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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0일 (화) 10:31 판
2020년 2학기 한국 복식 콘텐츠 제작
- 소속: 단국대학교 대학원 전통의상학과
- 담당교수: 서동신
- 온라인 ZOOM을 활용한 수업방식
- 디지털 콘텐츠 편찬 방법을 습득하기 위한 개인주제는 본인의 석사학위 논문을 활용하고자 한다.
제목: 대한제국기 의례반차도의 서구식 경찰 제복[1]
개요
- 고종(高宗. 1852-1919)은 1897년 10월 13일에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치고 임금을 ‘황제(皇帝)’로 칭하며 근대적 국가로서의 대한제국(1897~1910)의 성립을 선포한다.[2]
- 전통복식사에서의 대한제국은 전통식에서 서구식으로 바뀌는 과도기적 특징이 있다.[3] 이러한 복식의 변화는 황제국의 위상에 맞는 근대국가를 형성하기 위하여 이루어진 다양한 시도 가운데 하나였으며, 서구식으로 변화되는 관원의 제복을 시작으로 점차 일반 복식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확대되었을 것이다.
- 우리나라 복식사에서 관복(官服)에 서구식 복식이 공식적으로 도입된 것은 1895년 갑오개혁기에 군인과 경찰의 제복(制服)이 규정되면서이다. 이에 서구식 복식이 도입된 이후부터 1910년 일제강점기 전까지의 기간에 국가에서 행해진 의례 행렬에 참가한 경찰의 복식을 의궤에 수록된 반차도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 의궤 어람용을 대상으로 하였고, 반차도는 위치와 신분을 기록하고 복식을 착장한 모습이 이미지로 묘사된 도상반차도로 한정하였다. 문헌자료는 『관보(官報)』를 중심으로 『칙령(勅令)』, 『의주(儀註)』, 『주본(奏本)』, 『일성록(日省錄)』, 『고종실록(高宗實錄)』 등을 참조하여 경찰 관제와 복제의 변화를 정리한다.
내용
근대 경찰관제와 복제의 변화
- 근대적 경찰제도는 크게 네 단계로 나뉘는데 1894년 경무청(警務廳) 체제로 시작되어, 1900년에 경부(警部) 체제로 바뀌며, 1902년에 경무청이 복설되고, 1907년 경시청(警視廳)이 설치된다.
- 복제는 1895년 4월 11일(음력) 칙령 제78호 ‘육군복장규칙(陸軍服裝規則)’으로 서구식 군인의 제복이 도입되고, 이어 1895년 4월 19일 칙령 제81호 ‘경무사이하 복제’가 제정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경찰 제복이 시작된다.
- 경찰 제복은 착용 상황에 따라 상복(常服)과 예복(禮服)으로 나뉘고, 상복은 계절에 따라 하복(夏服)과 동복(冬服)으로 나뉘며 상례시 부착하는 경관표상식도 있다.
- 상장(常裝)과 예장(禮裝)은 부속품을 포함하여 말하는 것으로, 상장은 상모(常帽), 상의[常衣], 바지[袴], 도(刀), 도대(刀帶), 도서(刀緖), 육혈포(六穴砲), 장갑[手套], 신[靴]로 구성되었고, 예장은 상장의 육혈포가 없고 식대(飾帶)가 있다.
경무청 체제:1894.07.14. ~ 1900.06.13.
- • 경무청 관제의 변천 과정
- 조선에 흩어져 있던 경찰 업무를 일원화하기 위하여 조선의 좌·우포도청을 합쳐 1894년 7월 14일 ‘경무청관제직장’과 ‘행정경찰장정(行政警察章程)’을 확정·반포하면서 경무청이 설립된다.
- 경무청의 경찰 계급은 경무사(警務使) 1명, 부관(副管) 1명, 경무관(警務官), 총순(總巡), 순검(巡檢) 약간명[幾員]을 두었다. 산하에는 총무국과 한성부 5부의 경찰지서를 두었고, 지서는 중(中)·동(東)·남(南)·서(西)·북(北)으로 지역을 나누어 한성부(漢城府) 5부(五部) 관내의 모든 경찰 사무를 맡아 관할하였다.
- • 경무청 복제의 제정과 개정
- 경무청이 창설되고 9개월이 지난 1895년 4월 19일 칙령 제81호 ‘경무사이하 복제’가 제정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경찰 제복이 시작된다. 『관보』를 통해 반포된 경찰 제복은 상복(常服)에 관해서만 <표>형식으로 규정되었고, 도식은 『의주』에서 볼 수 있다.
- 1895년 <표>에서 누락되었던 복식에 관한 제도는 1897년 복제에서 규정되고, 같은 해 6월 3일 상복(常服)과 하의(夏衣)의 착용 신분을 순검에까지 적용하며 확대된다. 10월 20일에는 칙령 제179호 ‘경관표상식(警官表喪式)’은 『의주』에 도식으로 부착방식을 설명한다.
- 1897년 1월 14일 누락되었던 제식들이 추가되고, 도식은 찾을 수 없다.
- 1899년 3월 18일에는 칙령 제6호 ‘경무사 이하 본청 및 각 항구 경무관의 예모(禮帽) 및 예장(禮裝)’으로 최초의 예복(禮服)을 제정하고, 26일 칙령 제9호 ‘경무사·경무관·총순의 복제 개정’으로 경무사·경무관·총순의 상복(常服)을 개정한다. 『관보』에 반포될 때 생략된 도식은 『주본』에 수록되었다.
<표 1> 경무청 관제와 복제의 변천 과정(1894.07.14. ~ 1900.06.13.) 분류 제정 칙령 내용 관보 관제
(官制)1894.07.14. - <경무청관제직장> 반포로 경무청 창설 개국503년 7월 14일 1895.04.29. 제85호 경무청관제 개국504년 5월 1일 1895.07.15. 제137호 경무청관제 개정 개국504년 7월 15일 복제
(服制)1895.04.19. 제81호 경무사 이하 복제 개국504년 4월 21일 1895.06.03. 제130호 경무사 이하 복제 각부 경무관 이하 순검 확대 적용 개국504년 6월 5일 1895.10.20. 제179호 警官表喪式 개국504년 10월 21일 1897.01.14. 제7호 경무사 이하 복제 개정 첨입 건양2년 1월 16일 1899.03.18. 제6호 경무사 이하 본청 각 항구 경무관의 예모·예장 광무3년 3월 28일 1899.03.26. 제9호 경무사·경무관·총순의 복제 개정
경부체제:1900.06.13. ~ 1902.02.18.
- • 경부 관제의 변천 과정
- • 경부 복제의 제정과 개정
- 경무청의 복제를 준용하여 10월 10일에 경부대신 이하 본부 및 각 항구 경무관·총순과 각 관찰부 총순의 예복과 상복을 규정한다. 이 시기의 특징은 관제의 변화로 계급이 세분화되면서 복식의 제식이 계급에 따라 차등을 두어 여러 단계로 규정된다는 점이다.
- 1901년 3월 27일 『관보』의 정오(正誤)를 통하여 예복 상의(上衣)에 관한 일부 수정과 첨입이 반포된다. 짧았던 경부체제에서의 경찰복은 아직 보고된 도식이 없어 당시의 제식으로만 그 형태를 고찰할 수 있다.
<표 2> 경부 관제와 복제의 변천 과정(1900.06.13. ~ 1902.02.18.) 분류 제정 및 시행 칙령 내용 관보 관제
(官制)제정: 1900.06.09. - 고종 경부 설치 지시 광무4년 6월 12일 제정: 1900.06.12.
시행: 1900.06.13.제20호 <경부관제> 반포 광무4년 6월 13일 제정: 1900.06.16. - (正誤)칙령 제20호 수정 광무4년 6월 16일 제정: 1900.09.25. 제35호 <경부관제개정건> 반포 광무4년 9월 25일 제정: 1900.12.19. 제51호 <경부관제중 개정건> 반포 광무4년 12월 21일 제정: 1901.11.17. - 포달(布達) 제77호. 제26조.
<궁내부관제 중 경위원 증치에 관한 건> 반포광무5년 11월 20일 복제
(服制)1900.10.10. 제37호 경부대신 이하 본부 및 각 항구 경무관 총순과
각 관찰부 총순에 예모·예장을 변통융희4년 6월 30일 제38호 경부대신 이하 본부 및 각 항구 경무관 총순과
각 관찰부 총순에 상모·상장을 변통1901.03.27. (正誤) 칙령 제37호 예복 상의 내용 수정과 첨입 광무5년 3월 27일
복설 경무청 체제:1902.02.18. ~ 1907.07.29.
- • 복설 경무청 관제의 변천 과정
- 고종은 경무청을 경부로 승격시키고 1년도 안된 1901년 3월 15일에 실효가 없고 폐만 더한다는 이유로 다시 경무청으로 격하시키면서 관제를 이전의 경무청에 의하여 시행하라고 명한다.[7]
- 1902년 <경무청관제>가 반포되면서 경무청이 복설된다.[8] 초기에는 이전 경부와 마찬가지로, 국내 일체의 경찰 사무를 보았는데, 1905년 2월 내부에 속하여 한성만 관할하는 것으로 축소된다. 1906년 2월에는 다시 경무청 관제가 개정되면서 경찰국이 없어지고 인원은 대폭 줄어든다. 또한 경무청의 궁내경무서는 1901년 11월 17일 궁내부에 경위원이 별도로 설치되어 궁내부관제에 속하게 되면서 1902년부터의 경무청 관제에는 보이지 않는다.
- • 복설 경무청 복제의 제정과 개정
- 복설된 경무청은 1902년 8월에 경부의 복제를 변통하여 예복과 상복을 규정하고,1905년 7월과 1907년 3월에 이를 개정한다.
- 1905년의 복제는 경시청체제에 들어선 이후인 1907년 10월에 예복과 상복을 개정할때[9]까지 유지된다.
<표 3> 복설 경무청 관제와 복제의 변천 과정(1902.02.18. ~ 1907.07.29.) 분류 제정 및 시행 칙령 내용 관보 관제
(官制)제정: 1901.12.08.
시행: 1902.02.18.제3호 <경무청관제> 반포 광무6년 2월 18일 제정: 1902.02.28. - (正誤)칙령 제3호 수정 광무6년 2월 28일 제정: 1902.03.18. - 칙령3호 <경무청관제> 중 첨입수정 광무6년 3월 18일 제정: 1902.08.20. - 칙령3호 <경무청관제> 중 첨입수정 광무6년 8월 20일 제정: 1905.02.26.
시행: 1905.03.01.제16호 <경무청관제> 반포 광무9년 3월 1일 제정: 1905.04.10. (正誤) 칙령 제16호 수정 광무9년 4월 10일 제정: 1906.02.12.
시행: 1906.02.17.제8호 <경무청관제개정 건> 반포 광무10년 2월 17일 복제
(服制)1902.08.03. 제11호 경무사 이하 각 관찰부 총순의 예모·예장 변통 광무6년 8월 6일 제12호 경무사 이하 각 관찰부 총순의 상모·상장 변통 1905.07.22. 제39호 경무사이하 총순의 예모·예장 제식 개정 광무9년 7월 27일 제40호 경무사이하의 상모·상장·하복 제식 개정 1907.03.19. 제10호 경무사 이하 예모·예장 제식 중 개정건 광무11년 3월 21일 제11호 경무사 이하 간수장 상모·상장·하복 제식 개정 1907.06.22. - 칙령 제11호·제40호 중 첨입·수정·삭제 광무11년 6월 22일
경시청 체제:1907.07.29. ~ 일제강점기 이전
- • 경시청 체제에서 시행된 의례는 아직 복제가 발표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행사이므로 이전 체제의 복식 제도가 적용된다. 따라서 경시청 체제는 관제와 복제의 변화를 간략히 <표>로 대체한다.
<표 4> 경시청 관제와 복제의 변천 과정(1907.07.29. ~ 일제강점기 이전) 분류 제정 및 시행 칙령 내용 관보 관제
(官制)1907.07.27. 제1호 <경시청 설치>경무청관제 중 개정의 건 광무11년 7월 19일 1907.12.13. 제39호 경시청관제 광무11년 12월 18일 1907.12.27. 제65호 경시청관제 중 개정의 건 융희원년 12월 29일 1908.07.20. 제48호 칙령 제39호 개정 융희2년 7월 23일 1908.02.17. 제13호 칙령 제39호 개정 융희3년 2월 20일 1908.02.04. 제13호 칙령 제39호 개정 융희4년 2월 5일 1908.07.01. 제33호 칙령 제39호 개정 융희4년 6월 30일 복제
(服制)1907.10.15. 제28호 경시총감 및 경시부감 예모 예장 융희원년 10월 18일
대한제국기 의궤 반차도에 나타난 경찰신분 및 복식
의궤별 반차도 수록 현황
- • 1895년부터 1910년까지의 대한제국기 의궤를 전수 조사한 결과 문반차도, 글월반차, 도상반차도를 통해 의례의 행렬이 확인되는 것은 총29건이었다. 이 중, 도상반차도가 수록된 의궤는 총19건이었으며, 경찰이 등장하지 않는 1건을 제외하면 총18건이 분석대상이다.
- • 의례별로는 국장 3건, 부묘 1건, 존숭·추존 5건, 책례 4건, 어진 관련 2건, 대례(大禮:등극) 1건, 가례(嘉禮:혼례) 1건, 영건(營建) 1건이다. 세부의례 반차도를 기준으로 보면, 1897년 명성황후의 빈전을 경운궁으로 이봉(移奉)하는 상황을 그린 「빈전이봉경운궁시반차도」(『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에 수록)부터 1907년 『(헌의대원왕순목대원비완효헌왕의왕비)추봉책봉의궤』에 수록된 3건의 반차도까지 총33건이다.
<표 5> 의궤별 내용 및 도상반차도 수록 현황 의례 성서연대 서명 세부의례 반차도 행사일자 국장
(國葬)1898 『명성황후국장도감의궤』 ① 빈전이봉경운궁시반차도 1896.09.04.(음 07.27) ② 명성황후 발인반차도 1897.11.21.(음 10.27) 대례
(大禮:등극)1898 『[고종]대례의궤』 ① 대례시 황제옥보내출 예원구단반차도 1897.10.12.(음 09.17) ② 대례시 황후책보 예궐반차도 ③ 대례시 황제옥보 황태자책보 예궐반차도 ④ 대례시 명헌태후옥보 황태자비책보 예궐반차도 1897.10.14.(음 09.19) 존숭
추존1899 『[태조장조정조순조]추존시의궤』 ① 태조고황제 신위판봉 예원구교시시반차도 1899.11.16.(음 10.14) ② 금차추존교시시책보 예태묘반차도 존숭
추존1900 『[인조대왕추상·인렬왕후추상
장렬왕후추상·효종대왕추상
인선왕후추상황제가상
명헌태후가상·명성왕후추상]
존호도감의궤』① 인조대왕·인렬왕후·장렬왕후·효종대왕·인선왕후추상존호책보 예태묘반차도 1900.02.04.(음 01.05) ② 명헌태후가상존호책보 예궐반차도 1900.02.09.(음 01.10) ③ 황제가상존호책보 예궐반차도 1900.02.17.(음 01.18) ④ 명성황후추상존호책실 예경효전반차도 어진 1900 『영정모사도감의궤』 ① 선원전 영정신본봉안시반차도 1900.02.04.(음 01.05)[10] 영건 1900 『영희전영건도감의궤』 ① 영희전 영정이봉교시시반차도 1900.05.28.(음 05.01) 책례 1900 『의왕영왕책봉의궤』 ① 영왕책인 예궐반차도 1900.08.17.(음 07.23) 어진 1901 『영정모사도감의궤』 ① 태조고황제·숙종대왕·영조대왕·정조선황제·순조숙황제·문조익황제·헌종대왕영정이봉교시시반차도 1901.06.13.(음 04.27) 책례 1901 『순비책봉의궤』 ① 책비책인 예궐반차도 의궤원문 1901.10.15.
고종실록 1901.10.14.[11]존숭
추존1902 『[(문조신정황후·고종명헌태후
·명성황후)상호도감의궤』① 문조익황제·신정익황후·추상존호책보 예태묘반차도도 1902.02.13.(음 01.06) ② 명헌태후가상존호책보 예궐반차도 1902.02.22.(음 01.15) ③ 황제가상존호책보 예궐반차도 1902.02.25.(음 01.18) ④ 명성황후추상존호책보 예궐반차도 1902.03.04.(음 01.25) 책례 1903 『[순비]진봉황귀비의궤』 ① 진봉황귀비책인 예궐반차도 1903.12.24.(음 11.06) 국장 1905 『[효정왕후]국장도감의궤』 ① 대행태후발인반차도 1904.03.14.(음 01.28) 국장 1904 『[순명왕후]국장도감의궤』 ① 순명비발인반차도 1905.01.03.(음 1904.11.28) 부묘 1906 『효정왕후부묘도감의궤』 ① 효정왕후부태묘반차도 1906.02.17.(음 01.24) 가례
(혼례)1906 『[순종순종비]가례도감의궤』 ① 가례반차도 1907.01.24.(음 1906.12.11) 책례 1907 『융희양황후복위시
책례도감의궤』① 진봉황후책보 예궐반차도 1907.08.27.(음 07.19) ② 추봉황후책보 예궐반차도 존숭
추존1907 『(고종)존봉도감의궤』 ① 황태자책봉책보 예궐반차도 1907.09.07.(음 07.30) ② 태황제상호책보 예궐반차도 1907.09.09.(음 08.02) 존숭
추존1907 『(헌의대원왕순목대원비
·완효헌왕의왕비)추봉책봉의궤』① 완효헌왕추봉시 책인 예궐반차도 1907.09.30.(음 08.23) ② 의왕비책봉시 금책 예궐반차도 ③ 헌의대원왕·순목대원비추봉시 금인 예궐반차도
반차도에 나타난 경찰신분 및 복식의 특징
반차도에 나타난 경찰 제복 고증
지식관계망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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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정보
항목A | 항목B | 관계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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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기 의례 반차도의 서구식 경찰 제복 | 경무청 관제 | A는 B를 포함한다 | dcterms:hasPart |
대한제국기 의례 반차도의 서구식 경찰 제복 | 경부 관제 | A는 B를 포함한다 | dcterms:hasPart |
대한제국기 의례 반차도의 서구식 경찰 제복 | 복설 경무청 관제 | A는 B를 포함한다 | dcterms:hasPart |
대한제국기 의례 반차도의 서구식 경찰 제복 | 경무청 복제 | A는 B를 포함한다 | dcterms:hasPart |
대한제국기 의례 반차도의 서구식 경찰 제복 | 경부 복제 | A는 B를 포함한다 | dcterms:hasPart |
대한제국기 의례 반차도의 서구식 경찰 제복 | 복설 경무청 복제 | A는 B를 포함한다 | dcterms:hasPart |
경무청 관제 | 경무관 | A에 B가 소속된다 | foaf:member |
경무청 관제 | 총순 | A에 B가 소속된다 | foaf:member |
경무청 관제 | 순검 | A에 B가 소속된다 | foaf:member |
예장(禮裝) | 예복(禮服) | A는 B와 같거나 유사하다 | owl:sameAs |
상장(常裝) | 상복(常服) | A는 B와 같거나 유사하다 | owl:sameAs |
경무관 | 상복(常服) | A는 B를 착용한다 | ekc:wears |
경무관 | 예복(禮服) | A는 B를 착용한다 | ekc:wears |
경관표상식 | 명성황후 발인반차도 | A는 B에서 사용되었다 | ekc:isUsedIn |
경관표상식 | 대행태후 발인반차도 | A는 B에서 사용되었다 | ekc:isUsedIn |
경관표상식 | 순명비 발인반차도 | A는 B에서 사용되었다 | ekc:isUsedIn |
주석
- ↑ 박선희, 「대한제국기 의례반차도의 경찰 제복 고증」, 석사학위논문, 단국대학교, 2019.
- ↑ 『高宗實錄』 光武 34년(1897) 10월 13일(음력 9.17).
- ↑ 최규순, 「1905~1906년 서구식 대례복제도 개정에 나타난 일제의 한국병탄 준비-일본 서구식 대례복 제도와의 비교를 통하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2011, 5-6쪽.
- ↑ 손영상, 「갑오개혁 이후 근대적 경찰 제도의 정립과 운영」, 석사학위 논문, 서울대학교. 2005, 46-47쪽.
- ↑ 『高宗實錄』 光武 4년(1900) 6월 9일: “詔曰. 更張之初 警務廳雖屬內部直轄 而現今國內警察事務漸次殷繁 因時制宜 不容少緩 另設警部 新定官制 令政府不日會議以入.”
- ↑ 『高宗實錄』 光武 4년(1900) 6월 12일; 『관보』 1900년(광무 4) 6월 13일 칙령 제20호 <경부관제>. 본 제도의 제정일은 6월 12일이지만, 제46조에서 ‘반포일부터 시행한다’고 했으므로 제도의 시행은 6월 13일부터이다. 또한 황궁보호를 위하여 1900년에는 경부 산하에 궁내경무서, 1901년에는 궁내부 산하에 경위원을 설치한다.
- ↑ 『高宗實錄』高宗 38년(1901) 3월 15일.
- ↑ 『관보』 1902년(광무 6) 2월 18일. 본 <경무청관제>는 왕의 재가를 받은 날짜가 1901년 12월 8일이다. 단, 관제 제34조에 “本令은 頒布日로부터 施行事”라 명시하였고, 『관보』를 통한 공포가 1902년 2월 18일에 이루어졌으므로, 제도의 시행은 이날부터 실시된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 ↑ 『관보』 隆熙 1년(1907) 10월 18일.
- ↑ 반차도에 기록된 제목이 없어 의궤본문의 ‘時日’에 근거함.
- ↑ 『순비책봉의궤』의 ‘時日’에서는 1901년 10월 15일(음력 9월 4일), 『고종실록』에서는 1901년 10월 14일(음력 9월 3일)로 기록되어 있음.
참고문헌
『고종실록(高宗實錄)』, 『관보(官報)』, 『의궤(儀軌)』, 『의주(議奏)』, 『일성록(日省錄)』, 『주본(奏本)』, 『칙령(勅令)』
경찰청, 『韓國警察服制史』, 민속원, 2015.
김정민, 「구한말 경찰복 연구」, 석사학위논문, 이화여자대학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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