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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 박사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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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4=<div style="text-align:justify">지난 가을 저는 의료비로 북쪽 지방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한 번 더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선교사편지단체태그|[[선교부]]}}에서 ‘제가 가야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여러 곳에서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만 직접 찾아가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보고 그곳의 사역을 지도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편지단체태그|[[감리교 선교부]]}}의 {{선교사편지인물태그|[[아펜젤러]]}}와 함께 지난 4월 17일 여행길에 올랐는데 이번 여행 기간은 최소한으로 잡으면 두 달,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하면 석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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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4=<div style="text-align:justify">지난 가을 저는 의료비로 북쪽 지방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한 번 더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선교부에서 ‘제가 가야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여러 곳에서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만 직접 찾아가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보고 그곳의 사역을 지도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교사편지단체태그|[[감리교 선교부]]}}의 {{선교사편지인물태그|[[Appenzeller, Henry G.|아펜젤러]]}}와 함께 지난 4월 17일 여행길에 올랐는데 이번 여행 기간은 최소한으로 잡으면 두 달,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하면 석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div>
 
|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한국에서 여행을 하는 것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여행하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두 바퀴 달린 마차도 그럭저럭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곳에서는 조랑말을 타고 다니는 것이 유일한 교통수단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 마차를 타볼 수 없다고 한다면, 저는 걸어 다니는 편을 택하려 하고 있습니다. 조랑말은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그 위에 짐을 실어 놓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차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는 것 말고는 저는 한국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있는 한국인들은 다 각자 자기의 이부자리와 여러 권의 책, 옷가지를 들고 다녀야 합니다. 석 달 동안 돌아다니면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을 떠나 한국의 옛 수도였던 {{선교사편지공간태그|[[송도]]}}에 들린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송도까지는 이틀 정도 소요되며 50리가 약간 넘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몇 사람을 통해서 벌써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는데, 세례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 7명과 영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2명에게 세례를 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서울에서 세례 받았던 사람과 더불어 이제 송도에는 세례 받은 사람들의 수가 3명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책자와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7월이나 8월에 다시 올 테니 그때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제가 다시 가게 될 때는 도착일을 그곳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 주려 합니다. 4~5일 동안 그 사람들과 함께 있으려 합니다.</div>
 
|번역문5=<div style="text-align:justify">한국에서 여행을 하는 것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여행하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두 바퀴 달린 마차도 그럭저럭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곳에서는 조랑말을 타고 다니는 것이 유일한 교통수단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 마차를 타볼 수 없다고 한다면, 저는 걸어 다니는 편을 택하려 하고 있습니다. 조랑말은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그 위에 짐을 실어 놓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차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는 것 말고는 저는 한국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있는 한국인들은 다 각자 자기의 이부자리와 여러 권의 책, 옷가지를 들고 다녀야 합니다. 석 달 동안 돌아다니면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을 떠나 한국의 옛 수도였던 {{선교사편지공간태그|[[송도]]}}에 들린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송도까지는 이틀 정도 소요되며 50리가 약간 넘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몇 사람을 통해서 벌써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는데, 세례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 7명과 영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2명에게 세례를 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서울에서 세례 받았던 사람과 더불어 이제 송도에는 세례 받은 사람들의 수가 3명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책자와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7월이나 8월에 다시 올 테니 그때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제가 다시 가게 될 때는 도착일을 그곳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 주려 합니다. 4~5일 동안 그 사람들과 함께 있으려 합니다.</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저는 지금 {{선교사편지공간태그|[[장연]]}}으로 가는 길인데 그곳에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2명 있고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보다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과 며칠간 함께 있으려 합니다. 그러면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례를 주고 성찬식도 집례하고자 합니다. 저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 있는데 지난밤에 한 사람을 만났고 오늘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려 하고 있습니다. S jiu(? 지명불명-역자 주)에도 만나 볼 사람이 한 두 사람 있습니다. </div>
 
|번역문6=<div style="text-align:justify">저는 지금 {{선교사편지공간태그|[[장연]]}}으로 가는 길인데 그곳에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2명 있고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보다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과 며칠간 함께 있으려 합니다. 그러면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례를 주고 성찬식도 집례하고자 합니다. 저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 있는데 지난밤에 한 사람을 만났고 오늘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려 하고 있습니다. S jiu(? 지명불명-역자 주)에도 만나 볼 사람이 한 두 사람 있습니다. </div>
|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그리고 나서는 {{선교사편지공간태그|[[평안도]]}}로 가려 합니다. 이곳에 있는 26명의 사람들이 제게로 {{선교사편지인물태그|[[두 명의 대표]]}}<ref>백홍준 외 한 사람으로 추정</ref>를 보내서는 “이곳으로 와서 세례를 줄 수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교회 건물이 세워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현금 20만냥을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적당한 건물을 구입해서 시설을 갖추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넉넉히 빌려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년 간 대출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빌리고 싶어 하는 돈의 금액은 아직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20만냥에서 30만냥 정도, 혹은 200달러나 그 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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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7=<div style="text-align:justify">그리고 나서는 {{선교사편지공간태그|[[평안도]]}}로 가려 합니다. 이곳에 있는 26명의 사람들이 제게로 두 명의 대표<ref>백홍준 외 한 사람으로 추정</ref>를 보내서는 “이곳으로 와서 세례를 줄 수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교회 건물이 세워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현금 20만냥을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적당한 건물을 구입해서 시설을 갖추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넉넉히 빌려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년 간 대출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빌리고 싶어 하는 돈의 금액은 아직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20만냥에서 30만냥 정도, 혹은 200달러나 그 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div>
|번역문8=<div style="text-align:justify">이보다 더 {{선교사편지공간태그|[[북쪽에 있는 개천]]}}에서는 2~30여명의 사람들이 현금 15만 냥을 모은 다음에 우리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사님께서 보시는 대로 길이 열리고 있으며 정부도 우리가 하는 일을 눈감아주고 있습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딘스모어]]}} 씨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아펜젤러]]}} 씨에게 “정부에서 우리의 이번 여행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제가 서울을 떠나던 아침, {{선교사편지인물태그|[[조병식(趙秉式)|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독판]]}}이 유익한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카드를 제게 보내주었다”고 했습니다.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것을 보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독판은 우리 사역에 크게 반대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좀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관리들과 부딪치는 일만 없다면 정부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펜젤러 씨와 저는 이러한 것을 인지하고 있어서, 신중하게 행동하려 하고 있습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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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8=<div style="text-align:justify">이보다 더 북쪽에 있는 개천에서는 2~30여명의 사람들이 현금 15만 냥을 모은 다음에 우리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사님께서 보시는 대로 길이 열리고 있으며 정부도 우리가 하는 일을 눈감아주고 있습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Dinsmore, Hugh A.(단시모)|딘스모어]]}} 씨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ppenzeller, Henry G.|아펜젤러]]}} 씨에게 “정부에서 우리의 이번 여행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제가 서울을 떠나던 아침, {{선교사편지인물태그|[[조병식|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독판]]}}이 유익한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카드를 제게 보내주었다”고 했습니다.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것을 보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독판은 우리 사역에 크게 반대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좀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관리들과 부딪치는 일만 없다면 정부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Appenzeller, Henry G.|아펜젤러]]}} 씨와 저는 이러한 것을 인지하고 있어서, 신중하게 행동하려 하고 있습니다.</div>
 
|번역문9=<div style="text-align:justify">이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기도 했고 길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영을 받았습니다.</div>
 
|번역문9=<div style="text-align:justify">이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기도 했고 길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영을 받았습니다.</div>
 
|번역문10=안녕히 계십시오.
 
|번역문10=안녕히 계십시오.

2020년 9월 13일 (일) 23:02 기준 최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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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8년 4월 22일)
식별자 L18880422UTOE
한글명칭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8년 4월 22일)
영문명칭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April 22, 1888)
발신자 Underwood, Horace G.(원두우)
수신자 Ellinwood, Frank F.
작성연도 1888년
작성월일 4월 22일
작성공간 해주
자료소장처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번역문출처 김인수,『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Dr. Horace G. Underwood
Haiju, Korea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해주공간
April 22, 1888 1888년 4월 22일
Dear Dr . Ellinwood,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Last fall I took a trip North at the expense of the Medical. Now it appeared for me to take another trip & the mission decided that I must go. We had heard about the work that was going on in different places & it was thought necessary to go and see what had been done & to direct the work. I therefore started with Mr. Appenzeller of the Methodist Mission on April 17 for a trip that will take at the at the lowest calculation 2 months & in all probability three. Travelling in Korea is very different to travels in Japan or even in China. Pony-riding seems to be the only practical method though I think that a two-wheeled vehicle would not go badly.
지난 가을 저는 의료비로 북쪽 지방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을 한 번 더 다녀와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선교부에서 ‘제가 가야한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여러 곳에서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만 직접 찾아가서 어떤 일들이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보고 그곳의 사역을 지도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리교 선교부단체아펜젤러인물와 함께 지난 4월 17일 여행길에 올랐는데 이번 여행 기간은 최소한으로 잡으면 두 달,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하면 석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If this cannot be used within a few years, I shall try & take to going my trips on foot. The ponies cannot go fast & the pack-ponies go rather slowly. I am now living as a Korean with the exception of tea & coffee. Every Korean has to carry his own bedding & this with books & clothing for three months makes up my load. We considered that we were doing well in going from Seoul to Song Do, the ancient capital, in 2 days a distance of a little more than fifty miles. Here a little work had started through some of our Christians in Seoul. I only stopped one day I saw seven applicants for Baptism & inquirers & of these I was permitted to baptise two. This, with one formerly Baptised in Seoul makes three baptised Christians in Songdo. I talked with all the men whom I saw, left tracts & copies of the scriptures with them promises to go down & see them again in July or August. There are now in this city alone over 20 who desire Baptism or over 70 who are interested. When I go down again I will let them know beforehand, just what day I will reach them & will stay with them 4 or 5 days.
한국에서 여행을 하는 것은 일본이나 중국에서 여행하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두 바퀴 달린 마차도 그럭저럭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이곳에서는 조랑말을 타고 다니는 것이 유일한 교통수단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 마차를 타볼 수 없다고 한다면, 저는 걸어 다니는 편을 택하려 하고 있습니다. 조랑말은 느릿느릿 움직이는데 그 위에 짐을 실어 놓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차를 마시고 커피를 마시는 것 말고는 저는 한국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있는 한국인들은 다 각자 자기의 이부자리와 여러 권의 책, 옷가지를 들고 다녀야 합니다. 석 달 동안 돌아다니면서 일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을 떠나 한국의 옛 수도였던 송도공간에 들린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서울에서 송도까지는 이틀 정도 소요되며 50리가 약간 넘습니다. 서울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 몇 사람을 통해서 벌써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루밖에 머물지 않았는데, 세례를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 7명과 영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중의 2명에게 세례를 줄 수 있었습니다. 이전에 서울에서 세례 받았던 사람과 더불어 이제 송도에는 세례 받은 사람들의 수가 3명이 되었습니다. 저는 제가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소책자와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7월이나 8월에 다시 올 테니 그때 보자고 약속했습니다. 제가 다시 가게 될 때는 도착일을 그곳 사람들에게 미리 알려 주려 합니다. 4~5일 동안 그 사람들과 함께 있으려 합니다.
I am now on my way to Chang-you where we have 11 baptised Christians & there are more applicants. I shall stay with them for a couple of days, baptise those who are ready & administer the Communion while there. There are one or two to see here. I saw one last night & more are coming again to-night. Then at S-jiu(?) there are one or two to be seen.
저는 지금 장연공간으로 가는 길인데 그곳에 세례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2명 있고 세례를 받고자 하는 사람들도 그보다 많이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과 며칠간 함께 있으려 합니다. 그러면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세례를 주고 성찬식도 집례하고자 합니다. 저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한 두 사람 있는데 지난밤에 한 사람을 만났고 오늘밤 더 많은 사람들이 오려 하고 있습니다. S jiu(? 지명불명-역자 주)에도 만나 볼 사람이 한 두 사람 있습니다.
From there I shall push on to Pyang An. At this place there are 26 men who sent up two delegates to ask me to go down 6 baptise them. They sent their names down to me. They want a Church Building. They will raise 200,000 cash & want us to loan them enough more to purchase a suitable building & fix it up. They want the loan for three years & we to hold the deeds. The amount that they desire to borrow I do not yet know but believe it to be about 200,000 or 300,000 cash or about $200.00 or a little more. What ought we to do in these cases.
그리고 나서는 평안도공간로 가려 합니다. 이곳에 있는 26명의 사람들이 제게로 두 명의 대표[1]를 보내서는 “이곳으로 와서 세례를 줄 수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은 교회 건물이 세워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현금 20만냥을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적당한 건물을 구입해서 시설을 갖추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가 돈을 넉넉히 빌려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3년 간 대출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해 주어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빌리고 싶어 하는 돈의 금액은 아직 정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20만냥에서 30만냥 정도, 혹은 200달러나 그 보다 조금 더 많은 돈을 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There were the people at Kaichun, a little further north raised 150,000 cash among 20 or 30 people & asked us to help. Thus you see the way is opening & the government is winking at our work. Mr. Dinsmore told Mr. Appenzeller that the government had been talking a good deal about our taking this trip & yet on the morning of my leaving Seoul the President of the Foreign Office sent round his card wishing me a pleasant trip. Although this is but a small matter, it looks as though he were not very much opposed to our work. As long as we go a little carefully & do not run against the officials I think the government will not say anything. Mr. A. and I both realize this & desire to be careful.
이보다 더 북쪽에 있는 개천에서는 2~30여명의 사람들이 현금 15만 냥을 모은 다음에 우리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박사님께서 보시는 대로 길이 열리고 있으며 정부도 우리가 하는 일을 눈감아주고 있습니다. 딘스모어인물 씨는 아펜젤러인물 씨에게 “정부에서 우리의 이번 여행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제가 서울을 떠나던 아침,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독판인물이 유익한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의 카드를 제게 보내주었다”고 했습니다.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것을 보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독판은 우리 사역에 크게 반대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좀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관리들과 부딪치는 일만 없다면 정부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펜젤러인물 씨와 저는 이러한 것을 인지하고 있어서, 신중하게 행동하려 하고 있습니다.
We are meeting with a pleasant reception all along the road though there have been some heavy rains in these parts & the roads are not the best.
이 지역에 비가 많이 내리기도 했고 길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가는 곳마다 따뜻한 환영을 받았습니다.
Yours Most Sincerely, 안녕히 계십시오.
H. G. Underwood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인물 올림.


주석

  1. 백홍준 외 한 사람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