)]에게 글 하나를 청탁한다. 이 청탁에 이색은 얼마 전 광주를 유람하고 개경으로 돌아온 설천용에게 들은 얘기와 김상이 보내온 자료를 토대로 기문(記文)을 지었는데 이것이‘석서정기(石犀亭記)’다.
 
예로부터 광주천은 홍수가 잦았고 이로 인한 고충도 컸던 모양이다.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했는데, 그 중 하나가 광주천 위에 섬을 만들어 물길을 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물길을 나눈 다음에 섬 위에 정자를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석서정이었다. 고려 말엽인 1370년대 광주목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9334 김상(金賞)]은 자신의 임지인 광주에 석서정을 세웠는데 그 건물을 세운 내력을 멋진 글로 표현하고 싶어서 당대 최고의 문인 중 한 사람인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4640 이색(李穡)]에게 글 하나를 청탁한다. 이 청탁에 이색은 얼마 전 광주를 유람하고 개경으로 돌아온 설천용에게 들은 얘기와 김상이 보내온 자료를 토대로 기문(記文)을 지었는데 이것이‘석서정기(石犀亭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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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위키백과 || 딜쿠샤 ||  || https://ko.wikipedia.org/wiki/딜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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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앨버트 테일러 가옥(딜구샤) ||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44111068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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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 정낙교 鄭洛敎 ||  || http://gjstory.or.kr/sub.html?pid=48&formtype=view&code=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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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 나무위키 || 사직공원(광주) ||  || https://namu.wiki/w/사직공원(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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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 광주드림 || [광주갈피갈피]김상, 광주천의 물길을 돌리다 ||  ||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74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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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 광주드림 || [광주갈피갈피]사직공원 언덕 양파정에 올라보라 ||  ||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327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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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3일 (토) 09:50 기준 최신판

Story

광주 사직공원과 사직단의 이야기

광주 양림산에 자리한 사직공원이 광주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전망대에 오르면 광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70~80년대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사직공원은 즐거운 기억이 가득한 추억의 장소이다. 광주에서 유일한 동물원과 놀이공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91년, 광주시는 사직공원에 있던 동물원을 우치공원으로 옮겼으며 1993년에 사직공원의 본래 모습을 되찾기 위해 사직단의 복원 작업을 진행하였다. 원래 사직공원은 사직단(社稷壇)이 있는 신성한 장소였다.

사(社)는 땅의 신을, 직(稷)은 곡식의 신을 가리킨다. 즉, 사직단은 땅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올리며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사직제를 지내는 곳이었다. 그 해의 풍년을 비는 기곡제(祈穀祭)뿐만 아니라 가뭄에는 비가 오게 해달라고 기우제(祈雨祭)를, 홍수가 나면 비를 그치게 해달라고 기청제(祈晴祭)를, 눈이 오지 않으면 눈을 내려 겨울 가뭄을 해소해 달라고 기설제(祈雪祭) 등을 지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사직제였다. 사직제를 비롯한 모든 전근대적인 제사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인해 폐지되었다.

1924년, 일제는 일본 황태자(쇼와 천황 또는 히로히토)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이곳에 공원을 조성했다. 사직단의 흔적을 완전히 없애버리고 소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벚나무를 심고 산마루에 전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신공원(新公園)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양파정(楊波亭)과 석서정(石犀亭)의 이야기

양파정은 광주 사직공원에 위치하며 일제시대 광주지역의 유력한 부호였던 정낙교(鄭洛敎)가 조선시대에 손꼽힌 명승 석서정을 기념하기 위해 자신의 호인 양파를 따서 지은 것이다. 흔히 정자는 정자 주인의 호를 따든가 고사(古事)에서 이름을 빌려쓰는 경우가 많지만 석서정이 양파정과 달리 좀 특이하다. 석서란 `돌로 깎아 만든 물소’란 뜻을 담고 있다. 이것은 중국 전국시대의 치수대가인 이빙(李氷)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돌을 깎아 물소 형상의 수위표를 만들어 매년 이를 관찰한 결과를 토대로 치수에 성공했던 일이 있었다. 이 후로 돌로 만든 물소, 곧 석서란 치수를 뜻하는 말이 됐다. 따라서 해당 이름에는 광주천과 가슴을 맞대고 살았던 사람들의 애환이 서려 있었다.

예로부터 광주천은 홍수가 잦았고 이로 인한 고충도 컸던 모양이다. 합리적인 방법을 모색했는데, 그 중 하나가 광주천 위에 섬을 만들어 물길을 가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물길을 나눈 다음에 섬 위에 정자를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석서정이었다. 고려 말엽인 1370년대 광주목사 김상(金賞)은 자신의 임지인 광주에 석서정을 세웠는데 그 건물을 세운 내력을 멋진 글로 표현하고 싶어서 당대 최고의 문인 중 한 사람인 이색(李穡)에게 글 하나를 청탁한다. 이 청탁에 이색은 얼마 전 광주를 유람하고 개경으로 돌아온 설천용에게 들은 얘기와 김상이 보내온 자료를 토대로 기문(記文)을 지었는데 이것이‘석서정기(石犀亭記)’다.

1914년, 정낙교(鄭洛敎)가 양림동 언덕에 광주천을 굽어보는 곳에 양파정을 지었는데 1932년 중건한 뒤 광주에 기증했다. 그는 이 정자에서 매년 전국 한시대회를 열어 양파정 시단을 형성하였으며 양파정기(楊波亭記)를 썼다. 양파정은 지역문인들의 사랑방이었을 뿐 아니라 소년운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식민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광주 소년들이 모여 일으킨 한국소년운동 출발지가 양파정이다. 양파정에서 소년운동의 기치를 올린 사람은 시인 김태오(金泰午)다. 그는 양파정에서 소년운동을 출발하여 전국의 소년운동단체를 하나로 통일시킨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이론가로 머물지 않고 소년운동을 문학으로 승화시켜 나갔다.

Web Re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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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사직공원 http://gjstory.or.kr/sub.html?pid=11&formtype=view&code=48
해설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정낙교 鄭洛敎 http://gjstory.or.kr/sub.html?pid=48&formtype=view&code=1014
해설 광주역사문화자원스토리텔링 석서정(石犀亭) http://gjstory.or.kr/sub.html?pid=142
해설 나무위키 사직공원(광주) https://namu.wiki/w/사직공원(광주)
뉴스 광주드림 [광주갈피갈피]김상, 광주천의 물길을 돌리다 http://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474171
뉴스 광주드림 [광주갈피갈피]사직공원 언덕 양파정에 올라보라 https://www.gjdream.com/news/articleView.html?idxno=327443
  • type: 해설, 뉴스 / 사진, 그림

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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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SS:A60196549 논문 최명표, 김태오의 소년운동론 RISS http://www.riss.kr.openlink.aks.ac.kr:8080/link?id=A60196549
RISS:A100013416 논문 김신중, 광주 석서정의 명칭 및 기문 연구 RISS http://www.riss.kr.openlink.aks.ac.kr:8080/link?id=A100013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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