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장환(작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DH 교육용 위키
이동: 둘러보기, 검색
(문서 생성)
 
(관련문서)
 
(같은 사용자에 의한 2개의 중간 편집이 숨겨짐)
1번째 줄: 1번째 줄:
{{인물정보
+
{{인물정보2
 
|사진=오장환(작가).jpg
 
|사진=오장환(작가).jpg
 
|사진출처=충청투데이
 
|사진출처=충청투데이
27번째 줄: 27번째 줄:
 
넷째는 시집 『나 사는 곳』의 시편 일부와 『병든 서울』의 시편들이 보여주듯이 오장환이 광복 후에 좌경 단체에 가담하여 좌경적 이념과 사회주의를 노래한 프롤레타리아 지향의 세계이다.오장환의 시적 변모는 과거의 전통과 풍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반명제로 탈향지향의 세계를 도모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귀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성벽』·『헌사』에서 보여준 도시적인 이미지와 보헤미안적 기질은 『나 사는 곳』에 와서 전원적인 이미지와 향토애로 바뀐다.하지만, 광복 후 좌우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그는 현실에 참여하여 당시 상황을 웅변적으로 토로하게 한다. 이밖에 평론으로 「백석론(白石論)」(1937)·「자아(自我)의 형벌(刑罰)」(1948) 등이 있다.
 
넷째는 시집 『나 사는 곳』의 시편 일부와 『병든 서울』의 시편들이 보여주듯이 오장환이 광복 후에 좌경 단체에 가담하여 좌경적 이념과 사회주의를 노래한 프롤레타리아 지향의 세계이다.오장환의 시적 변모는 과거의 전통과 풍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반명제로 탈향지향의 세계를 도모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귀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성벽』·『헌사』에서 보여준 도시적인 이미지와 보헤미안적 기질은 『나 사는 곳』에 와서 전원적인 이미지와 향토애로 바뀐다.하지만, 광복 후 좌우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그는 현실에 참여하여 당시 상황을 웅변적으로 토로하게 한다. 이밖에 평론으로 「백석론(白石論)」(1937)·「자아(自我)의 형벌(刑罰)」(1948) 등이 있다.
 
<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4568 오장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f>
 
<ref>[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4568 오장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f>
 +
 +
==관련문서==
 +
{|class="wikitable" style="text-align:center"
 +
!style="width:150px"|node||style="width:200px"|link||style="width:150px"|node
 +
|-
 +
|오장환||작가이다||[[헌사]]
 +
|-
 +
|오장환||작가이다||[[성벽]]
 +
|-
 +
|오장환||장정하였다||[[화사집]]
 +
|-
 +
|오장환||오너이다||[[남만서방]]
 +
|-
 +
|육사시집||관련이있다||[[오장환]]
 +
|-
 +
|}
 +
 +
==네트워크 그래프==
 +
<html>
 +
<iframe width="90%" src="네트워크 그래프 문서의 웹 주소"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html>
  
 
==주석==
 
==주석==
 
<references/>
 
<references/>

2021년 5월 27일 (목) 06:44 기준 최신판

오장환(吳章煥)
충청투데이
대표명칭 오장환
한자표기 吳章煥
출생지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 중앙리 140번지
시대 일제강점기
직업 시인, 시집 전문서점 '남만서방(南蠻書房)'운영자



정의

일제강점기 『성벽』, 『헌사』, 『나 사는 곳』 등을 저술한 시인 오장환은 서정주, 이용악과 함께 당시 시단의 3천재로 불릴 정도로 문단의 호평을 받은 시인이다. 초기에는 현대적인 감각을 표현하고 새로운 기법의 실험을 보이는 등 모더니즘 시를 창작했으나 점차 리얼리즘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대표작은 장시 「병든 서울」이다. 오장환은 남만서방이라는 출판사 겸 서점을 운영했는데 여기서 서정주의 『화사집』, 김광균의 『와사등』이 출판되었다. 충청북도 보은군 회인면에 생가가 보존되어 있고, 오장환문학관도 있다. [1]

생애

충청북도 보은 출생. 본관은 해주(海州). 회인 공립보통학교에 입학했으나, 안성으로 이주하여 안성 공립보통학교에서 졸업했다. 박두진과 같은 학교를 다녔다. 1931년 휘문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해 정지용에게 시를 배웠고, 문예반에서 교지 『휘문』을 만드는 일에 참여했고 시도 발표했다. 1933년 휘문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문학(朝鮮文學)』에 「목욕간」을 발표함으로써 시작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6년 서정주(徐廷柱)·김동리(金東里)·여상현(呂尙玄)·함형수(咸亨洙) 등과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본격적인 시작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밖에 『낭만』(1936년), 『자오선』(1937년)의 동인으로도 참여했다. 1937년 메이지 대학 전문부 문과 문예과 별과에 입학했고, 첫 시집 『성벽(城壁)』(1937)을 출판했고, 시론과 작가론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1938년 부친의 사망으로 메이지 대학을 중퇴하고 귀국, 경성부 관훈정에 남만서방이라는 출판사 겸 서점을 냈다. 이 곳에서 두 번째 시집 『헌사』(1939년), 서정주의 『화사집』(1938년), 김광균의 『와사등』(1939년)을 출판했다. 1945년 인천에서 신예술가협회를 조직했고,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했다. 1946년 번역시집인 『예세닌 시집』, 세 번째 시집인 『병든 서울』을 발간했다. 1947년 테러를 당해 치료와 이념 실현을 위하여 월북했다. 1948년 조선인민출판사에서 『남조선의 문학예술』을 출판, 이후 남포의 소련 적십자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모스크바의 시립 볼킨병원에서 요양했다. 1950년 소련 생활의 체험을 담은 마지막 시집 『붉은 기』를 출판했다. 1951년 한국 전쟁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오장환의 시 세계

오장환의 시적 편력은 대체로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비록 습작품이기는 하나 초기 작품 「목욕간」·「캐메라 룸」·「전쟁」에서 보여주듯이, 새로운 세계를 동경한 나머지 전통과 낡은 인습을 부정하는 세계이며, 둘째는 시집 『성벽』·『헌사』의 시편과 같이 낡은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 해항지대(海港地帶)를 방랑하고 관능과 퇴폐를 바탕으로 하는 탈향지향(脫鄕志向)의 세계이다. 셋째는 시집 『헌사』의 시편 일부와 『나 사는 곳』의 시편이 보여주는 탈향지향에서 귀환하는 귀향의지의 세계이며, 넷째는 시집 『나 사는 곳』의 시편 일부와 『병든 서울』의 시편들이 보여주듯이 오장환이 광복 후에 좌경 단체에 가담하여 좌경적 이념과 사회주의를 노래한 프롤레타리아 지향의 세계이다.오장환의 시적 변모는 과거의 전통과 풍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반명제로 탈향지향의 세계를 도모하다가 다시 고향으로 귀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성벽』·『헌사』에서 보여준 도시적인 이미지와 보헤미안적 기질은 『나 사는 곳』에 와서 전원적인 이미지와 향토애로 바뀐다.하지만, 광복 후 좌우 이념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그는 현실에 참여하여 당시 상황을 웅변적으로 토로하게 한다. 이밖에 평론으로 「백석론(白石論)」(1937)·「자아(自我)의 형벌(刑罰)」(1948) 등이 있다. [3]

관련문서

node link node
오장환 작가이다 헌사
오장환 작가이다 성벽
오장환 장정하였다 화사집
오장환 오너이다 남만서방
육사시집 관련이있다 오장환

네트워크 그래프

주석

  1. 시인 오장환, 지역문화웹사이트
  2. 시인 오장환, 지역문화웹사이트
  3. 오장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