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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DH 교육용 위키 - 사용자 기여 [ko]</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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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Hulbert,_Homer_B.</id>
		<title>Hulbert, Homer 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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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7-16T13:34: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 인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이미지=Hulbert.jpg&lt;br /&gt;
|이미지출처=&amp;quot;[https://ko.wikipedia.org/wiki/호머_헐버트 &amp;lt;html&amp;gt;&amp;lt;online style=&amp;quot;color:purple&amp;quot;&amp;gt;『Wikipedia』&amp;lt;sup&amp;gt;the free encyclopedia&amp;lt;/sup&amp;gt;&amp;lt;/onlin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호머 헐버트 &amp;lt;br/&amp;gt; Homer Bezaleel Hulbert&lt;br /&gt;
|한글명= 허할보&lt;br /&gt;
|영문명=Homer Bezaleel Hulbert&lt;br /&gt;
|한자명=許轄甫&lt;br /&gt;
|가나명=&lt;br /&gt;
|이칭=허할보(許轄甫), 흘법(訖法), 허흘법(許訖法), 할보(轄甫)&lt;br /&gt;
|성별=남&lt;br /&gt;
|생년=1863년 1월 26일 &lt;br /&gt;
|몰년=1949년 8월 5일&lt;br /&gt;
|소속= 미국 회중교회 목사(1908-), 미국 감리회 선교사(1893-1907)&lt;br /&gt;
|직업=선교사, 목사, 교육자&lt;br /&gt;
|내한 연도=1886년&lt;br /&gt;
|출신지=미국 버몬트 주 뉴헤이븐(Vermont New Haven)&lt;br /&gt;
|출신학교=유니언 신학교(Union Theological Seminary)&lt;br /&gt;
|아버지=칼빈 헐버트(Calvin Butler Hulbert)&lt;br /&gt;
|어머니=메리 우드워드 헐버트(Mary Woodward Hulbert)&lt;br /&gt;
|배우자=메이 헐버트(Hope Elizabeth May)&lt;br /&gt;
|자녀=슬하 3남 2녀 &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기본 정보==&lt;br /&gt;
* 헐버트(Homer B. Hulbert)는 1863년 1월 26일 미국 동북부 지방 버몬트 주(Vermont) 뉴헤이븐(New Have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칼빈 헐버트(Calvin B. Hulbert)는 미들베리 대학의 총장이었으며, 어머니 매리 우드워드(Mary Woodward Hulbert)는 다트머스 대학(Dartmouth College)의 창립자 엘리저 윌록(Eleazar Wheelock)의 외 증손녀이다. &lt;br /&gt;
* 1884년 다트머스 대학을 졸업한 헐버트는 1883년 가을 길고 흰 망토를 입고, 머리는 상투와 갓끈의 기이한 차림을 한 조선인을 보았다. 힐버트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았으나 조선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lt;br /&gt;
* 1886년 길모어, 벙커등과 함께 조선에서 육영공원에 교사 파견해달라는 요청으로 조선에 들어왔다. 한국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育英公院)에서 교사직으로 영어를 가르쳤다. 1893년에 헐버트는 미국 감리교회의 선교사 파송 준비과정을 마치고 선교사 자격으로 다시 조선에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였다.&lt;br /&gt;
&lt;br /&gt;
==상세 정보==&lt;br /&gt;
*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와 함께 배재학당 내에 있는 삼문 출판사를 운영하였다. 올링거 선교사가 시작한 영문 잡지 ''The Korea Repository''의 발행을 재개하고,  한국의 문화, 종교, 농업, 언어 등 한국에 대해 정리한 글을 여러 매체에 기고했다. 그는 한국어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활판소에서 일하던 주시경은 헐버트와의 교제를 통해 띄어쓰기와 외래어표기에 대한 감각을 얻었다. 1892년 「The Korean Alphabet」을 시작으로 한글과 한국 문화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1901년부터 1906년까지 ''The Korea Review''를 편집하고 발간하여 한국의 다양한 면모를 서구 사회에 알리고, 한국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는 역할을 했다. 대한제국의 몰락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한 민족이 역사와 문화가 다른 민족에게 지배당하는 것에 대한 부당함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고종의 밀사로 활약했으나 실패하고 미국으로 추방당한다. 그는 미국에서도 한국의 분리독립과 일제의 침탈행위의 부당함을 호소하며 대중에게 한국을 알리는 역할을 쉬지 않는다.「대한제국 멸망사 The Passing of Korea」와 「대한역사」도 그런 맥락에서 저술했다. &lt;br /&gt;
&lt;br /&gt;
* 육영공원 학교는 고종이 신교육을 통해 나라의 안녕과 주권을 갖춘 부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세워진 교육기관이다. 귀족들에게 미국의 신교육을 전하기 위해 한국 주재 미국 공사인 푸트(Lucius H. Foote)에게 미국인 교사 3명을 보내 줄 것을 요청한다. 미국 국부성 교육국장 존 이튼(John Eaton)은 보고를 받고, 헐버트의 아버지에게 그의 아들을 한국에 보낼 것을 요청 하였다. 헐버트는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1886년 7월 4일 길모어(George W. Gilmore), 벙커(Dalzell A. Bunker)와 함께 교사로서 수학, 자연과학, 역사, 정치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고종은 교과서 집필을 위해 헐버트에게 『사민필지』를 저술하도록 하였다. 이 책에는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순서로, 위치, 지형, 기후, 산업, 인구, 교육, 종교, 언어 등 구체적인 각 나라의 상황들이 서술된 순 한글 교과서이다.&lt;br /&gt;
&lt;br /&gt;
*광복 후 1949년 내한했으나 일주일 만에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는 &amp;quot;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땅에 묻히길 원하노라.&amp;quot;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소원대로 양화진에 묻혔다. 그의 장례는 사회장으로 치뤄졌으며, 1950년 3월 1일 대한민국 정부는 외국인 최초로 그에게 건국공로훈장 태극장(독립장)을 추서했다.&lt;br /&gt;
&lt;br /&gt;
*연관편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Mrs.Hepburn (18880206)|1888년 02월 06일 언더우드가 헵번 여사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611)|1888년 06월1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825)|1888년 08월2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218)|1889년 02월1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526)|1889년 05월2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Allen,_Frances_A.</id>
		<title>Allen, Frances A.</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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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7-16T12:40:5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상세정보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_인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이미지=&lt;br /&gt;
|이미지출처=&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Allen, Frances A. &lt;br /&gt;
|한글명=알렌 부인&lt;br /&gt;
|영문명=Frances Ann Allen&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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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Allen, Horace N.|알렌(H. N. Allen)]]&lt;br /&gt;
|자녀= Harry E. Allen, Morris Allen &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기본정보==&lt;br /&gt;
알렌과 같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하고 1883년 10월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파송된 남편과 함께 상해에 정착했다.&lt;br /&gt;
산후 건강이 좋지 않아 상해를 떠날 것을 고려하던 중, 한국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얻은 알렌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lt;br /&gt;
그리고 한 달 후 알렌 부인과 어린 아들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낯선 환경에서 두 아들을 양육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하이오 주 여선교회가 파송한 여선교사로 개척임무를 맡았다.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시작한 고아학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는 등 도움을 주었고, 알렌이 왕립병원의 의사로 궁궐에 드나들 때 가족이 함께 입궁하기도 해서 고종 내외의 호의를 많이 입었다. 이후 알렌이 외교관으로 전직하고 나서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사회의 안주인 역할을 했다.   &lt;br /&gt;
==상세정보==&lt;br /&gt;
*관련편지1: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2월18일)]]&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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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_인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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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자=&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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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알렌 부인&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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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기본정보==&lt;br /&gt;
알렌과 같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하고 1883년 10월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파송된 남편과 함께 상해에 정착했다.&lt;br /&gt;
산후 건강이 좋지 않아 상해를 떠날 것을 고려하던 중, 한국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얻은 알렌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lt;br /&gt;
그리고 한 달 후 알렌 부인과 어린 아들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낯선 환경에서 두 아들을 양육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하이오 주 여선교회가 파송한 여선교사로 개척임무를 맡았다.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시작한 고아학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는 등 도움을 주었고, 알렌이 왕립병원의 의사로 궁궐에 드나들 때 가족이 함께 입궁하기도 해서 고종 내외의 호의를 많이 입었다. 이후 알렌이 외교관으로 전직하고 나서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사회의 안주인 역할을 했다.   &lt;br /&gt;
==상세정보==&lt;br /&gt;
**관련편지1: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2월18일)]]&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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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 인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이미지=Ml_person_allen.gif&lt;br /&gt;
|이미지출처= &amp;quot;[https://ko.wikipedia.org/wiki/Horace_Newton_Allen wikipedia]&amp;quot;, &amp;lt;html&amp;gt;&amp;lt;online style=&amp;quot;color:purple&amp;quot;&amp;gt;『Wikipedia』&amp;lt;sup&amp;gt;the free encyclopedia&amp;lt;/sup&amp;gt;&amp;lt;/onlin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호러스 뉴턴 알렌&amp;lt;br/&amp;gt;Horace Newton Allen&lt;br /&gt;
|한글명=호러스 뉴턴 알렌&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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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장로교&lt;br /&gt;
|직업=선교사, 외과의사&lt;br /&gt;
|내한 연도=1884년&lt;br /&gt;
|출신지= 미국&lt;br /&gt;
|출신학교=Ohio Wesleyan University, &amp;lt;br&amp;gt;University of Miami School of Medicine&lt;br /&gt;
|증조할아버지=허버 시니어(Herber Allen, Sr., 1743-1782)&lt;br /&gt;
|형=이튼(Ethan Allen, 1738-89)&lt;br /&gt;
|아버지=호러스(Horace Allen, 1804-1893)&lt;br /&gt;
|어머니=제인(Jane MontgomeryRiley, 1817-1891)&lt;br /&gt;
|배우자= [[Allen, Frances A.|프랜시스 메신저(Frances Ann Messenger, 1859-1948)]]&lt;br /&gt;
|자녀=Harry Allen, Morris Allen&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기본 정보==&lt;br /&gt;
호러스 뉴턴 앨런(Horace Newton Allen, 1858년 4월 23일~1932년 12월 11일)은 미국의 조선 주재 외교관이자 의료 선교사로, 한국어 이름은 안련(安連)이다. &lt;br /&gt;
1858년 4월 23일 미국 오하이오 주의 델라웨어(Delaware)에서 부친 호러스(Horace Allen, 1804-93)와 어머니 제인(Jane Montgomery Riley, 1817-91) 사이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알렌 집안은 버몬트 주의 명문 집안이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허버 시니어(Herber Allen, Sr., 1743-82)는 소령의 계급으로 미국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다. 형 이튼(Ethan Allen, 1738-89)은 남북전쟁에서 영국으로부터 뉴욕 주 동북쪽의 포트 타이콘더로가(Fort Ticonderoga)를 빼앗는 큰 공을 세웠다. 그의 부친은 농장을 경영하며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부농이었으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lt;br /&gt;
알렌은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어 1883년 10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다. 선교 위원회의 허가를 얻은 후 1884년 9월 20일에 내한하였다. 당시 조선 법은 외국 종교를 금지함에 따라 서울에서 주한 미국공사관의 의료관으로 선교활동을 하였다.&lt;br /&gt;
&lt;br /&gt;
==상세 정보==&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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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_인물|인물 데이터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이미지=&lt;br /&gt;
|이미지출처=&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Allen, Frances A.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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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Allen, Horace N.|알렌(H. N. Allen)]]&lt;br /&gt;
|자녀= Harry E. Allen, Morris Allen &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기본정보==&lt;br /&gt;
알렌과 같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하고 1883년 10월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파송된 남편과 함께 상해에 정착했다.&lt;br /&gt;
산후 건강이 좋지 않아 상해를 떠날 것을 고려하던 중, 한국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얻은 알렌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lt;br /&gt;
그리고 한 달 후 알렌 부인과 어린 아들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낯선 환경에서 두 아들을 양육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하이오 주 여선교회가 파송한 여선교사로 개척임무를 맡았다.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시작한 고아학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는 등 도움을 주었고, 알렌이 왕립병원의 의사로 궁궐에 드나들 때 가족이 함께 입궁하기도 해서 고종 내외의 호의를 많이 입었다. 이후 알렌이 외교관으로 전직하고 나서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사회의 안주인 역할을 했다.   &lt;br /&gt;
==상세정보==&lt;br /&gt;
**관련편지1: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2월18일)]]&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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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llen, Frances A.</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Allen,_Frances_A."/>
				<updated>2019-07-16T12:38: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이미지=&lt;br /&gt;
|이미지출처=&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Allen, Frances A. &lt;br /&gt;
|한글명=알렌 부인&lt;br /&gt;
|영문명=Frances Ann Allen&lt;br /&gt;
|한자명=&lt;br /&gt;
|가나명=&lt;br /&gt;
|이칭=Frances Ann Messenger/Fannie Allen &lt;br /&gt;
|성별=여자&lt;br /&gt;
|생년=1859년 1월 18일&lt;br /&gt;
|몰년=1948년 6월 3일&lt;br /&gt;
|소속=장로교&lt;br /&gt;
|직업=선교사&lt;br /&gt;
|내한 연도=1884년 10월&lt;br /&gt;
|출신지=오하이오 주&lt;br /&gt;
|출신학교=웨슬리안 대학&lt;br /&gt;
|할아버지=&lt;br /&gt;
|할머니=&lt;br /&gt;
|외할아버지=&lt;br /&gt;
|외할머니=&lt;br /&gt;
|아버지=&lt;br /&gt;
|어머니=&lt;br /&gt;
|배우자=[[Allen, Horace N.|알렌(H. N. Allen)]]&lt;br /&gt;
|자녀= Harry E. Allen, Morris Allen &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기본정보==&lt;br /&gt;
알렌과 같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하고 1883년 10월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파송된 남편과 함께 상해에 정착했다.&lt;br /&gt;
산후 건강이 좋지 않아 상해를 떠날 것을 고려하던 중, 한국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얻은 알렌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lt;br /&gt;
그리고 한 달 후 알렌 부인과 어린 아들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낯선 환경에서 두 아들을 양육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하이오 주 여선교회가 파송한 여선교사로 개척임무를 맡았다.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시작한 고아학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는 등 도움을 주었고, 알렌이 왕립병원의 의사로 궁궐에 드나들 때 가족이 함께 입궁하기도 해서 고종 내외의 호의를 많이 입었다. 이후 알렌이 외교관으로 전직하고 나서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사회의 안주인 역할을 했다.   &lt;br /&gt;
==상세정보==&lt;br /&gt;
**관련편지1: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2월18일)]]&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Foote,_Lucius_H.</id>
		<title>Foote, Lucius H.</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Foote,_Lucius_H."/>
				<updated>2019-07-16T06:12:1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 인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이미지=ml_Person_Foote.jpg&lt;br /&gt;
|이미지출처= &amp;quot;[https://web.archive.org/web/20120312141727/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83891&amp;lt;sup&amp;gt;the free encyclopedia&amp;lt;/sup&amp;gt;&amp;lt;/onlin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푸트 공사&amp;lt;br/&amp;gt;Foote, Lucius H.&lt;br /&gt;
|한글명=루시어스 하우드 푸트&lt;br /&gt;
|영문명=Lucius Harwood Foote&lt;br /&gt;
|한자명=福德&lt;br /&gt;
|가나명=&lt;br /&gt;
|이칭=복덕&lt;br /&gt;
|성별=남자&lt;br /&gt;
|생년=1826년 4월 10일&lt;br /&gt;
|몰년=1913년 6월 4일&lt;br /&gt;
|소속=미국공사관&lt;br /&gt;
|직업=외교관,법률가&lt;br /&gt;
|내한 연도=1883~1885년&lt;br /&gt;
|출신지= 미국 뉴욕 윈필드&lt;br /&gt;
|출신학교=Western Reserve University(but, did not graduate.)&amp;lt;br/&amp;gt;http://case.edu/&lt;br /&gt;
|증조할아버지=&lt;br /&gt;
|형=&lt;br /&gt;
|아버지=Lucius Foote&lt;br /&gt;
|어머니=Electa Harwood&lt;br /&gt;
|배우자=Rose Frost Carter&lt;br /&gt;
|자녀=&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기본정보==&lt;br /&gt;
미국의 외교관이자 법률가. 한국 이름은 복덕(福德)이다. 캘리포니아 주에서 재판장을 지냈으며,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한국 주재 초대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돼 1883 5월부터 한성에 주재했다. 조선의 전권외무독판 민영목과 한미 수호 조규를 교환했다. 1884년 8월 한옥 2채를 구입, 그중 1채를 미국공사관으로 만들었다. 갑신정변 때는 고종의 부탁을 받고 조선ㆍ청국ㆍ일본 세 나라 사이에서 일어나는 난리를 조정하는 한편 외국인 보호에 힘썼다. 188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가 부임했을 때, 한국지리와 역사 등을 알려준 인물이다. 조선 공사를 사임한 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했다. &lt;br /&gt;
&lt;br /&gt;
==상세정보==&lt;br /&gt;
*관련편지1: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18850218)]] : 이 편지에 아내인 카터부인이 언급되는데, 1885년 사별한다.&lt;br /&gt;
&lt;br /&gt;
==외부 자원==&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루시어스_푸트 wikipedia 'Foote, Lucius H.']&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Allen,_Horace_N.</id>
		<title>Allen, Horace 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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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7-16T06:09: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 인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이미지=Ml_person_allen.gif&lt;br /&gt;
|이미지출처= &amp;quot;[https://ko.wikipedia.org/wiki/Horace_Newton_Allen wikipedia]&amp;quot;, &amp;lt;html&amp;gt;&amp;lt;online style=&amp;quot;color:purple&amp;quot;&amp;gt;『Wikipedia』&amp;lt;sup&amp;gt;the free encyclopedia&amp;lt;/sup&amp;gt;&amp;lt;/onlin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호러스 뉴턴 알렌&amp;lt;br/&amp;gt;Horace Newton Allen&lt;br /&gt;
|한글명=호러스 뉴턴 알렌&lt;br /&gt;
|영문명=Horace Newton Allen&lt;br /&gt;
|한자명=安連&lt;br /&gt;
|가나명=&lt;br /&gt;
|이칭=&lt;br /&gt;
|성별=남자&lt;br /&gt;
|생년=1858년&lt;br /&gt;
|몰년=1932년&lt;br /&gt;
|소속=장로교&lt;br /&gt;
|직업=선교사, 외과의사&lt;br /&gt;
|내한 연도=1884년&lt;br /&gt;
|출신지= 미국&lt;br /&gt;
|출신학교=Ohio Wesleyan University, &amp;lt;br&amp;gt;University of Miami School of Medicine&lt;br /&gt;
|증조할아버지=허버 시니어(Herber Allen, Sr., 1743-1782)&lt;br /&gt;
|형=이튼(Ethan Allen, 1738-89)&lt;br /&gt;
|아버지=호러스(Horace Allen, 1804-1893)&lt;br /&gt;
|어머니=제인(Jane MontgomeryRiley, 1817-1891)&lt;br /&gt;
|배우자= 프랜시스 메신저(Frances Ann Messenger, 1859-1948)&lt;br /&gt;
|자녀=&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기본 정보==&lt;br /&gt;
호러스 뉴턴 앨런(Horace Newton Allen, 1858년 4월 23일~1932년 12월 11일)은 미국의 조선 주재 외교관이자 의료 선교사로, 한국어 이름은 안련(安連)이다. &lt;br /&gt;
1858년 4월 23일 미국 오하이오 주의 델라웨어(Delaware)에서 부친 호러스(Horace Allen, 1804-93)와 어머니 제인(Jane Montgomery Riley, 1817-91) 사이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알렌 집안은 버몬트 주의 명문 집안이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허버 시니어(Herber Allen, Sr., 1743-82)는 소령의 계급으로 미국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다. 형 이튼(Ethan Allen, 1738-89)은 남북전쟁에서 영국으로부터 뉴욕 주 동북쪽의 포트 타이콘더로가(Fort Ticonderoga)를 빼앗는 큰 공을 세웠다. 그의 부친은 농장을 경영하며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부농이었으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lt;br /&gt;
알렌은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어 1883년 10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다. 선교 위원회의 허가를 얻은 후 1884년 9월 20일에 내한하였다. 당시 조선 법은 외국 종교를 금지함에 따라 서울에서 주한 미국공사관의 의료관으로 선교활동을 하였다.&lt;br /&gt;
&lt;br /&gt;
==상세 정보==&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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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Allen, Horace N.</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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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7-16T06:08: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 인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이미지=Ml_person_allen.gif&lt;br /&gt;
|이미지출처= &amp;quot;[https://ko.wikipedia.org/wiki/Horace Newton Allen wikipedia]&amp;quot;, &amp;lt;html&amp;gt;&amp;lt;online style=&amp;quot;color:purple&amp;quot;&amp;gt;『Wikipedia』&amp;lt;sup&amp;gt;the free encyclopedia&amp;lt;/sup&amp;gt;&amp;lt;/onlin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호러스 뉴턴 알렌&amp;lt;br/&amp;gt;Horace Newton Allen&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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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기본 정보==&lt;br /&gt;
호러스 뉴턴 앨런(Horace Newton Allen, 1858년 4월 23일~1932년 12월 11일)은 미국의 조선 주재 외교관이자 의료 선교사로, 한국어 이름은 안련(安連)이다. &lt;br /&gt;
1858년 4월 23일 미국 오하이오 주의 델라웨어(Delaware)에서 부친 호러스(Horace Allen, 1804-93)와 어머니 제인(Jane Montgomery Riley, 1817-91) 사이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알렌 집안은 버몬트 주의 명문 집안이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허버 시니어(Herber Allen, Sr., 1743-82)는 소령의 계급으로 미국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다. 형 이튼(Ethan Allen, 1738-89)은 남북전쟁에서 영국으로부터 뉴욕 주 동북쪽의 포트 타이콘더로가(Fort Ticonderoga)를 빼앗는 큰 공을 세웠다. 그의 부친은 농장을 경영하며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부농이었으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lt;br /&gt;
알렌은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어 1883년 10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다. 선교 위원회의 허가를 얻은 후 1884년 9월 20일에 내한하였다. 당시 조선 법은 외국 종교를 금지함에 따라 서울에서 주한 미국공사관의 의료관으로 선교활동을 하였다.&lt;br /&gt;
&lt;br /&gt;
==상세 정보==&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Allen,_Horace_N.</id>
		<title>Allen, Horace N.</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Allen,_Horace_N."/>
				<updated>2019-07-16T06:07:3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 인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이미지=Ml_person_allen.gif&lt;br /&gt;
|이미지출처= &amp;quot;[https://ko.wikipedia.org/wiki/Horace Newton Allen wikipidia 'Foulk, George C.']&amp;quot;, &amp;lt;html&amp;gt;&amp;lt;online style=&amp;quot;color:purple&amp;quot;&amp;gt;『Wikipedia』&amp;lt;sup&amp;gt;the free encyclopedia&amp;lt;/sup&amp;gt;&amp;lt;/onlin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호러스 뉴턴 알렌&amp;lt;br/&amp;gt;Horace Newton Allen&lt;br /&gt;
|한글명=호러스 뉴턴 알렌&lt;br /&gt;
|영문명=Horace Newton Allen&lt;br /&gt;
|한자명=安連&lt;br /&gt;
|가나명=&lt;br /&gt;
|이칭=&lt;br /&gt;
|성별=남자&lt;br /&gt;
|생년=1858년&lt;br /&gt;
|몰년=1932년&lt;br /&gt;
|소속=장로교&lt;br /&gt;
|직업=선교사, 외과의사&lt;br /&gt;
|내한 연도=1884년&lt;br /&gt;
|출신지= 미국&lt;br /&gt;
|출신학교=Ohio Wesleyan University, &amp;lt;br&amp;gt;University of Miami School of Medicine&lt;br /&gt;
|증조할아버지=허버 시니어(Herber Allen, Sr., 1743-1782)&lt;br /&gt;
|형=이튼(Ethan Allen, 1738-89)&lt;br /&gt;
|아버지=호러스(Horace Allen, 1804-1893)&lt;br /&gt;
|어머니=제인(Jane MontgomeryRiley, 1817-1891)&lt;br /&gt;
|배우자= 프랜시스 메신저(Frances Ann Messenger, 1859-1948)&lt;br /&gt;
|자녀=&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기본 정보==&lt;br /&gt;
호러스 뉴턴 앨런(Horace Newton Allen, 1858년 4월 23일~1932년 12월 11일)은 미국의 조선 주재 외교관이자 의료 선교사로, 한국어 이름은 안련(安連)이다. &lt;br /&gt;
1858년 4월 23일 미국 오하이오 주의 델라웨어(Delaware)에서 부친 호러스(Horace Allen, 1804-93)와 어머니 제인(Jane Montgomery Riley, 1817-91) 사이의 5남매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알렌 집안은 버몬트 주의 명문 집안이었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허버 시니어(Herber Allen, Sr., 1743-82)는 소령의 계급으로 미국 독립운동에 참가하였고 독립유공자로 인정되었다. 형 이튼(Ethan Allen, 1738-89)은 남북전쟁에서 영국으로부터 뉴욕 주 동북쪽의 포트 타이콘더로가(Fort Ticonderoga)를 빼앗는 큰 공을 세웠다. 그의 부친은 농장을 경영하며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부농이었으며,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lt;br /&gt;
알렌은 의료선교사로 임명되어 1883년 10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다. 선교 위원회의 허가를 얻은 후 1884년 9월 20일에 내한하였다. 당시 조선 법은 외국 종교를 금지함에 따라 서울에서 주한 미국공사관의 의료관으로 선교활동을 하였다.&lt;br /&gt;
&lt;br /&gt;
==상세 정보==&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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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10T01:50: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학술 세미나 자료|학술 세미나 자료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과 전 유럽에 유통시킨 인쇄업자들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대체로 발전의 방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수혜자이자 전파자가 되는 것이었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미 성서학과 고고학에서 활용하고 있듯이 교회사 분야에도 정보학의 발전은 여러 모로 기회이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 없고 얼굴 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lt;br /&gt;
&lt;br /&gt;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살았던 어느 산파의 27년간의 기록을 다룬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콘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주목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이런 종류의 연구에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다음과 같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br /&gt;
**이번 학기 진행된 선교사편지 데이터베이스 수업에서는 김인수 교수님으로부터 언더우드 편지의 원문과 번역본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문서 입력과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고 해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1885-1916』 외에도 『헤론 의사의 선교편지』, 『빈튼 의사의 선교편지』, 『편하설 목사의 선교일기』,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편지』 등이 동저자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고, 옥성득이 번역한 『마포삼열자료집』(총4권)과 숭실대학교의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리포트』(총2권)도 병행자료로 가치가 있다. 여성선교사로서 『로제타 홀 일기』(총6권), 정신여학교사료연구위원회의 『장로회 최초의 여학교 선교편지』가 원문-번역문을 함께 출판되어 있으며, The Journals of Mattie Wilcox Noble: 1892-1934는 영문 타이핑체 그대로 영인본으로 이용할 수 있다. 출판된 선교사편지와 일기만 해도 다수이며, 공개된 전자도서관에는 선교사들의 출판물과 기고문, 보고서 등이 있다. 이 자료들만 검토해도 다양한 연구주제들이 나올 수 있다.  &lt;br /&gt;
**광범위하게 자료를 축적하는 것과 함께, 일정량의 사료를 촘촘하게 다루면서 해제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수업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질문할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는 조선 후기 일상생활 연구와 근대 초기 한국 기독교의 형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풀리는 것을 미약하나마 경험했다.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새로운 학제간 연구방법론으로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
				<updated>2019-06-10T01:48:3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역할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과 전 유럽에 유통시킨 인쇄업자들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대체로 발전의 방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수혜자이자 전파자가 되는 것이었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미 성서학과 고고학에서 활용하고 있듯이 교회사 분야에도 정보학의 발전은 여러 모로 기회이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 없고 얼굴 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lt;br /&gt;
&lt;br /&gt;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살았던 어느 산파의 27년간의 기록을 다룬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콘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주목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이런 종류의 연구에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다음과 같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br /&gt;
**이번 학기 진행된 선교사편지 데이터베이스 수업에서는 김인수 교수님으로부터 언더우드 편지의 원문과 번역본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문서 입력과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고 해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1885-1916』 외에도 『헤론 의사의 선교편지』, 『빈튼 의사의 선교편지』, 『편하설 목사의 선교일기』,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편지』 등이 동저자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고, 옥성득이 번역한 『마포삼열자료집』(총4권)과 숭실대학교의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리포트』(총2권)도 병행자료로 가치가 있다. 여성선교사로서 『로제타 홀 일기』(총6권), 정신여학교사료연구위원회의 『장로회 최초의 여학교 선교편지』가 원문-번역문을 함께 출판되어 있으며, The Journals of Mattie Wilcox Noble: 1892-1934는 영문 타이핑체 그대로 영인본으로 이용할 수 있다. 출판된 선교사편지와 일기만 해도 다수이며, 공개된 전자도서관에는 선교사들의 출판물과 기고문, 보고서 등이 있다. 이 자료들만 검토해도 다양한 연구주제들이 나올 수 있다.  &lt;br /&gt;
**광범위하게 자료를 축적하는 것과 함께, 일정량의 사료를 촘촘하게 다루면서 해제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수업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질문할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는 조선 후기 일상생활 연구와 근대 초기 한국 기독교의 형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풀리는 것을 미약하나마 경험했다.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새로운 학제간 연구방법론으로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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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10T01:30: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역할==&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과 전 유럽에 유통시킨 인쇄업자들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대체로 발전의 방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수혜자이자 전파자가 되는 것이었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미 성서학과 고고학에서 활용하고 있듯이 교회사 분야에도 정보학의 발전은 여러 모로 기회이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 없고 얼굴 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lt;br /&gt;
&lt;br /&gt;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살았던 어느 산파의 27년간의 기록을 다룬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콘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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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주목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이런 종류의 연구에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는 지금까지 파악한 바로는 다음과 같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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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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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br /&gt;
**이번 학기 진행된 선교사편지 데이터베이스 수업에서는 김인수 교수님으로부터 언더우드 편지의 원문과 번역본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문서 입력과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고 해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1885-1916』 외에도 『헤론 의사의 선교편지』, 『빈튼 의사의 선교편지』, 『편하설 목사의 선교일기』,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편지』 등이 동저자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고, 옥성득이 번역한 『마포삼열자료집』(총4권)과 숭실대학교의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리포트』(총2권)도 병행자료로 가치가 있다. 여성선교사로서 『로제타 홀 일기』(총6권), 정신여학교사료연구위원회의 『장로회 최초의 여학교 선교편지』가 원문-번역문을 함께 출판되어 있으며, The Journals of Mattie Wilcox Noble: 1892-1934는 영문 타이핑체 그대로 영인본으로 이용할 수 있다. 출판된 선교사편지와 일기만 해도 다수이며, 공개된 전자도서관에는 선교사들의 출판물과 기고문, 보고서 등이 있다. 이 자료들만 검토해도 다양한 연구주제들이 나올 수 있다.  &lt;br /&gt;
**광범위하게 자료를 축적하는 것과 함께, 일정량의 사료를 촘촘하게 다루면서 해제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수업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질문할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는 조선 후기 일상생활 연구와 근대 초기 한국 기독교의 형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풀리는 것을 미약하나마 경험했다.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새로운 학제간 연구방법론으로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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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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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10T01:28:5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역할==&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과 전 유럽에 유통시킨 인쇄업자들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대체로 발전의 방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수혜자이자 전파자가 되는 것이었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미 성서학과 고고학에서 활용하고 있듯이 교회사 분야에도 정보학의 발전은 여러 모로 기회이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 없고 얼굴 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lt;br /&gt;
&lt;br /&gt;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살았던 어느 산파의 27년간의 기록을 다룬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콘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주목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br /&gt;
**이번 학기 진행된 선교사편지 데이터베이스 수업에서는 김인수 교수님으로부터 언더우드 편지의 원문과 번역본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문서 입력과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고 해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1885-1916』 외에도 『헤론 의사의 선교편지』, 『빈튼 의사의 선교편지』, 『편하설 목사의 선교일기』,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편지』 등이 동저자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고, 옥성득이 번역한 『마포삼열자료집』(총4권)과 숭실대학교의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리포트』(총2권)도 병행자료로 가치가 있다. 여성선교사로서 『로제타 홀 일기』(총6권), 정신여학교사료연구위원회의 『장로회 최초의 여학교 선교편지』가 원문-번역문을 함께 출판되어 있으며, The Journals of Mattie Wilcox Noble: 1892-1934는 영문 타이핑체 그대로 영인본으로 이용할 수 있다. 출판된 선교사편지와 일기만 해도 다수이며, 공개된 전자도서관에는 선교사들의 출판물과 기고문, 보고서 등이 있다. 이 자료들만 검토해도 다양한 연구주제들이 나올 수 있다.  &lt;br /&gt;
**광범위하게 자료를 축적하는 것과 함께, 일정량의 사료를 촘촘하게 다루면서 해제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수업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질문할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는 조선 후기 일상생활 연구와 근대 초기 한국 기독교의 형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풀리는 것을 미약하나마 경험했다.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새로운 학제간 연구방법론으로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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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역할==&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과 전 유럽에 유통시킨 인쇄업자들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대체로 발전의 방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수혜자이자 전파자가 되는 것이었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미 성서학과 고고학에서 활용하고 있듯이 교회사 분야에도 정보학의 발전은 여러 모로 기회이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 없고 얼굴 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lt;br /&gt;
&lt;br /&gt;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살았던 어느 산파의 27년간의 기록을 다룬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콘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br /&gt;
**이번 학기 진행된 선교사편지 데이터베이스 수업에서는 김인수 교수님으로부터 언더우드 편지의 원문과 번역본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문서 입력과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고 해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1885-1916』 외에도 『헤론 의사의 선교편지』, 『빈튼 의사의 선교편지』, 『편하설 목사의 선교일기』,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편지』 등이 동저자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고, 옥성득이 번역한 『마포삼열자료집』(총4권)과 숭실대학교의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리포트』(총2권)도 병행자료로 가치가 있다. 여성선교사로서 『로제타 홀 일기』(총6권), 정신여학교사료연구위원회의 『장로회 최초의 여학교 선교편지』가 원문-번역문을 함께 출판되어 있으며, The Journals of Mattie Wilcox Noble: 1892-1934는 영문 타이핑체 그대로 영인본으로 이용할 수 있다. 출판된 선교사편지와 일기만 해도 다수이며, 공개된 전자도서관에는 선교사들의 출판물과 기고문, 보고서 등이 있다. 이 자료들만 검토해도 다양한 연구주제들이 나올 수 있다.  &lt;br /&gt;
**광범위하게 자료를 축적하는 것과 함께, 일정량의 사료를 촘촘하게 다루면서 해제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수업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질문할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는 조선 후기 일상생활 연구와 근대 초기 한국 기독교의 형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풀리는 것을 미약하나마 경험했다.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새로운 학제간 연구방법론으로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
				<updated>2019-06-09T22:31:0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결론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과 전 유럽에 유통시킨 인쇄업자들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대체로 발전의 방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수혜자이자 전파자가 되는 것이었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미 성서학과 고고학에서 활용하고 있듯이 교회사 분야에도 정보학의 발전은 여러 모로 기회이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 없고 얼굴 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살았던 어느 산파의 27년간의 기록을 다룬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콘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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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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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br /&gt;
**이번 학기 진행된 선교사편지 데이터베이스 수업에서는 김인수 교수님으로부터 언더우드 편지의 원문과 번역본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문서 입력과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고 해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1885-1916』 외에도 『헤론 의사의 선교편지』, 『빈튼 의사의 선교편지』, 『편하설 목사의 선교일기』,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편지』 등이 동저자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고, 옥성득이 번역한 『마포삼열자료집』(총4권)과 숭실대학교의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리포트』(총2권)도 병행자료로 가치가 있다. 여성선교사로서 『로제타 홀 일기』(총6권), 정신여학교사료연구위원회의 『장로회 최초의 여학교 선교편지』가 원문-번역문을 함께 출판되어 있으며, The Journals of Mattie Wilcox Noble: 1892-1934는 영문 타이핑체 그대로 영인본으로 이용할 수 있다. 출판된 선교사편지와 일기만 해도 다수이며, 공개된 전자도서관에는 선교사들의 출판물과 기고문, 보고서 등이 있다. 이 자료들만 검토해도 다양한 연구주제들이 나올 수 있다.  &lt;br /&gt;
**광범위하게 자료를 축적하는 것과 함께, 일정량의 사료를 촘촘하게 다루면서 해제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수업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질문할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는 조선 후기 일상생활 연구와 근대 초기 한국 기독교의 형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풀리는 것을 미약하나마 경험했다.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새로운 학제간 연구방법론으로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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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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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9T14:26: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결론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과 전 유럽에 유통시킨 인쇄업자들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대체로 발전의 방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수혜자이자 전파자가 되는 것이었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미 성서학과 고고학에서 활용하고 있듯이 교회사 분야에도 정보학의 발전은 여러 모로 기회이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 없고 얼굴 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살았던 어느 산파의 27년간의 기록을 다룬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콘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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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br /&gt;
**이번 학기 진행된 선교사편지 데이터베이스 수업에서는 김인수 교수님으로부터 언더우드 편지의 원문과 번역본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문서 입력과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고 해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1885-1916』 외에도 『헤론 의사의 선교편지』, 『빈튼 의사의 선교편지』, 『편하설 목사의 선교일기』,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편지』 등이 동저자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고, 옥성득이 번역한 『마포삼열자료집』(총4권)과 숭실대학교의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리포트』(총2권)도 병행자료로 가치가 있다. 여성선교사로서 『로제타 홀 일기』(총6권), 정신여학교사료연구위원회의 『장로회 최초의 여학교 선교편지』가 원문-번역문을 함께 출판되어 있으며, The Journals of Mattie Wilcox Noble: 1892-1934는 영문 타이핑체 그대로 영인본으로 이용할 수 있다. 출판된 선교사편지와 일기만 해도 다수이며, 공개된 전자도서관에는 선교사들의 출판물과 기고문, 보고서 등이 있다. 이 자료들만 검토해도 다양한 연구주제들이 나올 수 있다.  &lt;br /&gt;
**광범위하게 자료를 축적하는 것과 함께, 일정량의 사료를 촘촘하게 다루면서 해제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수업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질문할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는 조선 후기 일상생활 연구와 근대 초기 한국 기독교의 형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풀리는 것을 미약하나마 경험했다.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새로운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 연구방법론으로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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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 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과 전 유럽에 유통시킨 인쇄업자들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대체로 발전의 방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문명의 수혜자이자 전파자가 되는 것이었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이미 성서학과 고고학에서 활용하고 있듯이 교회사 분야에도 정보학의 발전은 여러 모로 기회이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 없고 얼굴 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18세기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에 살았던 어느 산파의 27년간의 기록을 다룬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콘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br /&gt;
**이번 학기 진행된 선교사편지 데이터베이스 수업에서는 김인수 교수님으로부터 언더우드 편지의 원문과 번역본을 제공받았기 때문에 문서 입력과 번역에 들어가는 시간을 아끼고 해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1885-1916』 외에도 『헤론 의사의 선교편지』, 『빈튼 의사의 선교편지』, 『편하설 목사의 선교일기』, 『(제임스 S.) 게일 목사의 편지』 등이 동저자에 의해 번역 출판되었고, 옥성득이 번역한 『마포삼열자료집』(총4권)과 숭실대학교의 『윌리엄 베어드의 선교리포트』(총2권)도 병행자료로 가치가 있다. 여성선교사로서 『로제타 홀 일기』(총6권), 정신여학교를 중심으로 활동한 『장로회 선교회 여선교사의 편지』가 원문-번역문을 함께 실어 출판되어 있으며, The Journals of Mattie Wilcox Noble: 1892-1934는 영문 타이핑체 그대로 영인본으로 이용할 수 있다. 출판된 선교사편지와 일기만 해도 다수이며, 공개된 전자도서관에는 선교사들의 출판물과 기고문, 보고서 등이 있다. 이 자료들만 검토해도 다양한 연구주제들이 나올 수 있다.  &lt;br /&gt;
**광범위하게 자료를 축적하는 것과 함께, 일정량의 사료를 촘촘하게 다루면서 해제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이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우리 수업에서 각기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서로 질문할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는 조선 후기 일상생활 연구와 근대 초기 한국 기독교의 형성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을 때, 설명할 수 없었던 부분들이 풀리는 것을 미약하나마 경험했다.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새로운 간학문적(interdisciplinary) 연구방법론으로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
				<updated>2019-06-08T15:03:1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 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콘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였을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lt;br /&gt;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 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전망이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교회사 분야에는 기회로 다가온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 없고 얼굴 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 집 거실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잡지와 같은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콘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6.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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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8T14:21:5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컨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lt;br /&gt;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전망이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교회사 분야에는 기회로 다가온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없고 얼굴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집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컨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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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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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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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6.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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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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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컨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lt;br /&gt;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전망이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교회사 분야에는 기회로 다가온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없고 얼굴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집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컨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br /&gt;
&lt;br /&gt;
6. 결론&lt;br /&gt;
*오픈 디지털 라이브러리를 활용하는 것은 숨겨진 자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다.&lt;br /&gt;
*방대한 양의 자료를 촘촘하게 다룰 때, 서로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사람들의 협업의 중요성이 더욱 커진다. &lt;br /&gt;
*몇 가지 위험에 대해 보완장치를 갖추면 데이터 네트워크는 지금까지 돌파하지 못했던 지점을 해결하는 데 유용한 점이 많다.&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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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8T01:52:5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컨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lt;br /&gt;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전망이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교회사 분야에는 기회로 다가온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없고 얼굴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집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컨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교파에 따라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exhorter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이들이 활동한 지역은 도시에서부터 산간, 해외까지 광범위하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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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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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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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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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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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7T14:12: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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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컨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lt;br /&gt;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전망이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교회사 분야에는 기회로 다가온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없고 얼굴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집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컨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남아있는 자료들은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
				<updated>2019-06-07T14:11:4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컨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lt;br /&gt;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전망이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교회사 분야에는 기회로 다가온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없고 얼굴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집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컨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amp;lt;/br&amp;gt; &lt;br /&gt;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등을 포함한다.  &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남아있는 자료들은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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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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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7T13:34: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lt;br /&gt;
**문명은 기술과 컨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lt;br /&gt;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전망이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교회사 분야에는 기회로 다가온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없고 얼굴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집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컨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남아있는 자료들은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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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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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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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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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7T13:33:3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amp;lt;/br&amp;gt; &lt;br /&gt;
**문명은 기술과 컨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amp;lt;/br&amp;gt;&lt;br /&gt;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전망이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교회사 분야에는 기회로 다가온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없고 얼굴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amp;lt;/br&amp;gt;&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집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amp;lt;/br&amp;gt; &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컨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남아있는 자료들은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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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7T13:32: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lt;br /&gt;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amp;lt;/br&amp;gt; &lt;br /&gt;
**문명은 기술과 컨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amp;lt;/br&amp;gt;&lt;br /&gt;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전망이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교회사 분야에는 기회로 다가온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없고 얼굴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amp;lt;/br&amp;gt;&lt;br /&gt;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집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lt;br /&gt;
 &lt;br /&gt;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amp;lt;/br&amp;gt; &lt;br /&gt;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컨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남아있는 자료들은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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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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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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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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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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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6T07:53:5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 보고서|기말 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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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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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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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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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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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6T07:52:2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기말보고서|기말보고서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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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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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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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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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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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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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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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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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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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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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6T07:48:3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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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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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A%B5%90%ED%9A%8C%EC%82%AC_%EC%97%B0%EA%B5%AC%EC%97%90_%EC%9E%88%EC%96%B4%EC%84%9C_%EB%8D%B0%EC%9D%B4%ED%84%B0_%EB%84%A4%ED%8A%B8%EC%9B%8C%ED%81%AC%EC%9D%98_%ED%99%9C%EC%9A%A9_%EA%B0%80%EB%8A%A5%EC%84%B1</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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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6T06:41:5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lt;br /&gt;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lt;br /&gt;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lt;br /&gt;
&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lt;br /&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lt;br /&gt;
 &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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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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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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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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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6T06:16: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1. 기존 교회사적 연구태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2.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lt;br /&gt;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amp;lt;br/&amp;gt;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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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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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1. 기존 교회사적 연구태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2.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선교사들의 한국인 조력자들&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1.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5. 가능성 뒤의 그림자&lt;br /&gt;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lt;br /&gt;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lt;br /&gt;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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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6T05:45: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교회사연구와 정보학의 결합 */&lt;/p&gt;
&lt;hr /&gt;
&lt;div&gt;1. 기존 교회사적 연구태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지식인들의 논쟁&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2.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언문을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선교사들의 한국인 조력자들&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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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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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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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교회사연구와 정보학의 결합 */&lt;/p&gt;
&lt;hr /&gt;
&lt;div&gt;==교회사연구와 정보학의 결합==&lt;br /&gt;
1. 기존 교회사적 연구태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lt;br /&gt;
**조직의 발전&lt;br /&gt;
**사회운동과의 연관성&lt;br /&gt;
*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2.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언문을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선교사들의 한국인 조력자들&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Bible_Women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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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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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6T05:29:4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새 문서: ==교회사연구와 정보학의 결합== 1. 기존 교회사적 연구태도 *인물중심의 연구 **일대기 재구성 **사상 연구 *사건중심의 연구 **정치사회적...&lt;/p&gt;
&lt;hr /&gt;
&lt;div&gt;==교회사연구와 정보학의 결합==&lt;br /&gt;
1. 기존 교회사적 연구태도&lt;br /&gt;
*인물중심의 연구&lt;br /&gt;
**일대기 재구성&lt;br /&gt;
**사상 연구&lt;br /&gt;
*사건중심의 연구&lt;br /&gt;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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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발전&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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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lt;br /&gt;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lt;br /&gt;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lt;br /&gt;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lt;br /&gt;
2.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lt;br /&gt;
*인쇄술과 종교개혁&lt;br /&gt;
*언문을 성경언어로 택함&lt;br /&gt;
*이동수단의 발달&lt;br /&gt;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lt;br /&gt;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lt;br /&gt;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lt;br /&gt;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lt;br /&gt;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선교사들의 한국인 조력자들&lt;br /&gt;
*전도부인&lt;br /&gt;
**이름과 사건과 조직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lt;br /&gt;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lt;br /&gt;
&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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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t;br /&gt;
&lt;br /&gt;
&lt;br /&gt;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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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60120)</id>
		<title>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120)</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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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6-06T04:44:0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데이터 네트워크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구축 데이터 목록|편지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정보&lt;br /&gt;
|식별자=L18860120UTOE&lt;br /&gt;
|대표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1886년 1월 20일)&lt;br /&gt;
|한글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6년 1월 20일)&lt;br /&gt;
|영문명칭=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Jan 20, 1886)&lt;br /&gt;
|발신자=[[Underwood, Horace G.(원두우)]]&lt;br /&gt;
|수신자=[[Ellinwood, Frank F.]]&lt;br /&gt;
|작성연도=1886년&lt;br /&gt;
|작성월일=1월 20일&lt;br /&gt;
|작성공간=[[서울]]&lt;br /&gt;
|자료소장처=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lt;br /&gt;
|번역문출처=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레이아웃&lt;br /&gt;
|원문1=Dr. Horace G. Underwood&amp;lt;br/&amp;gt;Seoul, Korea &lt;br /&gt;
|원문2=Jan 20, 1886&lt;br /&gt;
|원문3=To Dr . Ellinwood&lt;br /&gt;
|원문4=Dear Dr. Ellinwood,&lt;br /&gt;
|원문5=Your very welcome letter bringing us the good news of Dr. Sturge's appointment to this field reached us by mail just in and we are all very glad that the Board is going to open a Station at Fusan. We also feel rejoiced that the mission is to be reinforced in this way as we ourselves as we look at the field and consider our number see how little we can do and feel that we are but a drop in an ocean. The prospect for work is no nearer open except that I think we will soon be able to do something in the way of school work and we have every reason to believe that the Korean government would welcome any such effort. There is however one seriously difficulty in the way of our doing much of that work that can be called in part self-supporting.&lt;br /&gt;
|원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Korean government in their schools have no charges at all but virtually pay the scholars for attending in providing then with their food, clothing, and a certain amount of money and it will therefore not be the easiest matter to find those that are willing to pay for what costs nothing elsewhere. If a free school were opened it would be filled at once if in addition we would pay the pupils enough to live on and in fact I have been told that we could have all that we could teach if the latter clause were left out but we feel that there is a danger of giving the Koreans the idea that we are backed by a rich board at home and that it would be a pretty good idea to become a Christian. There is one way in which we could begin work at once and be at the same time building up for Korea a Christian youth. My attention has been called to the fact that there are in Seoul a great many homeless and destitute children as orphans and those of illegitimate birth and they could be taken and clothed and fed and trained up in a right way and taught to love the Savior.&amp;lt;/div&amp;gt;&lt;br /&gt;
|원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I had been thinking about this for some time and wondering how we were to go to work as now would be the time when I received from a friend the sum of $100.00 to be used for missions in Korea. A place of the right size and in tolerably good repair could with this amount be obtained and put in order but then there were the running expenses to be thought of. This place however is not very near to us and as such a work would require continual watching it was thought best by both Drs. Allen and Heron not to purchase. Any place in this neighborhood would cost a great deal more and we are just now considering what ought to be done. The cost of running such a home per years, reckoning on the prices of clothing and food as they now are, with say from twenty to twenty-five inmates would amount to less than $500.00 and the cost of getting the house that is considered the best in every way by all who are out here would be between $400.00 and 500.00. The plan meets with Mr. Foulk's most hearty approval and as there are several reasons for beginning now we are very much tempted to do so. If this were stated there would be at the same time be in connection with it a daily school for all who would come. This is as far as we have gone and had we the means I do not doubt but that we could have both a boys and girls school before the year is through. I have been hard at work at the language and have managed to make some progress and think now that it is time that I was at some work.&amp;lt;/div&amp;gt; &lt;br /&gt;
|원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Owing to a badly built chimney my house took fire last night and it was a wonder that the whole house was not burnt down and as the floor of my hall was ablaze when I awoke this morning it is cause for great thankfulness on our part that no further damage was done. As it was the damage will not amount to over ten dollars. It showed somewhat as to what example will do and the influence we are having upon those around us when my boy in speaking of the fire after it was all out this morning and in mixed English and Korean 󰡐Master will say many thank yous(?) to God that it was not more serious' : and we have seen this also in the apparent surprise and almost horror shown by those around us when it is proposed to do anything on a Sunday.&amp;lt;/div&amp;gt;&lt;br /&gt;
|원문9=&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We observed the week of prayer here and on one night there were several Koreans present and our players went up most fervently that ere another week of prayer should roll round there may be many Koreans who shall join in the worship. Last night Dr. Allen received a letter from the Roman Catholic priest in this city asking him to attend a sick Christian woman Of course they did so at once but were unable to do anything for her besides giving her a little medicine to ease the pain. They wrote explaining the case to the Romanists and offering to attend her further if they so desired. It was reported to us not long ago that there were a great many starving people in Seoul and we at once organized to see what could be done. Finding a few worthy cases we attended to them and then employed a Korean to go around and see how much distress there was and to report to us all that were worthy. He was a man recommended to us for the work by my teacher. After spending four whole days at this work he reports that he can only find one case that is really worthy that of an old man without any relations and that all the other cases that he could find after sifting them down could either work themselves or had someone related to them who would support them. This has greatly relieved our minds and we have also been pleased to find a man that appears so trustworthy and who when offered pay refused it on the grounds that he was only helping in a good work and that he was glad to do it. He was a Romanist Christian and as he was a poor man I insisted upon his taking what it had cost him to stay in Seoul for those days.&amp;lt;/div&amp;gt;&lt;br /&gt;
|원문10=&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Trusting that you will let us know at once how you feel on the subject of supporting an orphanage here and that we may soon be able to report better openings in this land I remain,&amp;lt;/div&amp;gt;&lt;br /&gt;
|원문11=Yours most sincerely,&lt;br /&gt;
|원문12=Horace G. Underwood&lt;br /&gt;
&lt;br /&gt;
|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amp;lt;br/&amp;gt;한국, 서울&lt;br /&gt;
|번역문2=1886년 1월 20일&lt;br /&gt;
|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 박사님께,&lt;br /&gt;
|번역문4=엘린우드 박사님,&lt;br /&gt;
|번역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선교사편지인물태그|[[스터지]]}} 의사&amp;lt;ref&amp;gt;그는 한국에 파송되지 않았다.&amp;lt;/ref&amp;gt;가 이곳 사역지로 임명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박사님의 편지가 방금 전 저희에게 도착했습니다. 본부에서 부산에 새로운 지부를 시작하게 된 것에 대해 우리 모두는 대단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역현장을 바라보며 우리 선교사들의 수를 생각해 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미약한지 보게 됩니다. 우리는 드넓은 바다 속의 물 한 방울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우리의 선교사역의 힘이 강화되는 것에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학교 교육 사업을 위해 조만간 무슨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역의 앞길이 열릴 것이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에서 우리의 이러한 노력을 환영하리라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역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립(自立)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한국 정부는 그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일체의 교육비를 받지 않게 합니다. 오히려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음식과 의복과 일정액의 돈을 제공해 주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학업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혀 돈을 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곳들이 있기에 돈을 내면서 배우려는 사람을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무료 학교가 개교를 하고, 우리가 학생들의 생활비용을 충분히 지불해 준다면 그런 학교는 곧 학생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에게서 배우려 할 학생들이 가득할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에게 우리가 본국에 있는 돈 많은 본부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우리가 사역을 즉시 시작하게 될 수 있고, 한국을 위해 기독 청년들을 길러 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서울에 고아가 되어 곤궁한 처지에 있는 집 없는 아이들, 사생아들이 대단히 많다는 사실에 저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받아 들여 옷을 입혀 주고, 음식을 먹여 주며, 진리의 길 안에서 훈련받게 해 줄 수 있을 것이고, 구주를 사랑하도록 가르쳐 줄 수 있을 겁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저는 한동안 이 일에 대해 생각했었고, 지금이 적기라 보이는데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친구 하나가 한국에서의 선교 사업에 쓰도록 100달러를 기부해 주었습니다. 손질이 제법 잘되어 있으며 알맞는 크기의 장소를 이 돈으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 운영경비에 대해서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이 장소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그리 가깝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런 일은 계속 지켜보는 것이 필요한데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과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의사는 그 장소를 구입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근처에 있는 곳들을 사려면 훨씬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 중에 있습니다. 1년 동안 이런 고아원을 운영하는 비용은, 20명에서 25명의 아이들이 있을 경우에, 의복과 음식 등을 현 시세대로 계산해 보면 500달러 미만이 될 겁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보기에 모든 면에서 가장 좋은 건물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400달러에서 500달러 정도가 필요할 겁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Foulk, George C.|포크]]}} 씨&amp;lt;ref&amp;gt;주한 미국 공사&amp;lt;/ref&amp;gt;도 이 계획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 합당한, 분명한 이유가 있으므로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린다면, 오고자 하는 아이들 모두를 대상으로 하여 ‘일일학교’와 이 일이 연계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상,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수단이 갖추어져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남학교와 여학교의 문을 열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부실하게 지어진 굴뚝으로 인해, {{선교사편지공간태그|[[언더우드의 사택|저의 집]]}}에서 지난 밤 불이 났었습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현관 마루가 불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집 전체가 다 타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더 큰 피해가 없었던 게 우리에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액은 10달러가 넘지 않을 겁니다. 오늘 아침 불이 다 꺼진 후에 저를 시중드는 소년은 한국식 영어로 화재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주인님은 더 많은 피해가 나지 않아서 하나님께 많이 감사하다고 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떠한 본을 보이는 게 필요한지,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어떤 일이라도 해 보자고 제안하였을 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당혹스러워 하는 것을 보면서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9=&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우리는 이곳에서 기도주간을 가졌는데, 어느 날 밤에는 한국인들 몇 명이 이에 함께 참여하였고, 다음 기도 주간이 있기 전에 이 예배 모임에 많은 한국인들이 동참하게 되도록 매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지난 밤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는 서울에 있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Coste, Jean G.|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그 신부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에게 병환 중에 있는 한 그리스도인 여성을 진료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amp;lt;ref&amp;gt;&amp;quot;프랑스 신부 장 게오르그 꼬스트(Jean George Coste)가 출산 중인 한 여성의 생명을 구해 달라고 왕진을 요청했다. 성공적으로 분만했고 신부는 매우 고마워했다.&amp;quot;(1886년 1월 22일 알렌의 일기)&amp;lt;/ref&amp;gt;물론 즉시 그렇게 했지만 그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약을 조금 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은 가톨릭교회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이 바라면 그녀를 다시 더 진료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최근에, 서울 안에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는 곧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몇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돌봐 주었습니다. 그 후에는 한 한국인을 고용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빈곤상태가 얼마나 심한지 살펴보고 우리에게 보고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송순용|제 언어교사]]}}가 추천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나흘 내내 이런 일을 한 후에, “정말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고 전하는데, 아무런 연고(緣故)도 없는 한 노인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자세히 조사해보니 그 이외 사람들은 자립할 수 있거나,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 중에 그들을 도울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우리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으며 무척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사람을 한 명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에게 수고비를 전해 주려 했지만 “자신은 좋은 일에 참여해 도왔을 뿐이며 이런 일을 하게 되어 기쁘다”며 돈을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선교사편지단체태그|[[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번 일을 하기 위해 서울에 머무는 동안 들었던 경비를 받으라고 제가 강권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0=&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이곳에서 고아원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 박사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즉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곧 한국에서 더 좋은 길이 열리는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1=안녕히 계십시오.&lt;br /&gt;
|번역문12={{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올림.&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mission_18860120.htm&amp;quot;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편지]] [[분류:선교사편지_From_Underwood]] [[분류:선교사편지_To_Ellinwood]] [[분류:선교사편지_1886년]] [[분류:선교사편지_서울]]&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60120)</id>
		<title>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120)</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60120)"/>
				<updated>2019-05-29T07:34: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구축 데이터 목록|편지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정보&lt;br /&gt;
|식별자=L18860120UTOE&lt;br /&gt;
|대표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1886년 1월 20일)&lt;br /&gt;
|한글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6년 1월 20일)&lt;br /&gt;
|영문명칭=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Jan 20, 1886)&lt;br /&gt;
|발신자=[[Underwood, Horace G.(원두우)]]&lt;br /&gt;
|수신자=[[Ellinwood, Frank F.]]&lt;br /&gt;
|작성연도=1886년&lt;br /&gt;
|작성월일=1월 20일&lt;br /&gt;
|작성공간=[[서울]]&lt;br /&gt;
|자료소장처=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lt;br /&gt;
|번역문출처=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레이아웃&lt;br /&gt;
|원문1=Dr. Horace G. Underwood&amp;lt;br/&amp;gt;Seoul, Korea &lt;br /&gt;
|원문2=Jan 20, 1886&lt;br /&gt;
|원문3=To Dr . Ellinwood&lt;br /&gt;
|원문4=Dear Dr. Ellinwood,&lt;br /&gt;
|원문5=Your very welcome letter bringing us the good news of Dr. Sturge's appointment to this field reached us by mail just in and we are all very glad that the Board is going to open a Station at Fusan. We also feel rejoiced that the mission is to be reinforced in this way as we ourselves as we look at the field and consider our number see how little we can do and feel that we are but a drop in an ocean. The prospect for work is no nearer open except that I think we will soon be able to do something in the way of school work and we have every reason to believe that the Korean government would welcome any such effort. There is however one seriously difficulty in the way of our doing much of that work that can be called in part self-supporting.&lt;br /&gt;
|원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Korean government in their schools have no charges at all but virtually pay the scholars for attending in providing then with their food, clothing, and a certain amount of money and it will therefore not be the easiest matter to find those that are willing to pay for what costs nothing elsewhere. If a free school were opened it would be filled at once if in addition we would pay the pupils enough to live on and in fact I have been told that we could have all that we could teach if the latter clause were left out but we feel that there is a danger of giving the Koreans the idea that we are backed by a rich board at home and that it would be a pretty good idea to become a Christian. There is one way in which we could begin work at once and be at the same time building up for Korea a Christian youth. My attention has been called to the fact that there are in Seoul a great many homeless and destitute children as orphans and those of illegitimate birth and they could be taken and clothed and fed and trained up in a right way and taught to love the Savior.&amp;lt;/div&amp;gt;&lt;br /&gt;
|원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I had been thinking about this for some time and wondering how we were to go to work as now would be the time when I received from a friend the sum of $100.00 to be used for missions in Korea. A place of the right size and in tolerably good repair could with this amount be obtained and put in order but then there were the running expenses to be thought of. This place however is not very near to us and as such a work would require continual watching it was thought best by both Drs. Allen and Heron not to purchase. Any place in this neighborhood would cost a great deal more and we are just now considering what ought to be done. The cost of running such a home per years, reckoning on the prices of clothing and food as they now are, with say from twenty to twenty-five inmates would amount to less than $500.00 and the cost of getting the house that is considered the best in every way by all who are out here would be between $400.00 and 500.00. The plan meets with Mr. Foulk's most hearty approval and as there are several reasons for beginning now we are very much tempted to do so. If this were stated there would be at the same time be in connection with it a daily school for all who would come. This is as far as we have gone and had we the means I do not doubt but that we could have both a boys and girls school before the year is through. I have been hard at work at the language and have managed to make some progress and think now that it is time that I was at some work.&amp;lt;/div&amp;gt; &lt;br /&gt;
|원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Owing to a badly built chimney my house took fire last night and it was a wonder that the whole house was not burnt down and as the floor of my hall was ablaze when I awoke this morning it is cause for great thankfulness on our part that no further damage was done. As it was the damage will not amount to over ten dollars. It showed somewhat as to what example will do and the influence we are having upon those around us when my boy in speaking of the fire after it was all out this morning and in mixed English and Korean 󰡐Master will say many thank yous(?) to God that it was not more serious' : and we have seen this also in the apparent surprise and almost horror shown by those around us when it is proposed to do anything on a Sunday.&amp;lt;/div&amp;gt;&lt;br /&gt;
|원문9=&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We observed the week of prayer here and on one night there were several Koreans present and our players went up most fervently that ere another week of prayer should roll round there may be many Koreans who shall join in the worship. Last night Dr. Allen received a letter from the Roman Catholic priest in this city asking him to attend a sick Christian woman Of course they did so at once but were unable to do anything for her besides giving her a little medicine to ease the pain. They wrote explaining the case to the Romanists and offering to attend her further if they so desired. It was reported to us not long ago that there were a great many starving people in Seoul and we at once organized to see what could be done. Finding a few worthy cases we attended to them and then employed a Korean to go around and see how much distress there was and to report to us all that were worthy. He was a man recommended to us for the work by my teacher. After spending four whole days at this work he reports that he can only find one case that is really worthy that of an old man without any relations and that all the other cases that he could find after sifting them down could either work themselves or had someone related to them who would support them. This has greatly relieved our minds and we have also been pleased to find a man that appears so trustworthy and who when offered pay refused it on the grounds that he was only helping in a good work and that he was glad to do it. He was a Romanist Christian and as he was a poor man I insisted upon his taking what it had cost him to stay in Seoul for those days.&amp;lt;/div&amp;gt;&lt;br /&gt;
|원문10=&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Trusting that you will let us know at once how you feel on the subject of supporting an orphanage here and that we may soon be able to report better openings in this land I remain,&amp;lt;/div&amp;gt;&lt;br /&gt;
|원문11=Yours most sincerely,&lt;br /&gt;
|원문12=Horace G. Underwood&lt;br /&gt;
&lt;br /&gt;
|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amp;lt;br/&amp;gt;한국, 서울&lt;br /&gt;
|번역문2=1886년 1월 20일&lt;br /&gt;
|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 박사님께,&lt;br /&gt;
|번역문4=엘린우드 박사님,&lt;br /&gt;
|번역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선교사편지인물태그|[[스터지]]}} 의사&amp;lt;ref&amp;gt;그는 한국에 파송되지 않았다.&amp;lt;/ref&amp;gt;가 이곳 사역지로 임명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박사님의 편지가 방금 전 저희에게 도착했습니다. 본부에서 부산에 새로운 지부를 시작하게 된 것에 대해 우리 모두는 대단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역현장을 바라보며 우리 선교사들의 수를 생각해 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미약한지 보게 됩니다. 우리는 드넓은 바다 속의 물 한 방울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우리의 선교사역의 힘이 강화되는 것에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학교 교육 사업을 위해 조만간 무슨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역의 앞길이 열릴 것이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에서 우리의 이러한 노력을 환영하리라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역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립(自立)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한국 정부는 그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일체의 교육비를 받지 않게 합니다. 오히려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음식과 의복과 일정액의 돈을 제공해 주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학업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혀 돈을 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곳들이 있기에 돈을 내면서 배우려는 사람을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무료 학교가 개교를 하고, 우리가 학생들의 생활비용을 충분히 지불해 준다면 그런 학교는 곧 학생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에게서 배우려 할 학생들이 가득할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에게 우리가 본국에 있는 돈 많은 본부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우리가 사역을 즉시 시작하게 될 수 있고, 한국을 위해 기독 청년들을 길러 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서울에 고아가 되어 곤궁한 처지에 있는 집 없는 아이들, 사생아들이 대단히 많다는 사실에 저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받아 들여 옷을 입혀 주고, 음식을 먹여 주며, 진리의 길 안에서 훈련받게 해 줄 수 있을 것이고, 구주를 사랑하도록 가르쳐 줄 수 있을 겁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저는 한동안 이 일에 대해 생각했었고, 지금이 적기라 보이는데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친구 하나가 한국에서의 선교 사업에 쓰도록 100달러를 기부해 주었습니다. 손질이 제법 잘되어 있으며 알맞는 크기의 장소를 이 돈으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 운영경비에 대해서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이 장소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그리 가깝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런 일은 계속 지켜보는 것이 필요한데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과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의사는 그 장소를 구입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근처에 있는 곳들을 사려면 훨씬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 중에 있습니다. 1년 동안 이런 고아원을 운영하는 비용은, 20명에서 25명의 아이들이 있을 경우에, 의복과 음식 등을 현 시세대로 계산해 보면 500달러 미만이 될 겁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보기에 모든 면에서 가장 좋은 건물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400달러에서 500달러 정도가 필요할 겁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Foulk, George C.|포크]]}} 씨&amp;lt;ref&amp;gt;주한 미국 공사&amp;lt;/ref&amp;gt;도 이 계획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 합당한, 분명한 이유가 있으므로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린다면, 오고자 하는 아이들 모두를 대상으로 하여 ‘일일학교’와 이 일이 연계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상,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수단이 갖추어져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남학교와 여학교의 문을 열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부실하게 지어진 굴뚝으로 인해, {{선교사편지공간태그|[[언더우드의 사택|저의 집]]}}에서 지난 밤 불이 났었습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현관 마루가 불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집 전체가 다 타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더 큰 피해가 없었던 게 우리에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액은 10달러가 넘지 않을 겁니다. 오늘 아침 불이 다 꺼진 후에 저를 시중드는 소년은 한국식 영어로 화재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주인님은 더 많은 피해가 나지 않아서 하나님께 많이 감사하다고 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떠한 본을 보이는 게 필요한지,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어떤 일이라도 해 보자고 제안하였을 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당혹스러워 하는 것을 보면서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9=&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우리는 이곳에서 기도주간을 가졌는데, 어느 날 밤에는 한국인들 몇 명이 이에 함께 참여하였고, 다음 기도 주간이 있기 전에 이 예배 모임에 많은 한국인들이 동참하게 되도록 매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지난 밤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는 서울에 있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Coste, Jean G.|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그 신부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에게 병환 중에 있는 한 그리스도인 여성을 진료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amp;lt;ref&amp;gt;&amp;quot;프랑스 신부 장 게오르그 꼬스트(Jean George Coste)가 출산 중인 한 여성의 생명을 구해 달라고 왕진을 요청했다. 성공적으로 분만했고 신부는 매우 고마워했다.&amp;quot;(1886년 1월 22일 알렌의 일기)&amp;lt;/ref&amp;gt;물론 즉시 그렇게 했지만 그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약을 조금 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은 가톨릭교회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이 바라면 그녀를 다시 더 진료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최근에, 서울 안에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는 곧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몇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돌봐 주었습니다. 그 후에는 한 한국인을 고용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빈곤상태가 얼마나 심한지 살펴보고 우리에게 보고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송순용|제 언어교사]]}}가 추천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나흘 내내 이런 일을 한 후에, “정말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고 전하는데, 아무런 연고(緣故)도 없는 한 노인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자세히 조사해보니 그 이외 사람들은 자립할 수 있거나,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 중에 그들을 도울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우리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으며 무척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사람을 한 명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에게 수고비를 전해 주려 했지만 “자신은 좋은 일에 참여해 도왔을 뿐이며 이런 일을 하게 되어 기쁘다”며 돈을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선교사편지단체태그|[[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번 일을 하기 위해 서울에 머무는 동안 들었던 경비를 받으라고 제가 강권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0=&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이곳에서 고아원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 박사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즉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곧 한국에서 더 좋은 길이 열리는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1=안녕히 계십시오.&lt;br /&gt;
|번역문12={{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올림.&lt;br /&gt;
}}&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lt;br /&gt;
&amp;lt;html&amp;gt;&amp;lt;iframewidth=&amp;quot;100%&amp;quot;height=&amp;quot;800&amp;quot; src=&lt;br /&gt;
&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jclej_18860120.htm&amp;quot;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lt;br /&gt;
&amp;lt;/iframe&amp;gt;&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편지]] [[분류:선교사편지_From_Underwood]] [[분류:선교사편지_To_Ellinwood]] [[분류:선교사편지_1886년]] [[분류:선교사편지_서울]]&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60120)</id>
		<title>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120)</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60120)"/>
				<updated>2019-05-29T05:57: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구축 데이터 목록|편지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정보&lt;br /&gt;
|식별자=L18860120UTOE&lt;br /&gt;
|대표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1886년 1월 20일)&lt;br /&gt;
|한글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6년 1월 20일)&lt;br /&gt;
|영문명칭=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Jan 20, 1886)&lt;br /&gt;
|발신자=[[Underwood, Horace G.(원두우)]]&lt;br /&gt;
|수신자=[[Ellinwood, Frank F.]]&lt;br /&gt;
|작성연도=1886년&lt;br /&gt;
|작성월일=1월 20일&lt;br /&gt;
|작성공간=[[서울]]&lt;br /&gt;
|자료소장처=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lt;br /&gt;
|번역문출처=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레이아웃&lt;br /&gt;
|원문1=Dr. Horace G. Underwood&amp;lt;br/&amp;gt;Seoul, Korea &lt;br /&gt;
|원문2=Jan 20, 1886&lt;br /&gt;
|원문3=To Dr . Ellinwood&lt;br /&gt;
|원문4=Dear Dr. Ellinwood,&lt;br /&gt;
|원문5=Your very welcome letter bringing us the good news of Dr. Sturge's appointment to this field reached us by mail just in and we are all very glad that the Board is going to open a Station at Fusan. We also feel rejoiced that the mission is to be reinforced in this way as we ourselves as we look at the field and consider our number see how little we can do and feel that we are but a drop in an ocean. The prospect for work is no nearer open except that I think we will soon be able to do something in the way of school work and we have every reason to believe that the Korean government would welcome any such effort. There is however one seriously difficulty in the way of our doing much of that work that can be called in part self-supporting.&lt;br /&gt;
|원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Korean government in their schools have no charges at all but virtually pay the scholars for attending in providing then with their food, clothing, and a certain amount of money and it will therefore not be the easiest matter to find those that are willing to pay for what costs nothing elsewhere. If a free school were opened it would be filled at once if in addition we would pay the pupils enough to live on and in fact I have been told that we could have all that we could teach if the latter clause were left out but we feel that there is a danger of giving the Koreans the idea that we are backed by a rich board at home and that it would be a pretty good idea to become a Christian. There is one way in which we could begin work at once and be at the same time building up for Korea a Christian youth. My attention has been called to the fact that there are in Seoul a great many homeless and destitute children as orphans and those of illegitimate birth and they could be taken and clothed and fed and trained up in a right way and taught to love the Savior.&amp;lt;/div&amp;gt;&lt;br /&gt;
|원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I had been thinking about this for some time and wondering how we were to go to work as now would be the time when I received from a friend the sum of $100.00 to be used for missions in Korea. A place of the right size and in tolerably good repair could with this amount be obtained and put in order but then there were the running expenses to be thought of. This place however is not very near to us and as such a work would require continual watching it was thought best by both Drs. Allen and Heron not to purchase. Any place in this neighborhood would cost a great deal more and we are just now considering what ought to be done. The cost of running such a home per years, reckoning on the prices of clothing and food as they now are, with say from twenty to twenty-five inmates would amount to less than $500.00 and the cost of getting the house that is considered the best in every way by all who are out here would be between $400.00 and 500.00. The plan meets with Mr. Foulk's most hearty approval and as there are several reasons for beginning now we are very much tempted to do so. If this were stated there would be at the same time be in connection with it a daily school for all who would come. This is as far as we have gone and had we the means I do not doubt but that we could have both a boys and girls school before the year is through. I have been hard at work at the language and have managed to make some progress and think now that it is time that I was at some work.&amp;lt;/div&amp;gt; &lt;br /&gt;
|원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Owing to a badly built chimney my house took fire last night and it was a wonder that the whole house was not burnt down and as the floor of my hall was ablaze when I awoke this morning it is cause for great thankfulness on our part that no further damage was done. As it was the damage will not amount to over ten dollars. It showed somewhat as to what example will do and the influence we are having upon those around us when my boy in speaking of the fire after it was all out this morning and in mixed English and Korean 󰡐Master will say many thank yous(?) to God that it was not more serious' : and we have seen this also in the apparent surprise and almost horror shown by those around us when it is proposed to do anything on a Sunday.&amp;lt;/div&amp;gt;&lt;br /&gt;
|원문9=&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We observed the week of prayer here and on one night there were several Koreans present and our players went up most fervently that ere another week of prayer should roll round there may be many Koreans who shall join in the worship. Last night Dr. Allen received a letter from the Roman Catholic priest in this city asking him to attend a sick Christian woman Of course they did so at once but were unable to do anything for her besides giving her a little medicine to ease the pain. They wrote explaining the case to the Romanists and offering to attend her further if they so desired. It was reported to us not long ago that there were a great many starving people in Seoul and we at once organized to see what could be done. Finding a few worthy cases we attended to them and then employed a Korean to go around and see how much distress there was and to report to us all that were worthy. He was a man recommended to us for the work by my teacher. After spending four whole days at this work he reports that he can only find one case that is really worthy that of an old man without any relations and that all the other cases that he could find after sifting them down could either work themselves or had someone related to them who would support them. This has greatly relieved our minds and we have also been pleased to find a man that appears so trustworthy and who when offered pay refused it on the grounds that he was only helping in a good work and that he was glad to do it. He was a Romanist Christian and as he was a poor man I insisted upon his taking what it had cost him to stay in Seoul for those days.&amp;lt;/div&amp;gt;&lt;br /&gt;
|원문10=&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Trusting that you will let us know at once how you feel on the subject of supporting an orphanage here and that we may soon be able to report better openings in this land I remain,&amp;lt;/div&amp;gt;&lt;br /&gt;
|원문11=Yours most sincerely,&lt;br /&gt;
|원문12=Horace G. Underwood&lt;br /&gt;
&lt;br /&gt;
|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amp;lt;br/&amp;gt;한국, 서울&lt;br /&gt;
|번역문2=1886년 1월 20일&lt;br /&gt;
|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 박사님께,&lt;br /&gt;
|번역문4=엘린우드 박사님,&lt;br /&gt;
|번역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선교사편지인물태그|[[스터지]]}} 의사&amp;lt;ref&amp;gt;그는 한국에 파송되지 않았다.&amp;lt;/ref&amp;gt;가 이곳 사역지로 임명받았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박사님의 편지가 방금 전 저희에게 도착했습니다. 본부에서 부산에 새로운 지부를 시작하게 된 것에 대해 우리 모두는 대단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사역현장을 바라보며 우리 선교사들의 수를 생각해 볼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미약한지 보게 됩니다. 우리는 드넓은 바다 속의 물 한 방울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이렇게 우리의 선교사역의 힘이 강화되는 것에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학교 교육 사업을 위해 조만간 무슨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사역의 앞길이 열릴 것이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에서 우리의 이러한 노력을 환영하리라는 것은 매우 분명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사역을 해 나가는데 있어서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립(自立)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한국 정부는 그들이 운영하는 학교에서 일체의 교육비를 받지 않게 합니다. 오히려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에게 음식과 의복과 일정액의 돈을 제공해 주면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학업 비용을 지불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전혀 돈을 들이지 않고 배울 수 있는 곳들이 있기에 돈을 내면서 배우려는 사람을 찾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만일 무료 학교가 개교를 하고, 우리가 학생들의 생활비용을 충분히 지불해 준다면 그런 학교는 곧 학생들로 채워질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문제가 해결된다면 우리에게서 배우려 할 학생들이 가득할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에게 우리가 본국에 있는 돈 많은 본부의 후원을 받고 있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꽤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할 위험성이 있다고 여겨집니다.우리가 사역을 즉시 시작하게 될 수 있고, 한국을 위해 기독 청년들을 길러 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서울에 고아가 되어 곤궁한 처지에 있는 집 없는 아이들, 사생아들이 대단히 많다는 사실에 저는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을 받아 들여 옷을 입혀 주고, 음식을 먹여 주며, 진리의 길 안에서 훈련받게 해 줄 수 있을 것이고, 구주를 사랑하도록 가르쳐 줄 수 있을 겁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저는 한동안 이 일에 대해 생각했었고, 지금이 적기라 보이는데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 친구 하나가 한국에서의 선교 사업에 쓰도록 100달러를 기부해 주었습니다. 손질이 제법 잘되어 있으며 알맞는 크기의 장소를 이 돈으로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에 운영경비에 대해서도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이 장소는 우리가 사는 곳에서 그리 가깝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이런 일은 계속 지켜보는 것이 필요한데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과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의사는 그 장소를 구입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근처에 있는 곳들을 사려면 훨씬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 중에 있습니다. 1년 동안 이런 고아원을 운영하는 비용은, 20명에서 25명의 아이들이 있을 경우에, 의복과 음식 등을 현 시세대로 계산해 보면 500달러 미만이 될 겁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보기에 모든 면에서 가장 좋은 건물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400달러에서 500달러 정도가 필요할 겁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Foulk, George C.|포크]]}} 씨&amp;lt;ref&amp;gt;주한 미국 공사&amp;lt;/ref&amp;gt;도 이 계획에 대해 전적으로 찬성했습니다. 이 일을 시작하는 것이 합당한, 분명한 이유가 있으므로 우리는 이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말씀드린다면, 오고자 하는 아이들 모두를 대상으로 하여 ‘일일학교’와 이 일이 연계될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경험상, 이렇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수단이 갖추어져 있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남학교와 여학교의 문을 열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는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하여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제가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부실하게 지어진 굴뚝으로 인해, {{선교사편지공간태그|[[언더우드의 사택|저의 집]]}}에서 지난 밤 불이 났었습니다. 제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현관 마루가 불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집 전체가 다 타버리지 않은 것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더 큰 피해가 없었던 게 우리에게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액은 10달러가 넘지 않을 겁니다. 오늘 아침 불이 다 꺼진 후에 저를 시중드는 소년은 한국식 영어로 화재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주인님은 더 많은 피해가 나지 않아서 하나님께 많이 감사하다고 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어떠한 본을 보이는 게 필요한지, 우리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에 어떤 일이라도 해 보자고 제안하였을 때,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놀라워하고 당혹스러워 하는 것을 보면서도 이러한 사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9=&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우리는 이곳에서 기도주간을 가졌는데, 어느 날 밤에는 한국인들 몇 명이 이에 함께 참여하였고, 다음 기도 주간이 있기 전에 이 예배 모임에 많은 한국인들이 동참하게 되도록 매우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지난 밤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는 서울에 있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Coste, Jean G.|로마 가톨릭교회 신부]]}}에게서 편지를 받았는데 그 신부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에게 병환 중에 있는 한 그리스도인 여성을 진료해 달라는 부탁을 하였습니다.&amp;lt;ref&amp;gt;&amp;quot;프랑스 신부 장 게오르그 꼬스트(Jean George Coste)가 출산 중인 한 여성의 생명을 구해 달라고 왕진을 요청했다. 성공적으로 분만했고 신부는 매우 고마워했다.&amp;quot;(1886년 1월 22일 알렌의 일기)&amp;lt;/ref&amp;gt;물론 즉시 그렇게 했지만 그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약을 조금 주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은 가톨릭교회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하고, 그들이 바라면 그녀를 다시 더 진료하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최근에, 서울 안에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이 대단히 많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는 곧 바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몇 사람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을 돌봐 주었습니다. 그 후에는 한 한국인을 고용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빈곤상태가 얼마나 심한지 살펴보고 우리에게 보고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송순용|제 언어교사]]}}가 추천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나흘 내내 이런 일을 한 후에, “정말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다”고 전하는데, 아무런 연고(緣故)도 없는 한 노인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자세히 조사해보니 그 이외 사람들은 자립할 수 있거나,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 중에 그들을 도울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우리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으며 무척 믿음직스러워 보이는 사람을 한 명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우리가 이 사람에게 수고비를 전해 주려 했지만 “자신은 좋은 일에 참여해 도왔을 뿐이며 이런 일을 하게 되어 기쁘다”며 돈을 받기를 거절했습니다. 그는 {{선교사편지단체태그|[[로마 가톨릭교회|가톨릭교회]]}}의 교인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형편이 어려웠기 때문에, 이번 일을 하기 위해 서울에 머무는 동안 들었던 경비를 받으라고 제가 강권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0=&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이곳에서 고아원을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 박사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즉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이제 곧 한국에서 더 좋은 길이 열리는 소식을 전해 드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1=안녕히 계십시오.&lt;br /&gt;
|번역문12={{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올림.&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편지]] [[분류:선교사편지_From_Underwood]] [[분류:선교사편지_To_Ellinwood]] [[분류:선교사편지_1886년]] [[분류:선교사편지_서울]]&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Foote,_Rose_C.</id>
		<title>Foote, Rose C.</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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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5-22T07:24: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 인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푸트 부인&amp;lt;br/&amp;gt;Foote, Rose C.&lt;br /&gt;
|한글명=로즈 푸트&lt;br /&gt;
|영문명=Rose Carter Foote&lt;br /&gt;
|한자명=福德 부인&lt;br /&gt;
|가나명=&lt;br /&gt;
|이칭=&lt;br /&gt;
|성별=여자&lt;br /&gt;
|생년=&lt;br /&gt;
|몰년=1885년&lt;br /&gt;
|소속=미국공사관&lt;br /&gt;
|직업=외교관 부인&lt;br /&gt;
|내한 연도=1883~1885년&lt;br /&gt;
|출신지= &lt;br /&gt;
|출신학교=&lt;br /&gt;
|증조할아버지=&lt;br /&gt;
|형=&lt;br /&gt;
|아버지=&lt;br /&gt;
|어머니=&lt;br /&gt;
|배우자=[[Foote, Lucius H.|Lucius H. Foote]]&lt;br /&gt;
|자녀=&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기본정보==&lt;br /&gt;
미국의 외교관의 아내.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한국 주재 초대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된 남편과 함께 한성에 주재했다.&lt;br /&gt;
==상세정보==&lt;br /&gt;
*관련편지1: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18850218)]] : 1885년 사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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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Foote,_Rose_C.</id>
		<title>Foote, Rose C.</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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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새 문서: {{버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  {{선교사편지 인물정보  |식별자= |대표명=푸트 부인&amp;lt;br/&amp;gt;Foote, Rose C. |한...&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 인물|인물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lt;br /&gt;
|식별자=&lt;br /&gt;
|대표명=푸트 부인&amp;lt;br/&amp;gt;Foote, Rose C.&lt;br /&gt;
|한글명=로즈 푸트&lt;br /&gt;
|영문명=Rose Carter Foote&lt;br /&gt;
|한자명=福德 부인&lt;br /&gt;
|가나명=&lt;br /&gt;
|이칭=&lt;br /&gt;
|성별=여자&lt;br /&gt;
|생년=&lt;br /&gt;
|몰년=1885년&lt;br /&gt;
|소속=미국공사관&lt;br /&gt;
|직업=외교관 부인&lt;br /&gt;
|내한 연도=1883~1885년&lt;br /&gt;
|출신지= &lt;br /&gt;
|출신학교=&lt;br /&gt;
|증조할아버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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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기본정보==&lt;br /&gt;
미국의 외교관의 아내.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 후 한국 주재 초대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된 남편과 함께 한성에 주재했다.&lt;br /&gt;
==상세정보==&lt;br /&gt;
*관련편지1: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18850218)]] : 1885년 사별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50218)</id>
		<title>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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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구축 데이터 목록|편지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정보&lt;br /&gt;
|식별자=L18850218UTOE&lt;br /&gt;
|대표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1885년 2월 18일)&lt;br /&gt;
|한글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2월 18일)&lt;br /&gt;
|영문명칭=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Feb 18, 1885)&lt;br /&gt;
|발신자=[[Underwood, Horace G.(원두우)]]&lt;br /&gt;
|수신자=[[Ellinwood, Frank F.]]&lt;br /&gt;
|작성연도=1885년&lt;br /&gt;
|작성월일=2월 18일&lt;br /&gt;
|작성공간=[[헵번의 사택(요코하마)]]&lt;br /&gt;
|자료소장처=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lt;br /&gt;
|번역문출처=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레이아웃&lt;br /&gt;
|원문1=Dr. Horace G. Underwood&amp;lt;br/&amp;gt;Yokohama, Japan &lt;br /&gt;
|원문2=Feb 18, 1885&lt;br /&gt;
|원문3=To Dr . Ellinwood&lt;br /&gt;
|원문4=Dear Doctor,&lt;br /&gt;
|원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There being no steamer for Chemulpo, the port of Korea, before the 26th of March, I am stopping with Dr. Hepburn till then. In the mean time I have secured the services of some of the refugee Koreans who are in Yokohama and while they are teaching me Korean I in turn am giving them lessons in English. The books to be obtained on the language are very few and these I have got and am doing the best I can with them.&amp;lt;/div&amp;gt;&lt;br /&gt;
|원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At present it does not seem such a formidable matter but I suppose I have not yet got to the difficulties. From all that I can learn it will be an impossibility to get at the women of Korea except through women and still further that at present this can only be done by married women, and widows and that young un-married women will be almost useless. It might not be policy for any female Missionaries to enter the country just now unless as Missionaries wives but if some could be sent new to Japan they could be learning the language here and enter as soon as the way opened which as far as I can ascertain must be before very long. I do not know whether you have yet heard it from Dr. Allen but I hear it on every side, that the influence of an un-married man is very much lessened thereby and that the circumstances in this field are such that it is hardly advisable for the Board to send any but MARRIED men; and in fact Dr. Allen writes on to me that if by waiting in Japan I could go into the country married it would be best to wait.&amp;lt;/div&amp;gt;&lt;br /&gt;
|원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I have met General and Mrs. Foote who are on their way home on leave of absence. I found them very pleasant indeed and the General said that he thought it would be perfectly safe for me to go into the country now and that the way for mission schools was now open. He also stated that it would be hardly advisable to do any preaching just now but as I dont know the language this of course is still a good way off. He seems to think a good deal of Dr. Allen and speaks of him in the highest terms and Mrs. Foote it appear had formed quite an attachment to Mrs. Allen.&amp;lt;/div&amp;gt;&lt;br /&gt;
|원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Had the late attempt of the Progressionist party to gain control been successful, there is every evidence to prove the work of missions would have received such an impetus that it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find men enough to do the work that would have laid before them.Trusting that you have Bow fully recovered from yours sickness.&amp;lt;/div&amp;gt;&lt;br /&gt;
|원문9=I remain,Yours Truly,&lt;br /&gt;
|원문10=Horace G. Underwood&lt;br /&gt;
&lt;br /&gt;
|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amp;lt;br/&amp;gt;일본, {{선교사편지공간태그|[[헵번의 사택(요코하마)|요코하마]]}}&lt;br /&gt;
|번역문2=1885년 2월 18일&lt;br /&gt;
|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Ellinwood)]]}} 박사님께,&lt;br /&gt;
|번역문4=박사님,&lt;br /&gt;
|번역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3월 26일 전에는 한국의 항구인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물포]]}}로 가는 배가 없어서 그때까지 {{선교사편지공간태그|[[헵번의 사택(요코하마)|헵번 박사 댁]]}}에 머무르려 합니다. 그러는동안, 일본으로 망명해 {{선교사편지공간태그|[[요코하마]]}}에 있던 몇몇 한국인들&amp;lt;ref&amp;gt;박영효, 서광범, 김옥균&amp;lt;/ref&amp;gt;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그 보답으로 저는 영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국어에 관한 책은 몇 권 볼 수 없지만 저는 그 책들을 얻게 되었고 그것들의 도움을 받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현재로서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로 보이지 않지만 저는 아직 그러한 어려움에 직면하기 전(前) 상태에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같은 여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 여성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이렇게 하는 것도 현재 결혼한 여성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미망인이나 젊은 미혼 여성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선교사 부인 자격으로 가는 것이 아닌 이상, 여성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지금 일본으로 몇 사람이 보내진다면 이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을 것이고, 길이 열리자마자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틀림없이 머지 않아 길이 열릴 것이라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를 통해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혼 남성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적은 이곳 현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amp;quot;본부에서 기혼 남성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amp;quot;는 말을 저는 사방에서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알렌 의사는 편지를 통해서 저에게 일본에서 기다리는 동안 결혼하여 기혼자로서 한국에 들어 올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저는 휴가를 얻어 귀향 길에 오른 {{선교사편지인물태그|[[Foote, Lucius H.|푸트]]}} 공사&amp;lt;ref&amp;gt;주한 미국 공사&amp;lt;/ref&amp;gt; 내외를 만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무척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장군은 제가 한국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은 확실하며, 기독교 학교를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지금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푸트 장군은 지금 당장 전도 활동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직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현재로서 이 일은 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은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를 무척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알렌 의사에 대해 극찬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편지인물태그|[[Carter, Rose F.|푸트 부인]]}}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Frances A.|알렌 부인]]}}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최근, {{선교사편지단체태그|[[개화파]]}}가 {{선교사편지사건태그|[[갑신정변|정국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성공을 거두었다면 틀림없이 선교 사역이 크게 활발해져, 증가한 사역 량(量)을 감당할 일손이 부족하였을 것입니다. 병환에서 이제 완전히 회복되셨기를 바랍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9=안녕히 계십시오.&lt;br /&gt;
|번역문10={{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올림.&lt;br /&gt;
}}&lt;br /&gt;
==데이터 네트워크==&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mission_18850218.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편지]] [[분류:선교사편지_From_Underwood]] [[분류:선교사편지_To_Ellinwood]] [[분류:선교사편지_1885년]] [[분류:선교사편지_요코하마]]&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50218)</id>
		<title>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50218)"/>
				<updated>2019-05-22T06:31:1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구축 데이터 목록|편지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정보&lt;br /&gt;
|식별자=L18850218UTOE&lt;br /&gt;
|대표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1885년 2월 18일)&lt;br /&gt;
|한글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2월 18일)&lt;br /&gt;
|영문명칭=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Feb 18, 1885)&lt;br /&gt;
|발신자=[[Underwood, Horace G.(원두우)]]&lt;br /&gt;
|수신자=[[Ellinwood, Frank F.]]&lt;br /&gt;
|작성연도=1885년&lt;br /&gt;
|작성월일=2월 18일&lt;br /&gt;
|작성공간=[[헵번의 사택(요코하마)]]&lt;br /&gt;
|자료소장처=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lt;br /&gt;
|번역문출처=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레이아웃&lt;br /&gt;
|원문1=Dr. Horace G. Underwood&amp;lt;br/&amp;gt;Yokohama, Japan &lt;br /&gt;
|원문2=Feb 18, 1885&lt;br /&gt;
|원문3=To Dr . Ellinwood&lt;br /&gt;
|원문4=Dear Doctor,&lt;br /&gt;
|원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There being no steamer for Chemulpo, the port of Korea, before the 26th of March, I am stopping with Dr. Hepburn till then. In the mean time I have secured the services of some of the refugee Koreans who are in Yokohama and while they are teaching me Korean I in turn am giving them lessons in English. The books to be obtained on the language are very few and these I have got and am doing the best I can with them.&amp;lt;/div&amp;gt;&lt;br /&gt;
|원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At present it does not seem such a formidable matter but I suppose I have not yet got to the difficulties. From all that I can learn it will be an impossibility to get at the women of Korea except through women and still further that at present this can only be done by married women, and widows and that young un-married women will be almost useless. It might not be policy for any female Missionaries to enter the country just now unless as Missionaries wives but if some could be sent new to Japan they could be learning the language here and enter as soon as the way opened which as far as I can ascertain must be before very long. I do not know whether you have yet heard it from Dr. Allen but I hear it on every side, that the influence of an un-married man is very much lessened thereby and that the circumstances in this field are such that it is hardly advisable for the Board to send any but MARRIED men; and in fact Dr. Allen writes on to me that if by waiting in Japan I could go into the country married it would be best to wait.&amp;lt;/div&amp;gt;&lt;br /&gt;
|원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I have met General and Mrs. Foote who are on their way home on leave of absence. I found them very pleasant indeed and the General said that he thought it would be perfectly safe for me to go into the country now and that the way for mission schools was now open. He also stated that it would be hardly advisable to do any preaching just now but as I dont know the language this of course is still a good way off. He seems to think a good deal of Dr. Allen and speaks of him in the highest terms and Mrs. Foote it appear had formed quite an attachment to Mrs. Allen.&amp;lt;/div&amp;gt;&lt;br /&gt;
|원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Had the late attempt of the Progressionist party to gain control been successful, there is every evidence to prove the work of missions would have received such an impetus that it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find men enough to do the work that would have laid before them.Trusting that you have Bow fully recovered from yours sickness.&amp;lt;/div&amp;gt;&lt;br /&gt;
|원문9=I remain,Yours Truly,&lt;br /&gt;
|원문10=Horace G. Underwood&lt;br /&gt;
&lt;br /&gt;
|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amp;lt;br/&amp;gt;일본, {{선교사편지공간태그|[[헵번의 사택(요코하마)|요코하마]]}}&lt;br /&gt;
|번역문2=1885년 2월 18일&lt;br /&gt;
|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Ellinwood)]]}} 박사님께,&lt;br /&gt;
|번역문4=박사님,&lt;br /&gt;
|번역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3월 26일 전에는 한국의 항구인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물포]]}}로 가는 배가 없어서 그때까지 {{선교사편지공간태그|[[헵번의 사택(요코하마)|헵번 박사 댁]]}}에 머무르려 합니다. 그러는동안, 일본으로 망명해 {{선교사편지공간태그|[[요코하마]]}}에 있던 몇몇 한국인들&amp;lt;ref&amp;gt;박영효, 서광범, 김옥균&amp;lt;/ref&amp;gt;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그 보답으로 저는 영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국어에 관한 책은 몇 권 볼 수 없지만 저는 그 책들을 얻게 되었고 그것들의 도움을 받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현재로서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로 보이지 않지만 저는 아직 그러한 어려움에 직면하기 전(前) 상태에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같은 여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 여성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이렇게 하는 것도 현재 결혼한 여성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미망인이나 젊은 미혼 여성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선교사 부인 자격으로 가는 것이 아닌 이상, 여성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지금 일본으로 몇 사람이 보내진다면 이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을 것이고, 길이 열리자마자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틀림없이 머지 않아 길이 열릴 것이라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를 통해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혼 남성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적은 이곳 현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amp;quot;본부에서 기혼 남성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amp;quot;는 말을 저는 사방에서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알렌 의사는 편지를 통해서 저에게 일본에서 기다리는 동안 결혼하여 기혼자로서 한국에 들어 올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저는 휴가를 얻어 귀향 길에 오른 {{선교사편지인물태그|[[Foote, Lucius H.|푸트]]}} 공사&amp;lt;ref&amp;gt;주한 미국 공사&amp;lt;/ref&amp;gt; 내외를 만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무척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장군은 제가 한국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은 확실하며, 기독교 학교를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지금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푸트 장군은 지금 당장 전도 활동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직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현재로서 이 일은 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은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를 무척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알렌 의사에 대해 극찬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편지인물태그|[[Carter, Rose F.|푸트 부인]]}}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Frances A.|알렌 부인]]}}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최근, {{선교사편지단체태그|[[개화파]]}}가 {{선교사편지사건태그|[[갑신정변|정국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성공을 거두었다면 틀림없이 선교 사역이 크게 활발해져, 증가한 사역 량(量)을 감당할 일손이 부족하였을 것입니다. 병환에서 이제 완전히 회복되셨기를 바랍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9=안녕히 계십시오.&lt;br /&gt;
|번역문10={{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올림.&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편지]] [[분류:선교사편지_From_Underwood]] [[분류:선교사편지_To_Ellinwood]] [[분류:선교사편지_1885년]] [[분류:선교사편지_요코하마]]&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50218)</id>
		<title>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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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5-22T06:29:4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구축 데이터 목록|편지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정보&lt;br /&gt;
|식별자=L18850218UTOE&lt;br /&gt;
|대표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1885년 2월 18일)&lt;br /&gt;
|한글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2월 18일)&lt;br /&gt;
|영문명칭=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Feb 18, 1885)&lt;br /&gt;
|발신자=[[Underwood, Horace G.(원두우)]]&lt;br /&gt;
|수신자=[[Ellinwood, Frank F.]]&lt;br /&gt;
|작성연도=1885년&lt;br /&gt;
|작성월일=2월 18일&lt;br /&gt;
|작성공간=[[헵번의 사택(요코하마)]]&lt;br /&gt;
|자료소장처=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lt;br /&gt;
|번역문출처=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레이아웃&lt;br /&gt;
|원문1=Dr. Horace G. Underwood&amp;lt;br/&amp;gt;Yokohama, Japan &lt;br /&gt;
|원문2=Feb 18, 1885&lt;br /&gt;
|원문3=To Dr . Ellinwood&lt;br /&gt;
|원문4=Dear Doctor,&lt;br /&gt;
|원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There being no steamer for Chemulpo, the port of Korea, before the 26th of March, I am stopping with Dr. Hepburn till then. In the mean time I have secured the services of some of the refugee Koreans who are in Yokohama and while they are teaching me Korean I in turn am giving them lessons in English. The books to be obtained on the language are very few and these I have got and am doing the best I can with them.&amp;lt;/div&amp;gt;&lt;br /&gt;
|원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At present it does not seem such a formidable matter but I suppose I have not yet got to the difficulties. From all that I can learn it will be an impossibility to get at the women of Korea except through women and still further that at present this can only be done by married women, and widows and that young un-married women will be almost useless. It might not be policy for any female Missionaries to enter the country just now unless as Missionaries wives but if some could be sent new to Japan they could be learning the language here and enter as soon as the way opened which as far as I can ascertain must be before very long. I do not know whether you have yet heard it from Dr. Allen but I hear it on every side, that the influence of an un-married man is very much lessened thereby and that the circumstances in this field are such that it is hardly advisable for the Board to send any but MARRIED men; and in fact Dr. Allen writes on to me that if by waiting in Japan I could go into the country married it would be best to wait.&amp;lt;/div&amp;gt;&lt;br /&gt;
|원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I have met General and Mrs. Foote who are on their way home on leave of absence. I found them very pleasant indeed and the General said that he thought it would be perfectly safe for me to go into the country now and that the way for mission schools was now open. He also stated that it would be hardly advisable to do any preaching just now but as I dont know the language this of course is still a good way off. He seems to think a good deal of Dr. Allen and speaks of him in the highest terms and Mrs. Foote it appear had formed quite an attachment to Mrs. Allen.&amp;lt;/div&amp;gt;&lt;br /&gt;
|원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Had the late attempt of the Progressionist party to gain control been successful, there is every evidence to prove the work of missions would have received such an impetus that it would have been difficult to find men enough to do the work that would have laid before them.Trusting that you have Bow fully recovered from yours sickness.&amp;lt;/div&amp;gt;&lt;br /&gt;
|원문9=I remain,Yours Truly,&lt;br /&gt;
|원문10=Horace G. Underwood&lt;br /&gt;
&lt;br /&gt;
|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amp;lt;br/&amp;gt;일본, {{선교사편지공간태그|[[헵번의 사택(요코하마)|요코하마]]}}&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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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Ellinwood)]]}} 박사님께,&lt;br /&gt;
|번역문4=박사님,&lt;br /&gt;
|번역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3월 26일 전에는 한국의 항구인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물포]]}}로 가는 배가 없어서 그때까지 {{선교사편지공간태그|[[헵번의 사택(요코하마)|헵번 박사 댁]]}}에 머무르려 합니다. 그러는동안, 일본으로 망명해 {{선교사편지공간태그|[[요코하마]]}}에 있던 몇몇 한국인들&amp;lt;ref&amp;gt;박영효, 서광범, 김옥균&amp;lt;/ref&amp;gt;의 도움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제게 한국어를 가르쳐 주었고 그 보답으로 저는 영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한국어에 관한 책은 몇 권 볼 수 없지만 저는 그 책들을 얻게 되었고 그것들의 도움을 받으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현재로서는 그것이 그리 큰 문제로 보이지 않지만 저는 아직 그러한 어려움에 직면하기 전(前) 상태에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같은 여성을 통하지 않고서는 한국 여성에게 다가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이렇게 하는 것도 현재 결혼한 여성만이 할 수 있습니다. 미망인이나 젊은 미혼 여성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선교사 부인 자격으로 가는 것이 아닌 이상, 여성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바람직한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렇지만 만일 지금 일본으로 몇 사람이 보내진다면 이곳에서 한국어를 공부할 수 있을 것이고, 길이 열리자마자 한국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틀림없이 머지 않아 길이 열릴 것이라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박사님께서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를 통해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미혼 남성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매우 적은 이곳 현지의 상황을 고려할 때 &amp;quot;본부에서 기혼 남성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amp;quot;는 말을 저는 사방에서 듣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알렌 의사는 편지를 통해서 저에게 일본에서 기다리는 동안 결혼하여 기혼자로서 한국에 들어 올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일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저는 휴가를 얻어 귀향 길에 오른 {{선교사편지인물태그|[[Foote, Lucius H.|푸트]]}} 공사&amp;lt;ref&amp;gt;주한 미국 공사&amp;lt;/ref&amp;gt; 내외를 만나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무척 좋은 분들이었습니다. 장군은 제가 한국으로 안전하게 들어가는 것은 확실하며, 기독교 학교를 시작할 수 있는 길이 지금 열려 있다고 했습니다. 또한 푸트 장군은 지금 당장 전도 활동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습니다. 제가 아직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으니, 현재로서 이 일은 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분은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Horace N.|알렌]]}} 의사를 무척 좋게 생각하는 것 같았고 알렌 의사에 대해 극찬을 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편지인물태그|[[Carter, Rose F.|푸트 부인]]}}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Allen, Frances A.]]}}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최근, {{선교사편지단체태그|[[개화파]]}}가 {{선교사편지사건태그|[[갑신정변|정국을 장악하려는 시도]]}}가 성공을 거두었다면 틀림없이 선교 사역이 크게 활발해져, 증가한 사역 량(量)을 감당할 일손이 부족하였을 것입니다. 병환에서 이제 완전히 회복되셨기를 바랍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9=안녕히 계십시오.&lt;br /&gt;
|번역문10={{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올림.&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편지]] [[분류:선교사편지_From_Underwood]] [[분류:선교사편지_To_Ellinwood]] [[분류:선교사편지_1885년]] [[분류:선교사편지_요코하마]]&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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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새 문서: {{선교사편지 인물정보 |이미지= |이미지출처= |식별자= |대표명=Allen, Frances A.  |한글명=알렌 부인 |영문명=Frances Ann Allen |한자명= |가나명= |...&lt;/p&gt;
&lt;hr /&gt;
&lt;div&gt;{{선교사편지 인물정보&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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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Frances Ann Messenger/Fannie Allen &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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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1948년 6월 3일&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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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오하이오 주&lt;br /&gt;
|출신학교=웨슬리안 대학&lt;br /&gt;
|할아버지=&lt;br /&g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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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할아버지=&lt;br /&gt;
|외할머니=&lt;br /&gt;
|아버지=&lt;br /&gt;
|어머니=&lt;br /&gt;
|배우자=[[Allen, Horace N.|알렌(H. N. Allen)]]&lt;br /&gt;
|자녀= Horace E. Allen, &lt;br /&gt;
|손자=&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기본정보==&lt;br /&gt;
알렌과 같은 대학에서 만나 결혼하고 1883년 10월 북장로교 의료선교사로 파송된 남편과 함께 상해에 정착했다.&lt;br /&gt;
산후 건강이 좋지 않아 상해를 떠날 것을 고려하던 중, 한국에 의사가 필요하다는 정보를 얻은 알렌이 먼저 한국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lt;br /&gt;
그리고 한 달 후 알렌 부인과 어린 아들도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낯선 환경에서 두 아들을 양육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오하이오 주 여선교회가 파송한 여선교사로 개척임무를 맡았다. 북장로교 선교사들이 시작한 고아학당에서 오르간 반주를 하는 등 도움을 주었고, 알렌이 왕립병원의 의사로 궁궐에 드나들 때 가족이 함께 입궁하기도 해서 고종 내외의 호의를 많이 입었다. 이후 알렌이 외교관으로 전직하고 나서는 한국에 있는 외국인 사회의 안주인 역할을 했다.   &lt;br /&gt;
==상세정보==&lt;br /&gt;
**관련편지1: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2월18일)]]&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_인물]]&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C%84%A0%EA%B5%90%EC%82%AC_%ED%8E%B8%EC%A7%80_%EB%8D%B0%EC%9D%B4%ED%84%B0%EB%B2%A0%EC%9D%B4%EC%8A%A4%EB%A5%BC_%ED%86%B5%ED%95%9C_%EC%84%A0%EA%B5%90%EC%82%AC_%EA%B8%B0%EB%A1%9D_%EC%97%B0%EA%B5%AC</id>
		<title>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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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19-05-08T07:52: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대문|인문정보학 위키 메인페이지로 가기]]}}&lt;br /&gt;
&lt;br /&gt;
==강의 개요==&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제목'''&amp;lt;/span&amp;gt; : 선교사 편지 DB를 통한 재한 선교사 연구&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일시'''&amp;lt;/span&amp;gt; : 2019년 봄학기 매주 수요일 6, 7, 8교시(14:00-17:00)&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장소'''&amp;lt;/span&amp;gt; : 연세대학교 신학관102&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대상'''&amp;lt;/span&amp;gt; : 제한 없음. 실습에 참여하면 청강도 가능함.&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교수'''&amp;lt;/span&amp;gt;&lt;br /&gt;
**허경진 : 2017년부터 기독교사상에 1년 반 동안 &amp;lt;한국 고전문학에 나타난 기독교의 편린&amp;gt;을 연재하고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으며, 구한말 선교사 기록 데이터베이스를 편찬하여 교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lt;br /&gt;
**[http://www.bigstamp.co.kr 류인태] : 데이터베이스 편찬 실습을 도울 예정이다.&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목표'''&amp;lt;/span&amp;gt;&lt;br /&gt;
**19세기말 20세기초 우리나라에 파견된 선교사 기록을 미디어위키 플랫폼의 데이터베이스로 편찬하는 방법을 강의하고, 매시간 실습한다.&lt;br /&gt;
**교회사나 선교학 전공자 개인이 방대한 선교사의 기록을 쉽게 접근하거나 모두 섭렵할 수 없으므로, 수강생들이 시범삼아 언더우드 선교사의 편지를 데이터베이스로 편찬하는 실습을 해보고, 본인이 관심있는 선교사의 기록에도 그 방법을 적용해보게 한다.&lt;br /&gt;
**실습한 결과물은 수강생 공동으로 소유하며, 각자 연구나 논문에 활용한다.&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평가'''&amp;lt;/span&amp;gt; : 수업 참여 20점, 실습 과제 60점, 기말보고서 20점&lt;br /&gt;
&lt;br /&gt;
==수강생==&lt;br /&gt;
*[[정운형]]&lt;br /&gt;
*[[김은정]]&lt;br /&gt;
*[[윤미진]]&lt;br /&gt;
*[[박혜은]]&lt;br /&gt;
*[[장유미]]&lt;br /&gt;
*[[최원재]]&lt;br /&gt;
*[[윤현숙]]&lt;br /&gt;
&lt;br /&gt;
==강의 일정 및 내용==&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width:70%; 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style=&amp;quot;width:5%&amp;quot;|주차|| style=&amp;quot;width:7%&amp;quot;|날짜|| style=&amp;quot;width:34%&amp;quot;|강의 주제|| style=&amp;quot;width:54%&amp;quot;|강의 내용&lt;br /&gt;
|-&lt;br /&gt;
|01 || 03/06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강의 계획 및 진행내용 전달&amp;lt;/span&amp;gt; || &lt;br /&gt;
|-&lt;br /&gt;
|02 || 03/13 || 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 편찬 준비:&amp;lt;br/&amp;gt;'''온톨로지(Ontology) 설계1''' || -온톨로지에 대한 기초 이해 전달 및 대상 자료로서 선교사 편지의 내용과 형식 이해&amp;lt;br/&amp;gt;-온톨로지 기초 설계 : 실제 샘플 자료에서 추출한 데이터 형식 적용(수강자별 실습)&lt;br /&gt;
|-&lt;br /&gt;
|03 || 03/20 || 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 편찬 준비:&amp;lt;br/&amp;gt;'''온톨로지(Ontology) 설계2''' || -온톨로지 설계 사례 발표 및 비교 : 수강자별 실습 기초 설계안 발표 및 코멘트&amp;lt;br/&amp;gt;-토론 및 논의를 통한 온톨로지 설계안 초안 확정&lt;br /&gt;
|-&lt;br /&gt;
|04 || 03/27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기초):&amp;lt;br/&amp;gt;'''미디어 위키(Media Wiki)의 이해와 설치''' || -위키의 탄생 맥락과 기능 및 웹 환경에서 미디어 위키 설치 과정 설명&amp;lt;br/&amp;gt;-데이터베이스 플랫폼으로서 위키의 장점 설명(위키피디어 사례 포함)&lt;br /&gt;
|-&lt;br /&gt;
|05 || 04/03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기초):&amp;lt;br/&amp;gt;'''미디어 위키(Media Wiki)의 기초 문법 이해''' || -위키 기초 문법 설명 및 실습&amp;lt;br/&amp;gt;-온톨로지 설계안 초안 적용 (위키의 ‘틀’과 ‘분류’ 기능 활용)&lt;br /&gt;
|-&lt;br /&gt;
|06 || 04/10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기초):&amp;lt;br/&amp;gt;'''위키 전자문서 작성 실습1''' || -수강자별 위키 문서 작성 실습 (언더우드 선교사 편지)&amp;lt;br/&amp;gt;-수강자별 온톨로지 설계안 수정안 발표 및 코멘트&lt;br /&gt;
|-&lt;br /&gt;
|07 || 04/17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기초):&amp;lt;br/&amp;gt;'''위키 전자문서 작성 실습2''' || -수강자별 위키 문서 작성 실습 (언더우드 선교사 편지)&amp;lt;br/&amp;gt;-수강자별 온톨로지 설계안 수정안 발표 및 코멘트&lt;br /&gt;
|-&lt;br /&gt;
|08 || 04/24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중간고사'''&amp;lt;/span&amp;gt; || 실습과제로 대체&lt;br /&gt;
|-&lt;br /&gt;
|09 || 05/01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인물’ 데이터를 이용한 인물 관계망 구현1''' || -네트워크 그래프 구현 방법론 설명 및 수강자별 간단한 네트워크 그래프 구현 실습&amp;lt;br/&amp;gt;-실습을 통해 작성된 위키 문서로부터 ‘인물’ 데이터 추출 및 정리&lt;br /&gt;
|-&lt;br /&gt;
|10 || 05/08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인물’ 데이터를 이용한 인물 관계망 구현2''' || -수강자별 인물 관계망 구현 실습(추출된 ‘인물’ 데이터 활용)&amp;lt;br/&amp;gt;-수강자별 온톨로지(‘인물-인물’ 관계 정의) 수정안 발표 및 코멘트&lt;br /&gt;
|-&lt;br /&gt;
|11 || 05/15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시간’ 관련 정보를 이용한 타임라인 구현1''' || -타임라인 구현 방법론 설명 및 수강자별 간단한 타임라인 구현 실습&amp;lt;br/&amp;gt;-실습을 통해 작성된 위키 문서로부터 ‘시간’ 관련 정보 추출 및 정리&lt;br /&gt;
|-&lt;br /&gt;
|12 || 05/22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시간’ 관련 정보를 이용한 타임라인 구현2''' || -수강자별 타임라인 구현 실습(추출된 ‘시간’ 관련 정보 활용)&amp;lt;br/&amp;gt;-수강자별 타임라인 구현 맥락과 요점 발표 및 코멘트&lt;br /&gt;
|-&lt;br /&gt;
|13 || 05/29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공간’ 데이터를 이용한 전자지도 구현1''' || -전자지도 구현 방법론 설명 및 수강자별 간단한 전자지도 구현 실습&amp;lt;br/&amp;gt;-실습을 통해 작성된 위키 문서로부터 ‘공간’ 데이터 추출 및 정리&lt;br /&gt;
|-&lt;br /&gt;
|14 || 06/05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공간’ 데이터를 이용한 전자지도 구현2''' || -수강자별 전자지도 구현 실습(추출된 ‘공간’ 데이터 활용)&amp;lt;br/&amp;gt;-수강자별 전자지도 구현 맥락과 요점 발표 및 코멘트&lt;br /&gt;
|-&lt;br /&gt;
|15 || 06/12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확장안 논의:&amp;lt;br/&amp;gt;'''기타 데이터를 이용한 시각화 방안 탐구''' || -‘인물’, ‘시간’, ‘공간’ 외의 데이터 활용 가능성에 대한 제시&amp;lt;br/&amp;gt;-수강자별 기타 데이터 활용 방안 검토 과제(추가 위키 문서 작성 및 기말보고서 작성)&lt;br /&gt;
|-&lt;br /&gt;
|16 || 06/19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기말고사'''&amp;lt;/span&amp;gt; || 발표 및 보고서 제출&lt;br /&gt;
|}&lt;br /&gt;
&lt;br /&gt;
==기초 자료==&lt;br /&gt;
===언더우드(Underwood, Horace G.)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85_letters_from_Underwood.hwp 1885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06'''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86_letters_from_Underwood.hwp 1886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10'''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87_letters_from_Underwood.hwp 1887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07'''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88_letters_from_Underwood.hwp 1888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13'''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89_letters_from_Underwood.hwp 1889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14'''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90_letters_from_Underwood.hwp 1890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09'''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91_letters_from_Underwood.hwp 1891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10'''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92_letters_from_Underwood.hwp 1892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05'''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93_letters_from_Underwood.hwp 1893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04'''편의 편지]&lt;br /&gt;
*1894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895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896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897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898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899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900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알렌(Allen, Horace N.)의 편지===&lt;br /&gt;
*알렌 선교사의 편지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모펫(Moffett, Samuel A.)의 편지===&lt;br /&gt;
*모펫 선교사의 편지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구축 데이터 목록==&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편지|&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편지&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인물|&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인물&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단체|&amp;lt;span style=&amp;quot;color: purple&amp;quot;&amp;gt;단체&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공간|&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공간&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사건|&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사건&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물품|&amp;lt;span style=&amp;quot;color: pink&amp;quot;&amp;gt;물품&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기기|&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y&amp;quot;&amp;gt;기기&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자료|&amp;lt;span style=&amp;quot;color: orange&amp;quot;&amp;gt;자료&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문헌|&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ack&amp;quot;&amp;gt;문헌&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삭제|''삭제 데이터'']]}}&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편지|편지]]===&lt;br /&gt;
====1885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06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126)|1885년 01월 2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1885년 02월 1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김은정]]''')&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419)|1885년 04월 1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426)|1885년 04월 2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최원재]]''')&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706)|1885년 07월 0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831)|1885년 08월 3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t;br /&gt;
====1886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10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120)|1886년 01월 2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김은정]]''')&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131)|1886년 01월 3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Allen, Heron, Underwood to Foulk (18860212)|1886년 02월 12일 알렌, 헤론, 언더우드가 푸크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213)|1886년 02월 13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217)|1886년 02월 1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416)|1886년 04월 1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최원재]]''')&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709)|1886년 07월 0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1886년 09월 17일 언더우드가 미국장로교 해외선교본부에 보낸 편지 : '''차후 작업대상'''&amp;lt;/span&amp;gt;&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1200)|1886년 12월 모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최원재]]''')&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1227)|1886년 12월 2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t;br /&gt;
====1887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07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70122)|1887년 01월 2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김은정]]''')&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Allen (18870127)|1887년 01월 27일 언더우드가 알렌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Ellinwood to Underwood (18870307)|1887년 03월 07일 엘린우드가 언더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70501)|1887년 05월 0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70617)|1887년 06월 1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70930)|1887년 09월 3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1887년 09월 30일 언더우드가 미국장로교 해외선교본부에 보낸 편지 : '''차후 작업대상'''&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1888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13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115)|1888년 01월 1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Mrs.Hepburn (18880206)|1888년 02월 06일 언더우드가 헵번 여사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 Hepburn, Clara Leete&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305)|1888년 03월 0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1888년 03월 21일 원자료 판독 불가로 내용 없음&amp;lt;/span&amp;gt;&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422)|1888년 04월 2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425)|1888년 04월 2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521)|1888년 05월 2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611)|1888년 06월 1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814)|1888년 08월 14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825)|1888년 08월 2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1016)|1888년 10월 1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1029)|1888년 10월 2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1223)|1888년 12월 23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t;br /&gt;
====1889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14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107)|1889년 01월0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128)|1889년 01월2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218)|1889년 02월1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311)|1889년 03월1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408)|1889년 04월0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1889년 04월 28일: '''차후 작업대상'''&amp;lt;/span&amp;gt;&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430)|1889년 04월3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526)|1889년 05월2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610)|1889년 06월1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702)|1889년 07월0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710)|1889년 07월1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802)|1889년 08월0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805)|1889년 08월0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900)|1889년 09월모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t;br /&gt;
====1890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09건====&lt;br /&gt;
*&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107)|1890년 01월0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200)|1890년 02월모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302)|1890년 03월0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511)|1890년 05월1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529)|1890년 05월2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804)|1890년 08월04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t;br /&gt;
&lt;br /&gt;
====1891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10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209)|1891년 02월 0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210)|1891년 02월 1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227)|1891년 02월 2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327)|1891년 03월 2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517)|1891년 05월 1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929)|1891년 09월 2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1002)|1891년 10월 0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1003)|1891년 10월 03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1018)|1891년 10월 1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1120)|1891년 11월 2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t;br /&gt;
====1892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05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20304)|1892년 03월 04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20314)|1892년 03월 14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20314)|1892년 04월 0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20314)|1892년 05월 2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21222)|1892년 12월 2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t;br /&gt;
====1893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04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30208)|1893년 02월 0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30608)|1893년 06월 08일 해외선교본부가 언더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인물|인물]]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 작성예시 : '''[[Underwood, Horace G.(원두우)]]'''&lt;br /&gt;
* 송순용(宋淳容, 字는 德祚) : 언더우드의 한국어 교사. 1885년 7월 6일자 편지에 '나의 선생님(my teacher)'으로 지칭.&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단체|단체]]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프란체스코회(Franciscan)''' : 1885년 7월 6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감리교(Methodist)''' : 1885년 4월 19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개화당(the Progressionist party)''' : 1885년 2월 18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공간|공간]]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 작성예시 : '''[[헵번의 사택(요코하마)]]'''&lt;br /&gt;
*'''요코하마에 있는 연합교회(the Union Church of Yokohama)''' : 요코하마 카이간 교회(35.446979, 139.643849)로 추정. 1885년 8월 31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이곳 병원(the hospital here)''' : 제중원 터로 추정됨. 현재의 헌법재판소 위치. 1885년 8월 31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서울 정동 구 미국공사관(U. S. Legation)''' : 1886년 2월 12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헤론의 사택|헤론 의사가 얻으려 하는 그 집(the house that Dr. Heron is to occupy)]]''' : 1885년 7월 6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영국 공사관''' : 1885년 4월 26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묄렌도르프의 저택''' : 1885년 4월 26일자 편지에 언급.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558.html 한겨레21 전우용의 서울탐史 &amp;quot;묄렌도르프 저택은 최초의 '퓨전' 가옥]&lt;br /&gt;
*'''[[알렌의 사택|알렌 의사가 얻게 된 건물(The property that Dr. Allen had obtained)]]''' : 1885년 4월 26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제물포의 숙소(quarters in Chemulpo)''' : 1885년 4월 19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고아학교''' : 1886년 7월 9일자 편지에 언급. [http://digerati.aks.ac.kr/Pavilions/tour2012-11/data/L0010.xml 언더우드가 세운 고아학교에 관한 기본 정보] -&amp;gt; 연희전문학교의 최초 형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사건|사건]]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최근 이곳에서 있었던 소요(the late trouble here)''' : '갑신정변'으로 추정됨. 1885년 4월 19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물품|물품]]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 작성예시 : '''[[옥스포드 코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기기|기기(機器)]]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 작성예시 : '''[[오시피호]]'''&lt;br /&gt;
*'''미국기선 오시피 호(the U.S.S. Ossippee)''' : 1885년 4월 19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자료|자료]]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문헌|문헌]]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lt;br /&gt;
==중간과제 링크 목록==&lt;br /&gt;
===박혜은===&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선교사편지인물태그|[[Hulbert, Homer B.|헐버트]]}}&amp;lt;/span&amp;gt;&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선교사편지인물태그|[[Scranton, William B.|스크랜턴]]}}&amp;lt;/span&amp;gt;&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선교사편지문헌태그|[[한불자뎐]]}}&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장유미===&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lt;br /&gt;
*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중원|제중원]]}}&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Baird William M.|베어드]]}}&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Gale, James S.|게일]]}}&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Moffett, Samuel A.|마펫]]}}&lt;br /&gt;
&lt;br /&gt;
===윤미진===&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Foote, Lucius H.|푸트]]}}&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Loomis, Henry|루미스]]}}&lt;br /&gt;
*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중원의학당]]}}&lt;br /&gt;
* {{선교사편지문헌태그|[[Temple Keeper|성전의 수호자(Temple Keeper)]]}}&lt;br /&gt;
* {{선교사편지문헌태그|[[Salvation of the Soul|영혼의 구원(Salvation of the Soul)]]}}&lt;br /&gt;
* {{선교사편지문헌태그|[[Easy Christian Doctrine|알기 쉬운 기독교 교리(Easy Christian Doctrine)]]}}&lt;br /&gt;
&lt;br /&gt;
==논의사항==&lt;br /&gt;
===20190320===&lt;br /&gt;
*인물 부분&lt;br /&gt;
- 860709일자 편지에 등장하는 고아학교 관련- 알렌 제중원 담당 의사/ 헤론 의사/언더우드 목사 고아원 책임자, 이후 의사/목사/선교사 구분 명확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헤론 의사의 어학교사 노춘경, 아닐 수 있다. 분명하다.  &lt;br /&gt;
- 실명이 공개되지 않은 인물에 대한 자료 조사가 필요 &lt;br /&gt;
*장소(공간) 부분 &lt;br /&gt;
- 정보를 점&amp;lt;선&amp;lt;면 중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의식.  &lt;br /&gt;
- 850126 초반부 항해에 대한 표현&amp;gt;&amp;gt; 본문 &amp;quot;rather rough passage&amp;quot;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기록(자료). 항로를 디테일하게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 있음.  &lt;br /&gt;
*사건 부분&lt;br /&gt;
-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기준이 애매모호한 부분이다. 역사학에서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만 다룰 것인가?(한계 있음).&lt;br /&gt;
* 물품 관련 &lt;br /&gt;
- 아카이빙과 직결되는 정보. &lt;br /&gt;
- 옥스포트 코트-&amp;gt;멜렌도르프가 알렌에게 언더우드가 사제복장을 입었음을 알림. &lt;br /&gt;
* 기기 관련 &lt;br /&gt;
- 미국 기선 오시피 호: 갑신정변 발생 이후, 일본군 청나라군의 교전이 빈번해 사회 불안. 주변국들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고, 미국의 배가 와 있었다. &lt;br /&gt;
* 전체적&lt;br /&gt;
- 온톨로지에 반영할 만한 내용을 고민하고 공유할 것.&lt;br /&gt;
- 2차 정리로 매개정보(semantic data) 연결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20190327===&lt;br /&gt;
0709 편지 관련 서적 자료 &lt;br /&gt;
*성전의 수호자(temple keeper):  https://library.yonsei.ac.kr/search/detail/CAT000000829870&lt;br /&gt;
*이하 두 권 찾을 수 없음.&lt;br /&gt;
&lt;br /&gt;
===20190410===&lt;br /&gt;
*엘린우드가 언더우드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지? (85.8.31편지에 박사님의 편지)같은 경우 교차로 볼 수 있도록 추후 편집. &lt;br /&gt;
*860120 닥터 스터지/저의 집-언더우드 사택으로 표기/ 로마 가톨릭 신부 추가정보&lt;br /&gt;
*860131 상해에 있는 그들의 신학교-박혜은 선생님 서치&lt;br /&gt;
*860213 고아원- 1920년대 언더우드가 시작한 자리? 사실 확인 필요. 경성보육원(법인). &amp;lt;the Korean mission field&amp;gt;/김용식- 김윤식의 오기(외교부장관)/푸크는 포크로 통일&lt;br /&gt;
*860217 스크랜턴 의사의 집- 스크랜턴의 사택 만들기&lt;br /&gt;
*860416 의학교- 제중원의학당 / 데니 판사(국편의자료집 참고)/로스 선교사/ 미국성서공회 &lt;br /&gt;
*860709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언더우드 사택/ 알려지지 않은 사람 pack(헤론부인의 편지, 남겨지지 않았다.) 전도부인 관련 pdf 공유/&lt;br /&gt;
*861227 헤론의 편지 찾아서 교차편집하기/ 북장로교 한국선교부- 북장로교 해외선교부로 변경/ 감리교 선교부- 정식명칭 표기, 고종 생일잔치는 &amp;lt;일성록&amp;gt;참고/ 새로운 병원을 위한 장소를 택한 것(제중원 이미 옮긴 상태)- 제중원 링크로 연결, 상세정보에 맥락 추가(1227)&lt;br /&gt;
*19870122 북장로교 한국선교회(Mission)(1891 회의자료), 고아학당 태그, 학교- 배재학당, 서상륜  &lt;br /&gt;
*19870307 당신 문맥 변경/ 여기까지 표제어 정리&lt;br /&gt;
&lt;br /&gt;
===20190417===&lt;br /&gt;
*중간고사 과제: 편지글 6개, 표제어 페이지 3개(05/01일까지) 올리기 &lt;br /&gt;
*편지 초반에 기재된 서울은 전부 언더우드 사택으로 연결 &lt;br /&gt;
*870122 세 사람: 서경조, 최명오, 정공빈 &lt;br /&gt;
*870617 neighborhood- 넓은 한국식 사옥 &amp;lt;ref&amp;gt;넓은 한국식 사옥: 언더우드 사택과 기포드 사택 사이의 공간으로 추정, 혹은 서상윤의 집&amp;lt;/ref&amp;gt;/ 한국어로 된 번역은 이수정 마가복음서랑 로스 예수선교전서/ 대한성서공회 연혁 상임성서위원회,언더우드, 아펜젤러의 주도로 시작. &lt;br /&gt;
*언더우드 형 이름:Underwood, John T.&lt;br /&gt;
*880305맥캔지 상회&amp;gt;1859년~주석 처리 &lt;br /&gt;
*타운샌드(미국상사), 이화양행 지점&lt;br /&gt;
*880422 두명의 대표&amp;gt;&amp;gt;의주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백홍준 외 무명?  &lt;br /&gt;
*880425 편지 수정&lt;br /&gt;
*880521 편지까지 검토&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예시==&lt;br /&gt;
===기초===&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dh.aks.ac.kr/~red/missionary/graph/missionary_sample.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윤미진===&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berrydays.cafe24.com/mission/mission_book2.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박혜은===&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hyeeun39.cafe24.com/wiki/mission/group.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김은정===&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mission/mission_place.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가상 전시관 예시 : 양화진 선교사 묘역==&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600&amp;quot; src=&amp;quot;http://digerati.aks.ac.kr/Pavilions/tour2012-11/index.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clickable button|[http://digerati.aks.ac.kr/Pavilions/tour2012-11/index.htm 가상 현실 - 전체 화면 보기]}}&lt;br /&gt;
&lt;br /&gt;
==참고자료==&lt;br /&gt;
===단행본===&lt;br /&gt;
*허경진, 『한국 고전문학에 나타난 기독교의 편린』, 동연, 2019.&lt;br /&gt;
*김인수,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46893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 2002.&lt;br /&gt;
*이만열, 옥성득,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46893 언더우드 자료집 II]』,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6.&lt;br /&gt;
*김현·김바로·임영상,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674300 디지털 인문학 입문]』, HUEBOOKs, 2016.&lt;br /&gt;
&lt;br /&gt;
===논문===&lt;br /&gt;
*허경진·한미경·이혜은, 「[http://www.riss.kr/link?id=A105244087 북미지역에 소장된 내한 의료선교사 편지 기록의 현황과 디지털 인문학적 활용 가능성]」, 『한국비블리아학회지』29집, 한국비블리아학회, 2018.&lt;br /&gt;
*한미경, 「[http://www.riss.kr/link?id=T15021005 내한 개신교 선교사 편지(1884-1942)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기반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9.&lt;br /&gt;
===기타 자료===&lt;br /&gt;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022757 (국민일보) 130년 전 '미션로드'를 따르다… 내일 오후 3시, 아펜젤러 부부·언더우드 제물포에 첫발 디딘 날]&lt;br /&gt;
*[https://www.clsk.org/bbs/board.php?bo_table=gisang_culture_new&amp;amp;wr_id=99&amp;amp;page=1&amp;amp;main_visual_page=gisang (기독교사상) 혼자 성경을 처음 번역한 한국인 이수정]&lt;br /&gt;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43400580001 (문화콘텐츠닷컴) 서울 근대공간 디지털 콘텐츠 : 서양인 거주지역 정동]&lt;br /&gt;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71001840001 (문화콘텐츠닷컴) 구한말 정동이야기 : 장로교 정동선교부]&lt;br /&gt;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71001760001 (문화콘텐츠닷컴) 구한말 정동이야기 : 영국공사관]&lt;br /&gt;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71001750001 (문화콘텐츠닷컴) 구한말 정동이야기 : 미국공사관]&lt;br /&gt;
&lt;br /&gt;
==Data-based Methodology==&lt;br /&gt;
===서버 구축 및 환경 설정===&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D%8A%9C%ED%86%A0%EB%A6%AC%EC%96%BC/ftp FTP 프로그램 설치]&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D%8A%9C%ED%86%A0%EB%A6%AC%EC%96%BC/%ED%8C%8C%EC%9D%BC_%ED%99%95%EC%9E%A5%EC%9E%90_%ED%91%9C%EC%8B%9C 파일 확장자 표시]&lt;br /&gt;
&lt;br /&gt;
===온톨로지(Ontology)===&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C%98%A8%ED%86%A8%EB%A1%9C%EC%A7%80%EC%9D%98_%EC%9D%B4%ED%95%B4 온톨로지의 이해]&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C%98%A8%ED%86%A8%EB%A1%9C%EC%A7%80%EC%9D%98_%EC%84%A4%EA%B3%84 온톨로지의 설계]&lt;br /&gt;
&lt;br /&gt;
===미디어 위키(Media wiki)===&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C%9C%84%ED%82%A4_%EC%BD%98%ED%85%90%EC%B8%A0%EC%9D%98_%EC%B2%B4%EA%B3%84_%EA%B5%AC%EC%83%81 위키 콘텐츠의 체계 구상]&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C%9C%84%ED%82%A4_%EB%AC%B8%EC%84%9C_%EC%A0%9C%EC%9E%91_%EB%B0%A9%EB%B2%95 위키 문서 제작 방법]&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D%82%A4%EB%B0%B1%EA%B3%BC:%EC%9C%84%ED%82%A4_%EB%AC%B8%EB%B2%95 위키백과 - 위키문법]&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위키백과:위키문법_요약 위키백과 - 위키문법 요약]&lt;br /&gt;
*[https://www.youtube.com/embed/tzRWa2YL7Aw 2016 디지털 인문학 교육 워크샵 - 03 wiki 콘텐츠 편찬 방법(동영상 강의)]&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Network Graph)===&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B%8D%B0%EC%9D%B4%ED%84%B0%EC%9D%98_%EC%8B%9C%EA%B0%81%ED%99%94:_%EB%84%A4%ED%8A%B8%EC%9B%8C%ED%81%AC_%EA%B7%B8%EB%9E%98%ED%94%84 데이터의 시각화: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B%82%98%EC%9D%98_%EB%84%A4%ED%8A%B8%EC%9B%8C%ED%81%AC_%EA%B7%B8%EB%9E%98%ED%94%84_%EC%A0%9C%EC%9E%91_%EB%B0%A9%EB%B2%95 나의 네트워크 그래프 제작 방법]&lt;br /&gt;
&lt;br /&gt;
===가상 전시관 (Virtual Reality Exhibition)===&lt;br /&gt;
* [[파빌리온 제작 방법]]&lt;br /&gt;
* [[컴플렉스 제작 방법]]&lt;br /&gt;
* [[파빌리온 제작 방법 v3.4]]&lt;br /&gt;
&lt;br /&gt;
===위키 플랫폼 데이터베이스 예시===&lt;br /&gt;
*[http://dh.aks.ac.kr/susinsa/index.php 수신사 자료 아카이브]&lt;br /&gt;
*[http://www.digerati.kr/mediawiki/index.php/표류_노드_시각망 조선시대 표류노드 시각망]&lt;br /&gt;
*[http://dh.aks.ac.kr/Encyves/wiki 데이터 기반 인문지식 백과사전 아카이브 : 한국 기록유산 Encyves]&lt;br /&gt;
&lt;br /&gt;
==활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레이아웃|편지 원문 및 번역문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정보|편지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인물정보|인물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공간정보|공간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사건정보|사건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물품정보|물품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문헌정보|문헌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기기정보|기기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lt;br /&gt;
*[[:틀:선교사편지인물태그|인물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공간태그|공간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사건태그|사건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물품태그|물품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단체태그|단체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기기태그|기기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자료태그|자료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문헌태그|문헌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C%84%A0%EA%B5%90%EC%82%AC_%ED%8E%B8%EC%A7%80_%EB%8D%B0%EC%9D%B4%ED%84%B0%EB%B2%A0%EC%9D%B4%EC%8A%A4%EB%A5%BC_%ED%86%B5%ED%95%9C_%EC%84%A0%EA%B5%90%EC%82%AC_%EA%B8%B0%EB%A1%9D_%EC%97%B0%EA%B5%AC</id>
		<title>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C%84%A0%EA%B5%90%EC%82%AC_%ED%8E%B8%EC%A7%80_%EB%8D%B0%EC%9D%B4%ED%84%B0%EB%B2%A0%EC%9D%B4%EC%8A%A4%EB%A5%BC_%ED%86%B5%ED%95%9C_%EC%84%A0%EA%B5%90%EC%82%AC_%EA%B8%B0%EB%A1%9D_%EC%97%B0%EA%B5%AC"/>
				<updated>2019-05-08T07:52: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 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대문|인문정보학 위키 메인페이지로 가기]]}}&lt;br /&gt;
&lt;br /&gt;
==강의 개요==&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제목'''&amp;lt;/span&amp;gt; : 선교사 편지 DB를 통한 재한 선교사 연구&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일시'''&amp;lt;/span&amp;gt; : 2019년 봄학기 매주 수요일 6, 7, 8교시(14:00-17:00)&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장소'''&amp;lt;/span&amp;gt; : 연세대학교 신학관102&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대상'''&amp;lt;/span&amp;gt; : 제한 없음. 실습에 참여하면 청강도 가능함.&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교수'''&amp;lt;/span&amp;gt;&lt;br /&gt;
**허경진 : 2017년부터 기독교사상에 1년 반 동안 &amp;lt;한국 고전문학에 나타난 기독교의 편린&amp;gt;을 연재하고 단행본으로 출판하였으며, 구한말 선교사 기록 데이터베이스를 편찬하여 교계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lt;br /&gt;
**[http://www.bigstamp.co.kr 류인태] : 데이터베이스 편찬 실습을 도울 예정이다.&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목표'''&amp;lt;/span&amp;gt;&lt;br /&gt;
**19세기말 20세기초 우리나라에 파견된 선교사 기록을 미디어위키 플랫폼의 데이터베이스로 편찬하는 방법을 강의하고, 매시간 실습한다.&lt;br /&gt;
**교회사나 선교학 전공자 개인이 방대한 선교사의 기록을 쉽게 접근하거나 모두 섭렵할 수 없으므로, 수강생들이 시범삼아 언더우드 선교사의 편지를 데이터베이스로 편찬하는 실습을 해보고, 본인이 관심있는 선교사의 기록에도 그 방법을 적용해보게 한다.&lt;br /&gt;
**실습한 결과물은 수강생 공동으로 소유하며, 각자 연구나 논문에 활용한다.&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평가'''&amp;lt;/span&amp;gt; : 수업 참여 20점, 실습 과제 60점, 기말보고서 20점&lt;br /&gt;
&lt;br /&gt;
==수강생==&lt;br /&gt;
*[[정운형]]&lt;br /&gt;
*[[김은정]]&lt;br /&gt;
*[[윤미진]]&lt;br /&gt;
*[[박혜은]]&lt;br /&gt;
*[[장유미]]&lt;br /&gt;
*[[최원재]]&lt;br /&gt;
*[[윤현숙]]&lt;br /&gt;
&lt;br /&gt;
==강의 일정 및 내용==&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style=&amp;quot;text-align:center; width:70%; background:white;&amp;quot;&lt;br /&gt;
!style=&amp;quot;width:5%&amp;quot;|주차|| style=&amp;quot;width:7%&amp;quot;|날짜|| style=&amp;quot;width:34%&amp;quot;|강의 주제|| style=&amp;quot;width:54%&amp;quot;|강의 내용&lt;br /&gt;
|-&lt;br /&gt;
|01 || 03/06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강의 계획 및 진행내용 전달&amp;lt;/span&amp;gt; || &lt;br /&gt;
|-&lt;br /&gt;
|02 || 03/13 || 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 편찬 준비:&amp;lt;br/&amp;gt;'''온톨로지(Ontology) 설계1''' || -온톨로지에 대한 기초 이해 전달 및 대상 자료로서 선교사 편지의 내용과 형식 이해&amp;lt;br/&amp;gt;-온톨로지 기초 설계 : 실제 샘플 자료에서 추출한 데이터 형식 적용(수강자별 실습)&lt;br /&gt;
|-&lt;br /&gt;
|03 || 03/20 || 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 편찬 준비:&amp;lt;br/&amp;gt;'''온톨로지(Ontology) 설계2''' || -온톨로지 설계 사례 발표 및 비교 : 수강자별 실습 기초 설계안 발표 및 코멘트&amp;lt;br/&amp;gt;-토론 및 논의를 통한 온톨로지 설계안 초안 확정&lt;br /&gt;
|-&lt;br /&gt;
|04 || 03/27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기초):&amp;lt;br/&amp;gt;'''미디어 위키(Media Wiki)의 이해와 설치''' || -위키의 탄생 맥락과 기능 및 웹 환경에서 미디어 위키 설치 과정 설명&amp;lt;br/&amp;gt;-데이터베이스 플랫폼으로서 위키의 장점 설명(위키피디어 사례 포함)&lt;br /&gt;
|-&lt;br /&gt;
|05 || 04/03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기초):&amp;lt;br/&amp;gt;'''미디어 위키(Media Wiki)의 기초 문법 이해''' || -위키 기초 문법 설명 및 실습&amp;lt;br/&amp;gt;-온톨로지 설계안 초안 적용 (위키의 ‘틀’과 ‘분류’ 기능 활용)&lt;br /&gt;
|-&lt;br /&gt;
|06 || 04/10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기초):&amp;lt;br/&amp;gt;'''위키 전자문서 작성 실습1''' || -수강자별 위키 문서 작성 실습 (언더우드 선교사 편지)&amp;lt;br/&amp;gt;-수강자별 온톨로지 설계안 수정안 발표 및 코멘트&lt;br /&gt;
|-&lt;br /&gt;
|07 || 04/17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기초):&amp;lt;br/&amp;gt;'''위키 전자문서 작성 실습2''' || -수강자별 위키 문서 작성 실습 (언더우드 선교사 편지)&amp;lt;br/&amp;gt;-수강자별 온톨로지 설계안 수정안 발표 및 코멘트&lt;br /&gt;
|-&lt;br /&gt;
|08 || 04/24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중간고사'''&amp;lt;/span&amp;gt; || 실습과제로 대체&lt;br /&gt;
|-&lt;br /&gt;
|09 || 05/01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인물’ 데이터를 이용한 인물 관계망 구현1''' || -네트워크 그래프 구현 방법론 설명 및 수강자별 간단한 네트워크 그래프 구현 실습&amp;lt;br/&amp;gt;-실습을 통해 작성된 위키 문서로부터 ‘인물’ 데이터 추출 및 정리&lt;br /&gt;
|-&lt;br /&gt;
|10 || 05/08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인물’ 데이터를 이용한 인물 관계망 구현2''' || -수강자별 인물 관계망 구현 실습(추출된 ‘인물’ 데이터 활용)&amp;lt;br/&amp;gt;-수강자별 온톨로지(‘인물-인물’ 관계 정의) 수정안 발표 및 코멘트&lt;br /&gt;
|-&lt;br /&gt;
|11 || 05/15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시간’ 관련 정보를 이용한 타임라인 구현1''' || -타임라인 구현 방법론 설명 및 수강자별 간단한 타임라인 구현 실습&amp;lt;br/&amp;gt;-실습을 통해 작성된 위키 문서로부터 ‘시간’ 관련 정보 추출 및 정리&lt;br /&gt;
|-&lt;br /&gt;
|12 || 05/22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시간’ 관련 정보를 이용한 타임라인 구현2''' || -수강자별 타임라인 구현 실습(추출된 ‘시간’ 관련 정보 활용)&amp;lt;br/&amp;gt;-수강자별 타임라인 구현 맥락과 요점 발표 및 코멘트&lt;br /&gt;
|-&lt;br /&gt;
|13 || 05/29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공간’ 데이터를 이용한 전자지도 구현1''' || -전자지도 구현 방법론 설명 및 수강자별 간단한 전자지도 구현 실습&amp;lt;br/&amp;gt;-실습을 통해 작성된 위키 문서로부터 ‘공간’ 데이터 추출 및 정리&lt;br /&gt;
|-&lt;br /&gt;
|14 || 06/05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편찬(심화):&amp;lt;br/&amp;gt;'''‘공간’ 데이터를 이용한 전자지도 구현2''' || -수강자별 전자지도 구현 실습(추출된 ‘공간’ 데이터 활용)&amp;lt;br/&amp;gt;-수강자별 전자지도 구현 맥락과 요점 발표 및 코멘트&lt;br /&gt;
|-&lt;br /&gt;
|15 || 06/12 || 선교사 편지 위키 데이터베이스 확장안 논의:&amp;lt;br/&amp;gt;'''기타 데이터를 이용한 시각화 방안 탐구''' || -‘인물’, ‘시간’, ‘공간’ 외의 데이터 활용 가능성에 대한 제시&amp;lt;br/&amp;gt;-수강자별 기타 데이터 활용 방안 검토 과제(추가 위키 문서 작성 및 기말보고서 작성)&lt;br /&gt;
|-&lt;br /&gt;
|16 || 06/19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기말고사'''&amp;lt;/span&amp;gt; || 발표 및 보고서 제출&lt;br /&gt;
|}&lt;br /&gt;
&lt;br /&gt;
==기초 자료==&lt;br /&gt;
===언더우드(Underwood, Horace G.)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85_letters_from_Underwood.hwp 1885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06'''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86_letters_from_Underwood.hwp 1886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10'''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87_letters_from_Underwood.hwp 1887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07'''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88_letters_from_Underwood.hwp 1888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13'''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89_letters_from_Underwood.hwp 1889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14'''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90_letters_from_Underwood.hwp 1890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09'''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91_letters_from_Underwood.hwp 1891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10'''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92_letters_from_Underwood.hwp 1892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05'''편의 편지]&lt;br /&gt;
*[http://dh.aks.ac.kr/~red/missionary/1893_letters_from_Underwood.hwp 1893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총 '''04'''편의 편지]&lt;br /&gt;
*1894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895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896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897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898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899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1900년 언더우드에 의해 작성된 편지들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알렌(Allen, Horace N.)의 편지===&lt;br /&gt;
*알렌 선교사의 편지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모펫(Moffett, Samuel A.)의 편지===&lt;br /&gt;
*모펫 선교사의 편지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향후 배포할 예정입니다.&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구축 데이터 목록==&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편지|&amp;lt;span style=&amp;quot;color: navy&amp;quot;&amp;gt;편지&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인물|&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ue&amp;quot;&amp;gt;인물&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단체|&amp;lt;span style=&amp;quot;color: purple&amp;quot;&amp;gt;단체&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공간|&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공간&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사건|&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사건&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물품|&amp;lt;span style=&amp;quot;color: pink&amp;quot;&amp;gt;물품&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기기|&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y&amp;quot;&amp;gt;기기&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자료|&amp;lt;span style=&amp;quot;color: orange&amp;quot;&amp;gt;자료&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문헌|&amp;lt;span style=&amp;quot;color: black&amp;quot;&amp;gt;문헌&amp;lt;/span&amp;gt;]]}}&lt;br /&gt;
{{버튼|[[:분류:선교사편지 삭제|''삭제 데이터'']]}}&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편지|편지]]===&lt;br /&gt;
====1885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06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126)|1885년 01월 2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218)|1885년 02월 1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김은정]]''')&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419)|1885년 04월 1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426)|1885년 04월 2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최원재]]''')&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706)|1885년 07월 0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831)|1885년 08월 3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t;br /&gt;
====1886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10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120)|1886년 01월 2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김은정]]''')&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131)|1886년 01월 3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Allen, Heron, Underwood to Foulk (18860212)|1886년 02월 12일 알렌, 헤론, 언더우드가 푸크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213)|1886년 02월 13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217)|1886년 02월 1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416)|1886년 04월 1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최원재]]''')&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0709)|1886년 07월 0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1886년 09월 17일 언더우드가 미국장로교 해외선교본부에 보낸 편지 : '''차후 작업대상'''&amp;lt;/span&amp;gt;&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1200)|1886년 12월 모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최원재]]''')&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61227)|1886년 12월 2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t;br /&gt;
====1887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07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70122)|1887년 01월 2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김은정]]''')&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Allen (18870127)|1887년 01월 27일 언더우드가 알렌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Ellinwood to Underwood (18870307)|1887년 03월 07일 엘린우드가 언더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70501)|1887년 05월 0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70617)|1887년 06월 1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70930)|1887년 09월 3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1887년 09월 30일 언더우드가 미국장로교 해외선교본부에 보낸 편지 : '''차후 작업대상'''&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1888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13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115)|1888년 01월 1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Mrs.Hepburn (18880206)|1888년 02월 06일 언더우드가 헵번 여사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 Hepburn, Clara Leete&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305)|1888년 03월 0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1888년 03월 21일 원자료 판독 불가로 내용 없음&amp;lt;/span&amp;gt;&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422)|1888년 04월 2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425)|1888년 04월 2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521)|1888년 05월 2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611)|1888년 06월 1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814)|1888년 08월 14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0825)|1888년 08월 2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1016)|1888년 10월 1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1029)|1888년 10월 2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81223)|1888년 12월 23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t;br /&gt;
====1889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14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107)|1889년 01월0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128)|1889년 01월2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218)|1889년 02월1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311)|1889년 03월1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408)|1889년 04월0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amp;lt;span style=&amp;quot;color: green&amp;quot;&amp;gt;1889년 04월 28일: '''차후 작업대상'''&amp;lt;/span&amp;gt;&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430)|1889년 04월3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526)|1889년 05월26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610)|1889년 06월1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702)|1889년 07월0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미진]]''')&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710)|1889년 07월1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802)|1889년 08월0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805)|1889년 08월0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900)|1889년 09월모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t;br /&gt;
====1890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09건====&lt;br /&gt;
*&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107)|1890년 01월0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200)|1890년 02월모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302)|1890년 03월0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511)|1890년 05월11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529)|1890년 05월2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박혜은]]''')&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804)|1890년 08월04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t;br /&gt;
&lt;br /&gt;
====1891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10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209)|1891년 02월 0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210)|1891년 02월 1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227)|1891년 02월 2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327)|1891년 03월 2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517)|1891년 05월 17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0929)|1891년 09월 29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1002)|1891년 10월 0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1003)|1891년 10월 03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1018)|1891년 10월 1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11120)|1891년 11월 2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t;br /&gt;
====1892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05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20304)|1892년 03월 04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20314)|1892년 03월 14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20314)|1892년 04월 05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20314)|1892년 05월 20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21222)|1892년 12월 22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윤현숙]]''')&lt;br /&gt;
&lt;br /&gt;
====1893년 언더우드 관련 편지 : 04건====&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30208)|1893년 02월 08일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30608)|1893년 06월 08일 해외선교본부가 언더우드에게 보낸 편지]] (작성자 : '''[[장유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인물|인물]]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 작성예시 : '''[[Underwood, Horace G.(원두우)]]'''&lt;br /&gt;
* 송순용(宋淳容, 字는 德祚) : 언더우드의 한국어 교사. 1885년 7월 6일자 편지에 '나의 선생님(my teacher)'으로 지칭.&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단체|단체]]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프란체스코회(Franciscan)''' : 1885년 7월 6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감리교(Methodist)''' : 1885년 4월 19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개화당(the Progressionist party)''' : 1885년 2월 18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공간|공간]]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 작성예시 : '''[[헵번의 사택(요코하마)]]'''&lt;br /&gt;
*'''요코하마에 있는 연합교회(the Union Church of Yokohama)''' : 요코하마 카이간 교회(35.446979, 139.643849)로 추정. 1885년 8월 31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이곳 병원(the hospital here)''' : 제중원 터로 추정됨. 현재의 헌법재판소 위치. 1885년 8월 31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서울 정동 구 미국공사관(U. S. Legation)''' : 1886년 2월 12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헤론의 사택|헤론 의사가 얻으려 하는 그 집(the house that Dr. Heron is to occupy)]]''' : 1885년 7월 6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영국 공사관''' : 1885년 4월 26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묄렌도르프의 저택''' : 1885년 4월 26일자 편지에 언급. [http://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33558.html 한겨레21 전우용의 서울탐史 &amp;quot;묄렌도르프 저택은 최초의 '퓨전' 가옥]&lt;br /&gt;
*'''[[알렌의 사택|알렌 의사가 얻게 된 건물(The property that Dr. Allen had obtained)]]''' : 1885년 4월 26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제물포의 숙소(quarters in Chemulpo)''' : 1885년 4월 19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고아학교''' : 1886년 7월 9일자 편지에 언급. [http://digerati.aks.ac.kr/Pavilions/tour2012-11/data/L0010.xml 언더우드가 세운 고아학교에 관한 기본 정보] -&amp;gt; 연희전문학교의 최초 형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사건|사건]]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최근 이곳에서 있었던 소요(the late trouble here)''' : '갑신정변'으로 추정됨. 1885년 4월 19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물품|물품]]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 작성예시 : '''[[옥스포드 코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기기|기기(機器)]]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 작성예시 : '''[[오시피호]]'''&lt;br /&gt;
*'''미국기선 오시피 호(the U.S.S. Ossippee)''' : 1885년 4월 19일자 편지에 언급.&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자료|자료]]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문헌|문헌]] 데이터 후보 예시===&lt;br /&gt;
&lt;br /&gt;
==중간과제 링크 목록==&lt;br /&gt;
===박혜은===&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선교사편지인물태그|[[Hulbert, Homer B.|헐버트]]}}&amp;lt;/span&amp;gt;&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선교사편지인물태그|[[Scranton, William B.|스크랜턴]]}}&amp;lt;/span&amp;gt;&lt;br /&gt;
* &amp;lt;span style=&amp;quot;color: red&amp;quot;&amp;gt;{{선교사편지문헌태그|[[한불자뎐]]}}&amp;lt;/span&amp;gt;&lt;br /&gt;
&lt;br /&gt;
===장유미===&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 &lt;br /&gt;
*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중원|제중원]]}}&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Baird William M.|베어드]]}}&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Gale, James S.|게일]]}}&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Moffett, Samuel A.|마펫]]}}&lt;br /&gt;
&lt;br /&gt;
===윤미진===&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Foote, Lucius H.|푸트]]}}&lt;br /&gt;
* {{선교사편지인물태그|[[Loomis, Henry|루미스]]}}&lt;br /&gt;
*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중원의학당]]}}&lt;br /&gt;
* {{선교사편지문헌태그|[[Temple Keeper|성전의 수호자(Temple Keeper)]]}}&lt;br /&gt;
* {{선교사편지문헌태그|[[Salvation of the Soul|영혼의 구원(Salvation of the Soul)]]}}&lt;br /&gt;
* {{선교사편지문헌태그|[[Easy Christian Doctrine|알기 쉬운 기독교 교리(Easy Christian Doctrine)]]}}&lt;br /&gt;
&lt;br /&gt;
==논의사항==&lt;br /&gt;
===20190320===&lt;br /&gt;
*인물 부분&lt;br /&gt;
- 860709일자 편지에 등장하는 고아학교 관련- 알렌 제중원 담당 의사/ 헤론 의사/언더우드 목사 고아원 책임자, 이후 의사/목사/선교사 구분 명확히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헤론 의사의 어학교사 노춘경, 아닐 수 있다. 분명하다.  &lt;br /&gt;
- 실명이 공개되지 않은 인물에 대한 자료 조사가 필요 &lt;br /&gt;
*장소(공간) 부분 &lt;br /&gt;
- 정보를 점&amp;lt;선&amp;lt;면 중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의식.  &lt;br /&gt;
- 850126 초반부 항해에 대한 표현&amp;gt;&amp;gt; 본문 &amp;quot;rather rough passage&amp;quot;에 대한 일본사람들의 기록(자료). 항로를 디테일하게 복원할 수 있는 가능성 있음.  &lt;br /&gt;
*사건 부분&lt;br /&gt;
-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기준이 애매모호한 부분이다. 역사학에서 사건으로 치부하는 것만 다룰 것인가?(한계 있음).&lt;br /&gt;
* 물품 관련 &lt;br /&gt;
- 아카이빙과 직결되는 정보. &lt;br /&gt;
- 옥스포트 코트-&amp;gt;멜렌도르프가 알렌에게 언더우드가 사제복장을 입었음을 알림. &lt;br /&gt;
* 기기 관련 &lt;br /&gt;
- 미국 기선 오시피 호: 갑신정변 발생 이후, 일본군 청나라군의 교전이 빈번해 사회 불안. 주변국들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고, 미국의 배가 와 있었다. &lt;br /&gt;
* 전체적&lt;br /&gt;
- 온톨로지에 반영할 만한 내용을 고민하고 공유할 것.&lt;br /&gt;
- 2차 정리로 매개정보(semantic data) 연결할 수 있음.&lt;br /&gt;
&lt;br /&gt;
===20190327===&lt;br /&gt;
0709 편지 관련 서적 자료 &lt;br /&gt;
*성전의 수호자(temple keeper):  https://library.yonsei.ac.kr/search/detail/CAT000000829870&lt;br /&gt;
*이하 두 권 찾을 수 없음.&lt;br /&gt;
&lt;br /&gt;
===20190410===&lt;br /&gt;
*엘린우드가 언더우드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지? (85.8.31편지에 박사님의 편지)같은 경우 교차로 볼 수 있도록 추후 편집. &lt;br /&gt;
*860120 닥터 스터지/저의 집-언더우드 사택으로 표기/ 로마 가톨릭 신부 추가정보&lt;br /&gt;
*860131 상해에 있는 그들의 신학교-박혜은 선생님 서치&lt;br /&gt;
*860213 고아원- 1920년대 언더우드가 시작한 자리? 사실 확인 필요. 경성보육원(법인). &amp;lt;the Korean mission field&amp;gt;/김용식- 김윤식의 오기(외교부장관)/푸크는 포크로 통일&lt;br /&gt;
*860217 스크랜턴 의사의 집- 스크랜턴의 사택 만들기&lt;br /&gt;
*860416 의학교- 제중원의학당 / 데니 판사(국편의자료집 참고)/로스 선교사/ 미국성서공회 &lt;br /&gt;
*860709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언더우드 사택/ 알려지지 않은 사람 pack(헤론부인의 편지, 남겨지지 않았다.) 전도부인 관련 pdf 공유/&lt;br /&gt;
*861227 헤론의 편지 찾아서 교차편집하기/ 북장로교 한국선교부- 북장로교 해외선교부로 변경/ 감리교 선교부- 정식명칭 표기, 고종 생일잔치는 &amp;lt;일성록&amp;gt;참고/ 새로운 병원을 위한 장소를 택한 것(제중원 이미 옮긴 상태)- 제중원 링크로 연결, 상세정보에 맥락 추가(1227)&lt;br /&gt;
*19870122 북장로교 한국선교회(Mission)(1891 회의자료), 고아학당 태그, 학교- 배재학당, 서상륜  &lt;br /&gt;
*19870307 당신 문맥 변경/ 여기까지 표제어 정리&lt;br /&gt;
&lt;br /&gt;
===20190417===&lt;br /&gt;
*중간고사 과제: 편지글 6개, 표제어 페이지 3개(05/01일까지) 올리기 &lt;br /&gt;
*편지 초반에 기재된 서울은 전부 언더우드 사택으로 연결 &lt;br /&gt;
*870122 세 사람: 서경조, 최명오, 정공빈 &lt;br /&gt;
*870617 neighborhood- 넓은 한국식 사옥 &amp;lt;ref&amp;gt;넓은 한국식 사옥: 언더우드 사택과 기포드 사택 사이의 공간으로 추정, 혹은 서상윤의 집&amp;lt;/ref&amp;gt;/ 한국어로 된 번역은 이수정 마가복음서랑 로스 예수선교전서/ 대한성서공회 연혁 상임성서위원회,언더우드, 아펜젤러의 주도로 시작. &lt;br /&gt;
*언더우드 형 이름:Underwood, John T.&lt;br /&gt;
*880305맥캔지 상회&amp;gt;1859년~주석 처리 &lt;br /&gt;
*타운샌드(미국상사), 이화양행 지점&lt;br /&gt;
*880422 두명의 대표&amp;gt;&amp;gt;의주지역의 기독교인들은 백홍준 외 무명?  &lt;br /&gt;
*880425 편지 수정&lt;br /&gt;
*880521 편지까지 검토&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 예시==&lt;br /&gt;
===기초===&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dh.aks.ac.kr/~red/missionary/graph/missionary_sample.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윤미진===&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berrydays.cafe24.com/mission/mission_book.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박혜은===&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hyeeun39.cafe24.com/wiki/mission/group.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김은정===&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800&amp;quot; src=&amp;quot;http://jclej.cafe24.com/wiki/mission/mission_place.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lt;br /&gt;
==가상 전시관 예시 : 양화진 선교사 묘역==&lt;br /&gt;
&amp;lt;html&amp;gt;&lt;br /&gt;
&amp;lt;iframe width=&amp;quot;100%&amp;quot; height=&amp;quot;600&amp;quot; src=&amp;quot;http://digerati.aks.ac.kr/Pavilions/tour2012-11/index.htm&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lt;br /&gt;
&amp;lt;/html&amp;gt;&amp;lt;br/&amp;gt;&lt;br /&gt;
{{clickable button|[http://digerati.aks.ac.kr/Pavilions/tour2012-11/index.htm 가상 현실 - 전체 화면 보기]}}&lt;br /&gt;
&lt;br /&gt;
==참고자료==&lt;br /&gt;
===단행본===&lt;br /&gt;
*허경진, 『한국 고전문학에 나타난 기독교의 편린』, 동연, 2019.&lt;br /&gt;
*김인수,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46893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 2002.&lt;br /&gt;
*이만열, 옥성득,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46893 언더우드 자료집 II]』,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6.&lt;br /&gt;
*김현·김바로·임영상,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0674300 디지털 인문학 입문]』, HUEBOOKs, 2016.&lt;br /&gt;
&lt;br /&gt;
===논문===&lt;br /&gt;
*허경진·한미경·이혜은, 「[http://www.riss.kr/link?id=A105244087 북미지역에 소장된 내한 의료선교사 편지 기록의 현황과 디지털 인문학적 활용 가능성]」, 『한국비블리아학회지』29집, 한국비블리아학회, 2018.&lt;br /&gt;
*한미경, 「[http://www.riss.kr/link?id=T15021005 내한 개신교 선교사 편지(1884-1942)의 디지털 아카이브 구축 기반 연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9.&lt;br /&gt;
===기타 자료===&lt;br /&gt;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022757 (국민일보) 130년 전 '미션로드'를 따르다… 내일 오후 3시, 아펜젤러 부부·언더우드 제물포에 첫발 디딘 날]&lt;br /&gt;
*[https://www.clsk.org/bbs/board.php?bo_table=gisang_culture_new&amp;amp;wr_id=99&amp;amp;page=1&amp;amp;main_visual_page=gisang (기독교사상) 혼자 성경을 처음 번역한 한국인 이수정]&lt;br /&gt;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43400580001 (문화콘텐츠닷컴) 서울 근대공간 디지털 콘텐츠 : 서양인 거주지역 정동]&lt;br /&gt;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71001840001 (문화콘텐츠닷컴) 구한말 정동이야기 : 장로교 정동선교부]&lt;br /&gt;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71001760001 (문화콘텐츠닷컴) 구한말 정동이야기 : 영국공사관]&lt;br /&gt;
*[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content_id=cp071001750001 (문화콘텐츠닷컴) 구한말 정동이야기 : 미국공사관]&lt;br /&gt;
&lt;br /&gt;
==Data-based Methodology==&lt;br /&gt;
===서버 구축 및 환경 설정===&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D%8A%9C%ED%86%A0%EB%A6%AC%EC%96%BC/ftp FTP 프로그램 설치]&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D%8A%9C%ED%86%A0%EB%A6%AC%EC%96%BC/%ED%8C%8C%EC%9D%BC_%ED%99%95%EC%9E%A5%EC%9E%90_%ED%91%9C%EC%8B%9C 파일 확장자 표시]&lt;br /&gt;
&lt;br /&gt;
===온톨로지(Ontology)===&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C%98%A8%ED%86%A8%EB%A1%9C%EC%A7%80%EC%9D%98_%EC%9D%B4%ED%95%B4 온톨로지의 이해]&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C%98%A8%ED%86%A8%EB%A1%9C%EC%A7%80%EC%9D%98_%EC%84%A4%EA%B3%84 온톨로지의 설계]&lt;br /&gt;
&lt;br /&gt;
===미디어 위키(Media wiki)===&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C%9C%84%ED%82%A4_%EC%BD%98%ED%85%90%EC%B8%A0%EC%9D%98_%EC%B2%B4%EA%B3%84_%EA%B5%AC%EC%83%81 위키 콘텐츠의 체계 구상]&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C%9C%84%ED%82%A4_%EB%AC%B8%EC%84%9C_%EC%A0%9C%EC%9E%91_%EB%B0%A9%EB%B2%95 위키 문서 제작 방법]&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EC%9C%84%ED%82%A4%EB%B0%B1%EA%B3%BC:%EC%9C%84%ED%82%A4_%EB%AC%B8%EB%B2%95 위키백과 - 위키문법]&lt;br /&gt;
*[https://ko.wikipedia.org/wiki/위키백과:위키문법_요약 위키백과 - 위키문법 요약]&lt;br /&gt;
*[https://www.youtube.com/embed/tzRWa2YL7Aw 2016 디지털 인문학 교육 워크샵 - 03 wiki 콘텐츠 편찬 방법(동영상 강의)]&lt;br /&gt;
&lt;br /&gt;
===네트워크 그래프(Network Graph)===&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B%8D%B0%EC%9D%B4%ED%84%B0%EC%9D%98_%EC%8B%9C%EA%B0%81%ED%99%94:_%EB%84%A4%ED%8A%B8%EC%9B%8C%ED%81%AC_%EA%B7%B8%EB%9E%98%ED%94%84 데이터의 시각화: 네트워크 그래프]&lt;br /&gt;
*[http://dh.aks.ac.kr/Edu/wiki/index.php/%EB%82%98%EC%9D%98_%EB%84%A4%ED%8A%B8%EC%9B%8C%ED%81%AC_%EA%B7%B8%EB%9E%98%ED%94%84_%EC%A0%9C%EC%9E%91_%EB%B0%A9%EB%B2%95 나의 네트워크 그래프 제작 방법]&lt;br /&gt;
&lt;br /&gt;
===가상 전시관 (Virtual Reality Exhibition)===&lt;br /&gt;
* [[파빌리온 제작 방법]]&lt;br /&gt;
* [[컴플렉스 제작 방법]]&lt;br /&gt;
* [[파빌리온 제작 방법 v3.4]]&lt;br /&gt;
&lt;br /&gt;
===위키 플랫폼 데이터베이스 예시===&lt;br /&gt;
*[http://dh.aks.ac.kr/susinsa/index.php 수신사 자료 아카이브]&lt;br /&gt;
*[http://www.digerati.kr/mediawiki/index.php/표류_노드_시각망 조선시대 표류노드 시각망]&lt;br /&gt;
*[http://dh.aks.ac.kr/Encyves/wiki 데이터 기반 인문지식 백과사전 아카이브 : 한국 기록유산 Encyves]&lt;br /&gt;
&lt;br /&gt;
==활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레이아웃|편지 원문 및 번역문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정보|편지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인물정보|인물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공간정보|공간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사건정보|사건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물품정보|물품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문헌정보|문헌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 기기정보|기기 메타데이터 작성 틀]]&lt;br /&gt;
&lt;br /&gt;
*[[:틀:선교사편지인물태그|인물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공간태그|공간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사건태그|사건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물품태그|물품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단체태그|단체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기기태그|기기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자료태그|자료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틀:선교사편지문헌태그|문헌 데이터 태깅용 틀]]&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D%97%A4%EB%A1%A0%EC%9D%98_%EC%82%AC%ED%83%9D</id>
		<title>헤론의 사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ED%97%A4%EB%A1%A0%EC%9D%98_%EC%82%AC%ED%83%9D"/>
				<updated>2019-05-07T05:48:3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분류:선교사편지 공간|공간 데이터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 공간정보&lt;br /&gt;
|식별자= &lt;br /&gt;
|대표명=헤론의 사택 &lt;br /&gt;
|한글명=헤론의 사택&lt;br /&gt;
|영문명=Site of Dr. Heron's House&lt;br /&gt;
|한자명=&lt;br /&gt;
|가나명=&lt;br /&gt;
|유형=건축물&lt;br /&gt;
|형태=부존&lt;br /&gt;
|위도=37.567565&lt;br /&gt;
|경도=126.972191&lt;br /&gt;
}}&lt;br /&gt;
&lt;br /&gt;
==기본정보==&lt;br /&gt;
미국 북장로교 한국선교회가 세 번째로 매입한 선교사 주택으로 1885년 5월에 내한한 헤론 의사 부부가 거주한 집&lt;br /&gt;
&lt;br /&gt;
==상세정보==&lt;br /&gt;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1-9번지 위치&lt;br /&gt;
*1886년 7월 18일 한국인 첫 신자 노춘경에게 세례를 준 장소&lt;br /&gt;
*1891년 헤론 부인이 게일과 재혼하고 나서 곤당골로 이사하자 같은 해 4월에 내한한 빈튼 의사 부부가 이 집을 사용&lt;br /&gt;
*장로교 선교회가 정동에 있는 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에 매매하여 1902년 덕수궁 소유로 편입&lt;br /&gt;
**관련 편지1: [[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50706)|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5년 7월 6일)]]&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분류:선교사편지_공간]]&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ntry>
		<id>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90526)</id>
		<title>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890526)</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dh.aks.ac.kr/Edu/wiki/index.php/Letter_From_Underwood_To_Ellinwood_(18890526)"/>
				<updated>2019-05-03T15:22:53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김은정: &lt;/p&gt;
&lt;hr /&gt;
&lt;div&gt;{{버튼|[[선교사 편지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선교사 기록 연구#구축 데이터 목록|편지 목록으로 돌아가기]]}}&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정보&lt;br /&gt;
|식별자=L18890526UTOE&lt;br /&gt;
|대표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amp;lt;br/&amp;gt;(1889년 5월 26일)&lt;br /&gt;
|한글명칭=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89년 5월 26일)&lt;br /&gt;
|영문명칭=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May 26, 1889)&lt;br /&gt;
|발신자=[[Underwood, Horace G.(원두우)]]&lt;br /&gt;
|수신자=[[Ellinwood, Frank F.]]&lt;br /&gt;
|작성연도=1889년&lt;br /&gt;
|작성월일=05월 26일&lt;br /&gt;
|작성공간=[[서울]]&lt;br /&gt;
|자료소장처=&lt;br /&gt;
|번역문출처=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lt;br /&gt;
|필드수=&lt;br /&gt;
}}&lt;br /&gt;
&lt;br /&gt;
{{선교사편지레이아웃&lt;br /&gt;
|원문1=Dr. Horace G. Underwood&amp;lt;br/&amp;gt; Seoul, Korea &lt;br /&gt;
|원문2=May 26, 1889&lt;br /&gt;
|원문3=Dear Dr. Ellinwood,&lt;br /&gt;
|원문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Here we are back in Seoul safe &amp;amp; sound &amp;amp; indeed thankful to the good Lord for the way in which He has led us. If our trip has done nothing else I believe it    has at least taught us to realize more than we ever did before that the Lord will protect &amp;amp; take care of us. My wife has told you in her letter about the work in Euiju. I had promised not to &amp;quot;Baptise or teach&amp;quot; while travelling with Mr. Dinsmore's passport but I had a passport with me for China &amp;amp; when I reached Euiju I simply crossed the river, met the people there on Chinese soil &amp;amp; preached &amp;amp; Baptised. A glorious work is going on there. It badly needs that someone should go up &amp;amp; teach &amp;amp; instruct them. I had hoped that perhaps we could return in the summer &amp;amp; work there for vacation but as I look at the work here I see that I cannot leave it for so long &amp;amp; I want if the way seems open to take a trip South &amp;amp; see the work that is doing there. I do not know yet how it is but we have a colporteur there who sends good reports. What shall be done about this field I do not know but feel that two months there would start a work that it would take almost a year to do here. At the same time this is the capital &amp;amp; I am needed here. I do not know which way to go. We were greatly blessed in the matter of wedding presents &amp;amp; my wife has given one half of the King's munificent gift for a place of worship in Euiju.&amp;lt;/div&amp;gt;&lt;br /&gt;
|원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We now find that there have not been wanting those who spoke of us as taking a wedding trip on mission funds. The trip was in every sense a mission trip but to avoid all chance of their having anything to say against the work we have decided to pay the cost of my wife's chairmen which was the exact extra cost of her going. I had to go married or not to do the work. By this means we remove all chance of anything of the kind being said. I have been able also to pay off all my debts &amp;amp; this is a great burden off my shoulders. &amp;lt;/div&amp;gt;&lt;br /&gt;
|원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We thus start fairly &amp;amp; will be able to keep out of debt in the future. &amp;lt;/div&amp;gt;&lt;br /&gt;
|원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When we got back here the other day I was very much surprised to find that Christian services had been ordered to be stopped on the Presbyterian compound &amp;amp; that our Christians were meeting from house to house.&amp;lt;/div&amp;gt;&lt;br /&gt;
|원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Dr. Heron had given the order because he considers that the&amp;quot;Presbyterian Mission should not be associated with law-breaking&amp;quot;. Now Mr. Dinsmore has decided that Christian teaching public or private is contrary to the law &amp;amp; if the above is carried out we must stop all our work, we cannot feed our Christians we can do nothing, The difficulty is not so much with the government as with our Minister. The Korean government has said nothing further on the subject at all. Mr. Dinsmore asserts that they know what we are doing &amp;amp; if this is so then does it not seem that they are willing for us to go on as they do not say anything further. It seems to me that the scriptures teach that we have a higher law than human to go by &amp;amp; that we must do so. I do not believe in scouting opposition, I believe in caution but when I am told to stop work both private &amp;amp; public that, as a minister of the Gospel, I cannot do.&amp;lt;/div&amp;gt;&lt;br /&gt;
|원문9=&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An incident shedding some light on the ideas of some of the officials came to hand the other day. One of the students in the Hospital School is a Christian &amp;amp; talked with his fellows about Christ. A few months later 4 of his classmates waited on the President of the Hospital, Yi Pansa(?), one of the Foreign Office Vice Pres, &amp;amp; said that Mr. Cho was a Christian, was associated with missionary work &amp;amp; that they could not-study with him. The old President replied &amp;quot;What of it? Is he any worse for it? Your teacher is a missionary. If you do not care to study with him you can leave.&amp;quot; They left &amp;amp; it might be as well to say that it was a well known fact that Mr. Cho was the best student &amp;amp; hardest worker in his class.&amp;lt;/div&amp;gt;&lt;br /&gt;
|원문10=&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Now about the news of Dr. Heron. Dear Dr. Ellinwood, as you know we have been like brothers but I regret to say that of late there has been a great change in the Doctor. The Missionaries here all notice it &amp;amp; some have asked me why it is that he now faces the opposite way to what he did a little over a year ago. I am afraid it is the Foreign practice that is spoiling him. I think as a mission we would be better without it. He would then be able to do all the mission work &amp;amp; another Physician  would not be needed if we       the amt. taken       pay for the keeping of an extra man here. I do wish that your suggestion about another man coming to take the outside work if he were a Christian man could be carried out. Dr. Heron is a fine man but do not let him be spoilt by the Foreign Practice.&amp;lt;/div&amp;gt;&lt;br /&gt;
|원문11=&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The school work has been carried on during our absence, in the Orphanage by Miss Hayden, who did this in addition to her other work, &amp;amp; in the Hospital School by Mr. Gifford one hour &amp;amp;Mr. Hulbert one hour a day.&amp;lt;/div&amp;gt;&lt;br /&gt;
|원문12=&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Mr. Bunker is away &amp;amp; Mr. Gifford is also teaching 2 hours a day in the government school. The Orphanage must have more attention than it has had &amp;amp; what can be done about the New School. It has occurred to me that our Mission could do nothing better than have Mr. Gilmore out here in charge of that school. I do not know whether the Board asks men to come out or not but Mr. Gilmore is a good teacher, a good worker, a scholar &amp;amp; a fine linguist. He knows a good deal about the language now &amp;amp; could get right to work as soon as he gets here. I do not know whether he would come but I do know that his wife would like to be back here in Korea. It is not necessary for me to speak of him as a man, as you doubtless have seen a good deal of him since his return, but he has a good deal of good sound common sense.&amp;lt;/div&amp;gt;&lt;br /&gt;
|원문13=&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The Mission would gain much bu having a clear-headed man like Mr. Gilmore in it &amp;amp; also by having a man who could get to work at once. If he is willing &amp;amp; could be out here by Fall &amp;amp; at once take charge of the school it would indeed be the best thing for the mission. Will not the Board then ask Mr. Gilmore to come out here for this purpose to take charge of this school.&amp;lt;/div&amp;gt;&lt;br /&gt;
|원문1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I am sorry to say that there are some rumors among the Koreans about Dr. Power. We will at once look into them but Koreans are such arrant lyers that we want to be very sure before we take a step. Mrs. Heron is now quite sick again &amp;amp; is very poorly. She is unable to attend to the women &amp;amp; so my wife will look after that work until she is able to resume.&amp;lt;/div&amp;gt;&lt;br /&gt;
|원문1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Do not be alarmed if reports reach you of harm done by our private letters. A little over a year ago, my letter in the &amp;quot;Review&amp;quot; came back &amp;amp; was translated into Korean but no harm came of it. It has been asserted that this caused the &amp;quot;interdict&amp;quot; but it was the copy of it in the &amp;quot;Christian&amp;quot; that was translated &amp;amp; it did not reach here till after the Edict was issued. In addition to this, the reports among the Koreans of our work are so exaggerated that when our reports reach them it seems but small &amp;amp; no wonder is excited. At present, there is no excitement among the Koreans at all. It is simply on the part of Foreigners. &amp;lt;/div&amp;gt;&lt;br /&gt;
|원문16=Your Most Sincerely,&lt;br /&gt;
|원문17=Horace G. Underwood&lt;br /&gt;
&lt;br /&gt;
|번역문1={{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amp;lt;br/&amp;gt;한국, {{선교사편지공간태그|[[서울]]}}&lt;br /&gt;
|번역문2=1889년 5월 26일&lt;br /&gt;
|번역문3={{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 박사님께,&lt;br /&gt;
|번역문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우리는 이곳 서울에 무사히 돌아 왔습니다. 선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해 주셨던 것을 진심으로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혹 이번 여행의 성과가 별다른 것이 없었다고 해도, 적어도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해 주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돌보신다는 사실을 그 어느 때보다 더 분명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박사님께 보내 드린 편지에서 북쪽에 있는{{선교사편지공간태그|[[의주]]}}에서의 사역에 대해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저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딘스모어]]}}씨의 통행증으로 여행을 하는 동안 세례를 주거나 기독교에 대해 가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는 중국으로 갈 수 있는 통행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의주에 도착했었을 때 저는 강을 건너 중국 땅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세례를 주었습니다.&amp;lt;ref&amp;gt; 언더우드가 황해도 전역을 순방할 때 한국 최초 자생적 교회인 소래교회(송천교회)를 방문하였다. 서경조, 최명오, 정공빈 외 신자들에게 세례를 주었다.&amp;lt;/ref&amp;gt; 매우 놀라운 일들이 지금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누군가가 그곳으로 가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는 것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여름에 다시 그곳으로 가서 휴가 동안 사역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이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을 보니 그렇게 오랫동안 이곳의 자리를 비울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 {{선교사편지인물태그|[[백홍준|권서 한 사람]]}}이 있어서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여기서라면 1년 정도 걸리겠지만 그곳에서는 2개월 정도면 사역을 시작할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곳은 수도이며 제가 이곳에서 일하는 게 필요한 형편입니다. 저는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결혼 선물을 너무도 풍족히 받는 은혜를 누렸는데 제 아내는 왕이 내려 준 후한 선물 중에서 그 반절을 의주에 있는 예배처소에 주었습니다.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이제는 “우리가 선교 기금으로 신혼 여행을 다녀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그 여행은 전적으로 선교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혹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부정적으로 이야기할지도 몰라서, 제 아내를 위해 수고했던 가마꾼들에게 지급하는 비용은 우리가 지불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비용이 정확히, 제 아내의 여행비용 중에서 초과되었던 금액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소지를 모두 없애 버렸습니다. 또한 저는 그 동안 제가 빚지고 있던 돈을 모두 갚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제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벗게 해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6=&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이렇게 해서 우리는 떳떳하게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는 빚을 지는 일이 없을 겁니다.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7=&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며칠 전 이곳에 돌아 왔었을 때, 장로교의 주거구역 내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지시가 내려진 것을 알고서 무척 놀랐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집 저 집에서 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8=&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이렇게 지시한 사람은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의사였습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의사는 “장로교 선교에 있어 위법적 요소가 개입 되서는 안 된다&amp;quot;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딘스모어]]}}씨는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기독교에 대해 가르치는 것은 법에 저촉(抵觸)되는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된다면 우리는 모든 사역을 중단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하도록 도울 수도 없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됩니다. 상황을 어렵게 하는 문제는 정부에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측 공사에게 있습니다. 한국 정부측에서는 이 일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한 바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지만 {{선교사편지인물태그|[[딘스모어]]}}씨는 정부측 사람들은 우리가 무얼 하는지 다 알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비록 더 이상 아무런 말이 없다고는 해도 이곳에서 우리의 목적을  이루어 가는 것 자체를 거부당하게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성경말씀에서는 사람의 말보다 더 높은 권위를 지닌 법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에서 가르쳐 주는 대로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반대 요소를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신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적으로든 공적으로든 모든 사역을 중단해야 한다고 하면,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저는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9=&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몇몇 관리들의 생각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일이 며칠 전 있었습니다. 의학교 학생들 중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어느 한 학생은 그의 친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몇 달 후 그의 동급생 4명은 병원 원장이자 외부 부대신 중 한 명인 이 판서 (Yi Pansa?)를 방문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그들은 “조 씨는 기독교인이고 선교 사역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와 함께 공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분별 있는 병원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그래서 어떻다는 건가? 조 씨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여타 학생들에 비해 못한 점이 있기라도 한가? 자네들 스승 역시 선교사일세. 자네들이 조 씨와 같이 공부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 이 학교를 떠나도 좋네.” 그 말을 듣고서 그 학생들은 물러갔는데, 조 씨는 그 학급에서 가장 우수하며 가장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라 널리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0=&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이제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의사에 대한 소식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선교사편지인물태그|[[Ellinwood, Frank F.|엘린우드]]}} 박사님께서 아시는 대로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의사와 저는 그 동안 형제처럼 지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은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의사가 예전과는 많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곳의 선교사들이 모두 그렇게 느끼고 있고 ‘왜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의사가 저렇게 일년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느냐’고 제게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외국인 의사로서 그가 개업한 일 때문에 그가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교사로서 그런 일은 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헤론 의사는 모든 선교 사역을 다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고 새로운 의사도 필요치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곳에 한 사람 더 두기 위해 필요한 비용을            _______. 새로운 사람이 와서 주변적인 일들을 맡게 했으면 좋겠다고 박사님께서 해 주신 제안이, 새로 올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렇게 실행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John W.|헤론]]}}의사는 좋은 사람이지만, 개업한 일 때문에 좋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1=&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학교 일은 계속 진행되어 나갔습니다. {{선교사편지공간태그|[[고아학당|고아원]]}}에서는 하이든 양이 맡고 있는 다른 사역과 더불어 일을 맡아보았고 {{선교사편지공간태그|[[제중원의학당]]}}에서는 {{선교사편지인물태그|[[Gifford, Daniel L.|기포드(Gifford)]]}}씨와 {{선교사편지인물태그|[[Hulbert, Homer B.|헐버트]]}}씨가 하루에 한 시간씩 일했습니다.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2=&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번커 씨는 이곳에 있지 않으며 {{선교사편지인물태그|[[Gifford, Daniel L.|기포드]]}}씨는 공립학교에서 하루에 2시간씩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교사편지공간태그|[[고아학교|고아원]]}}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새 학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선교사편지단체태그|[[북장로교 해외선교부|우리 선교부]]}}에서 길모어 씨가 이곳에 와 학교 일을 담당하게 하는 것처럼 좋은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교사편지단체태그|[[북장로교 해외선교부|본부]]}}에서 사람들이 이곳에 오도록 요청을 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선교사편지인물태그|[[Gilmore, George W.|길모어]]}}씨는 훌륭한 교사이고 사역자일 뿐 아니라 뛰어난 학자이고 어학에도 능통합니다. 현재 한국어를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이곳에 도착하는 대로 즉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 겁니다. 길모어씨 본인이 오려고 할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부인이 한국에 다시 오고 싶어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새삼스럽게 그를 천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그가 돌아간 이후로 박사님께서 틀림없이 길모어 씨를 충분히 보셨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가 건전한 상식을 풍부히 갖춘 사람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3=&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길모어 씨처럼 명석한 판단력을 갖추고 있을 뿐더러 즉시 사역에 착수할 수 있는 사람을 맞게 된다면 이곳 선교부(에 큰 힘이 될 겁니다. 길모어씨가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 가을쯤 이곳에 와 학교 일을 담당하게 된다면 선교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길모어씨가 이곳 학교 사역의 책임자가 되도록 본부에서 길모어씨에게 요청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4=&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한국인들 사이에 파워 의사에 대한 몇 가지 소문이 퍼져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되어 유감스럽습니다. 우리는 즉시 이 소문들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보려 합니다. 그렇지만 한국인들은 워낙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조치를 취하기 전에 상황 파악을 매우 정확하게 하려 합니다. 현재 {{선교사편지인물태그|[[Heron, Harriet G.|헤론여사]]}}의 건강상태는 다시 매우 악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헤론 여사는 여성들을 돌보는 일을 할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제 아내가 헤론 여사가 건강해 질 때까지 그 일을 맡아보려 합니다.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5=&amp;lt;div style=&amp;quot;text-align:justify&amp;quot;&amp;gt;‘우리의 사적인 편지로 인해 야기된 문제’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 보시게 되어도 놀라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년 전쯤에, 제 편지가 평론(Review)에 소개되었고 그것이 한국어로 번역되었는데 그것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금지 명령”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번역되었던 것은 “그리스도인란(欄)” 안에 있는 제 편지에 대한 사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칙령이 내려진 후에야 이곳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우리 일을 하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그 보고서는 지나치게 침소봉대(針小棒大) 되어서 ‘우리가 보낸 보고’를 그 사람들이 볼 때도, 놀라워하는 경우는 볼 수 없습니다. 현재, 한국인들 사이에는 동요하는 어떤 모습도 없습니다. 일부 외국인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amp;lt;/div&amp;gt;&lt;br /&gt;
|번역문16=안녕히 계십시오.&lt;br /&gt;
|번역문17={{선교사편지인물태그|[[Underwood, Horace G.(원두우)|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 올림.&lt;br /&gt;
}}&lt;br /&gt;
==주석==&lt;br /&gt;
&amp;lt;references/&amp;gt;&lt;br /&gt;
&lt;br /&gt;
[[분류:선교사편지]] [[분류:선교사편지_편지]] [[분류:선교사편지_From_Underwood]] [[분류:선교사편지_To_Ellinwood]] [[분류:선교사편지_1889년]] [[분류:선교사편지_서울]]&lt;/div&gt;</summary>
		<author><name>김은정</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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