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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강화지역에 최초로 전기가 도입되었다. | 1934년 강화지역에 최초로 전기가 도입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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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95쪽 | ||
+ | 강화에 전기가 언제 공급되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없지만, 대도시에도 1910년대에 들어 전기가 공급되었던 것을 미루어 보면 강화와 같은 도서 지방에의 전기 공급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천전기주식회사가 있었지만 1924년부터는 경성전기주식회사가 인천에 송전을 하는 상황이었고 가설료와 전기요금이 비싸 일반인은 전기사용이 쉽지 않았다. 물ㄹ론 군청이나 경찰서 학교 전신을 취급하던 우편국 등의 행정기관에는 이보다 일찍 전기가 공급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강화 주민에게 전기가 공급되었 1930년대 추정 | ||
+ | 1934년 경성전기 주식회사에서 강화의 부내면과 선원면 및 김포군 월곶면에 전기공급을 시작했으며 전화는 1920년대 중반까지 우편소에만 설치되었던 것 같다. 1924년까지 군청에서 전화가 가설되지 않아 필요할 때마다 우편소에 가서 전화하는 불편 때문에 전주공사에 착공하였다는 사실은 기타 관공서나 회사, 일부 개인에 대한 전화 가설은 1920년대 후반 이후에나 가능하였을 것이다. 즉 강화가 섬이므로 송전이나 전화의 가서이 육지보다 늦었얻 ㄴ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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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강화에 전등, 전화 가설기성회조직 ", 동아일보, 1934년 2월 1일자 기사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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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랫동안 현안중에 잇든 전등 전화 가설 문제는 갈스록 일반의 기대가 많아 유지 최창희씨와 수씨의 발기로 문제를 토의하랴고 지난 입육일 오후 사시부터 강화양조회사회의실에서 군수조충현씨의 사회와 경과보고로 토의회를 열엇든바 만장일치로 기성회조직에 일치하야 초안중이던 회의규약을 통과하고 부서와 위원을 선정하엿다는데 이문제는 강화발전상 큰 문제의 하나로 금년 중에는 실현의 가능성이 잇다는데 과반 경전으로서 영업과장의 실지조사까지 잇엇다하야오랫동안 현안중의 전등, 전화가설 문제는 이로써 일단락을 보게되엇다한다. 회장 황우천/위원 김근호 | ||
+ | * "강화도전기금년내실현", 동아일보, 1934년 3월 24일자 기사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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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7일 (월) 19:50 기준 최신판
사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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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px | |
사건명 | 강화_전기도입 |
유형 | |
국가 | 대한민국 |
시대 | 1930년대(일제강점기) |
성격 | |
발생일시 | 1934년 |
종결일시 | - |
해설
요약
1934년 강화지역에 최초로 전기가 도입되었다.
신편강화사
595쪽 강화에 전기가 언제 공급되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없지만, 대도시에도 1910년대에 들어 전기가 공급되었던 것을 미루어 보면 강화와 같은 도서 지방에의 전기 공급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인천전기주식회사가 있었지만 1924년부터는 경성전기주식회사가 인천에 송전을 하는 상황이었고 가설료와 전기요금이 비싸 일반인은 전기사용이 쉽지 않았다. 물ㄹ론 군청이나 경찰서 학교 전신을 취급하던 우편국 등의 행정기관에는 이보다 일찍 전기가 공급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강화 주민에게 전기가 공급되었 1930년대 추정 1934년 경성전기 주식회사에서 강화의 부내면과 선원면 및 김포군 월곶면에 전기공급을 시작했으며 전화는 1920년대 중반까지 우편소에만 설치되었던 것 같다. 1924년까지 군청에서 전화가 가설되지 않아 필요할 때마다 우편소에 가서 전화하는 불편 때문에 전주공사에 착공하였다는 사실은 기타 관공서나 회사, 일부 개인에 대한 전화 가설은 1920년대 후반 이후에나 가능하였을 것이다. 즉 강화가 섬이므로 송전이나 전화의 가서이 육지보다 늦었얻 ㄴ것이다.
기사 원문
- "강화에 전등, 전화 가설기성회조직 ", 동아일보, 1934년 2월 1일자 기사
오랫동안 현안중에 잇든 전등 전화 가설 문제는 갈스록 일반의 기대가 많아 유지 최창희씨와 수씨의 발기로 문제를 토의하랴고 지난 입육일 오후 사시부터 강화양조회사회의실에서 군수조충현씨의 사회와 경과보고로 토의회를 열엇든바 만장일치로 기성회조직에 일치하야 초안중이던 회의규약을 통과하고 부서와 위원을 선정하엿다는데 이문제는 강화발전상 큰 문제의 하나로 금년 중에는 실현의 가능성이 잇다는데 과반 경전으로서 영업과장의 실지조사까지 잇엇다하야오랫동안 현안중의 전등, 전화가설 문제는 이로써 일단락을 보게되엇다한다. 회장 황우천/위원 김근호
- "강화도전기금년내실현", 동아일보, 1934년 3월 24일자 기사
"오래전부터 숙제로 내려오는 강화도전등가설문제는 금년일월부터 급속도로 진전을 보게되여 지난 일월에 시내유지들의 망라로 전등전화가설기성회를 조직하고 활동한다함은 누보하엿거니와 관게당국에서도 이문제에잇어 신중고려한끝에 강화도의 발전을 크게깨닫고 지난 십구일부로 경전영업과 장도준일랑씨로서 당시진정위원이던 황우천김근호양씨에게 금년말까지에는 전기공급을 실현하도록 노력하겟다는 정식공문이 왓으므로 오래동안 문제이든 강화전기문제는 이로써 실현화하게 되어 지방발전도급속도로 문화의혜택을 입어 면목일신한 강화도의 융자도 금년안으로 실현을 보게되엇다하야 일반은 적지않은 기대를 가지고잇다는데 확문한바에 의하면 부평강화간의 선로연장공사에 약구만원의 공비로 오는 사월부터 공사를 시작하야 금년동기까지는 전등을 켜게되리라한다."
관련 영상
출처
기여
일자 | 역할 | 이름 | 전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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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 | 편집 | 이수민 | 인문정보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