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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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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정보2
|대표명칭 = 답호褡穫
+
|사진= 답호집사.jpg
|유형 = 물품
+
|사진출처= 출처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Département des Manuscrits. Division orientale. Supplément persan 1113, fol. 234v                                                                                   
|시대 = 조선
+
          (URL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hazan_et_%C3%96ldje%C3%AFtu.jpg)
|영문명칭 = Da-po<br/> Man's coat Man's coat with half sleeves or no sleeves worn during the Goryeo and Joseon dynasties <ref> 『한국복식사전』, 민속원</ref>
+
|대표명칭= 답호
|성격 = 의복
+
|한자표기= 褡𧞤 塔胡 搭胡 褡胡 褡複 褡穫 褡護
|용도 = 덧옷
+
|이칭별칭= 탑호 탑홀 더그레 전복 호의 쾌자
|사진 = 답호이미지.jpg
+
|시대=
 +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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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용신분= 王, 朝臣, 下級群俗
 +
|착용성별= 남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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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으로 본 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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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호는 元의 복식명’(褡護 ,元衣名)으로 남송 鄭思省의 詩의 에 기록되어 있는데 징기스칸 족 역사서인『集史』(1300-1304년 완성)의 미니어쳐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답호의 最古 기록은 고려시대 말에 들어온 한어 학습서인 『老乞大』(1346)에서 찾을 수 있는데 高麗末부터 朝鮮後期까지 왕의 常服과 관리들의 단령안의 받침옷이나 철릭, 액주름 등의 袍 위에 덧입는 옷 으로 士大夫 이하 庶民에 이르기까지 널리 착용하였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전란을 거치면서 형태상의 변화가 있었다. 朝鮮時代 외국어 학습서에 보면 褡護 명칭으로 ‘大搭胡,褡 護,搭胡,搭忽’ 로 표기되어 있으며,『老朴集覽』(1517)에 ‘比甲’이란 명칭이 나온다. 褡護는 고려 말부터 국말까지 착용되었는데 世宗 26년(1444) 사은사謝恩使 유수강柳守剛에 의해 明帝가 사여한 왕의 常服인 단령, 답호, 철릭 일습으로 계절별로 3습이 들어와 王의 곤룡포의 裏衣로 착용되었는데 또한 출토유물에 서도 단령, 답호, 철릭 일습의 출토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褡護를 착장자에 따라 구분하면 왕王, 조신朝臣, 하급下級 군속群俗으로 구분할 수 있다.<ref>변지연, 『더그레에 관한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 ;
 
송미경, 『 조선시대 답호(塔胡) 연구 - 17세기 전기까지 - 』, 서울여자대학교, 2009.</ref>
 
====(1) 답호의 용도====
 
====(2) 답호의 색상====
 
====(3) 답호의 옷감과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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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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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C%9D%98_%EC%97%AD%EC%82%AC 조선시대] 남자포류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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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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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남자 포류 이해의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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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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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나라이다. 1392년부터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1910년까지 519년 동안 27명의 임금이 다스렸다. 조선은 성리학을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사상으로 삼아 유교 문화를 꽃피웠으며, 수많은 문화 유산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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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네이버 지식백과」[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60510&cid=47306&categoryId=47306 조선시대] (연표로 보는 한국사사전, 2015. 2. 10., 김한종, 이성호, 문여경, 송인영, 이희근, 최혜경, 박승범, 이승수)</ref>
  
===출토유물 자료로 본 답호의 시대별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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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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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com/fTcAL28uULI History of the World: Every Year]", ''YOUTUBE'', 작성일:2015년 12월 17일.
조선시대 17세기 초기까지의 ‘답호’는 반수의(半袖衣)로 포류(袍類)의 일종으 로, 『 조선왕조실록』에는 철릭 위에 입으며, 관복(官服) 으로 답호 위에 단령을 입는다. 전체적인 형태는 깃의 모양만 제외하고 단령과 동일하다.
+
 
이 장에서는 조선시대전기 남자묘에서 출토된답호의 형태에따라, , 소매, 무, 고름등과같은 답호형태의 특징과직물을 살펴보려고 한다. <ref>변지연, 『더그레에 관한 연구』, 서울여자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0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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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ymI5Uv5cGU4"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1) 15세기 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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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
====(2) 16세기 전기 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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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6세기 후기 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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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99%95_%EA%B0%80%EA%B3%84%EB%8F%84 조선 왕조]====
====(4) 17세기 전기 답호====
+
유교적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근세사회를 열었던 조선 왕조의 계보.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며 건국한 조선은 1910년 순종을 마지막으로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간 존속되었다.
====[출토복식]====
+
<ref>국사편찬위원회, [국사], 교육과학기술부, 2011; 김아네스ㆍ최선혜 지음, 「고교생이 알아야 할 한국사 스페셜」 1, 신원문화사, 2009.</ref>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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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apo01.png|[[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 답호]] <br><small>조선 후기의 장군 김덕원의 묘에서 출토된 의복. 보물 제672호. 개인 소장. 답호는 소색의 명주로 겉감과 안감이 되어 있으며 겹누비이다. 양옆선이 터져 있으며, 섶이 얕고, 깃은 앞 목둘레를 둥글게 파고 길과 각지게 놓였으며 X자형으로 곱게 박음질하였다.<br>[[김덕원묘출토|<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 답호>]]</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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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D%83%9C%EC%A1%B0 1대 태조李成桂1392-1398]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A0%95%EC%A2%85 2대 정종李芳果1399-1400]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D%83%9C%EC%A2%85 3대 태종李芳遠1400-1418]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4%B8%EC%A2%85 4대 세종李祹1418-1450]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B%AC%B8%EC%A2%85 5대 문종李珦1450-1452]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B%8B%A8%EC%A2%85 6대 단종李弘暐1452-1455]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4%B8%EC%A1%B0 7대 세조李瑈1455-1468]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98%88%EC%A2%85 8대 예종李晄1468-1469]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4%B1%EC%A2%85 9대 성종李娎1469-1494]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97%B0%EC%82%B0%EA%B5%B0 10대 연산군李㦕1494-1506]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A4%91%EC%A2%85 11대 중종李懌1506-1544]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9D%B8%EC%A2%85 12대 인종李峼1544-1545]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B%AA%85%EC%A2%85 13대 명종李峘1545-1567]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4%A0%EC%A1%B0 14대 선조李昖1567-1608]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A%B4%91%ED%95%B4%EA%B5%B0 15대 광해군李琿1608-1623]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9D%B8%EC%A1%B0 16대 인조李倧1623-1649]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D%9A%A8%EC%A2%85 17대 효종李淏1649-1659]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D%98%84%EC%A2%85 18대 현종李棩1659-1674]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8%99%EC%A2%85 19대 숙종李焞1674-1720]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A%B2%BD%EC%A2%85 20대 경종李昀1720-1724]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98%81%EC%A1%B0 21대 영조李昑1724-1776]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A0%95%EC%A1%B0 22대 정조李祘1776-1800]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88%9C%EC%A1%B0 23대 순조李玜1800-1834]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D%97%8C%EC%A2%85 24대 헌종李烉1834-1849] —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_%EC%B2%A0%EC%A2%85 25대 철종李昪1849-1863] —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C%A0%9C%EA%B5%AD_%EA%B3%A0%EC%A2%85 26대 고종李㷩1863-1907]  — [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C%A0%9C%EA%B5%AD_%EC%88%9C%EC%A2%85 27대 순종李坧1907-1910]
파일:dapo02.png|[[이언충 묘 출토 복식 답호]] <br><small>조선 중기의 문신 이언충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일괄. 중요민속문화재 제243호.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br>[[이언충묘출토|<이언충 묘 출토 복식 답호>]]</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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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ntents.history.go.kr/front/km/view.do?levelId=km_009_0030_0040_0010_0010 조선시대 남자 포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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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복식(服飾) ()의 문화는 예사상(禮思想)을 바탕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적 역할로 인하여 신분(身分)과 계급(階級)의 용도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현상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포제(袍制)가 발달하게 되었다.<ref>김정애. (2018). 「조선시대 편복포의 구성요소별 형태변화 연구」. P1.</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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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style="text-align:center; width:auto; 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조선시대 남자포류'''</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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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mode=packed heights=28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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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시대 답호를 입고 외출하는 남자 답호.jpg|[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7779&categoryId=49283&cid=49283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6&cp_code=cp0235&index_id=cp02350883&content_id=cp023508830001&search_left_menu 답호를 입고 외출하는 남자]<br><smal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7782&categoryId=49283&cid=49283 답호]</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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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시대 쌍륙놀이를 구경하는 양반가의 남자 도포.jpg|[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7774&categoryId=49283&cid=49283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6&cp_code=cp0235&index_id=cp02350883&content_id=cp023508830001&search_left_menu 쌍륙놀이를 구경하는 양반가의 남자]<br><smal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7741&categoryId=49283&cid=49283 도포]</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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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시대 중치막을 입은 양반가의 남자 중치막.jpg|[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7742&categoryId=49283&cid=49283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6&cp_code=cp0235&index_id=cp02350883&content_id=cp023508830001&search_left_menu 중치막을 입은 양반가의 남자]<br><smal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7744&categoryId=49283&cid=49283 중치막]</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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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시대 철릭을 입은 양반가의 남자 철릭.jpg|[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7745&categoryId=49283&cid=49283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6&cp_code=cp0235&index_id=cp02350883&content_id=cp023508830001&search_left_menu 철릭을 입은 양반가의 남자]<br><smal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7747&categoryId=49283&cid=49283 철릭]</sm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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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선시대 화류놀이하고 있는 한량 창의.jpg|[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727764&categoryId=49283&cid=49283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6&cp_code=cp0235&index_id=cp02350883&content_id=cp023508830001&search_left_menu 화류놀이하고 있는 한량]<br><small>[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1145811&cid=40942&categoryId=32079 창의]</small>
 
</gallery>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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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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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연산군,  중종, 선조, 광해군, 영조, 정조, 고종, 순종대의 기록에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B%8B%B5%ED%98%B8%EC%9D%98_%EC%A0%95%EC%9D%98 답호]가 등장을 한다. 총 100여건에 160여회에 언급되고 있다.<ref>송미경. (2009). 「조선시대 塔胡 연구 」.p.56</ref>  세종대에 처음 등장하는 답호는 『국조오례의』에 습(襲)에 사용되는 복식으로 원령(圓領), 답호(搭胡), 철릭과 함께 거론되며, 답호는 반비의(半臂衣)라는 부가설명이 있다.<ref>송미경. (2009). 「조선시대 塔胡 연구 」.p55-5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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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에서 답호는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B%8B%B5%ED%98%B8%EC%9D%98_%EC%A0%95%EC%9D%98 褡𧞤|塔胡|搭胡|褡胡|褡複|褡穫|褡護] 등의 동음어로서도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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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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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걸대 간본들을 통해 본 14~18세기의 복식관련용어비교연구에는 최초로 “대탑호(大搭胡)ㆍ답호(褡胡)ㆍ탑호(搭胡)ㆍ답홀(褡忽)”등의 한자표기에 ‘더그레’라는 말이 한국어 설명으로 등장하였다고 하였다. <ref> 김인자ㆍ김효숙 (2020). 한국 전통복식 더그레의 현대화 연구. p154.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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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걸대에서 더그레는 원나라의 복식으로, 몽골어로는 더걸러이[degelei] 라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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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더그레, 또는 더그래 라는 말로 시대와 함께 쓰임새가 점점 더 넓어지는데<ref> Yu, H. K. (2002). Study of Costume of Korea history [韓國服飾史硏究]. Seoul, Republic of Korea: Ewha Woman's University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75).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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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들이나 하급관리가 입던 겉옷을가리키다가 나중에는 답호를 가리키게 되었고, 조선 말기에는 배자, 전복이나 호의 같은 겉옷을 두루 포함하는 의미로 쓰였다. <ref>Kim, I. J. (2016). Discovery of Deogeure. Seoul, Republic of Korea: Kyeong-ge</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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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레를 “군인들이 입던 군복인 바, 각기 빛을 달리하여 소속 영문을 표시하였으므로 호의(號衣)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ref> Lee, P. C. (2003). Illustrated copy of Lee's Costumes [李朝服飾圖鑑]. Seoul, Republic of Korea: Dongmunsun. (Original work published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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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가 되면서 답호,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28157&cid=46671&categoryId=46671 호의(號衣)],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6420&cid=46671&categoryId=46671 전복(戰服)],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30291&cid=46671&categoryId=46671 쾌자(快子)],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56832&cid=46671&categoryId=46671 배자(背子)] 등의 개념과 명칭이 뒤섞여 더그레의 의미가 넓어졌다. 이에 포나 웃옷 위에 덧입는 겉옷을 통틀어 더그레라는 명칭이 되었다. <ref> 김인자ㆍ김효숙 (2020). 「한국 전통복식 더그레의 현대화 연구」. p154. </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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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the-king%E2%80%99s-excursion-on-a-royal-carriage-chae-yong-shin-1850-1941/XgHtvxw9S1U6Hw?hl=ko 『고종대한제국동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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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대한제국동가도(高宗大韓帝國動駕圖)』에서 보이는 답호류의 복식으로는 전복과 쾌자, 호의이며, 동가도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다. 兵曹判書, 訓鍊大將, 禁御營大將등의 將臣에서부터, 아래로는 旗首, 巡營手, 砲手 등까지 계급에 따라 다양하게 착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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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 이봉숙 (1983). 「 褡𧞤에 關한 硏究」. p63. </ref>
  
===조선시대 남자 袍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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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7142  을미의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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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는 갑신년인 1884년(고종 21), 갑오년인 1894년(고종 31), 을미년인 1895년(고종 31)에 단행된 근대적 개혁을 지칭한다. 이 시기 의제개혁의 저변에는 근대 서구문물의 유입과 채택이라는 기조가 깔려 있고, 이 점이 이전의 복식제도 개혁과 차별화된다. 을미년의 의제개혁은 3월 29일 반포된 칙령 제67호, 8월 10일 반포된 ‘조신朝臣 이하 복식’, 11월 15일의 단발령斷髮令으로 이어진다. 이 외, 4월 9일 칙령 제78호 ‘육군복장규칙陸軍服裝規則’과 4월 19일 칙령 제81호 ‘경무사이하복제警務使以下服制’가 반포되어 무관복武官服과 경관복警官服이 처음으로 완전한 서구식으로 바뀐다.<ref>최연우.「한국민속대백과사전」</ref>
====(1) 답호====
+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관리들이 상복안에 입거나 사대부의 겉옷 위에 덧입던 옷이다.
+
또한 조선 중기까지는 직령과 같되, 소매만 반수의 이지만 17세기를 지나면서 소매가 없어진다.
+
답호는 중국 원대에 등장한 의복으로 징기스칸(1162~1227) 역사서인 『집사集史』(1300~1304)의 미니어쳐에서 찾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 기록에는 고려시대 『원간노걸대 原刊老乞大』에  ‘대답호 大塔胡, 답호 褡護, 답호 塔胡, 답홀 塔笏’로 표기되어 있으며 더그레로 언해되어 있다.
+
고려시대 답호 유물로는 문수사의 답호(1346)와 해인사의 답호(1350~1362)가 있다.
+
곧은 깃에 반소매가 팔꿈치에 이르며, 옷길이는 발목까지 오고 옆선에는 안쪽으로 접혀 들어가 고정된 다중 주름의 무가 달렸으며 옆트임이 있다.  
+
조선시대 답호는 조선 중기까지 왕의 상복과 관리들의 단령 안 받침옷이나 철릭, 직령등 포위에 덧입었다.
+
형태는 반수의로 곧은 깃 교임형에 옆선에 무가 달렸고 옆 트임이 있다.
+
기본 형태는 직령과 같되, 소매 길이가 짧은 것이 다르다.  
+
답호에는 광다회 등의 실띠를 둘렀는데, 당상관 이상은 붉은색을 사용하였고 그 이하는 청색 계통의 것을 사용하였다.
+
직령과 유사한 형태의 답호는 임란 직후부터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
그러나 ‘답호’라는 명칭은 조선 후기에도 간편한 덧옷용 포를 지칭하는 데에 사용되어 그대로 유지되면서 옷의 형태상 변화가 나타난다.
+
즉, 소매와 직사각형 무가 사라지게 된다.
+
이때의 답호 형태에 대해 『사례편람』에는 ‘무수창의’라고 하였는데, 말 그대로 ‘소매가 없는 창의’ 라는 옷이다.
+
창의는 뒤트임이 특징인데 소매가 없고 뒤가 트였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의 탐릉군묘에서 출토된 답호 유물에서 확인된다.
+
또한 『영조실록』에 의하면 답호가 영조의 수의로 사용되었으며 이를 ‘소매 없는 반비’라고 하였다.
+
그러나 후대에 갈수록 답호는 전복, 괘자가 혼동되기도 하였다.
+
영조 재궁의대에 전복과 답호가 동시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 형태가 다른 의복이었으나 순조 재궁의대에는 쾌자만이 기록된 것으로 보아 순조 이후 답호는 괘자와 같은 형태로 괘자로 집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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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25년(1888)직강 김영선이 “답호와 전복은 그 제도가 달랐는데 답호령을 내리고 전복을 입으라고 한 것은 잘못되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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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은 깃 없는 대금형의 긴 옷으로 허리 아래로 뒤트임이 있고 짧은 옆트임이 있는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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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자는 전복 형태에 깃머리가 둥근 방령에 동정이 달린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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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답호도 뒤트임이 있고 소매가 없는 덧옷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동일한 것으로 이해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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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령과 같은 형태의 답호 유물은 강대호(1541~1642)의 묘에서 출토된 것이 가장 늦은 시기의 유물이며 무수창의 형태의 답호 유물은 탐릉군의 묘에서 출토된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ref> 『한국복식사전』, 민속원</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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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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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장[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ViewList.do?gbn=2&pageNo=1_1_1_1&searchCondition=%EB%8B%B5%ED%98%B8&region=2&s_kdcd=00&ccbaCndt=&stCcbaAsno=&endCcbaAsno=&stCcbaAsdt=&endCcbaAsdt=&s_ctcd=00&ccbaPcd1=99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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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h.aks.ac.kr/Edu/wiki/index.php/%EB%AC%B8%EC%88%98%EC%82%AC%EA%B7%B9%EB%9D%BD%EB%B3%B4%EC%A0%84%EA%B8%88%EB%8F%99%EC%95%84%EB%AF%B8%ED%83%80%EB%B6%88%EC%A2%8C%EC%83%81_%EB%B6%88%EB%B3%B5%EC%9E%A5%ED%92%88_%EB%8B%B5%ED%98%B8 문수사 금동여래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답호]는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D%95%B4%EC%9D%B8%EC%82%AC%EB%AA%A9%EC%A1%B0%EB%B9%84%EB%A1%9C%EC%B0%A8%EB%82%98%EB%B6%88%EC%A2%8C%EC%83%81_%EB%B6%88%EB%B3%B5%EC%9E%A5%ED%92%88_%EB%8B%B5%ED%98%B8 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에서 발견된 답호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유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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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관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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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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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인물 :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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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인물 : 왕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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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인물 : 왕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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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인물 : 백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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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tor-인물 : 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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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thing-복장 : 왕의 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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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thing-복장 : 왕세자의 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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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thing-복장 : 백관의 상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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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thing-복장 : 백관의 공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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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thing-복식 : 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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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문헌 :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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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문헌 : 『노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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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문헌 : 『박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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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문헌 : 『사례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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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문헌 : 『조선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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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문헌 : 『조선왕조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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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그림 : 『고종대한제국동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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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bject-유물 :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답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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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 ===관련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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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상식』 || 답호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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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  || 답호 || A는 B를 언급하였다 || A ekc:mention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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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대한제국동가도』  || 전복 || A는 B를 묘사하였다 || ekc:A depicts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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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그레]] || 답호 ||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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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과 유물을 통한 답호의 형태변화시기와 사라진 원인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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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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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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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tworkGraph | title=답호.l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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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네트워크 그래프에서 사용된 아이콘 이미지는 [http://dh.aks.ac.kr/Encyves/wiki/index.php/그래프용_아이콘 ''''한국 문화 엔사이브''''의 아이콘 모음 자료]를 활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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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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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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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n.wikipedia.org/wiki/History_of_Korea History of Korea]
 +
*[http://sillok.history.go.kr/main/main.do 조선왕조실록]
 +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Main.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05&cp_code=cp0213 한국의 고유복식]
 +
*[https://ja.wikipedia.org/wiki/%E9%9B%86%E5%8F%B2 集史]
 +
*[https://artsandculture.google.com/asset/the-king%E2%80%99s-excursion-on-a-royal-carriage-chae-yong-shin-1850-1941/XgHtvxw9S1U6Hw?hl=ko 『고종대한제국동가도』]
 +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7142  을미의제개혁]
 +
*[http://www.kocca.kr/cop/main.do 한국콘텐츠진흥원]
 +
*[http://www.emuseum.go.kr/main e뮤지엄]
 +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ViewList.do?gbn=2&pageNo=1_1_1_0&searchCondition=%EB%8B%B5%ED%98%B8&region=2&s_kdcd=00&ccbaCndt=&stCcbaAsno=&endCcbaAsno=&stCcbaAsdt=&endCcbaAsdt=&s_ctcd=00&ccbaPcd1=99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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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112.220.123.18:8980/front/km/view.do?levelId=km_009_0030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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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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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dh.aks.ac.kr/Edu/wiki/index.php/%EA%B3%A0%EB%A0%A4%EC%8B%9C%EB%8C%80_%ED%8F%AC(%E8%A2%8D) 고려시대 포(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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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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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호 Tr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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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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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ks9TN53Z0k?t=52 드라마「성균관스캔들」에서 답호]", ''YOUTUBE'', 작성일:2019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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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ml><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Gks9TN53Z0k" frameborder="0" allow="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allowfullscreen></iframe>
 +
</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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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호응용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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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sfd.co.kr/02_sub/01_sub_10.html?no=132&bbs_cmd=view&page=1&key=&keyfield=&category=9&bbs_code=Site_BBS_6&category=9 답호를 응용한 여성용 코트 디자인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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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references/>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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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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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 및 참조===
 +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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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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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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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오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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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랍집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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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례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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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어유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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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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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식』
 +
*『조선왕조실록』
 +
*국사편찬위원회. (2006).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김신애. (2014). 조선시대 남자 포에 나타난 무의 형태변화에 관한 연구
 +
*김영숙. (1999). 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
*김은정 염순정. (2018). 조선시대 답호의 조형특성을 응용한 디자인 연구. “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제21권 1호.”
 +
*김은정 윤은영. (2007). 조선 전기 답호 구성법의 일례. “韓國思想과 文化 第3 輯”
 +
*김정애. (2018). 조선시대 편복포의 구성요소별 형태변화 연구 -15〜18세기 출토복식을 중심으로-
 +
*김월계. (2009). 답호를 응용한 여성용 코트 디자인 연구
 +
*변지연. (2006). 더그레에 관한 연구
 +
*서정원. (2003). 노걸대 간본들을 통해 본 14~18세기의 복식관련 용어 비교 연구
 +
*송미경. (2009). 조선시대 답호(塔胡) 연구- 17세기 전기까지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Vol.59, No.10 (December 2009)
 +
*이봉숙. (1983). 답호에 관한 연구
 +
*장인우. (1995). 조선 중기 출토복식 중 일반복식에 관한 연구
 +
*홍나영. (2008). 출토복식을 통해서 본 조선시대 남자 편복포의 시대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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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복식콘텐츠]] [[분류:복식2020단국대]][[분류:신현영]]

2020년 12월 15일 (화) 14:35 기준 최신판

답호
(褡𧞤 塔胡 搭胡 褡胡 褡複 褡穫 褡護)
출처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Département des Manuscrits. Division orientale. Supplément persan 1113, fol. 234v (URL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Ghazan_et_%C3%96ldje%C3%AFtu.jpg)
대표명칭 답호
한자표기 褡𧞤 塔胡 搭胡 褡胡 褡複 褡穫 褡護
이칭별칭 탑호 탑홀 더그레 전복 호의 쾌자
착용신분 王, 朝臣, 下級群俗
착용성별 남성





개요

조선시대 남자포류에 대해 서술하는 문서

내용

조선시대 남자 포류 이해의 배경

시대적 배경

조선은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건국한 나라이다. 1392년부터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1910년까지 519년 동안 27명의 임금이 다스렸다. 조선은 성리학을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사상으로 삼아 유교 문화를 꽃피웠으며, 수많은 문화 유산을 남겼다. [1]

세계정세

"History of the World: Every Year", YOUTUBE, 작성일:2015년 12월 17일.

조선 왕조

유교적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근세사회를 열었던 조선 왕조의 계보.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며 건국한 조선은 1910년 순종을 마지막으로 27명의 왕이 승계하면서 519년간 존속되었다. [2]

1대 태조李成桂1392-13982대 정종李芳果1399-14003대 태종李芳遠1400-14184대 세종李祹1418-14505대 문종李珦1450-14526대 단종李弘暐1452-14557대 세조李瑈1455-14688대 예종李晄1468-14699대 성종李娎1469-149410대 연산군李㦕1494-150611대 중종李懌1506-154412대 인종李峼1544-154513대 명종李峘1545-156714대 선조李昖1567-160815대 광해군李琿1608-162316대 인조李倧1623-164917대 효종李淏1649-165918대 현종李棩1659-167419대 숙종李焞1674-172020대 경종李昀1720-172421대 영조李昑1724-177622대 정조李祘1776-180023대 순조李玜1800-183424대 헌종李烉1834-184925대 철종李昪1849-186326대 고종李㷩1863-190727대 순종李坧1907-1910

조선시대 남자 포류

조선시대 복식(服飾) 포(袍)의 문화는 예사상(禮思想)을 바탕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적 역할로 인하여 신분(身分)과 계급(階級)의 용도에 따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현상과 함께 다양한 형태의 포제(袍制)가 발달하게 되었다.[3]

조선시대 남자포류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연산군, 중종, 선조, 광해군, 영조, 정조, 고종, 순종대의 기록에 답호가 등장을 한다. 총 100여건에 160여회에 언급되고 있다.[4] 세종대에 처음 등장하는 답호는 『국조오례의』에 습(襲)에 사용되는 복식으로 원령(圓領), 답호(搭胡), 철릭과 함께 거론되며, 답호는 반비의(半臂衣)라는 부가설명이 있다.[5] 『조선왕조실록』에서 답호는 褡𧞤|塔胡|搭胡|褡胡|褡複|褡穫|褡護 등의 동음어로서도 게재하고 있다.

더그레

노걸대 간본들을 통해 본 14~18세기의 복식관련용어비교연구에는 최초로 “대탑호(大搭胡)ㆍ답호(褡胡)ㆍ탑호(搭胡)ㆍ답홀(褡忽)”등의 한자표기에 ‘더그레’라는 말이 한국어 설명으로 등장하였다고 하였다. [6] 노걸대에서 더그레는 원나라의 복식으로, 몽골어로는 더걸러이[degelei] 라고 되어 있다. 이후 더그레, 또는 더그래 라는 말로 시대와 함께 쓰임새가 점점 더 넓어지는데[7] 군인들이나 하급관리가 입던 겉옷을가리키다가 나중에는 답호를 가리키게 되었고, 조선 말기에는 배자, 전복이나 호의 같은 겉옷을 두루 포함하는 의미로 쓰였다. [8] 더그레를 “군인들이 입던 군복인 바, 각기 빛을 달리하여 소속 영문을 표시하였으므로 호의(號衣)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9] 조선 후기가 되면서 답호, 호의(號衣), 전복(戰服), 쾌자(快子), 배자(背子) 등의 개념과 명칭이 뒤섞여 더그레의 의미가 넓어졌다. 이에 포나 웃옷 위에 덧입는 겉옷을 통틀어 더그레라는 명칭이 되었다. [10]

『고종대한제국동가도』

『고종대한제국동가도(高宗大韓帝國動駕圖)』에서 보이는 답호류의 복식으로는 전복과 쾌자, 호의이며, 동가도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다. 兵曹判書, 訓鍊大將, 禁御營大將등의 將臣에서부터, 아래로는 旗首, 巡營手, 砲手 등까지 계급에 따라 다양하게 착용하였다. [11]

을미의제개혁

일반적으로는 갑신년인 1884년(고종 21), 갑오년인 1894년(고종 31), 을미년인 1895년(고종 31)에 단행된 근대적 개혁을 지칭한다. 이 시기 의제개혁의 저변에는 근대 서구문물의 유입과 채택이라는 기조가 깔려 있고, 이 점이 이전의 복식제도 개혁과 차별화된다. 을미년의 의제개혁은 3월 29일 반포된 칙령 제67호, 8월 10일 반포된 ‘조신朝臣 이하 복식’, 11월 15일의 단발령斷髮令으로 이어진다. 이 외, 4월 9일 칙령 제78호 ‘육군복장규칙陸軍服裝規則’과 4월 19일 칙령 제81호 ‘경무사이하복제警務使以下服制’가 반포되어 무관복武官服과 경관복警官服이 처음으로 완전한 서구식으로 바뀐다.[12]

복장유물

문수사 금동여래불상의 복장에서 나온 답호해인사 목조비로자나불에서 발견된 답호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유물로 알려져 있다.

지식 관계망

클래스

  • Actor-인물 : 왕
  • Actor-인물 : 왕세자
  • Actor-인물 : 왕세손
  • Actor-인물 : 백관
  • Actor-인물 : 나장
  • Clothing-복장 : 왕의 상복
  • Clothing-복장 : 왕세자의 상복
  • Clothing-복장 : 백관의 상복
  • Clothing-복장 : 백관의 공복
  • Clothing-복식 : 답호
  • Record-문헌 : 『집사』
  • Record-문헌 : 『노걸대』
  • Record-문헌 : 『박통사』
  • Record-문헌 : 『국조오례의』
  • Record-문헌 : 『노박집람』
  • Record-문헌 : 『상례비요』
  • Record-문헌 : 『역어유해』
  • Record-문헌 : 『사례편람』
  • Record-문헌 : 『조선상식』
  • Record-문헌 : 『조선왕조실록』
  • Record-그림 : 『고종대한제국동가도』
  • Object-유물 :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답호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답호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세자 답호 A는 B를 착용하였다 A ekc:wears B
왕세손 답호 A는 B를 착용한다 A ekc:wears B
백관 답호 A는 B를 착용한다 A ekc:wears B
나장 답호 A는 B를 착용한다 A ekc:wears B
왕의 상복 답호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왕세자의 상복 답호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상복 답호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백관의 공복 답호 A는 B를 일습으로 갖춘다 A dcterms:hasPart B
답호 곤룡포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답호 단령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답호 철릭 A는 B와 같이 착용하였다 A ekc:goesWith B
『집사』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노걸대』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노걸대』 철릭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박통사』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국조오례의』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노박집람』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상례비요』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역어유해』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사례편람』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조선상식』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조선왕조실록』 답호 A는 B를 언급하였다 A ekc:mentions B
『고종대한제국동가도』 전복 A는 B를 묘사하였다 ekc:A depicts B
『고종대한제국동가도』 호의 A는 B를 묘사하였다 ekc:A depicts B
『고종대한제국동가도』 쾌자 A는 B를 묘사하였다 ekc:A depicts B
해인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답호 답호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문수사 금동여래불 복장유물 답호 답호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더그레 답호 A와 B는 서로 관련이 있다 A edm:isRelatedTo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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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호 Tri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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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성균관스캔들」에서 답호", YOUTUBE, 작성일:2019년 8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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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네이버 지식백과」조선시대 (연표로 보는 한국사사전, 2015. 2. 10., 김한종, 이성호, 문여경, 송인영, 이희근, 최혜경, 박승범, 이승수)
  2. 국사편찬위원회, [국사], 교육과학기술부, 2011; 김아네스ㆍ최선혜 지음, 「고교생이 알아야 할 한국사 스페셜」 1, 신원문화사, 2009.
  3. 김정애. (2018). 「조선시대 편복포의 구성요소별 형태변화 연구」. P1.
  4. 송미경. (2009). 「조선시대 塔胡 연구 」.p.56
  5. 송미경. (2009). 「조선시대 塔胡 연구 」.p55-57
  6. 김인자ㆍ김효숙 (2020). 한국 전통복식 더그레의 현대화 연구. p154.
  7. Yu, H. K. (2002). Study of Costume of Korea history [韓國服飾史硏究]. Seoul, Republic of Korea: Ewha Woman's University Press. (Original work published 1975).
  8. Kim, I. J. (2016). Discovery of Deogeure. Seoul, Republic of Korea: Kyeong-ge
  9. Lee, P. C. (2003). Illustrated copy of Lee's Costumes [李朝服飾圖鑑]. Seoul, Republic of Korea: Dongmunsun. (Original work published
  10. 김인자ㆍ김효숙 (2020). 「한국 전통복식 더그레의 현대화 연구」. p154.
  11. 이봉숙 (1983). 「 褡𧞤에 關한 硏究」. p63.
  12. 최연우.「한국민속대백과사전」

참고문헌

인용 및 참조

  • 『집사』
  • 『노걸대』
  • 『박통사』
  • 『국조오례의』
  • 『노랍집람』
  • 『상례비요』
  • 『역어유해』
  • 『사례편람』
  • 『조선상식』
  • 『조선왕조실록』
  • 국사편찬위원회. (2006). 옷차림과 치장의 변천
  • 김신애. (2014). 조선시대 남자 포에 나타난 무의 형태변화에 관한 연구
  • 김영숙. (1999). 한국복식문화사전. 미술문화
  • 김은정 염순정. (2018). 조선시대 답호의 조형특성을 응용한 디자인 연구. “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제21권 1호.”
  • 김은정 윤은영. (2007). 조선 전기 답호 구성법의 일례. “韓國思想과 文化 第3 輯”
  • 김정애. (2018). 조선시대 편복포의 구성요소별 형태변화 연구 -15〜18세기 출토복식을 중심으로-
  • 김월계. (2009). 답호를 응용한 여성용 코트 디자인 연구
  • 변지연. (2006). 더그레에 관한 연구
  • 서정원. (2003). 노걸대 간본들을 통해 본 14~18세기의 복식관련 용어 비교 연구
  • 송미경. (2009). 조선시대 답호(塔胡) 연구- 17세기 전기까지 -. Journal of the Korean Society of Costume Vol.59, No.10 (December 2009)
  • 이봉숙. (1983). 답호에 관한 연구
  • 장인우. (1995). 조선 중기 출토복식 중 일반복식에 관한 연구
  • 홍나영. (2008). 출토복식을 통해서 본 조선시대 남자 편복포의 시대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