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xml-stylesheet type="text/css" href="https://dh.aks.ac.kr/Edu/wiki/skins/common/feed.css?303"?>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8B%A0%EB%8C%80%EB%8F%99%EC%82%AC%ED%9A%8C%EB%A1%A0</id>
		<title>신대동사회론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8B%A0%EB%8C%80%EB%8F%99%EC%82%AC%ED%9A%8C%EB%A1%A0"/>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title=%EC%8B%A0%EB%8C%80%EB%8F%99%EC%82%AC%ED%9A%8C%EB%A1%A0&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08T09:53:1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23.13</generator>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title=%EC%8B%A0%EB%8C%80%EB%8F%99%EC%82%AC%ED%9A%8C%EB%A1%A0&amp;diff=74587&amp;oldid=prev</id>
		<title>Tutor: 새 문서: __NOTOC__ &lt;center&gt; &lt;font size=&quot;6&quot;&gt;新‘大同社會’論&lt;/font&gt;&lt;ref&gt;『전통문화』 44호 (전통문화연구회, 2018. 4.)&lt;/ref&gt;&lt;br/&gt; &lt;font size=&quot;4&quot;&gt;- 데이터 사회에 투영...</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title=%EC%8B%A0%EB%8C%80%EB%8F%99%EC%82%AC%ED%9A%8C%EB%A1%A0&amp;diff=74587&amp;oldid=prev"/>
				<updated>2018-06-06T23:26: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새 문서: __NOTOC__ &amp;lt;center&amp;gt; &amp;lt;font size=&amp;quot;6&amp;quot;&amp;gt;新‘大同社會’論&amp;lt;/font&amp;gt;&amp;lt;ref&amp;gt;『전통문화』 44호 (전통문화연구회, 2018. 4.)&amp;lt;/ref&amp;gt;&amp;lt;br/&amp;gt; &amp;lt;font size=&amp;quot;4&amp;quot;&amp;gt;- 데이터 사회에 투영...&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__NOTOC__&lt;br /&gt;
&amp;lt;center&amp;gt;&lt;br /&gt;
&amp;lt;font size=&amp;quot;6&amp;quot;&amp;gt;新‘大同社會’論&amp;lt;/font&amp;gt;&amp;lt;ref&amp;gt;『전통문화』 44호 (전통문화연구회, 2018. 4.)&amp;lt;/ref&amp;gt;&amp;lt;br/&amp;gt;&lt;br /&gt;
&amp;lt;font size=&amp;quot;4&amp;quot;&amp;gt;- 데이터 사회에 투영한 공자(孔子)의 ‘대동(大同)’ -&amp;lt;/font&amp;gt;&lt;br /&gt;
&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amp;lt;p style=&amp;quot;text-align:right&amp;quot;&amp;gt;&lt;br /&gt;
김현(金炫)&amp;lt;br/&amp;gt;&lt;br /&gt;
한국학중앙연구원 인문정보학 교수&amp;lt;br/&amp;gt;&lt;br /&gt;
[http://www.juntong.or.kr/ 전통문화연구회] 동양고전정보화연구소 소장&amp;lt;br/&amp;gt;&lt;br /&gt;
&amp;lt;/p&amp;gt;&lt;br /&gt;
&amp;lt;br/&amp;gt;&lt;br /&gt;
&lt;br /&gt;
‘대동(大同)’이란 공자(孔子)가 꿈꾸었던 이상사회(理想社會)의 이름이다. 그곳에서는 노인들이 돌아갈 곳이 있고, 장성한 이들이 쓰일 곳이 있으며, 어린이들이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날 곳이 있다. 누구나 일하여 먹을 수 있고, 그 능력이 없어도 사회가 보살펴서 모두가 함께 하는 모습을 그는 ‘대동(大同)’이라고 일컬었다. (《禮記》 禮運 大同篇)&lt;br /&gt;
&lt;br /&gt;
전통시대의 유교 지식인들은 꿈꿔 왔던 이 ‘대동사회(大同社會)’를 이 글에서 언급하는 것은 그저 옛 이야기를 하고자 함이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대동사회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지혜와 능력을 모아 추구해야 할 미래 비전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공자(孔子)의 시대 이후 지난 세기(世紀)까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들이 우리 세계에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21세기의 대동사회를 가능하게 할 새로운 환경일 수 있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1. 첫 번째 키워드: 데이터 자유이용(自由利用)==&lt;br /&gt;
&lt;br /&gt;
내가 생각하는, 21세기 대동사회의 촉진제는 바로 ‘데이터의 자유이용(自由利用)’이다. &lt;br /&gt;
&lt;br /&gt;
세계가 이미 그 영역에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하는 ‘4차 산업혁명 사회’는 서로 이질적(異質的)이라고 생각되던 것들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거기에서부터 새로운 부가가치(附加價値)를 만들어내는 사회라고 한다. 그러한 융합(融合)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데이터이다. &lt;br /&gt;
&lt;br /&gt;
10년 전 어머니의 뇌 건강 진단을 위해 이름 있는 신경외과(神經外科)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그 때 의사(醫師)가 했던 말. “저희 병원은 노인성(老人性) 뇌질환(腦疾患) 환자 3,000 명의 임상(臨床)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병원보다 훨씬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습니다.” 그의 말에 수긍하기보다는 의아한 생각이 들이었다. “우리나라의 환자만해도 수십만 명이 넘는다는데......” &lt;br /&gt;
&lt;br /&gt;
오늘날, 혼자서 자기만의 데이터를 부둥켜안고 그것을 재화(財貨)로 쓰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공개(公開)함으로써 다른 데이터와의 융합 효과를 추구할 때 더 많은 부가가치를 유발할 수 있다고 하는 사고가 확산되어 가고 있다. 병원들은 아직도 갖가지 이유를 들어 이 변화에 동참하는 것을 주저하지만, 정치가와 공무원들조차도 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政府)는 2013년에 이미 「공공 데이터의 제공 및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을 공표하여 공공 분야의 데이터부터 자유이용(自由利用)의 문을 열어 가기 시작했다. 선진국의 범주에 드는 나라들이 데이터 자유이용 정책을 앞 다투어 추진하고 있는 이유는 그것이 데이터 기반 산업융합(産業融合)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lt;br /&gt;
&lt;br /&gt;
데이터 자유이용의 기술적, 산업적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그 논의가 무성하므로 이 지면에서 특별히 언급하지 않겠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데이터 자유이용’이야말로 가장 유망한 청년실업(靑年失業) 문제 해소책일 수 있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청년실업의 해결책을 ‘누군가가 월급(月給)을 주는 일자리 수 늘리기’로 간주하는 한, 해결은커녕 날이 갈수록 문제의 심각성만 깊어갈 것이다. 지금까지 인간 사회에서 행해지던 기존의 ‘일’의 상당 부분이 소멸하는데, 그 ‘일’을 위한 ‘일자리’가 늘어날 리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또 하나 분명한 사실은 ‘현재(現在)의 것을 지키는 데 최적화(最適化) 되어 있는 공무원(公務員)들의 사고(思考)’로는 새로운 일거리를  만드는 일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가능성 있는 해법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스스로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 내게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들에게 자유롭게 금맥을 캐낼 수 있는 데이터의 노다지를 열어 주고, 그 안에서 상식(常識) 밖의 모험을 벌일 수 있게 하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데이터 융합을 통한 새로운 부가가치의 창출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뻔한 수준의 접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상식으로 보면 매우 엉뚱하고 이상한 시도에서 의외의 가치가 만들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4 산업혁명 사회를 견인할 데이터 기반 산업융합의 촉진 전략은 모든 유용한 데이터를 누구든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는 환경에서, 이상한 꿈을 꾸는 젊은이들이 마음껏 자신이 꿈꾸는 세계를 만들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2. 두 번째 키워드: 기본소득(基本所得)==&lt;br /&gt;
&lt;br /&gt;
기본소득(基本所得)이란 정부가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일정한 급여를 지급하는 것이다. 기본소득 제도의 필요성과 정당성, 그리고 그 방법에 대한 논의는 유보하기로 한다. 여기서 언급하고자 나의 소견은, 기본소득제의 시행이 데이터의 융합에 의한 산업융합 촉진에 긍정적 기여를 할 것이라는 점이다.&lt;br /&gt;
 &lt;br /&gt;
데이터의 개방이 충분한 수준에 이르고, 그 환경에서 젊은이들이 각자의 개성(個性)에 따라 열정(熱情)을 쏟아 새로운 융합의 결과물을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 중의 많은 부분은 단시간 내에 경제적 부가가치의 생산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미래(未來)의 가치를 좇아 새로운 것을 만들어냈어도, 현재(現在)의 소비자들이 그것을 사 주지 않으면 돈벌이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들이 만들어낸 새로운 융합 데이터의 과실은 직접 그 어려운 일을 해낸 당자들보다 그 결과물을 또 하나의 인풋(Input) 데이터로 활용할 후발주자(後發走者)들이 거두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lt;br /&gt;
&lt;br /&gt;
모든 사람들이 당장의 돈벌이가 되는 일만 추구한다면, 세상을 바꿀 데이터 융합은 결코 확산되어 갈 수 없다.  미래가치(未來價値)에 대한 투자는 당장의 돈벌이에 매달리지 않을 여유가 있을 때 이루어질 수 있다. 정부는 공공재원(公共財源)으로 미래가치를 일으키는 사업을 진흥시킬 수 있다는 미망(迷妄)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무엇이 미래가치인지 판단할 능력이 없는 이들이 (결과적으로) 과거회귀적(過去回歸的)인 일에 재원을 낭비하기보다는, 젊은이들로 하여금 지금은 이상하게 보여도 미래에 쓸모 있을 일을 도모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나은 미래정책(未來政策)일 수 있다.&lt;br /&gt;
&lt;br /&gt;
한국의 청년들이 개성과 창의성,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닦은 지식의 활용을 도모하기보다는 안정적 고정급여(固定給與)를 받을 수 있는 정규직(正規職)에 목매는 이유는 소득 면에서 그것이 아니면 ‘무(無)’일 수밖에 없는 시스템 속에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제도는 꿈을 가진 젊은이들이 그들의 일을 포기하지 않게 할 최소한의 안전장치(安全裝置)로 기능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기본소득에 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은 그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놀고먹으려는 도덕적(道德的) 해이(解弛)’에 빠지게 하리라는 염려 때문이다.  반면, 기본소득제 도입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직장이 없어서) 놀고먹을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될 것이므로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한다. 나의 주장은 ‘놀면서도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마련되어야 이 사회의 숨통이 트이고 미래가 열린다는 것이다. &lt;br /&gt;
&lt;br /&gt;
== 3. 세 번째 키워드: 인성교육(人性敎育)==&lt;br /&gt;
&lt;br /&gt;
전통문화(傳統文化) 데이터와 씨름하는 여러 명의 젊은이들에게 물어보았다. “보수도 없는데 지금 그 일 (데이터를 수집하고 가공하는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일이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lt;br /&gt;
&lt;br /&gt;
이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융합 데이터는 디지털 세상에서 현재(現在)와 과거(過去)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가상현실(假想現實)로 구현될 것이고, 그 결실은 학교교육(學校敎育)뿐 아니라 가상현실 게임과 관광 레저 산업에서도 응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당장의 돈벌이로 이어지지 않는다. 지식(知識)과 산업(産業)의 융합은 어느 한 순간에 한두 사람의 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전문성(專門性)을 달리하는 여러 단계를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큰돈을 벌기까지, 그 사이에는 돈벌이에 연연해하지 않는 이들의 사회봉사적(社會奉仕的) 노력이 있어야 한다.&lt;br /&gt;
 &lt;br /&gt;
내가 기본소득제에 찬성하는 이유는 이같은 젊은이들이 현재의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일을 지속하는 데 그것이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지 소액(少額)의 기본소득금액이 이들의 생계(生計)를 도울 것이라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기본소득은 불로소득(不勞所得)이 아니라 이들이 하고 있는 ‘사회적 봉사’에 대한 보상(報償)으로 간주할 수 있다. 관점을 바꾸어, 기본소득의 수혜(受惠)를 받기 때문에 그에 대한 사회적 의무(義務)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로 이행(移行)하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내가 이 사회로부터 ‘소득 제로(0)’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추구할 수 있는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로써 그 혜택에 보답한다는 사고는 한 달에 몇 십만 원 받는다고 해서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나’라는 개인, 나의 일, 우리 사회, 그리고 그 사회의 미래 비전 사이의 관련성(關聯性)을 성찰(省察)할 수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스스로 이러한 사고와 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 교육(敎育)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하는 인성교육(人性敎育)은 바로 이러한 사고를 촉진하는 교육을 말한다. 권위에 복종하고 가진 자들의 대의명분에 속아주기를 강요하는, 그런 식의 ‘국민정신교육(國民精神敎育)’이 아니다. &lt;br /&gt;
&lt;br /&gt;
==4. 신대동사회(新大同社會)의 융합(融合) 프레임워크==&lt;br /&gt;
&lt;br /&gt;
내가 가치(價値)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좇아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 그 일이 만족스런 돈벌이로 이어지지 못해도 그로 인해 나의 가족까지 곤궁하게 만들 불안(不安)이 없는 사회, 내가 성공하지 못해도 누군가는 내가 한 것을 가지고 더 가능성 있는 모험을 할 수 있고, 그래서 공익(公益)에 대한 기여(寄與)를 했다는 자부심(自負心)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주어지지 않은 것에 불만스러워하기보다 항상 새로운 기회가 있음에 감사(感謝)하고 분발(奮發)하여 성장(成長)할 수 있는 사회. 2500년 전 공자(孔子)가 그린 대동사회(大同社會)를 21세기의 데이터 사회에 투영해 본 그림은 이런 것이다. 그리고  ‘데이터 자유이용’, ‘기본소득’, ‘인성교육’을 그와 같은 21세기 신대동사회(新大同社會)의 요건으로 상정해 보았다.&lt;br /&gt;
 &lt;br /&gt;
이 세 가지는 이미 우리 사회의 여러 그룹에서 공공정책(公共政策)의 키워드로 강조되고 있는 것들이다. 문제는 그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주장하는 이들이 다른 것에는 무관심하거나 심지어는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산업융합(産業融合)에 대한 기대를 한껏 높이면서도 그것을 대기업(大企業)이나 할 수 있는 기술적 과제로만 보려는 시각, 기본소득은 좌파(左派)의 포퓰리즘으로, 인성교육은 우파(右派)의 체제 수호 전략으로 의심하는 사고 속에서는 각각의 집단이  강조하는 미래전략(未來戰略)의 어느 것도 발전의 걸음을 내딛기 어려울 것이다. 이질적(異質的)인 것 사이의 소통(疏通)과 융합(融合)이 미래사회의 발전전략임을 강조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 그것에 대비한다는 정책들 사이의 소통과 융합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인 듯이 보인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Tutor</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