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S 01.story"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새 문서: <pre> #Links JPS_01 메리_테일러 hasContextualElement JPS_01 앨버트_테일러 hasContextualElement JPS_01 조지_테일러 hasContextualElement JPS_01 윌리엄_테일러 hasCo...)
 
 
(같은 사용자에 의한 7개의 중간 편집이 숨겨짐)
1번째 줄: 1번째 줄:
 
<pre>
 
<pre>
 
#Links
 
#Links
JPS_01 메리_테일러 hasContextualElement
+
JPS 01 경기도_광주시_우산리_가마터(15_16세기_운영) hasContextualElement
JPS_01 앨버트_테일러 hasContextualElement
+
JPS 01 세종실록_지리지 hasContextualElement
JPS_01 조지_테일러 hasContextualElement
+
JPS_01 윌리엄_테일러 hasContextualElement
+
JPS_01 브루스_테일러 hasContextualElement
+
JPS_01 제니퍼_테일러  hasContextualElement
+
JPS_01 양화진_외국인묘지 hasContextualElement
+
 
#End
 
#End
 
</pre>
 
</pre>
  
{{clickable button | [[JPS_01.story]]}}
+
{{clickable button | [[JoseonPorcelain.story]]}}
  
 
==Theme==
 
==Theme==
18번째 줄: 13번째 줄:
 
==Synopsis==
 
==Synopsis==
 
조선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던 자기를 생산하였던 가마는 경기도 광주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광주지역에 국가 직영 사기소인 관요가 설립되는 시점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을 통하여 1432년 이전까지는 전국 군현 별로 운영되었던 184개의 자기소에서 자기를 공납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던 자기를 생산하였던 가마는 경기도 광주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광주지역에 국가 직영 사기소인 관요가 설립되는 시점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을 통하여 1432년 이전까지는 전국 군현 별로 운영되었던 184개의 자기소에서 자기를 공납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토산품으로 공납되었던 백자는 1467년경 궁중 주방인 사옹원의 분원 가마가 광주에 설치되면서 관영수공업체제를 갖추고 직접 생산, 조달하게 되었다.</br> 관요 중의 하나였던 경기도 광주시 우산리 가마터에서는 사옹원으로 추정되는 ‘司’자가 인각기법으로 새겨진 백자 접시 편이 출토되었다. 본래 사옹원은 고려시대의 사옹司饔이다. 사옹의 ‘옹’은 <주례周禮>의 주에서 割烹煎和, 즉 ‘고기를 베어 삶고 간을 맞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즉 사옹은 왕의 식사와 대궐 안의 식사 공급을 담당하는 동시에 공납용 자기 제작을 감독하고 수취해왔다. 고려시대의 사옹은 조선시대에는 사옹방으로 吏曹에 편제되었고, 1467년에 첨설직에서 녹관을 둔 정3품의 정식 행정 관사인 사옹원으로 개칭되었다. 관요는 사옹원의 분원으로 설립되어 왕실용 자기를 제작하는 자기소로 운영되었다. 공납물이었던 자기는 광주 자기소에서 직접 조달받게 된 것이다.
+
토산품으로 공납되었던 백자는 1467년경 궁중 주방인 사옹원의 분원 가마가 광주에 설치되면서 관영수공업체제를 갖추고 직접 생산, 조달하게 되었다.</br> 관요 중의 하나였던 경기도 광주시 우산리 가마터에서는 사옹원으로 추정되는 ‘司’자가 인각기법으로 새겨진 백자 접시 편이 출토되었다. 본래 사옹원은 고려시대의 사옹司饔이다. 사옹의 ‘옹’은 <주례周禮>의 주에서 割烹煎和, 즉 ‘고기를 베어 삶고 간을 맞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즉 사옹은 왕의 식사와 대궐 안의 식사 공급을 담당하는 동시에 공납용 자기 제작을 감독하고 수취해왔다. 고려시대의 사옹은 조선시대에는 사옹방으로 吏曹에 편제되었고, 1467년에 첨설직에서 녹관을 둔 정3품의 정식 행정 관사인 사옹원으로 개칭되었다. 관요는 사옹원의 분원으로 설립되어 왕실용 자기를 제작하는 자기소로 운영되었다. 공납물이었던 자기는 광주 자기소에서 직접 조달받게 된 것이다.</br>
사옹원 소속의 번조관과 경공장은 관요 운영과 관련한 구성원이었다. 번조관은 경공장을 관리하는 역할이었고, 경공장은 <경국대전> 공전 사옹원 조에 명시된 사기장 380명이었다.</br>
+
사옹원 소속의 번조관과 경공장은 관요 운영과 관련한 구성원이었다. 번조관은 경공장을 관리하는 역할이었고, 경공장은 <경국대전> 공전 사옹원 조에 명시된 사기장 380명이었다.
  
 
==Storytelling Network==
 
==Storytelling Network==
26번째 줄: 21번째 줄:
 
<br/>
 
<br/>
 
<input type="button" value="전체화면" onclick="location.href=http://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jsp&key=세종실록_지리지' ">  
 
<input type="button" value="전체화면" onclick="location.href=http://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jsp&key=세종실록_지리지' ">  
<input type="button" value="데이터 갱신" onclick="location.href='http://dh.aks.ac.kr/~sandbox/cgi-bin/wikiEpisodeLoader.py?account=edu&script=Story01.py&db=s_songyi&project=jsp&key=세종실록_지리지'">  
+
<input type="button" value="데이터 갱신" onclick="location.href=''http://dh.aks.ac.kr/~sandbox/cgi-bin/Story01.py?db=s_songyi&project=jsp&key=세종실록_지리지'">  
 
</html>
 
</html>

2022년 4월 29일 (금) 00:26 기준 최신판

#Links
JPS 01	경기도_광주시_우산리_가마터(15_16세기_운영)	hasContextualElement
JPS 01	세종실록_지리지	hasContextualElement
#End

JoseonPorcelain.story

Theme

Episode 1: 관요의 등장

Synopsis

조선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하던 자기를 생산하였던 가마는 경기도 광주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광주지역에 국가 직영 사기소인 관요가 설립되는 시점은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진 않지만, <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을 통하여 1432년 이전까지는 전국 군현 별로 운영되었던 184개의 자기소에서 자기를 공납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토산품으로 공납되었던 백자는 1467년경 궁중 주방인 사옹원의 분원 가마가 광주에 설치되면서 관영수공업체제를 갖추고 직접 생산, 조달하게 되었다.</br> 관요 중의 하나였던 경기도 광주시 우산리 가마터에서는 사옹원으로 추정되는 ‘司’자가 인각기법으로 새겨진 백자 접시 편이 출토되었다. 본래 사옹원은 고려시대의 사옹司饔이다. 사옹의 ‘옹’은 <주례周禮>의 주에서 割烹煎和, 즉 ‘고기를 베어 삶고 간을 맞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즉 사옹은 왕의 식사와 대궐 안의 식사 공급을 담당하는 동시에 공납용 자기 제작을 감독하고 수취해왔다. 고려시대의 사옹은 조선시대에는 사옹방으로 吏曹에 편제되었고, 1467년에 첨설직에서 녹관을 둔 정3품의 정식 행정 관사인 사옹원으로 개칭되었다. 관요는 사옹원의 분원으로 설립되어 왕실용 자기를 제작하는 자기소로 운영되었다. 공납물이었던 자기는 광주 자기소에서 직접 조달받게 된 것이다.</br> 사옹원 소속의 번조관과 경공장은 관요 운영과 관련한 구성원이었다. 번조관은 경공장을 관리하는 역할이었고, 경공장은 <경국대전> 공전 사옹원 조에 명시된 사기장 380명이었다.

Storytelling 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