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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9일 (수) 03:04 판
목차
정의
사회적 통념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금지된 노래. 또는 그러한 정책.
내용
금지곡의 시작
'금지곡'은 한국 역사에서 대중가요가 처음으로 등장한 1920년대부터 있었다. 아리랑, 봉선화, 눈물젖은 두만강 등 민족감정을 고취하는 노래가 일본에 의해 '금지곡 1호'가 되었다. 해방 후 분단 정부의 수립과 함께 월북 작가들의 곡은 무조건 금지곡이 되었으며 1967년에 '음반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며 사전 심의가 법제화되어 금지곡을 지정할 길을 열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를 조금이라도 풍자하거나 비방한다는 '혐의'가 있으면 창작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금지곡' 딱지를 붙였다. 이런 악습은 사전 심의가 위헌 판정을 받은 1996년까지 이어졌다.
유신정권과 금지곡
현재 금지곡으로 지정된 것은 북한의 사상이 담긴 노래 일절이다. 그러나 이러한 명확하고 납득할만한 이유로 금지한 것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수많은 노래들이 금지되었던 시절이 있는데, 바로 유신정권 시절이다. 1975년 6월 5일 문화공보부가 '공연활동 정화대책'을 발표한 후 21일에 한국예술문화윤리위원회(현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재심의를 거쳐 1차로 43곡을 금지곡으로 발표한 데 이어 추가 심사를 거쳐, 같은 해 동안 모두 223곡을 금지곡으로 발표했다. 왜색풍, 창법 저속, 불신 풍조 조장, 퇴폐성 등이 이유였다.[1] 당시 독재체제에 대한 반발심, 민주화에 대한 열망, 인간다운 삶 등을 노래에 담아 표현하는 이들이 많았고, 또 그런 의도로 만들어진 노래가 아님에도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그들의 모임에서 자주 불리운 노래들이 있었다. 정권에서는 이에 대해 '불온'하다고 정의 내리고 노래를 듣고 부르는 일 뿐만 아니라 음악 방송 출연 및 음반 매매까지 탄압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유행하던 웬만한 곡들은 모두 금지곡에 포함되었다. 한국 노래뿐만 아니라 외국가요도 마찬가지였다.
대표적인 금지곡[2]
- 양희은-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아침이슬,상록수
- 김추자-거짓말이야
- 패티김-무정한 배
- 신중현-미인
- 이미자-동백 아가씨,기러기 아빠
- 이금희-키다리 미스터 김
건전가요[3]
당시 정권은 특정 노래를 금지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모든 가수들의 앨범에 반드시 건전가요를 한곡씩 수록하게끔 했다. 건전가요는 한국의 군부독재 제4공화국과 제5공화국 시기 강제로 지정, 보급한 노래. 건전한 대중가요라는 뜻과는 달리 공익을 빙자한 어용 및 정권 찬양 노래다. 건전가요는 대개 군사정권에 대한 찬양·고무를 담고 있었으며, 직접적인 정치성이 없는 경우에도 대한민국을 예찬하는 정도의 내용은 들어갔다. 대표적인 건전가요
에피소드 [4]
- 앞서 언급된 [[[양희은]]]의 아침이슬은 금지곡에도, 건전가요에도 들어가있다. 1973년 건전가요로 선정되었으나, 긴급조치 9호에 의해 금지곡이 되었다. 곡에 등장하는 태양이 김일성 혹은 공산주의을 연상시키고, 또는 태양은 대한민국 정부, 묘지는 민중 혹은 민주주의가 죽은 대한민국, 한낮의 찌는 더위는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 '나'는 민주화 운동가라는 해석이 붙는 등 온갖 유언비어가 떠돌았다.[5]
- 거짓말이야는 거짓말이야, 사랑도 거짓말 울음도 거짓말이라는 가사가 당시의 정치 현실을 빗댄 것으로 비춰졌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 심지어 김추자는 이 노래를 불렀다는 이유만으로 중앙 정보부에 끌려갔다.[6]
- 기러기 아빠는 "아빠가 월남 파병 용사로 죽어서 돌아오지 못하는 걸 빗댔다."는 이유로 금지곡 목록에 올랐다.
- 미인은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네'라는 가사를 운동권에서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자꾸만 하고 싶네[7]라고 개사해 유신 정권을 비판하는 노래로 부르면서 금지곡이 되었다.
- 키다리 미스터 김'이다. 박정희 본인의 키가 158cm로 매우 단신이었기 때문에 "박정희의 키작음을 빗댔다"는 이유로 금지곡 목록에 올랐다. 사상이나 정치색과는 일절 상관없이 이 노래가 박정희를 놀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멀티미디어
동영상
박정희 정권시절 금지된 노래들
7080 금지곡 모음, 세시봉에서 활동한 조영남, 이장희, 송창식, 한대수, 서유석 등의 이름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